"아, 글믄 니도 개새끼 함 해."
저 멀리 부엌에서 들리는 소란스런 소리에 미간을 작게 구겼다. 김재환 이 새끼 또 심심하다고 친구 데려온 거 아니야? 그나저나 언제 이렇게 누워서 자고 있었지. 무릎에 우리 니엘이 올려놓고 잤던 거 같은데. 어엉, 나도 모르겠다... 일어나서 치킨이나 뜯어야지. 몇 겹으로 쌓여있던 무거운 담요를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걷어내며 푹신한 소파에 푹 파묻혔던 몸을 느릿하게 일으켰다. 꽤나 오랜 시간을 잠들어있던 건지 렌즈 때문에 눈앞이 뿌옇다. 졸라 뻑뻑해... 가만히 소파에 앉아 크게 눈을 깜빡이며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갑자기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김재환이 식탁에 앉아있다가 나한테 냅다 뛰어온다.
"...뭐 하냐?"
"야, 야. 벌써 일어났냐? 어? 왜 벌써 일어나. 조금만 더 자지."
"안 비켜? 왜 눈앞에서 알짱대. 꺼져 봐."
"아, 아니... 그냥 너 일어나니까 신나서."
"하나, 둘..."
내가 느릿하게 숫자를 세자 골키퍼처럼 팔을 쭉 뻗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야를 막던 김재환이 잠시 뒤를 흘금 쳐다보다 스르르 옆으로 빠진다. 저 새끼 존나 웃기는 새끼네... 김재환이 소파 위로 주저앉자 뿌얬던 시야 안에 하얀 솜뭉치가 떡하니 보인다. 헉... 니엘이다.
"왕!"
"우리 니엘이 잘 잤어요? 우쭈쭈. 언제 일어났어."
뭐가 그리 급했는지 붉은 혀를 빼꼼 내놓고 연신 헥헥대며 숨을 몰아쉬는 니엘이를 빤히 바라보다가 왜인지 옆에서 추욱 늘어져있는 김재환의 허벅지를 찰싹 내리쳤다. 이 쌍노무 새키야. 우리 니엘이한테 뭘 했길래 애가 이렇게 힘들어해.
"아! 뭐야, 왜 때려."
"야, 너 또 니엘이 괴롭혔나? 내가 등에 올라타서 말타기 하지 말랬지."
"성이름 너는 나를 뭘로 보고... 그냥 얌전히 대화만 했어."
"엉? 뭘 해?"
아니, 아니야... 지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내뱉으며 대충 손만 휘휘 저어대는 김재환을 최대한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봐 주다가 작게 혀를 찼다. 쯧쯔. 저러니 여자친구가 없지. 저걸 누가 미쳤다고 데려가니. '야, 가서 치킨이나 처먹어.' 억지로 등을 떠미는 김재환의 재촉을 받으며 다리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담요를 소파 구석으로 밀어 넣고 일어나니 니엘이가 꼬리를 파닥이며 금세 발밑으로 다가온다. 오고고.
**
니엘이에게 맛있는 생닭을 직접 썰어주고 싶다며 칼을 들고 망나니처럼 설치다가 그만 닭이 아닌 손을 썰어버렸다. 어쩐지 죽은 닭에서 피가 나온다 했어... 가만히 옆에서 닭 써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재환이 화들짝 놀라 등짝을 스매시로 마구 내려친다. 야, 손보다 등이 더 아파... 소리를 꽥꽥 지르며 바로 옆에서 조심하지 그랬냐며 잔소리를 하는 바람에 결국 괜찮던 내 정신까지 혼미해졌다. 결국 그나마 제정신인 니엘이가 허둥지둥 주위를 빙빙 돌다 구급상자를 물고 오더라. 니엘아, 네 주인 새끼보다 네가 더 낫다...
"나 등 아파, 재환아..."
"그러게 내가 한다고 했잖아."
"아니, 나 귀에서 피 안 나...?"
가만히 좀 있어.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던 김재환이 의자에 앉아 피가 철철 흐르기 시작하는 내 손을 잡아채곤 서둘러 구급상자를 열고 소독약을 꺼냈다. 아, 소독약 저거 졸라 아플텐데... 차라리 안 보고 말지. 순간 소독약을 붓지 않았음에도 따가움이 느껴져 눈을 꾹 감고 고개를 돌려버리려다가 번뜩 아까 김재환과 함께 대화하던 목소리가 떠올라 다시 제 손에 잔뜩 집중한 정수리로 시선을 돌렸다. 동그란 게 귀엽네.
"야, 근데 너 아까 친구랑 있지 않았..."
"악!!!!!!!!!! 씨바알!!!!!!!!!!!!!!!!!!!!"
"헉..."
