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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 클릭!!

달이 해를 가리고, 해가 달에게 스며든다. 하늘의 꼭대기가 뒤바뀐다.

물이 나무를 태우고 땅을 부유하던 불이 농부들의 결실에 스며든다.

운명이 바뀐 벌을 어찌 거스를 수 있으랴. 

천자의 문하도 그 격동의 시대를 막지못하니

칼부림 한 번에 수십명의 인간이 땅을 기며 각혈한다

그것은 신의 잘못이 아니다

인간의 선택이다

"앞으로 세자저하의 시종을 들 김여주라고 합니다."

자신을 이계에서 왔다고 소개하는 내시에 깜짝놀란 재환이 여자를 놀라 쳐다보았다. 호패를 그렇게 수상하게 보진 않았는데 그러고보니 제법 못생긴게(?) 이 나라 사람 같지는 않다. 그나저나 나의 시종을 든다고? 누구 맘대로? 재환이 께름칙한 눈으로 여자를 보다가 누가봐도 수상한 인영에 주저앉아 황급히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나리! 세자저하 여기있...읍..!"

[김재환/하성운/워너원/사극물] 바보왕자와 똑똑이 형 04 | 인스티즈 

 



"야, 넌 눈치도 없어? 좀 조용히 해!"



당황함을 머금은 재환의 손이 여주의 입을 막았다. 그리곤 그 가녀린 몸을 제 가슴 부근으로 힘껏 끌어당겼다. 탈출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네가 초를 치면 어떡하냐. 재환의 뛰는 심장소리가 고스란히 여주의 쪽으로 전해져온다. 기둥 바깥으로 진영의 동태를 살피던 재환의 눈이 다시 뒤를 돌며 여주에게 검지 손가락을 갖다댔다. 제발 조용히 하란 뜻이었다. 자신의 입을 볼모로 잡고 동요하는 것이 어쩐지 귀엽다. 여주는 선심을 써 그 묵언의 지시에 고개를 작게 끄덕여 주기로 한다. 재환은 안심하며 그래도 일말의 죄책감에 손에 힘을 풀고 계속 기둥 바깥을 쳐다봤다. 재환의 팔 안쪽으로 정애하는 여인을 품은 듯 한 제 몸뚱아리 덕택인가, 복부의 힘을 저절로 참게 된다. 여주가 이상한 간지러움에 발가락을 오므렸다 폈다한다. 재환이 바쁘게 호흡할 때마다 따뜻한 숨결이 여주의 코 끝으로 다가와 간지럽힌다. 




"진영이 갔다. 예쓰!"


"진영 나으리 갔어요? 아, 안되는데..."


여주가 아쉬워하며 고개를 모로 돌리는 순간, 재환의 당혹스런 검은 눈동자와 제 눈동자가 공중에서 짧게 맞물린다. 조그맣던 재환의 동공이 중점에서 외부로 겉잡지 못하게 확대된다. 로맨스의 순리대로라면 여기서 당황한 남녀가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맞을터, 재환이 손을 말아 헛기침을 뱉으며 여주에게 말했다.



"난 나갈거야. 넌 신경쓰지 말고 나를 봤단 것을 모른 척 해줘라."

"제가 왜요?"
"제가, 왜요오오???"




저를 도발하는 말을 신호탄으로 여주는 벌떡 일어나 손을 잡고 저를 궁으로 가자고 보채었다. 저와 같은 출신성분을 가졌길래 은근한 호의를 띄우고 있었건만, 그녀의 한마디가 그 불꽃을 삽시간에 사그라뜨렸다. 흥! 토라진 재환이 여주의 손 아래에서 제 손을 뺐다. 그리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며 복색을 가다듬었다. 한 번 뺀 칼을 도로 집어넣기에는 사나이의 자존심이 있지. 저기, 저하! 하고 저를 애절히 부르는 저 앙큼한 것을 무시하기로 한다. 딱히 반짝하고 떠오른 방도도, 철저한 계책도 없이 재환은 제 키의 반만한 꽃들을 손으로 헤치며 걸어갔다. 옷자락이 풀에 황급히 몸을 비비며 사스락대자, 흐드러지게 핀 빨간 꽃봉오리가 무더기로 달콤한 향을 뽐냈다. 




"아휴...."


"세자 저하, 같이 갑시다!"


***

"아이고, 세자 저하 아니십니까!"

"수라는 진진하게 하셨사옵니까??"

"네? 아, 네...하하하..."  



하필 저를 가로막는 장벽이 따로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그 빌어먹을 수문장들과 호위병들이 궐문에 떼거지로 죽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시발, 저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수문장 한명이 전립에 손을 갖다대며 인사를 했다. 아니, 하지마! 그냥 나를 아는 척 하지 말아줘!! 재환이 쓰게 웃으며 옆으로 게걸음을 어정쩡하게 밟았다. 재환이 제 등 뒤에 은신한 여주에게 곁눈질로 어떻게 할 방법이 없냐 물었다. 에휴, 이럴 땐 어떻게 한다? 일단 저를 보며 우물쭈물하는 한심한 세자에겐 일단 긴 한숨을 토해내며 책망하자. 그리곤 망나니 짐승을 길들여보자. 이윽고 고삐를 쥔 여주의 기다란 한쪽 팔이 공중으로 높게 올라가며 시위했다. 여주의 눈이 반쯤 찡긋했다. 저를 믿고 잠시 기다리라는 제스쳐였다. 그리곤 비장하게 가져온 것이,



"짜안! 짠짜라잔짠잔짠!"



공중으로 옷이 나부끼기 한 번, 못잡을 것을 잡았다는 듯 때묻은 거적대기의 끝부분을 잡고 여주가 기세등등하게 등장한다.

