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 끝난 마당에 내가 쓰게 될 줄이야....
가볍게 읽어주세욥욥
닮았거나 닮아가거나 | ||
* 오래 전부터 그랬다. 둘 모두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제 다 괜찮은 척, 잊은 척, 웃기지도 않는 연기를 하며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가다가는 언젠가는 터지고 말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 나와 고남순 모두 알고있다. 우리 둘 사이에는 무엇인가 결여 되어있다. 우리는 화해했다. 라면도 같이 먹고, 집에도 놀러 가며, 가끔 다른 애들과도 어울려 노래방이나 PC방을 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찝찝함은 함께 했다. 내가 너와 이대로 함께 해도 괜찮을까? 오늘 지각으로 옥상 창고 청소를 함께 하게 됐다. 그 때 우리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왠지 모를 압박감이 우리를 억눌렀기 때문이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고남순이었다. 가끔 그 때 고남순이 입을 가만히 다물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꺼내야 하는 이야기였다. "너도 알고 있잖아. 이대로는 안 돼." "……." "우리 둘 다 너무 지쳤잖아." 나는 피던 담배를 비벼 껐다. 고남순은 먼지 쌓인 책상에 걸터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화해하기 전, 강세찬 때문에 창고 청소를 할 때도 고남순은 이러고 있었다. 나에 대한 죄책감과 알 수 없는 감정에 억눌려서 몸을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뭐가?" "왜 중학생 때 나한테 키… 그, 그랬어?" "그건 그냥 사춘기니까 실수로……." "실수 아니잖아, 거짓말 하지 마. 너 나 좋아하잖아." 그대로 담배꽁초를 고남순에게 던졌다. 지랄하지마,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미쳤어? 내가 널 좋아한다고? 내가 호모라고? 나는 소리를 빽빽 질러댔다. 그냥 왠지 그래야만 이 역겨움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남순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딱히 할 말이 없었기에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고남순은 나에게 고백했다. "나도 너 좋아해." 나는 그 고백을 듣자마자 고남순에게 주먹을 날렸다. 때리면서 온갖 욕이란 욕은 다 한 것 같다. 미친 새끼, 더러운 새끼. 한참 그를 때리다 보니, 이렇게 무작정 패는 것 보다는 설득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 나한텐 축구 말고 너밖에 없으니까. 하나밖에 없는 친구를 게이새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고남순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 같은 새끼들을 사회에서 뭐라고 하는지 알아? 사람들이 어떻게 쳐다보는지 아냐고, 미친새끼야. 정신병자라고 그래. 존나 더럽게 본다고. 어리고 아직 뭣도 모르니까 그렇게 살아도 될 것 같아? 나중에 늙으면 혼자 살 거야? 늙어서 결혼도 안 하고 사는 너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볼 것 같냐고. 날 좋아해?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넌 고작 그게 무서워?" "병신같은 소리 작작하고 정신 차려라." "내가 왜? 미친, 죽을 병이라도 걸렸어? 내가 왜 남 눈치 보면서 살아야 되는데?" "너……. 이제 와서 개수작 부리지 마." 그대로 고남순의 멱살을 놓고 도망치 듯 창고를 빠져나왔다. 갑자기 왜 고남순이 이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창고 안에서 고남순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니가 게이잖아 미친새끼야! 당장이라도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난 고남순에게 고백을 했었다. 그 이후 고남순은 날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며칠은 피해 다니기만 했다. 그 후로는 지옥이었다. 날 죽일 기세로 괴롭혔다. 그러다 내가 축구를 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찾아와서 결국 내 다리를 아작내버렸지. 그 때 그렇게 날 혐오하던 새끼가, 이젠 날 좋아한다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병신새끼, 내가 너 좋아한다고……. 진짜야, 너 가고 난 다음 많이 생각해봤어." "네가 지금 와서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그딴 사람들 시선이 무서워서 이래? 내가 너라면 그렇게는 안 살아." 내가 무서워하게 된 이유가 너 때문이잖아! 다시 고남순의 멱살을 잡았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그의 말도, 행동도. "그건 너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고남순, 너니까 그런 말 할 수 있는 거라고!" "……." "내가 너한테 고백했을 때 니가 날 어떻게 대했는데? 니가 날 어떻게 쳐다봤는데! 그 후로는 어떻게 했는데! 넌 잊었겠지. 난 하나하나 다 기억해." "그건……."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좋아한다고 고백이라도 하면, 내가 좋다고 받아줄 것 같았어? 난 니가 너무 무서워……."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나도, 고남순도 모두 깜깜한 어둠에 휩싸여갔다. 어둠 속에서 고남순은 입을 열었다. "난 니가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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