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몽[白日夢]
* * *
일단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던 아이와 부딪혔다. "미, 미안!" 그러나 그 아이의 목소리는 처량하게도 공중에 흩어져 버렸다. 마치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내 자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내가 방금 본 건…. 대체…. 가방을 챙겨 원래 내 자리인 맨 뒷 자리로 향했다. 그 자리엔 이름도 잘 모르는 옛 도경수의 짝이 앉아 있었다. 멍한 눈으로 그 아이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 아이가 당황하며 작은 목소리로 왜…? 하고 물었다. 책상에 내 가방을 내려 놓고 말했다.
"자리, 원래대로 바꾸자."
...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도경수는 내게 이유조차 묻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말을 거는 것도 귀찮아 하던 아이니까 차라리 잘 된 일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도경수는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은 엮일 일이 없어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지만 종인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초등학교 때부터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니 말이다. 지금은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껄끄러웠지만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종인의 얼굴 위로 그 날 그 의미 모를 웃음이 겹쳐 보이곤 했다. 하지만 우리 둘 중 어느 누구도 먼저 그 날의 일을 입 밖에 꺼내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잊혀지고, 이 일도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겠지….
하지만 머릿속에 드는 의문을 쉽게 털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로 아는 사이-심지어는 몸을 섞는- 임에도 불구하고 왜 학교에서는 서로를 모르는 척 하고 지내는 것일까. 하지만 거기까지 추리해 내기에는 내 머리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금새 포기를 해야했다. 하지만 그것 하나만은 분명했다.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 내가 몇년간 가족처럼, 아니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깊은 마음을 나누며 지내왔던 종인이었고, 종인에 대해서면 모르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자부해왔던 나지만 그 날의 종인에게 느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나를 보며 여유롭게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그 미소를 봤을 때의 종인의 모습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만 같았다. 내가 알던 종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언제나 아이들 틈에 둘러 쌓여 웃고 장난치는 내 친구 김종인이 아니었다.
주말 동안 나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 행동일까. 어떻게 해야 둘 모두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지. 계속된 고민 속에 내가 결국 내린 결론은 한 가지였다. 내가 못 본 척 넘어가는 것. 지금처럼 종인과는 조금 거리를 유지하며 경수에게는 다가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나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종인도 딱히 그 일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으며 경수는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데 5일째 되던 날.
경수가 학교에 무단 결석을 했다.
하루종일 종인의 눈치를 살폈지만 종인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신경쓰지 말자…. 신경 끄자…. 하지만 수업 시간 내내 끝없이 쏟아지는 경수의 걱정에 결국 쉬는 시간에 종인 몰래 교무실로 향했다. 담임을 찾아가자 담임이 무슨 일이냐고 내게 물었다.
"저어…, 쌤. 오늘 도경수 학교 안 온거 왜 안 온건지 아세요?"
그러자 담임의 낯빛이 쎄하게 바뀌며 그걸 왜 너가 묻냐고 날 다그쳤다. "그, 그냥. 친구잖아요. 같은 반. 걱정되는데 애들은 경수가 안 온줄도 모르고…." 그러자 담임이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했다. 조용히 말했다.
"경수 어머니가, 쓰러지셨어."
"……네?"
"경수도 그렇고 어머니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시대. 나도 이따가 찾아가 보려고."
"……."
"반 아이들에겐 말하지 말고. 괜히 소문 나면 골치 아파. 경수만 힘들고."
"저, 저…. 쌤. 벼, 병원. 어디 병원이에요?"
다음부턴 절대로 수업에 무단으로 빠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담임은 내게 병원 주소를 알려주었다. 주소가 적혀있는 종이 쪼가리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찾아가 봐야겠다…. 지금 많이 힘들겠지, 도경수. 기절한건가. 입원할 정도면 꽤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교실로 돌아가자 종인은 반 아이들과 휴대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인 모양이었다. 갑자기 종인이 괘씸해졌다.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지만, 둘이 분명 보통 사이는 아닌 것만은 분명한데. 그에 비해서 종인은 너무나도 무관심했다. 아마 경수와 경수 어머니가 쓰러지신 것에 대해서도 모르는 눈치였다.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 앉아 책상에 엎드렸다. 만나서 뭐라고 말 해줘야 하는 걸까….
* * *
402호 앞에 멈춰섰다. 손에 든 과일 선물 셋트를 다시 고쳐잡았다. 집에 있는 저금통을 탈탈 털어 준비한 것이었다. 긴장이 되서 손에 땀이 찼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조그만 몸이 침대 위에 뉘여 있었다. 잠이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침대 옆 탁상에 과일을 내려놓고 보조의자를 끌어다가 앉았다. 경수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 보았다. 앙상하게 마른 손목에 꽂혀있는 링거가 눈에 띄였다. 밥도 거르고 제대로 먹지도 않으니까 이렇게 쉽게 쓰러지지…. 이불을 끌어다가 제대로 덮어주려고 손을 뻗었는데 경수가 눈을 떴다.
"도, 도경수? 정신 들어?"
"……어, 엄마는?"