[김재환/하성운/워너원/사극물] 바보왕자와 똑똑이 형 04 | 인스티즈 

 



"우와, 대박, 야 이게 뭐냐?"

"저의 무사친구가 입던 옷을 비단옷과 바꿨사옵니다. 쪼, 쪼까 오래되긴 했지만 입을만 하옵니다"

"햐, 언밸런스 개쩌네."

?..취향 한 번 이상하군. 여주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가슴을 쓸었다. 역시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은 취향부터 범상치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한테는 곤룡포보다는 무사옷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하...하하하..."

***


그 소위 학창시절에도 개구멍이라고 불리던 이 친근한 기로가 궁궐이라는 이 호화스러운 곳에도 있다니. 사람 사는 곳 크게 다르지 않구나. 재환이 구멍을 보며 감탄하던 도중 여주는 황급히 제 몸을 구멍에 집어넣었다. 확실히 뼈대가 여리해선지 나가기가 수월하다. 등허리를 움직이며 꿀렁거리기를 한 번, 깃털처럼 가볍게 빠져나가는 구렁이같은 몸짓에 재환이 다시 한 번 찬탄했다. 절로 물개박수가 쳐진다. 입을 벌리며 넋을 놓고 있던 재환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담을 타고 들린다. 어서 들어오세요! 재환은 땅에 낮게 부복하고 제 머리가 들어갈지도 의심스러운 구멍에 제 머리를 넣었다.



    "네 이놈,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세자 저하, 어서요!!"

[김재환/하성운/워너원/사극물] 바보왕자와 똑똑이 형 04 | 인스티즈 

 



"아 잠깐만, 잠깐만 꼈어, 궁댕이 꼈어!"


역시나 그럴 줄 알았다. 왜 불길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는지. 이런 망나니! 속으로 욕을 마구 발사하던 여주가 재환의 두 손을 덥석 잡았다. 오늘 하필 태어나서 잡은 남자의 손이 이계의 망나니라니, 여주는 참 일진이 더럽게도 사납다고 생각했다. 


"아, 야 아파! 좀 천천히 끌어!!"

"이 놈을 당장 구멍에서 빼내라!"

"지금 그런 거 생갈하실 때입니까!"





한바탕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덕분에 재환의 허리와 팔근육만 수축과 이완을 힘겹게 반복한다. 아아아악--! 무슨 줄다리기마냥 제 팔을 늘어뜨리는 두 남녀의 겨루기에 재환이 악을 쓰며 괴로워했다. 이맛살이 저절로 찌푸려지고 괄약근에 힘이 움찔움찔 들어가는 것이, 이거 가만히 놔두면 제 몸이 반쪽으로 할복할 것 같다. 재환이 항복을 외치려던 순간, 그 무슨 천지신변을 뒤흔들 일이었던지 여주가 몸을 뒤로 포복하고 벽을 딛으며 재환을 사력으로 끌어당겼다. 여주의 핏줄이 터질듯 불거지며 팔을 잡았다. 그러자,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해묵은 찌꺼기처럼 재환이 쑥 미끄러져 나온다. 빛을 본 기쁨을 취하기도 잠시, 재환은 숨고를 틈도 없이 도망쳐야만 됐다. 왜냐하면



"도적이 들었다. 지금 당장 군사들을 풀어라!"

"아, 진짜!!!"


황급히 시전으로 몸을 옮기는 재환의 발걸음이 급하다. 어느순간부터 자신의 인생과 한 몸이 되어버린 달음질이 재환을 힘껏 독촉했다. 더 빨리, 더 빨리!


[김재환/하성운/워너원/사극물] 바보왕자와 똑똑이 형 04 | 인스티즈 

 


"여주야, 미안!!우리 또 달려야 돼..."



손을 멋대로 잡는 것이 예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여주는 재환에게 옷깃을 붙잡힌 채 달린다. 와, 전하 정말 대박이시네요. 정말로 여주는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

헉헉. 짧은 숨을 여러번 토해낸 덕택에 흉부가 쉴 틈없이 오르내린다. 따뜻하고 큰 손이 떨어지자 곧 허한 느낌이 채워진다. 여주는 재환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도대체 이 자는 누구길래, 이리 겁 없고 대단하단 말인가. 그녀는 그가 꼭 야생에 아무렇게나 방목된 야생말 같다고 생각한다. 저 고삐를 누군가 쥐어 잘 교화시켜주어야 할 텐데. 여주의 호기심을 담은 이가 질겅질겅 물렸다. 햇빛에 힘을 받아 반짝이고 있던 넓은 등짝이 뒤를 돈다. 저를 보고 엄지를 치켜들며 개구장이이의 그것처럼 웃는다. 여주가 한바탕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졌네 졌어. 


하얀 휘장을 걷으며 주막집에 들어가자, 곰방대를 쥔 상인들이 각자 장판에 엉덩이를 붙이고 노가리를 하고 있었다. 재환은 주위를 둘러보다 노란 새끼줄을 꼬아 만든 장판에 얼굴을 마주보고 몸을 붙였다. 여주가 손을 들어 나물이 담긴 국밥을 주문하자, 이윽고 댕기머리를 곱게 틀어올린 아주머니가 펄펄 끓는 뚝배기 두개를 들고오셨다. 



"전하, 입맛에 맞으시옵니까."

"어...뭐..궁중 것보다 괜찮네."

"수라가 더 입맛에 맞으실텐데요."

"난 수라 싫어. 납치되서 먹는 밥이 무슨 맛이 있단 말이야."



