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품 안에서 잠든 종대를 살며시 내려다보는 크리스의 눈길 하나하나에 뚝뚝 흘러넘칠 듯한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잠든 종대의 얼굴은 좋은 꿈이라도 꾸듯 살짝 웃음기를 머금은 채였다. 그 모습에 크리스는 종대를 제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종대의 정수리 가에 제 턱을 살며시 놓은 크리스의 눈에 자신의 옷장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캐리어 한 개가 들어왔다. 바람같은 아이. 언제든 크리스의 곁을 떠날 사람처럼 종대는 같이 살게 된 후에도 자신의 짐을 크리스의 집에 풀어놓지 않았다.
첸첸, 내 바람.눈을 감아버리며 애써 눈에서 캐리어를 지워버린 크리스가 종대를 감싸안은 팔에 좀 더 힘을 가해 끌어안았다. 어느샌가 종대의 품 안에 안겨버린 형상이 된 크리스의 등 뒤로 조용히 종대의 손이 올라와 가만히 토닥였다. 불안한 듯 어미의 품을 파고드는 듯한 크리스의 몸짓에 종대는 가만히 어미처럼 크리스를 끌어안았다.
바람소년
Written by Re.D
고아, 버려진 아이, 갈 곳 없는 아이. 모두 종대를 칭하는 말이었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 채 고아원 앞에 버려져 있던 아이. 성인이 될 때까지 입양이 되지 못해 결국 고아원을 떠나 갈 곳 마저 없어진 아이. 어느 곳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한 채 종대는 바람처럼 곳곳을 떠돌았다. 하루도 안 되어 떠나버릴 때도 있었고 길어봐야 한 달 가량을 머물다 훌쩍 떠나버리고는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법이 없었다. 그런 종대가 가끔 돌아가는 곳은 자신이 자란 고아원이었다. 오래 머무를 수는 없지만 하룻밤씩 묵고 가는 종대를 원장 수녀님은 언제든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아직도 마음 붙인 곳이 없니?"
"엄마, 저 아시잖아요. 전 이 생활이 편해요."
자신이 직접 낳은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품에서 길러 세상에 나간 아이들이 많은 원장수녀님이라도 종대는 아픈 손가락이었다. 자신을 엄마라 부르며 말썽 한 번 없이 자란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 자리잡고 살며 잘 지낸다며 간간히 연락을 취해오거나 방문하기도 했다. 그런 아이들 중 하나가 되지 못한 종대를 수녀님은 항상 가슴 아파했다. 이 가련한 아이가 마음 놓고 편하게 살면 참 좋으련만... 눈시울이 촉촉해지며 종대의 머리를 쓰다듬는 수녀님의 손길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그런 수녀님의 모습에 종대는 죄송한 마음 밖에 들지 않아 그저 수녀님을 꼭 안아드리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
"형, 형, 종대 형!!"
"너 거기 안 서!! 내 거 내놔!!"
고아원이 떠나갈 듯 소리지르며 달려오는 두 꼬마 녀석에 얼굴을 닦던 수건을 어깨에 걸친채로 무릎을 굽혀 팔을 벌렸다. 그런 종대의 팔이 보이지도 않는 것이지 먼저 뛰어온 경수가 제 등 뒤로 쏙 숨어선 종대의 어깨 넘어로 자신을 뒤따라온 종인을 흘끗 쳐다봤다. 자신의 앞에 멈춰선 채로 씩씩 거리는 종인의 모습에 종대는 뒤의 경수를 힐끗 봤다 경수의 손에 꼭 쥐어진 팽이 하나를 보고선 다시 앞의 종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도경수 팽이 내놔!!"
"싫어!! 왜, 왜 너만 가지고 놀아?? 나도 놀거야!!"
모양을 보아하니 산 지 얼마 되지않은 새 팽이였다. 두 녀석이 하나를 가지고 놀려하니 당연히 싸움이 날 수 밖에 없었다. 다리를 펴고 일어선 종대가 뒤를 돌아 경수에게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팽이를 달라는 듯 손을 까딱거리니 금새 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경수가 마지 못해서 종대의 손에 팽이를 올려놓았다. 손에 팽이를 쥔 채 뒤를 도니 종인이 당당하게 손을 쭉 내민 채 종대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김종인."
