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여우 우지호 first |
그러니까, 지호는 반짝거리는 것을 유난히도 좋아했다. 지호는 입에 물고 있던 지포라이터를 손에 쥐고서 달빛에 비추어보았다. 독수리 모양이 새겨진 은색 지포라이터에 환한 달의 모양이 얼핏 비춰진다. 예쁘다. 살며시 웃은 지호가 바지 주머니에 라이터를 집어넣고서 집 앞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허리를 굽히고 집 안이 다 들여다보이는 창문 밑으로 기어들어가 고개만 빼꼼히 내밀었다. 엄마는 주방에서 요리 중이고, 아빠는 안 보이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지호는 다시 현관문 앞에 섰다.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주먹을 꼭 말아쥔 지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우지호! 너 또 여우인 채로 돌아다니다 왔지?”
신발을 벗어다 가지런하게 놓고,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들어오던 지호는 엄마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 했다. 발꿈치를 내려놓고 눈을 꼭 감은채 손을 가지런히 모아 엄마에게 싹싹 빌었다. 잘못했어요, 엄마. 그러자 늘상 그러듯 엄마의 잔소리가 들려온다. 너, 엄마가 사회 생활하려면 사람으로 계속 있는 연습해야한다고 했지? 그러다 갑자기 여우로 변하면 어쩌려고 그래. 지호는 또 시작이다. 생각하며 한 쪽 눈을 슬며시 떴다. 엄마는 여전히 지호에게 등을 보인 채로 바쁘게 요리 중이였다.
“뭐야, 엄마는 뒷통수에 눈이 달렸어? 나 들어온 줄 어떻게 알았대.”
그제서야 엄마가 뒤를 돌아보며 안봐도 비디오지! 하고 소리를 친다. 지호가 손가락으로 귀를 막으며 도망치듯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자신의 방 문을 살포시 닫은 지호는 곧장 협탁 위에 올려져있는 꽤나 큰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열쇠, 동전, 유리 조각따위가 잔뜩 쌓여있었다. 그리고 이젠 은색 지포라이터도 추가됐다. 지호는 뿌듯한 표정으로 상자를 한참동안이나 들여다보다가 탁! 소리가 나도록 상자를 닫고 침대 위에 풀썩, 쓰러지듯 누웠다. 한참이나 천장을 들여다보던 지호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얼마안가서 지호의 몸이 작아지고 하얗게 털이 솟아나더니 금세 9개의 꼬리를 가진 하얀색의 자그마한 여우로 변했다. 여우는 몸을 둥글게 말고 몇 번 뒤척거리다가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지호는 여우인 채로 밖을 돌아다니길 좋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일 때보다 더 자유로왔고, 더 편했고 그리고 좀 더 작고 반짝거리는 것을 잘 찾을 수 있었으니까. 지호는 열심히 뛰어다니며 바닥을 두리번거리다가 차 밑에 앉아있는 길고양이를 만났다. 지호가 눈을 빛내자 고양이는 금세 꼬리를 내리고 인사를 해왔다. 지호는 고양이에게 달려들어 장난을 쳐대며 웃었다. 고양이의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당하는 걸지도 몰라도, 지호는 여우로 지내는 것이 즐거웠다. 지나가는 생쥐를 붙잡아 그 고양이에게 선물을 하기도 했다. 고양이는 생쥐를 물고 벽에 난 구멍으로 뛰어들어갔다. 호기심 많은 지호가 구멍 속으로 얼굴을 비집고 고개를 내밀었다. 자그마한 새끼 고양이들이 생쥐를 물고 온 어미 고양이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지호에게 다가왔다. 처음보는 지호가 신기한듯 잔뜩 경계를 하던 새끼 고양이는 지호가 눈을 몇번 꿈뻑이자 이내 경계를 풀고 지호의 털을 핥았다. 지호는 구멍에서 얼굴을 빼냈다. 지호는 여우로 지내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날씨가 좋아 햇빛이 쨍쨍했다. 그 햇살이 고고하게 걸어가는 지호의 등을 따뜻하게 비추었다. 아침부터 꽤나 열심히 뛰어다녔던 지호인지라 온 몸이 나른해졌다. 꽤나 높은 담벼락 위에 살며시 올라간 지호가 자리를 잘 잡고 눈을 꿈뻑이다가 사르르 감기는 눈을 막지않고 그대로 잠에 들었다. 아니, 잠에 들려했다. 지호가 눈을 감자마자 담벽 안에서 컹컹! 하고 짖는 소리가 들렸다. 달콤한 낮잠을 방해받은 지호는 잔뜩 인상을 찌푸렸다. 담벼락 아래에서는 꽤나 커보이는 개 한마리가 지호를 향해 연신 짖어대고 있었다. 잘 자고 있었는데 뭐야, 저건. 지호가 뾰로퉁해진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고양이라면 눈빛 하나로 제압했을 지호지만, 개. 그것도 지호의ㅡ여우일 때ㅡ몇배는 되보이는 커다란 개가 짖어대고 있으니 솔직히 조금은 당황했다고 봐야했다. 그러나 지금 지호는 담벼락 위. 아무리 큰 개라도 절대 닿지 않을 곳이였다. 지호는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나 개에게 손을 내밀었다. 컹! 하고 짖으며 개가 뛰었다. 지호는 재빨리 손을 내뺐다. 개는 담벼락에 머리를 쳐박고 깨갱거리며 떨어졌다.