재환은 조심스레 수저를 떴다. 엄마가 이따금 해주던 콩나물 국밥에 진한 향수를 느낀 탓일까, 밥을 빨리 넘길수가 없었다. 목구멍에 멍울이 진 듯 턱턱 막히는 숨에 원활하게 수저질이 되지 않는다. 누가 잡고 저를 흔들듯 손이 벌벌 떨린다. 붉어지는 눈망울과 애써 울음을 참으려 하는 얼굴에 여주가 쓰게 웃었다. 저도 이 황궁안에 끌려온 것이 자의는 아니었으니 재환의 심정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가족에 대한 향수, 급작스럽게 닥쳐온 새로운 환경. 그것을 이겨내기엔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작고 한 없이 여리겠지.
가족과 멀어진 비애를 그 어떤 지옥의 천형과 비교하겠는가. 그녀는 아무말 없이 콩나물을 덜어 그릇에 소복히 담으며 위로를 대신했다.



울지마 김재환. 형은 찾을 수 있어. 하성운이 죽을 리 없잖아. 나갈 수 있어, 나갈수 있다고... 뼈가 저리게 짓누른 가슴통증 때문에 재환이 주먹을 말아 제 가슴을 쳤다. 퍽퍽, 그 둔탁한 소리가 여실히 재환의 고통을 말했다. 그 전염된 슬픔에 여주 역시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저하, 여기 국밥 맛이 참 좋습니다."


"컥, 흑...흡..허.."



울음을 어찌나 참았던지 쓴 숨을 발포하며 뻘겋게 적색이 된 눈이 여주를 마주했다. 맛있다고 말하던 재환의 말과 모순되게 하얀 밥은 외로이 제 자리를 지켰다.

***


신관 안, 신탁을 듣기 위해 둥그렇게 된 향로에 초를 꽂는 민현을 어린 지훈이 새그럽게 웃으며 관망한다. 초를 하나 키고, 심지가 불에 타들어 가는 것을 확인한다. 그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반경 동그라미 안에 여든 여덟개의 초를 꽂기 위해 바구니를 들고 발걸음을 옮긴다. 초를 꽂고 손에 입을 맞추는 것은 선녀를 친애한다는 고명한 의식같은 것이었다. 민현은 그 당시 왜 이런 괴랄한 의식을 치르는지 진의를 알 수 없지만 아홉살의 민현은 힘이 없었으니.


"민현이 형님!!"

"세손 저하, 그런 호칭을 쓰시면 아니되옵니다."
"앗, 알겠어요오..."


발랄하게 웃는 다섯살 지훈이 제 버선발을 위로 올렸다 내리며 아이다운 장난을 쳤다. 그와 대비되게 민현은 꽤나 긴장했으므로 손을 비비며 쉴새 없이 땀을 추스렸다. 그것도 그럴것이, 장자인 세손 지훈의 미래를 보는 첫 관문이었으니. 이제 겨우 어린 아이의 가죽을 벗은 민현에게 내려진 무거운 짐은 그를 몹시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는 혼곤한 눈을 비비며 밤 늦게 까지 초 꽂기에 여념이 없었다. 초에 불을 킬 때마다 소맷자락이 조용히 사스락대며 제가 깨어있음 알린다. 신관 안에 숨을 죽이며 원 안을 배회하는 민현의 발소리와, 지훈의 꺄르르거리는 소리가 공중을 돌며 중첩된다. 마침내 여든 여덟개 중 마지막 초가 잿 속에 파묻히자, 민현은 긴장하며 땀을 닦았다. 여든 여덟개의 초가 열정적으로 반짝인다. 예언이 잘 나와주어야만 할텐데.


민현은 가슴이 깊게 파여 있는 한푸(중국식 의복)를 입은 동상을 올려다보았다. 금색 팔찌를 연계한 듯한 요란한 무늬와, 제 몸뚱아리 하나는 족히 들어갈 것 같은 널따란 소매품이 인상적이다. 11척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동상은 자애로운 미소를 띄웠음에도 어쩐지 사람을 위축시킨다. 차갑게 몸을 떨기 한 번, 민현은 준비한 의자에 발을 디딛고 올라 선녀의 고운 손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이제 물어볼 것을 말하고, 답할 것을 들어야 할 시간만이 저를 기다린다.

[김재환/하성운/워너원/사극물] 바보왕자와 똑똑이 형 04 | 인스티즈 

 


"위대하신 ...."

민현의 숨이 두어번 넘어간다. 

"....아뢰니..."

"부디 세손저하의 광명할 미래를 보여주시옵소서..."
    

최후로 민현은 아득해지는 정신을 추스르며 허리를 급하게 숙였다. 손이 벌벌벌 떨린다. 아마 그가 신관으로써 한 첫번째 신탁이자, 그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마지막 신탁이었을 것이다. 허리를 숙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리 물을 받아놓은 푼주에서 종이가 자그맣게 흔들린다. 출출출...물소리가 보아달라는 듯이 귀를 간지럽힌다. 봐야 한다, 지금 확인해 보아야만 한다. 녹그릇에서 종이를 들어 편다. 민현은 마침내 신이 점지한 지훈의 운명을 마주했다. 

  "....."

"신관님!!"

"신관님!!"


글을 읽는 순간 무언가 굉장한 것을 들은 듯 그대로 민현은 고꾸라졌다. 어린 지훈이 기겁하여 달려가 정신을 놓은 민현을 흔들었다. 경련을 일으키던 손이 빠르게 종이를 접으며 지훈을 껴안았다. 왜 나를 안는 것이지. 분명히 지훈이가 커서 뭐가 될 것인지 신관님이 알려주신다고 했는데. 아직 미래란 단어의 뜻 조차 모르는 어린 지훈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민현의 등을 쓰다듬었다. 왜 하필, 이런 예언이 나온것이야. 제발 좋은 소식이 있기를 그렇게 주야장천 빌었건만. 나보다 더 새파랗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어찌, 어찌....