갑자기 김재환이 내 손에 소독약을 냅다 부어버리는 바람에 마치 해리포터가 내 손가락에 섹튬셈프라를 날린 건가, 라는 착각이 일었다. 자신도 꽤나 놀란 듯 연신 괜찮냐고 묻더니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누가 보면 너한테 섹튬셈프라 날린 줄 알겠어, 재환아... 대충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끄덕여주니 어깨가 축 처져 연고를 꺼내든다. 니엘이도 내 큰 비명소리에 놀랐던 건지 허벅지에 머리를 부비적거리며 작게 울음소리를 낸다. 누나는 괜찮아...
결국 괜찮다고 몇 번이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재환은 내 손가락에 붕대를 감아주었다. 도대체 왜...? 나 손가락 부러졌니? 그래도 나를 걱정하는 그 마음이 진하게 전해져 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신나게 닭 다리를 뜯었다. 한 입 먹고 니엘이 쓰다듬고, 한 입 먹고 니엘이 볼 만지고, 한 입 먹고 턱 간질이고. 바쁘게 치킨을 먹고 있는데 김재환이 대뜸 니엘이를 데려간다.
"야, 니엘이 내 놔."
"얘 우리 집 반려야."
"니엘이는 아닌 거 같은데..."
김재환의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이는 니엘이와 꿋꿋이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안고 있는 김재환을 바라보다가 마저 닭 다리를 뜯었다. 아, 식어서 맛없어.
***
니엘이, 나, 김재환. 이렇게 셋이 소파에 앉아 얌전히 티비를 시청하다 무심코 베란다로 고개를 돌리니 꽤나 어둑어둑한 게 시간이 늦은 것 같다. 벌써 몇 시지. 파스텔 톤의 벽지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다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엄마에게 부재중 전화가 한 통. 담요를 목 끝까지 덮은 채 옆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김재환의 포동한 볼을 쿡 찌르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 이제 집 가야지. 뻣뻣한 팔과 다리를 쭈욱 펴 기지개를 킨 후 구석에 던져놓았던 패딩을 주섬주섬 걸쳐 입었다. 나름대로 조심히 입는다고 입은 건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컸던 건지 김재환이 미간을 좁히며 눈을 뜬다.
"더 자."
"집 가려고?"
"엉. 엄마한테 전화 왔어."
"데려다줄게."
"뭘 데려다줘. 요 앞인데."
요 앞이라도 위험해. 작게 인상을 구기더니 밍기적 밍기적 소파에서 일어나 겉옷을 챙겨든다. 아니, 데려다줄 거면 옷을 빨리 입든가... 하여튼 느려터졌다.
밖은 꽤나 쌀쌀했다. 아직 11월임에도 불구하고 패딩 사이사이로 바람이 파고들어온다. 아, 목도리라도 하고 올걸. 빨개진 코끝과 시린 귓불을 손으로 만지작대다 옆에서 붉은 목도리를 칭칭 싸매고 있는 김재환을 흘금 바라봤다. 얼굴을 반쯤 폭 파묻고 걸어가는 꼴이 퍽 따뜻해 보여 옆으로 늘어진 붉은 목도리를 콱 잡아채니 얌전히 걸어가고 있던 김재환이 화들짝 놀라 돌아본다.
"왜, 왜."
"야."
"목도리 나 줘."
김재환 앞에 바짝 서 돌돌 둘러진 목소리를 풀었다. 도중에 잘 안 풀려 꽤나 고심하긴 했지만. 갑작스런 행동에 놀랐는지 뻣뻣하게 굳은 어깨를 툭 치며 목도리를 두르니 어이없다는 듯 실실 웃어댄다. 내일 다시 줄게. 꽤나 뻔뻔하게 말하며 휙 돌아 걸어가는데 졸졸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없다. 결국 몇 발자국을 더 걷다가 의아한 마음에 살짝 뒤를 돌았더니 아직 서있던 그곳에 멈춰있는 김재환이 보였다. 뭐가 그리 웃긴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쪼그려 앉아 웃고 있다.
빨리 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그제야 성큼성큼 걸어와 어깨동무를 한다. 갑자기 느껴진 묵직함에 주춤했다가 서로 뭐가 웃긴지 킬킬 웃으며 다시 길을 걸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부터는 입김이 폴폴 나오는 온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춥지 않았던 거 같다. 김재환의 목도리를 뺏어서인지, 아니면 내 어깨에 얹힌 팔이 따뜻해서인지.
***
전편에서 댓글 달아주신 천사 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가 글잡에 글을 처음 써 보는 거라 암호닉... 을 어떻게 받는지 잘 모릅니다. 하하.
그건 제가 열심히 공부를 한 뒤에 차차 고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굿나잇. (하트)
아, 이걸 깜빡했네요... 서둘러 들어왔슴다. ^^;;;;;;;
니엘이는요, 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거 맞아요. 그거요, 그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