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백희야
내겐너무까칠한 |
01 벚꽃이 만개하는 3월이 훌쩍 지나가고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이었다. 누구랑 누구가 사귄다더라,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더라 하는 풋풋한 소문이 돌고 있을 무렵 차마 웃지 못할 소문이 돌고있었다. 아니, 소문도 아니었다. 1학년 오세훈이 2학년 김종인을 좋아한다는 소문은 소문이 아니라 실화였다. 매주 월요일 조회시간은 항상 강당에서 하곤 했는데 상을 받으러 강당 위로 오른 종인을 향한 1학년 무리에서 나온 '김종인 잘생겼다!' 하는 말은 순식간에 강당 안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다. 당사자인 종인은 인상을 찌푸리고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한 놈이 누군가 찾으려다 관뒀다. 누군지 굳이 찾지 않아도 홀로 우뚝 서 있는 세훈은 내가 범인이오.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멈추지 않고 '이쁘다, 잘생겼다!'를 연발하는 바람에 결국은 학생주임 선생님께 등을 후려맞고는 귀를 잡힌체로 강당을 빠져 나갔다. 순식간에 오세훈의 그녀(?)가 된 종인은 일주일을 놀림감이 됬었어야 했다. 면전에 대고 대놓고 좋아하는데요? 하는 당돌한 고백에도 난 싫은데 씨발새끼야. 하고 대답을 해줘도 이 죽일 놈의 들이댐은 멈추질 않았다.
“ 야, 체할 것 같으니까 그만 쳐다봐. ” “ 형은 어쩜 밥 먹을 때도 이뻐요. 존나 여신이야. ” “ …씨발 진짜. ” “ 와, 난 형이 욕 할 때가 제일 섹시하더라. ”
종인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밥 먹다 체할 것 같다고 느꼈다. 1학년인 세훈이 어떻게 밥을 이렇게 빨리 받은건지 의문이었다. 아니, 그것도 모잘라 종인의 앞에 앉아 꽃받침을 하고선 계속 뚫어져라 밥 먹는것만 쳐다본다. 맘 같애서는 식판을 엎어버리고 싶은 것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꾹 참았다. 참을 인 자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던데 한번 만 참자.
“ 너 밥 안 먹을꺼면 꺼져 좀. ” “ 난 형 먹는거만 봐도 배부른데. ” “ 이 씨발 진짜! ”
펑! 결국 참지 못하고 수저를 식판위로 던지듯 내려놓은 종인이 순간 집중 되는 이목에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줄 서다 말고 먼저 먹어라 하고 도망가는 찬열과 백현이 이상하다 싶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새끼가 들러 붙는건지 종인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대로 계속 밥 먹다간 체할 것 같다고 생각한 종인이 아직 많이 남은 음식들을 한 곳에 밀어넣었다. 헐 형 그거 밖에 안 먹어요? 그러니까 말랐지. 밥 좀 많이 먹어요. 내가 밥을 못 먹는게 누구 때문인데…. 세훈을 흘긴 종인이 망설임 없이 일어서자 따라 일어선 세훈이 종인의 옆에 딱 달라붙어선 재잘 댔다. 잔반통에 음식물을 다 버리고 후식으로 나온 바나나를 손에 쥐자 세훈이 한마디 했다.
“ 와, 형은 입술도 도톰해서 바나나 먹으면 진짜 섹시하겠다. ”
…결국엔 바나나도 버렸다. 이런 썅 내겐너무까칠한
“ 형 오늘은 야자 하면 안되요? ” “ 너 어차피 야자도 안하잖아. ” “ 요즘은 형이 하래서 반에는 남아 있어요. ” “ 그럼 이번에는 공부도 해보는게 어떠냐? ” “ 생각은 해볼게요. ”
종인은 무용을 배우기 때문에 야간 자율 수업을 듣지 않았다. 그래서 석식도 마다하고 가방을 싸서 집에 가곤 했는데 세훈이 종인의 인생에 껴들기 시작한 이후로는 항상 세훈과 같이 집에 가곤 했다. 세훈은 강당에서 소란을 피웠던 그 날 부터 지금까지 쭉 저를 집에 데려다 줬다. 그리고 데려다 준지 몇 일이 흘렀을 때 문득 궁금해진 종인이 너 나 데려다 주고 야자 하러 가긴 하냐? 하고 물었다. 그러나 아뇨, 집에 가는데요? 하고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세훈 때문에 너 야자 수업 안들으면 집에 데려다 주기만 해봐라. 혼자 택시 타고 집에 간다. 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멋대로 좋아하는건 상관이 없었지만 저 때문에 공부도 안한다는 건 여간 찜찜한게 아니었다. 나중에 나 때문에 공부 못했잖아요 하고 매달릴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무튼간에 학교에서 걸어서 15분거리인 종인은 항상 등하교를 걸어서 했다. 종인의 집에 정반대편인 세훈은 태양이 내리쬐는 더운 날에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종인을 집에 데려다 줬다.