약관(弱冠)에 단명(短命)
...


민현은 종이를 구기며 신을 원망했다. 미세한 죽음의 뜻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아이다. 이런 아이에게 어찌...민현은 망설였다. 그러나, 이 종이는 곧 왕께 올려바쳐질 것이고 왕은 슬픔에 빠져 도탄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것이다. 나는 결국 왕의 분풀이 대상이 되어 신관의 자리에서 쫓겨날 지 모른다. 말을 전해야만 하는가...민현이 입술이 가로로 깊게 물린다. 지훈이 흔들리는 그를 느끼고 걱정스레 민현의 품에 파고 들었다. 아이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사실 왕의 처사는 둘째요, 저를 흔드는 순수한 눈망울에 고뇌했는데. 결국 민현은 어린 아이 지훈에게 거짓을 아름답게 포장했다.


"세자저하는 일찍 단명하실 운명입니다."
"일찍 단명하는 게 뭐야?"
"일찍 죽는단 뜻으로...다른 사람보다 먼저 더 하늘나라로 간단 뜻이옵니다"

"우와, 하늘 나라!! 그 곳은 좋은 곳이야??"
"네, 하늘 나라만큼 좋은 곳은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때였다. 민현이 막기도 전에 지훈은 황급히 새끼줄이 꼬아져 있는 철문을 열었다. 그리곤 군룡포를 멋드러지게 입은 남자에게로 달음질을 재촉하는 것이 아닌가. 지훈의 부름에 초조히 결과를 기다리던 지훈을 똑 닮은 남자가 다급히 뒤를 돈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아니되옵니다. 세손 저하!!"



민현은 어린 아이가 낼 수 있는 한계치의 목소리로 지훈을 붙잡았다. 그러나 지훈은 그런 민현의 안타까움이 들리지 않는지 달려가 제 아비의 품에 안겼다. 지훈은 그 해사한 웃음을 흘리며 외쳤다.



"아바마마! 소자가 빨리 하늘나라에 갈 것이라 하옵니다!"


"....."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죽을지도 모른다 하옵니다"

죽을지도
죽을지도...



"헉!!!"


눈을 떠보니 보석이 촘촘히 박힌 천장이다. 문 밖에 내시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서 있는 인영이 눈에 띈다. 지훈은 현실로 돌아온 것을 감사하며 이마에 깊이 배인 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하필이면 가장 싫어하는 어릴 적 과거를 회상하는 꿈을 꾸다니. 반쯤 침대 바깥으로 탈주한 제 꽃이불을 목 부근께까지 끌어안았다. 분명히 꿈 속에서의 나는 해사하게 웃고 있었는데 도대체 이 눈물은 뭐란 말인가. 지훈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축축한 이불을 끌어 안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울컥, 울음이 터지려는 것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얼굴을 반복적으로 쓸어내린다. 제 소음을 느낀 것일까. 내관 한 명이 조신한 발걸음을 밟으며 기침을 도와주러 들어온다.



"전하, 혹시 불편하신 구석이라도 있는 것이옵니까."


"아니, 그런 것 없네. 바깥이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인가."



지훈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곤룡포 안에 제 손을 꿰며 나직이 말했다. 바깥이 시끄럽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그것이...."



"전하, 통촉 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통촉 하여 주시옵소서!"

선창을 한 우두머리의 목소리 뒤로 큰 함성이 똑같은 대사를 받아쳤다. 소리 한 번 크네. 선왕이 자부할 만큼 넓은 이 곳에 쩌렁쩌렁이 들리다니. 지훈이 쓴 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나 혼자만이 오롯이 감당해야 할 큰 싸움이 침전 바깥에 도사린다. 언제나 그러지 않았는가, 이 피 튀기는 곳에서 조금이라도 맘에 안들면 거머리 떼처럼 모여 정청(庭請)하지 아주. 가시가 돋는군. 지훈이 헛웃음을 깊게 뱉자, 내시가 수심 어린 눈으로 검은 익선관을 씌워준다. 그런 내관을 쳐다 본 지훈이 슬프게 읆조렸다.

"나를 동정하느냐."

"저, 전하 가당치도 않습니다!"

[김재환/하성운/워너원/사극물] 바보왕자와 똑똑이 형 04 | 인스티즈 

 


"나는 괜찮네."

깊게 한숨을 내쉰 지훈이 양 팔을 벌리자, 내시는 노란색 옥대를 둘러매 주며 눈빛으로 빌어 주었다. 평소에 동정을 매우 싫어했으나 어쩐지 오늘은 그 시선이 고맙기까지 하다. 지훈은 결연하게 현선전(賢宣殿)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바깥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진영이 조용히 잰걸음을 걷는 지훈의 뒤를 밟았다.


"진영아, 호위 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전하, 하오나...."
"되었다. 시끄러워질 뿐이지."


어쩐지 진영이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어린 시절 저와 모든 것을 함께 했던 벗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이렇게 대거로 주청이 아뢰어질 때는 항상 최소한의 호위만을 이끌었다. 마침내 지훈이 편전 앞에 도착하자, 이백 명씩 되어 보이는 관리들이 모두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렸다. 네 놈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이 나에겐 조롱이라는 것을 네 놈들이 너무나 잘 아는군. 무리의 힘을 과시하는 이런 얄팍한 술수에도 항상 넘어가는 내가 싫구나...지훈이 쓰게 웃으며 준비된 단좌에 몸을 붙였다. 아바마마는 말씀하셨다. 지훈아, 언제나 어깨는 뻣뻣하게. 허리는 곧게. 그것이 왕의 위엄과 엄호를 보여주는 첫번째 자세란다. 지훈이 자애롭게 웃었던 선왕을 떠올리며 보란듯이 목을 빳빳이 세웠다. 아버지...제게 힘을 주세요...저도 모르게 흰 눈물이 차올라 눈가가 붉어졌다.