그 꼴을 보며 깔깔거리던 지호는 그 행동을 몇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다 금세 질려버린 지호가 다른 곳으로 가서 잠을 청하려고 발을 내딛는 순간,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지호는 그대로 개가 있는 담벼락 밑으로 떨어져버렸다. 지호가 바닥에 발을 접질리며 끼잉하고 울었다. 아파, 아파! 혀를 내밀어 부딪힌 발목을 핥고 있었는데 지호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까 그 개였다. 지호는 무서움에 잔뜩 몸을 떨었다. 접질린 발은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개는 침을 뚝뚝 흘리며 지호에게 다가왔다. 지호는 담벼락 아래에서 어쩔 줄 모르고 발버둥을 치며 끼잉, 끼잉 계속해서 울어댔다.
“야, 삐삐. 저리 가, 안가?”
지호의 몸이 위로 붕 떠올랐다. 한 남자가 지호를 안아들고는 삐삐ㅡ세상에! 저렇게 큰 개한테 삐삐라니, 누가 주인인지는 몰라도 작명센스하고는ㅡ를 쫓아내듯 이리저리 손을 휘둘렀다. 삐삐는 잔뜩 심통난 표정으로 개집 안에 들어가버렸다. 지호는 자신을 안아들은 남자에게 더욱 동정심을 얻기 위해서 끼잉거리며 품 속으로 파고들며 고개를 들었더니, 남자의 표정이 구겨졌다.
“뭐야, 얘 어제 그 여우잖아.”
어젯 밤, 멍청하게 나한테 라이터를 빼앗긴 그 놈이다.
지훈은 지호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지훈은 어젯 밤 공원에서 버티고 버티다 벤치에 누워 잠들었는데, 경찰에게 발각되어 집으로 알아서 기어들어온 것이였다. 지훈은 지호의 다리를 몇번 만져보다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가 담벼락에서 떨어지냐, 병신. 그렇게 말하는 지훈을 보며 지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병신한테 당한 네가 더 안쓰러워. 지훈은 집안으로 들어가 발버둥치는 지호를 도자기를 닦고있던 가정부에게 안겨주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잔뜩 심통난 표정으로 샴푸질을 받고 있는 거고.
지호는 가정부가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몸을 파르르 떨었다. 가정부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에 지호는 발을 절뚝거리며 화장실 밖으로 최대한 빠르게 나갔다. 그러다 그만 대리석 바닥에 미끄러져 머리를 꿍하고 쳐박고 말았다. 그리고 또 다시 지훈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발버둥을 치며 지훈의 옷을 잔뜩 적셔놓은 지호는 지훈이 가정부에게 수건을 받아 눈을 가리자 그제서야 조용해졌다.
“아, 진짜 요거 되게 까탈스럽네.”
지훈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지호의 주둥이를 붙잡고 요리저리 흔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악! 야!”
지호는 지훈의 손을 콱, 물어버렸다. |
트리플망고 |
천년여우 우지호 암호닉 ♥떡덕후님♥ ♥바게트님♥ ♥주황님♥
암호닉 여러분들 스릉흡느드..
3개를 동시에 연재하려니 쬐끔 힘이 드네요 힝
프롤로그에 덧글 달아주신 10분 모두 감사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