일어나자마자 엄마를 찾는 경수에 일어날 수 있겠냐고 묻자 힘들게 상체를 일으켰다. 어디 계신지는 알아. 같이 가볼래? 그러자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경수를 부축해 침대에서 겨우 내려왔다. 조심조심 발을 내딛었다. 링겔을 들고 경수를 따라 나섰다. 옆옆 방엔 경수네 부모님이 계시다고 들었다. 처음 응급실로 옮겨졌다가 지금은 위 세척을 하고 안정을 취하고 계시다고 했다. 병실로 들어서자 경수가 급하게 달려갔다. 어, 엄마? 엄마…. 목에 난 흉터를 어루만지던 경수는 기어코 눈물을 흘렸다. 왜, 왜 그랬어…? 응? 나 두고 정말 가려고 했어? 살짝 눈을 뜬 경수네 어머니가 떨리는 손으로 경수의 손을 붙잡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지 뭐라고 입을 움직였지만 들리지를 않았다. 경수는 계속해서 괜찮아, 괜찮으니까 말 하지마…. 하며 눈물을 훔쳤다. 경수네 어머니와 경수 뒤에 서 있던 내가 눈이 마주쳤다. 꾸벅 목례를 하자 어머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셨다. 경수랑은 많이 안 닮았다. 그래서인지 경수네가 다문화 가정인 것도 처음 알게된 사실이었다.
"엄마, 그 돈 가져온 거 때문이야?"
"……."
"나 이제 그런 짓 안해…."
"……."
"미안해, 엄마."
"……."
"엄마가 알고 있을 줄은, 몰랐어."
경수가 고개를 묻고 다시 눈물을 흘렸다. 경수네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셨다. 한참을 그렇게 두 모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정신이 드는지 경수가 몸을 일으켰다. 살짝 휘청하는 몸을 내가 옆에서 받쳤다. 어머니께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왔다. 복도를 걷던 경수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나도 앞장 서던 걸음을 멈추고 경수를 뒤돌아봤다.
"나 바람 좀 쐬고 싶어."
"응?"
"옥상 좀 데려가줘."
아직은 날씨가 쌀쌀했다.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경수에게 건넸지만 끝까지 받지 않으려 하길래 어깨 위로 걸쳐줬다. 환자복은 그래도 너무 얇잖아. 내 고집을 꺾지 못한 경수는 잠자코 있었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 색 예쁘다…. 경수는 혼자 신발코를 비비며 앉아있었다.
"힘내."
"……."
"너한테 조금이나마 도움 되주고 싶은데 할 수 있는게 옥상 데려오는 것밖에 안되네."
"……."
"물론 이런다고 너가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백현아."
줄곧 땅만 바라보고 있던 경수가 갈라지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빤히 하늘을 보고 있던 눈을 돌려 내 옆에 앉은 채 나를 바라보는 경수를 쳐다봤다. 또 울고 있었다. 경수의 입에서 처음으로 불려진 내 이름도 무척이나 낯설긴 했지만, 무엇보다 항상 당당하고 도도하던 경수의 무너질 듯한 표정에 가슴이 일렁였다.
"키스… 해줘."
심장이 미칠듯이 뛰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 분명했다. 갑작스러운 부탁에 당황해 혼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어있었다. 그러자 나의 대답을 기다리던 경수가 이내 내 어깨를 붙잡고 그대로 나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덮어 올렸다. 상황파악을 하지 못하고 한동안 입술만 맞대고 있던 나는 그제야 눈을 살며시 감고 경수의 뒷 머리를 두 손으로 감쌌다. 나도 몰라…! 입술을 살짝 벌려 도톰한 경수의 입술을 머금었다. 입술 위로 짭조름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가운 두 볼을 쓰다듬었다. 혀로 경수를 달래듯 부드럽게 그 안을 파고들었다. 천천히, 조금 더 천천히 경수의 마음을 위로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고 경수를 바라봤다. 살짝 숨이 찼는지 숨을 조그맣게 몰아쉬었다.
"나, 아무래도 너 좋아하는 거 같애."
안 그러면 심장이 이렇게 미친듯이 뛸 리가 없는데…. 42.195km의 마라톤을 완주하기라도 한듯 심장이 쉴 새 없이 고동치고 얼굴도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러자 경수가 나긋한 목소리로 작게 대답했다.
"나도…."
로션 |
흑흑 안녕하세요 로션입니다ㅜ^ㅜ 아육대 때문에 참 바쁘시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으어 그래도 오늘 편은 올려야 할 것 같아서 일단 올립니다 오늘 분량 좀 짧네요ㅠㅠ..이해해주세요.. 드디어 오늘 경수랑 백현이가 마음을 확인했어요ㅠㅠ...그치만 이 둘이 이렇게 쉽게 이어질까요 과연ㅠㅠ... 저는 근데 종인이도 너무 좋아요ㅠㅠ..너무 미워하지 마세요ㅠㅠ종인이.. 그리고 투표 결과는! 1번이 나왔네요.. 매일.. 이라고 장담하지는 못하겠지만 지금처럼 열심히 연재 하도록 하겠습니다ㅠ^ㅠ..!화이팅! 언제나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하트하트하트!!!!!!!무한하트!!! 암호닉 (비공개 외전 메일링 예정) 우유 백똥 낭랑찬혤 횬이 쇳대 토너 변기덕 꿋꿋 됴종이 카디공주 엘모 상꼬맹이 갱수 카디백의농노 피삭 부금 박찬열이빨 반했어 헬로 도경수 용가리 상츄 이니스프리 님 감사드립니다! 하트하트 암호닉은 언제까지 받을지는 몰라요~.~! 그리고 중간에 물갈이..를 할지도 몰라요! 아무래도 외전 메일링이 있으니까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