"전하, 세자를 폐위하여 주시옵소서!"

"어디 그런 근본도 모르는 자를 왕좌에 앉히신단 말이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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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말했네. 그 자가 신탁의 명을 받았음을."

"언제까지!"

우의정의 직분을 맡은 옹성우. 이미 십수년간 정사를 해오면서 저와 적대세력을 표명한 바 있다. 성우가 힘껏 제 목청을 끌어올리며 외치다 뒷 말을 얼버무렸다. 늘 신탁의 말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제 1대 선왕부터, 지훈에게 이르기까지. 역사의 뒤안길에서 단 한번도 그 천명을 거스른 적은 없었다. 지훈 역시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던져본 미끼였다. 한 차례 침묵의 폭풍이 지나가고 다시금 성우가 고개를 들어 아뢰었다.

"신탁의 말만을 의탁하는 것은 악법중에 악법이옵니다!"
"....."
"신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신하와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드셔야 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또 다시 선창과 후창이 차례대로 되풀이된다. 지훈은 묻고 싶었다. 어느 누가 감히 신탁의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지. 참으로 좋으시겠소. 왕이 아니라 그렇게 속 없이 사셔서. 참으로 편한 자리를 고수하고 계셔서. 아마 제가 하는 말에 무엇이든 반박하고 싶겠지. 신하와 백성을 위한 나라? 참 좋다. 나조차 한 때 그 스스로라는 사조에 얽매였지. 단명한다 명했던 그 신탁을 내가 가장 경멸했을진즉, 자네들은 어땠는가. 자신에게 부를 안긴 신탁을 가장 찬양하던 자네들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신탁이 나를 지킨다는 것을 알고는 금방 돌아섰지...신탁이 하는 말이라면 무작정 반대하던 자네들의 얼굴이 나는 두려웠다. 자네들을 없애면 없앨수록 내 목에 겨누어지는 칼 끝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늘 신탁에게 의탁하는 날 보면서 민현의 높아지는 당당함을 보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지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대들은 닥치지 못할까!!"


...과연 알기나 할까.

발악하듯이 외치는 소리에 온 궁 안이 쩌렁쩌렁했다. 그 큰 음성에 곁에서 놀고 있던 다람쥐가 쪼르르 나무위로 올라간다. 움찔, 신하들의 허리가 흔들렸다. 웅성거림조차 듣고 싶지 않다. 지훈이 먼 곳을 살핀다. 그리곤 그 웅성거림 앞에서 부복하지 않고 멀쩡히 기립해 있는 라이관린을 발견한다. 지훈은 늘 머리를 허리께까지 늘어뜨린 그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라이관린.. 그는 언제나, 고개를 숙인다. 역시 오늘도 제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래서 지훈은 언제나 그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무표정은 항상 저를 불쾌함의 극치에 도달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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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역원의 이관린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라."
"......"


명령을 내린다. 역시나 고개를 들지 않는군...지훈의 입술이 동그랗게 쓴 조소를 그렸다. 그리곤 넓은 곤룡포를 아주 조그맣게 흔들며 관린에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음을 옮긴다. 돌계단을 내려가는 발소리가 사박사박 귓가를 채운다. 라이관린에게 가까워질 수록 어렸을 적 추억이 떠올라 저를 괴롭힌다. 진영과 저, 그리고 관린이 한 데 어울려 홍화각의 꽃밭을 뛰놀았던 모습...아니다, 생각하면 안된다. 생각할수록 감회에 젖어 향수만 더 살아날 뿐이다. 어렸을 땐 내 눈을 정말 잘 쳐다봤는데. 아아 그래..지금은, 내 눈을 쳐다보기 힘들겠지. 찬찬히 걸음을 떼는 숫자에 비례하게 눈물의 깊이가 깊어진다. 머리를 늘어뜨린 관린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 진다. 마침내 지훈은 관린의 옆에 모로 서서, 다시 한 번 단호하게 명령했다.



"이관린, 나를 보아라."
"....."


그는 역시 고개를 들지 않는다. 대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어찌나 애처롭게 떨고 있는지 당장 등을 끌어안아 줄 뻔하였다. 울음을 겨우 참은 지훈이 말하였다.


"나는 내 형제를 그 지경까지 몰아넣은 사람보다..."

"....."

[김재환/하성운/워너원/사극물] 바보왕자와 똑똑이 형 04 | 인스티즈 

 


"네가 더 죽이고 싶구나."

***



"나는 궐에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무슨 소리십니까, 세자저하!!"


그 충격적인 발언에 놀란 여주가 장신구를 고르다 재환을 급히 돌아보았다. 돌아간다니요! 저를 실직시키실 생각입니까! 안그래도 요새 자꾸 실수만 하는 바람에 다들 하기 싫어하는 망나니 세자를 떠맡겠다고 한건데...젠장, 저도 모르게 속으로 욕을 되뇌었다. 제 이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환은 계속해서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다짐만 되풀이했다. 도대체 왜? 아까까지만 해도 신이 나 장신구를 고르던 여주의 얼굴이 시무룩해진다.


"아까 관린님과 약조하셨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몰라."
"그리고 지금 돈도 별로 없잖아요!"