"형, 내 팽이 줘!"
"안돼. 오늘은 이거 압수. 그리고 너. 경수가 형이야. 누가 이름 그렇게 막 부르래. 형이 저번에 그러면 혼난다고 했지? 그리고 장난감은 같이 가지고 노는 거라고 했잖아."
"싫어! 그거 내 거란 말이야! 크리스가 나한테 사준건데 경수 형이 맘대로 가져갔어!"
크리스? 종대는 제 귀에 들려오는 소리에 의문이 생겼다. 고아원의 특성상 이 곳에는 간간히 아이들을 위한 후원이 들어오기도 했다. 그치만 외국인이 후원하는 것은 종대가 있던 때에도 전무한 일이었다. 거기다 고아원에 선물한 것이 아니라 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는 것은 자신이 입양할 아이가 아니고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치만 종대가 듣기로 최근에 입양이 결정된 아이나 입양을 고려하고 있는 경우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종대가 관심이 소홀한 틈을 타 종인이 경수에게 달려들어 경수가 넘어지고 울음이 터졌다. 그 소리에 얼른 정신이 돌아온 종대가 종인과 경수를 떼어놓았다. 화를 참지 못하고 아직도 씩씩거리는 종인을 들고 종대는 다른 수녀님을 부르며 걸음을 옮겼다. 경수의 울음소리와 종대의 고함에 달려온 수녀님이 얼른 경수를 일으키고는 경수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종대가 종인을 껴안고 밖으로 몸을 옴겼다.
***
"중국계 캐나다인이라고 하더라. 최근에 후원을 해주시고 계셔."
"중국계 캐나다인이요? 그런 사람이 한국엔 왜? 것보다 고아원에 후원은 왜 한데요?"
"자신도 캐나다로 입양가서 자랐단다. 한국은 발령나서 왔다고 하더라. 우리야 고마운 일 아니겠니. 한국인도 아닌 사람이."
그 말을 들은 종대가 그제서야 조금씩 바뀌어 있는 고아원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겨울에 아이들이 따닥따닥 붙어자야하던 방에는 전기장판이 바닥에 깔려 아이들이 편하게 잘 수 있었고 원장수녀님의 사무실에도 불을 떼는 난로가 아닌 전기난로가 조그마하게 놓여있었다. 자신과 참 비슷하면서도 참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과 왠지모를 고마움이 종대의 가슴에 밀려들었다. 문득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이 정도 후원이면 꽤 지위가 있는 분인가봐요."
"그래, 무슨 대기업 한국 쪽 사장이라던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더라. 나이도 많지 않은 사람이 대단하지."
"나이요? 그 정도면 꽤 나이있으셔야 하지 않아요?"
"30대 초반이라더라. 능력이 대단한가봐. 시간이 나면 가끔씩 내려와서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해. 미혼이라던데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 같더라."
이야기를 하며 제 손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시는 원장수녀님의 모습을 보는 종대의 마음에 부러움이나 동경 같은 것이 살며시 피어올랐다. 그리고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과 호기심도 동시에 피어올랐다. 바람같이 유약한 자신과 달리 자신의 길을 만들어 단단해진 사람. 갓 사회로 내어진 21살의 종대의 마음 속에 어느 덧 자신이 아닌 또 다른 바람이 살랑살랑 생기기 시작했다. 만나보고 싶다.
레디 액션 |
원래는 맨 위의 것만 처음에 휘갈겨진 상태였는데 어떻게 확장이 되었네요... 스아실 아직 뒤의 얘기는 생각해놓은 것이 없습니다. 디패포는 내일 올라 올 것 같아요! 뜬금없는 신알신에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클첸은 제가 엠에서 루민과 함꼐 제일 좋아하는 커플링입니다. 처음에 이 소재 생각했을 때도 그냥 클첸이 떠올랐어요. 사실 이거 하나로 끝내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편이 나뉠 거 같네요. 상하 아니면 상중하가 될 예정입니다. 결말은 정해지지 않았어요. 바람이 머무를 지 떠나갈 지 저도 아직 모르겠네요. 여러분은 어떤 결말이 어울릴 거 같으세요? 의견 적극 반영할테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암호닉은 디패포 1편에서 정리해드릴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