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아, 이 아이가 이름이란다. 아주 예쁘지?"
...네.
하이얀 피부에 커다란 눈동자가 갈 곳을 잃은 채 서 있었다. 볼록하게 솟아오른 가슴턱에 걸쳐진 리본이 애처롭게 바람에 흐트러진다. 제 또래아이치고는 성숙한 체형에 성장기의 어린이라 자부하던 정국은 재빠르게 내려앉는 시선을 피했다. 뽀얀 두 뺨에 핑크빛 홍조가 맴돌기 시작한건 이름뿐만이 아니였다.
"정국이 네가 이름 많이 챙겨주렴."
제 아비의 셔츠자락을 꼬옥 붙잡던 이름이가 부끄러운 듯 잔뜩 볼을 붉히며 웃는다. 곱게 휘어진 눈매를 따라 나비가 날아든다. 그때 어린아이였던 나의 나이는 고작 여덟살이였고, 제 앞에 서있는 이름은 나보다 열여섯번의 계절이 흐른 뒤 세상에 첫 발자국을 내딛은 아이였다. 날아온 나비가 조그만한 머리통에 앉았다가 재빠르게 날개짓을하며 저 멀리 날아간다. 네가 꽃인 줄 알았나봐. ....나도 네가 꽃인 줄 알았어. 목 언저리에 맺힌 말이 잇새로 잘근 씹겨나갔다.
본디 예쁜 꽃은 향기가 없다.
[
"그게 무슨 소리에요? 약혼? "
"히익!"
아,아니 아가씨! 그게 아니라...
지레 겁을 먹은 하녀들이 서로의 등어리를 밀어내며 서 있는다. 야 네가 먼저 말 꺼낸거니까 니가 말해! 너가 목소리가 커서 아가씨께서 들으신 거잖아! 제 교복 타이를 거칠게 풀어해진 이름이의 꾹 닫긴 입술이 서서히 빛을 찾아 기어나온다.
"됐어요. 그 얘긴 내가 본인한테 직접 들으면 되니까. "
오늘 아침부터 재수가 없더라니. 등굣길에 저를 데리러 온 태형을 칭하는 말이었다. 이름은 제 방에 들어가 타이트한 교복을 벗어재꼈다. 이제야 숨통이 트이네. 가장 모던한 디자인의 원피스를 골라 입은 이름은 그대로 제 침대에 놓여진 휴대폰을 들고 집 밖으로 향했다. 오늘을 꼭 완벽한 하루로 만들겠다-다짐한 이름은 엊그제 받은 네일을 자랑하듯 손톱 끝으로 전화번호부에서 태형을 찾았다.
"우리 집 앞으로 와. 급한 일이거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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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항상 네 멋대로야. "
"그래서 싫어? "
"아니. 존나 좋아. "
태형은 깨끗한 티를 내는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키를 한 손에 쥔 채 흔들어 보인다. 무채색 계열의 단조로운 착장의 태형과 어울리지 않는 샛붉은 차였지만, 태형은 괘념치 않고 잔뜩 콧노래를 부르며 엑셀을 밟았다. 목적지채 말하지 않았지만 태형은 곧장 그 길을 따라 달려나갔다.
"무슨 급한 일인지 궁금해해도 되려나. "
운전대를 잡고 차 내부에 달린 거울을 보며 능청스레 웃는 태형에 이름은 창 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목적지도 모른 채 달리는 나 나, 계획없이 몸부터 나가는 김여주나. 아주 도긴개긴이지, 그치?
"고마워. 이제 가도 돼. "
거친 엔진음을 내며 차는 정국의 집 마당에 세워졌다. 목적지는 굳이 말할 필요 없었다. 여주는 태형의 어깨를 두어번 콩콩 두드린 채 차를 뛰쳐 나왔다. 무릎 밑 까지 닿는 원피스에 새하얀 운동화라니.. 아주 언발란스한데. 태형은 정국의 집을 향해 달려들어가는 여주의 뒷 모습을 지켜보며 다시 시동을 걸었다. 개화기를 거쳐 뭉친 몽오리를 펼쳐내려는 한 떨기의 꽃과 그 주변을 배회하는 나비, 그리고 사냥개라니. 이것도 언발란스하긴 하네. 태형은 그대로 정국의 집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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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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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가씨 도련님께선 방에 계십..."
이름은 문을 열자마자 정국의 방으로 뛰어올라갔다. 꾹 닫힌 문 앞에 선 이름은 두드리려는 생각 조차 하지 못한 채 다짜고짜 문을 열어재꼈다.
"...성이름? "
문을 열자, 검은 정장을 입은 채 나갈 채비를 하던 전정국이 제 눈 앞에 서 있었다. 이름은 제 허파가득 찬 숨을 눌러 삼켰다. 채도 낮은 애쉬빛의 머리칼이 열린 문틈 비춰진 빛에 잔뜩 반짝이기 시작했다.
"...약혼 진짜야?"
늘러붙은 말이 허공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꾹 쥔 손아귀 안에서 피가 고이는 것만 같았다. 정국은 의아한 시선으로 이름을 내려봤다. 한 발짝, 두 발짝..... 그리고 정국은 이름이의 바로 앞에 서 서 길게 내려앉은 이름이의 머리칼을 두어번 쓰다듬는다.
"응.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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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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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던 안 주인은 정국의 방으로 달려간 이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샐죽 웃기 시작했다.
"사모님 방금은 여주 아가씨께서.."
"오늘따라 차가 더 맛있는 것 같네요. 그죠? "
+ 안녕하세요! 누군가에게 글을 쓰고 내보이는 것이 처음이라 아직은 많이 미숙한 티를 내는 것 같네요. 오타 및 내용수정이 필요한 부분 말씀해주시면 바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봐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암호닉도 받으려구요'ㅅ'! 아무쪼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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