아픈 곳을 푹 찌른다. 아 돈 얘긴 하지 말지...확실히 금화 두 냥이 있기는 하지만 이걸로 세계를 빠져나갈 때까지 남아 있을진 의문이다. 

[김재환/하성운/워너원/사극물] 바보왕자와 똑똑이 형 04 | 인스티즈 

 


"아, 처음엔 나도, 저기 세자 할려고 했다니까?"

"...근데, 그 사람 어쨌는지 알아? 내 말도 안 듣고 날 죽이려고 했다고. 관린이란 이름만 듣고 날 패대기 치고"

"아, 그럼 그럴만도..."
"뭐가 그럴만도냐 그럴만도가!"


"연유는 모르지만 전하가 그 분을 별로 좋아하지 않사옵니다. 뭐, 눈만 마주쳐도 싫어하시던데."


어찌 되었든 가시지 마세요, 저 실직 당하옵니다...라는 말은 역시 맘 속에 품는 것이 좋겠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이 천선국의 재미를 보여줘서 못 가게 해야지! 여주가 재환의 옷깃을 잡아끌며 재환을 재촉했다. 재환은 결국 여주의 손에 이끌려 사람이 뭉텅이로 있는 시전의 한 구석으로 갔다. 그리곤 도박을 보여주겠다며 어딘가로 재환의 손을 잡았다. 이끌리듯 들어간 곳에서 딸랑딸랑, 낡은 종소리가 울린다. 종소리를 시발점으로 손에 땀을 쥐는 경기 탓에 북적북적한 소음이 그 뒤를 뒤따른다. 참 시끄러운 곳이네. 재환은 그런 사람 많은 곳을 질색하였다. 그곳에선 상투머리를 한 더부룩한 수염의 상인들이 한참 투전(:지금의 화투)으로 노름을 하고 있었다. 기름종이에 적힌 뻐꾹새를 판 쪽으로 내며 머리를 짧게 한 상인이 양 팔을 위로 들어올렸다.  



"네가 무슨 생각인진 알겠는데, 나 이런 곳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이겼네, 이겼어!"

"에이씨...."

"어서 자네 노비를 주시게"

"에잉, 쯧쯔 재수가 없으려니..."



"엄마아...."


짧게 욕을 내뱉은 상인의 뒤에서 어린 아이 한 명이 눈물을 머금으며 엄마의 옷깃을 그러쥐었다. 엄마처럼 보이는 미색의 여자는 머릿결을 풀어 헤치고 상인에게 사정했다. 아마 저 상인들이 노름의 결과물로 저 여자를 걸었나 보다. 재환은 어린 아이의 애처로운 눈물을 보며 주먹을 꼭 쥐었다. 어째서일까, 저 여자아이에게 내 심정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은. 가족과 멀어지는 것, 평생 떨어져서 사는 것. 평생 곁에서 비환을 느끼지 못하며, 기쁠 때 사랑하는 자식의 얼굴을 부비며 축사를 말하지 못하는 것. 숨결이 떨어질 때까지 자식을 보지 못하는 모정의 슬픔. 그리고 엄마가 팔려간 돈으로 밥을 빌어먹는 자식의 슬픔. 그것보다 불행한 것이 있을까. 재환은 제 앞섶을 뒤진다. 금화 두 냥...이것으로 될까. 만약 이것을 다 주고 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나는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말 것인데...



"아니 됩니다. 상인 나으리! 제 딸 아직 여섯 해도 넘기지 못했사옵니다."


"효의 도리를 하겠다며 제 앞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이 소원인 아이옵니다. 그 모습이라도 보고 저를 파십시오...제발요..."
"....."

"제 모든 걸 드리겠습니다. 모든 것을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나으리..."


여자가 고개를 흔들며 옷깃을 계속해서 잡아끌었다. 남자가 귀찮다며 여자를 패대기 치자, 노름에서 승리한 상인이 여자에게 팔을 걸어 일으켜 세운다. 횡재했단 표정을 짓는 얼굴에선 얼마나 잘 처먹었던지 돼지 기름 같은 것이 줄줄 흐른다. 


"야, 김재환, 내 신념이 뭔지 아냐?"

"몰라. 자랑질 할거면 딴 데 가서 해."


게임기를 만지며 소파에 누워있던 재환이 성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불쌍한 사람은 돈을 쥐어 주고, 정의롭지 못한 인간은 돈을 뺏는 거지 캬캬캬. 이것이야말로.. 권.선.징.악!!!"

땅바닥에 무릎을 꿇은 성운이 만세자세를 취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휴 아무리 생각해도 10살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올 발언치고는 너무 조숙한 것 아닌가. 재환은 게임기에서 고개를 떼지 않은 채 얼굴을 흔들며 질린단 표정을 지었다

"으 뭐야, 넌 모든게 돈으로 통하냐? 이 미친 싸이코."
"야, 너 말 다했냐?"


또 다시 그의 주무기인 베개가 앞으로 날아온다. 검은 시야가 덮치며 game over의 소리가 뜬다. 야 이 새끼야! 재환이 소리를 지르자, 성운이 재환에게 헤드락을 걸며 제 얼굴을 비볐다. 그토록 같잖았던 성운의 명언을 이런데서 사용할 줄이야. 회상을 마친 재환이 상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얼맙니까."
"뉘쇼?"

"이 여자 분, 보통 얼마에 호가되냐고 물었습니다.

"안 파네, 저리가! 이 여자 미색이 얼마나 이름을 떨치는데!"

"저는 돈이 많습니다. 원하시는 값을 드리겠습니다."

"아이쿠...그러면 뭐..."

"대신 아예 저 두 분을 자유롭게 해주시는 조건을 걸겠습니다."