“ 근데 형은 저 언제 받아줄 생각이에요? ” “ 아마, 환생해도 안 받아줄껄. ” “ 솔직히 내가 뭐가 부족해요. 키도 크고, 존나 잘생겼는데. ” “ 그래 너 키 크고, 잘생겼는데 같은 거 달린 남자는 별로 안 좋아해서. ” “ 요즘 동성애자들도 결혼하는 세상인데 형도 너무 각박하네. ”
집으로 가는 내내 쉴 새 없이 조잘 대는 입이 야속했다. 이 더워 죽겠는 날에 매일 같이 스트레스가 쌓여서야. 저 녀석 능글맞음은 하루가 갈수록 느는 것 같단 말이야. 그나저나 세훈의 말대로 세훈은 키도 184cm에 얼굴도 준수한 편이었다. 종인이 좋다고 따라다녀도 남몰래 세훈을 좋아하는 여자애들도 많았다. 뭐 하나 꿇리는게 없는 놈이 왜 나를 좋아하나 싶기도 했다. 또 어디가서 저도 작은키는 아니었는데 세훈의 옆에 서면 조금 차이나는 키에 종인이 세훈에게서 몇 발자국 떨어졌다. 몇 발자국 떨어져 거리를 두고 걷고 있을 때 빵빵 거리는 클락션 소리가 나더니 몸이 세훈의 쪽으로 쏠렸다. 골목길인데도 불구하고 속도를 내서 달리는 차에 세훈이 미친거 아니나며 소리를 질렀다.
“ 차 오는거 안 보여요? 대가리 날리고 싶어요? ” “ 안 다쳤으면 됐지 왜 짜증이야. ” “ 형은 이게 짜증내는걸로 보여요? 좋아하는 사람이 다칠지도 모르는데! ”
또 나왔다. 세훈의 돌 직구. 세훈이 은근슬쩍 좋아하는 티를 낼 때 마다 내심 티를 내진 않았지만 부끄러운 종인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아, 다음부턴 조심할게! 그냥 좀 가! 하며 세훈의 등을 밀었다. 그러자 어? 귀 빨게졌다. 형은 피부 까만데 빨개지네요? 아, 귀여워. 그 와중에도 능글거리는 세훈 때문에 종인은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세훈의 앞이면 있는 쪽 없는 쪽 다 당하는거 같다. 우역곡절 끝에 집에 도착한 종인이 집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럼 형 제 꿈 꿔요. 그러자 종인이 집에 까지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는 세훈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너도 야자 때 토끼지말고 공부 좀 해. 하고 대답해주려다 더운 날씨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는 세훈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그래, 오늘 사고 날 뻔한 것도 구해줬으니까….
“ 야, 오세훈. ” “ 왜요? ” “ 가지말고 기다려봐. ”
후다닥 가방을 벗고 집으로 들어간 종인이 부엌으로 쏙 들어갔다. 띵- 하고 엘리베이터가 도착해도 종인의 가지말란 소리에 문 앞에 기대서 기다리고 있던 세훈이 오렌지 주스 한 컵을 들고 나오는 종인에 슬며시 입꼬리를 당겼다.
“ 더운데 고생 했다. 이거 마시고 가. ” “ 하, 형도 드디어 저한테 마음을 여나봐요. ” “ 안 준다. ” “ 아, 아니에요.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
컵을 받아 들자 마자 꿀꺽꿀꺽 넘어가는 주스에 종인이 진짜 더웠나 보다. 생각했다. 세훈에게서 컵을 돌려 받으러 손을 내밀었을 때 주려다가 갑자기 제 몸 쪽으로 쏙 빼는 세훈의 행동에 뭐 하는 짓이야? 하는 표정으로 세훈을 올려다봤다.
“ 오늘 진짜 덥잖아요. ” “ 그래서 내가 주스 줬잖아. ” “ 아니 주스는 고마운데. ” “ 더 줘? ” “ 아니 그게 아니라, 형 집에 아무도 없는 거 같은데 들어갔다 가면 안되요? ”
속이 뻔히 보이는 세훈의 말에 어이없이 웃어보인 종인이 세훈에게서 컵을 빼앗아 들고 그대로 문을 쾅 닫아버렸다. 종인의 까칠한 태도에 아, 형 농담이에요. 하고 웃어보인 세훈이 종인의 집 벨을 눌렀다. 철컥 하는 소리가 나더니 인터폰을 통해 들리는 종인의 목소리에 그만 세훈은 아파트가 떠나갈 듯 웃어버렸다.
- 변태새끼야 꺼져! …야,야자 째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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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
10화로 완결이 날 예정이에여! 끝나면 텍파 나눔 할 생각이고여ㅎㅎㅎ 첫화라서 분량이 적다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대체로 분량이 적어서 중편정도 에요. 단편 정도로 생각해서 쓴 글이라 급전개가 좀 많아여..ㅎㅎ;; 암호닉신청받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