금화 두개의 도박을 걸자. 재환이 주먹을 꼭 쥔다. 재환의 말을 들은 남자의 표정이 180도 반색했다. 대한민국이라면 노비를 판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일진즉, 짜증을 누른 재환의 숨이 가빠진다. 좋아죽겠다는 표정을 가린 채 남자가 의뭉스럽게 고개를 갸웃한다. 그리곤 여자가 얼마인지 손가락으로 꼽고 있었다. 토악질이 나올 것 같은 작태에 재환이 고개를 돌려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여자 아이는 여전히 제 엄마에게 안겨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제발...



"음, 험험 금화 두 냥은 주셔야겠습니다."



노름에서 진 상인의 아가리가 날생선 한마리는 들어갈 정도로 벌어진다. 아무리 미색에 명문천하한 여인네든 남정네든 저렇게 비싼 값을 부르지 않는다. 저거 바보 아닌가. 완전 덤태기 씌우네, 아유. 여주가 그런 재환을 말리려는 틈새, 재환의 주머니가 벌어진다. 주머니에는 금화 두 냥과 열 냥의 푼돈이 더 들어있다. 이까짓 돈이 겨우 여자의 목숨값이라니. 허탈하게 웃음을 뱉은 그는 열 두개의 푼돈을 두어 번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그것을 남자의 얼굴에 세게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억!!"

순식간이었다. 돈주머니는 남자의 얼굴에 부딪히다 노름판에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찰나에 여자의 손을 잡은 어린아이가 엄마를 잡고 노름판 바깥으로 이끌었다.



 

 


"돈 여기 있습니다."


"이게 무슨 짓이오!!"

남자는 재환과 싸우려는 듯이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갈색 조끼 사이로 육중하게 보이는 가슴에는 털 같은 것이 거뭇거뭇하다. 남자의 함성에 놀랐는지, 사람들이 시선이 모두 재환쪽으로 쏠렸다. 썩 유쾌하지는 않은 시선이었다. 아이엄마와 아이가 황급히 자리를 뜬다. 재환은 보았다. 새장에서 벗어난 앵무새처럼 밝은 얼굴을 한 여자를. 씁쓸함에 얼굴을 찌푸린 재환이 넋을 놓고 있는 여주를 앞서 노름판의 문을 열었다. 종이 딸랑거리며 소리를 내자, 재환이 뒤를 돌아 여주를 쳐다보았다.

[김재환/하성운/워너원/사극물] 바보왕자와 똑똑이 형 04 | 인스티즈 

 



"얼른 나와. 내가 네 손 잡고 끌고 갈 순 없잖아."
"앗...네, 네!!!"

***

"어쩌시려고 이러시옵니까. 저도 가진 노잣돈이 없사옵니다."
"몰라 넌 돈 떨어지면 다시 궁으로 돌아가든가 말든가."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볏짚에 앉아 아까 사 놓았던 약과를 씹으며 재환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딱히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은 일을 할 수 있는 몸이니, 모정을 지키는 것이 낫지 않은가. 여주가 재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처진 눈매에 토기 같은 얼굴형, 제법 날렵한 콧대가 저를 마주한다. 아까의 광경은 저의 편견을 깨뜨렸던 가히 충격적인 명장면이었다. 망나니 인줄로만 알았는데 제법이네. 철없게만 보이던 세자저하...다시 봤네요. 여주가 재환의 품 안에 있는 약과 하나를 집으며 생각한다. 재환이 다시 두 번째 약과를 봉지안에서 집었다. 검지 손가락안에서 들려진 약과를 보며 재환은 생각했다. 


"우리 형이, 불의를 보면 돈을 뺏으라고 했거든."

"네? 세자저하께 형제가 있사옵니까? 여기 말이옵니까?"

"아 응, 지금은 어찌어찌 떨어진 상태." 

처음 듣는 소리에 여주가 놀라 재환을 돌아보았다. 그럼 이계에서 온 사람이 한 명이 아니고 둘이란 말인가? 여태껏 그런 사례가 없었는데...이계에서 가끔 사람이 떨어지긴 해도 늘 혼자였는데.


"난 용기가 없어서 돈을 뺏는 것까진 못하고. 그냥 뭐..."


저를 또 다시 덮쳐오려는 가족애를 잊으려 약과를 여러 개 집어 황망히 입에 넣는다. 약과 덕에 볼이 불퉁해진 재환을 보며 여주가 웃음을 터뜨린다. 귀엽네. 돈 뺏는 것보다 돈을 던지는 것도 나름 호쾌한 장면이었사옵니다 전하. 여주가 재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을 해주었다. 체, 사실 바보라고 생각했으면서. 재환이 오늘 세운 흑역사를 떠올리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그래도 우리 킹갓제네럴 하성운 동생이라고!!"
"....."
"우리 형 동생 멋지지?"

여주가 그런 재환을 보고 웃어준다. 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네. 여주가 다시금 입을 벌렸다.

"그럴때는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고"
"....."
"형 동생이 아니고, 김재환 멋지네"
"어...?"

라고 하는거에요!! 여주가 빨개지는 얼굴을 숨기며 뒷말에 악센트를 주어 억세게 말한다. 재환은 순간 그 말에 가슴이 시려옴을 느꼈다. 처음받은 인정에 그 평생의 열등감에 역사가 눈 내리듯이 녹는 것을 느낀다.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지며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러나, 사랑에 무지했던 재환은 이것이 겨우 사랑을 배워가는 시초임을 깨닫지 못했다. 단지 제가 열이 많은 것을 탓하며 얼굴 쪽으로 쉼없이 부채질을 할 뿐이었다.

***
 
"전하, 오늘도 세자저하가 돌아오지 않사옵니다."
"그렇구나."
"저러다 대신들이 무슨 난리를 피울까 걱정이 되옵니다."


진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문을 열고 바깥에 정청을 올리고 있는 대신들을 쳐다보았다. 늘 자신 곁에서 저와 희노애락을 겪었던 진영도 이제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문을 닫고 의자에 몸을 붙였다. 지훈과 진영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은 지훈이 숨 막히는 궁궐 안에서 유일하게 숨통이 트는 시간이었다. 궁녀가 찻잔에 차를 따라주자, 지훈이 그것을 들어 살짝씩 맛을 음미했다. 마치 음악에서의 어떤 음률을 느끼듯이.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올 상황이었다. 재환이 이계에서 온 사람이고 궁 안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원한다면 언제든지 풀어주겠다 약조한 것도 저였다. 대신 그 시간이 너무나 빠르군...지훈이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찻잔을 홀짝였다. 

"저는 그 자,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신탁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떠나는 것을."

[김재환/하성운/워너원/사극물] 바보왕자와 똑똑이 형 04 | 인스티즈 

 


"...너무 아이를 나무라지 말거라."

지훈은 생각했다. 곁에 있기만 한다면 금은 보화든, 맛있는 수라상이든 내어줄 수 있다고. 그래서 그 빌어먹을 신탁에 의해 나라의 안위를 지켜줄 수 있다면. 가짜세자의 자리라도 해주어 우진이의 누명을 풀 시간을 벌 수 있다면 못 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신의 뜻대로 되지는 않는 것인가...협탁에 이마를 괸 지훈의 갈색머리가 고뇌를 할때마다 살랑인다. 마침내 결단을 내린 지훈이 말했다.

"진영아."

"예, 저하."
"앞으로 삼 일의 말미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세자를 폐위시키겠다 전해라."
"예, 전하.."




***

오늘 원래 성운이 분량까지 끌고 가는 것이 제 목표였는데ㅠㅠㅠ 너무 길어져서 읽는데 지루하실까봐 끊었습니다ㅠㅠㅠㅠ원래 30화로 완결낼 수 있게끔 시놉시스를 짜고 대충 지금 25화 까지 짜 놓았는데 늘어질지도 모르겠네요...

늘 봐주신 분 감사드립니다 항상 정성스러운 댓글 잘 보고 있어요!!! 사랑해요ㅠㅠㅠ

암호닉 명단 : [빙구], [링] 님

암호닉 분들, 댓 달아주시는 분들, 읽어주시는 분들 감사드립니다!!
(제가 글잡이 익숙하지 않아서 치환을 잘 못해요ㅠㅠ 김여주라고 표기된 것 이해 부탁드려요! 그리고 실제 없는 궁궐 이름을 쓸 때가 많습니다 양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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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빙구입니당 쟈까님.. 신알신이 인왔아여.. 필명없이 올리신건 아닌가요ㅠㅠ ㅠㅠ 이글 못볼뻔했아요ㅠㅠ 성운이는 어디서 뭐하는지 걱정되네요ㅠㅠ 얼른 재환이랑 만나야 될텐데요ㅠㅠ
6년 전
글쓴이
앗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ㅜㅠ성운이는 다음편에 폭풍으로 나올 예정이에요ㅠㅠ봐주셔서 감사합디다!!♡♡♡
6년 전
비회원14.189
희희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어째 회를 거듭할수록 필력이 더 좋아지시는거같아요!!! 다음화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서오세요! (제가 사극에 무지해서 그런지 뜻을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몇 개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음화부터는 단어 뜻 풀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막 엄청 많이 바라는건 아니고 한 화당 두세개정도?! 그렇지만 안해주셔도 괜찮습니다:D)
6년 전
내통장주인은너
앗! 네ㅠㅠ저도 사극에 무지해서 소설을 보고 사전뜻을 찾아썼습니다ㅠㅠ제가 배려심이 없었네요 다음부턴 어려운 단어에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는 한자 단어를 많이 줄였어요! 피드백 감사합니다!! 읽어주신 것도 감사하고요♥
6년 전
비회원188.204
와 ,, 웹드라마 한편을 보는거 같아요 매화마다 필력이 좋아지시는거같아서 놀라요 스토리 구성도 진짜 좋고 지금 충격받았읍니다 ㅠㅠ 재환이 넘 머싰네요 ㅠ
6년 전
내통장주인은너
앗 감사합니다♡♡ 비회원님♡
6년 전
독자2
안녕하세요, 작가님! 링 입니다 :)
4화는 글 속 인물들의 애처로움을 조금씩 담고 있는 것 같아서, 보는 내내 조마조마하기도 안타깝기도 했어요..! 어린 나이에 그런 신탁을 받았어야할 지훈, 민현부터 가족애를 떠올리는 재환까지.. 아직 글의 초입이라 그들에게 어떤 속 사정이 있는지 제대로는 알 지 못하지만, 무언가 큰 일이 하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다음 내용도 더 더욱 궁금해졌어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๑・̑◡・̑๑)

6년 전
내통장주인은너
앗 링님 기다렸어요ㅠㅠㅠ 전 개인적으로 지훈이와 재환이 캐릭터에게 혼을 갈아넣어서 갠적으로 젤 애정이갑니다!! 다음 내용 기대된다니 감사합니다ㅠㅠㅠㅠ 저도 항상 좋은 댓글 감사드려요!!! 속 사정을 조금씩 꺼내고 있기는 한데...너무 장황해지는 것 같아 걱정이네요ㅠㅠㅠ늘 봐주셔서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6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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