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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자 전체글ll조회 969l 1

이른 아침 예술의 전당. 공연 시작 시간은 오후 7시였지만 택운은 미리 공연장에 도착해 무대에 올라 가볍게 연주를 연습했다. 스태프들이 여유롭게 무대를 구성하고 그 가운데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매만지고 있는 택운. 재환은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평소와 같이 택운의 투박하고 거친 연주를 감상하고 있었다. 프로페셔널 함을 생명으로 여기는 택운은 매번 공연 시작보다 훨씬 이런 시간에 도착해 거의 본 공연에 가까운 시간만큼 연습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그런 택운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재환은 이렇게 같이 수면 시간을 줄여서라도 택운을 따라다녀야 했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으면서도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재환을 택운이 예뻐라 하고 있다는 건 익히 느껴지기 때문에.

아침부터 공연장 주변을 서성이는 취재진들. 대기실에서 블라인드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방송국 차량들과 카메라에 재환은 식겁하였다. 혹시라도 매너 없는 기자들이 무턱대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플래시를 터트렸다간..예민하게 굴 택운이 눈에 안 봐도 선해 재환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택운은 대기실 소파에 앉아 오늘 연주할 곡들을 MP3로 몇 번이고 듣고 있었다. 불과 2주 전 똑같은 플랜으로 공연을 마쳤다지만 택운은 언제나 눈앞에 주어진 공연에 있어 최선을 다했다. 비록 그것이 원하지 않던 한국에서의 첫 내한공연이다 하더라도.

“형. 근데 그거 뭐였어요?”
“뭐?”
“왜, 그 며칠 전에 형이 나한테 준거요. 학연씨 주라고.”

별 생각 없이 툭 던진 재환의 물음에 택운이 꽂고 있던 이어폰을 빼내곤 재환을 향해 작게 미소 지었다. 사실 대답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아마 솔직하게 말했다간 재환이 벌벌 뛰며 어떻게 그런 선물을 줄 수 있냐는 둥, 잔소리를 해댈 것이 분명했기에.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기에 택운은 대답을 망설였다. 당장 공연이 오늘인데 컨디션 조절도 해야 할 필요가 있고. 일부러 며칠 간 학연과의 만남을 피해왔다. 인터뷰도 최대한 미뤘고, 사적인 만남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여겼기에 연락도 자제했다. 그 뒤로 학연은 택운에게 별다른 전화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택운 역시 먼저 학연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티켓. 오늘 공연.”
“아, 뭐에요. 그런 거였으면 제가 학연씨 따로 챙겨드려도 되는데.”
“인터뷰 말고 따로 칼럼도 쓴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한 장 줬지.”

돈까지 줬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간 사단이 나겠지. 택운은 작게 한숨 쉬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사는 배가 부르지 않을 만큼 가볍게 해야 한다. 비록 공연을 하는 동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포만감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는 섬세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부분은 연주가 불가능하기 때문. 특히 오늘 공연은 택운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공연이 될 것 이다. 10년 만에 한국에서의 첫 공연인 만큼 모든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온갖 오케스트라 교향악단들이 VIP로 초대 되어 공연을 관람하는 자리인 만큼 긴장감도 배가 되었다. 아마 택운이 소속되어 있는 에이전시의 팀들 역시 티켓을 따로 구매해 택운의 공연을 관람하러 찾을 것이다.

“오늘 학연씨 오겠네요.”
“뭐..그렇지.”
“긴장 되지 않아요? 그래도 10년 만에 첫 한국 공연인데.”
“딱히 공연장이 한국이라서 걱정되는 건 없는데.”
“……?”
“차학연이 보고 있으니까, 그게 긴장되지.”

재환은 문득 택운이 어떤 의미로 저런 말을 뱉는지 의도가 궁금해졌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 하지만 그를 떠올리면 아픈 기억밖에 없다는 택운. 학연이 자신의 공연을 보고 있어서 긴장이 된다는 건, 좋은 의미일까. 도무지 택운의 시커먼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없다. 조금씩 공연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모여드는 인파는 늘어갔고 무대는 세팅이 완료되었다. 일부 언론 관계자들이 택운과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재환을 비롯한 에이전시 측 스태프들이 철저히 대기실 문 앞을 지켰고 택운은 간간히 핸드폰을 확인하거나 몰려드는 기자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아직까지 익숙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학연은 앞뒤가 꽉 막힌 러시아워에 갇힌 채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핸들을 두드렸다. 아니, 출퇴근 시간도 아닌데 왜 이렇게 차가 막혀. 시끄럽게 빵빵대는 클랙션 소리들과 매캐한 매연. 가끔은 훌쩍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8차선 국도가 아닌 비포장도로를 걷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다. 학연은 창원 출신이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무용 활동을 시작하기 위해 열 네 살 쯤 서울로 상경했고 부모님과 떨어진 채 학연은 홀로 달동네에서 머물렀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택운에게 나중에 꼭 같이 창원에 데리고 가겠다며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학연은 가볍게 고개를 뒤로 젖혔다. 때마침 울리는 벨소리에 학연은 발신인을 확인했다. 선명하게 액정 위로 떠오르는 이팀장님. 학연은 핸즈프리를 연결했다.

“네, 팀장님.”
- 오늘 택운씨 공연이잖아요. 확인 차 전화 해 봤어요.
“안 그래도 일찌감치 나와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근데 차가 오지게도 막혀요. 일찍 가서 미리 다 둘러볼 계획이었는데.”
- 학연씨 괜찮아요?
“예? 뭐가요?”
- 그냥, 이것저것.

은근한 걱정이 묻어나는 홍빈의 목소리에 학연은 그제야 그 질문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홍빈은 학연과 택운의 개인적인 관계를 알게 된 뒤로 부쩍 학연을 신경 써 주는 편이었다. 괜찮지 않을 이유는 없다. 오늘은 그저 내한 공연을 하게 된 피아니스트 정택운을 주로 한 칼럼을 작성하기 위해 그의 초대를 받고 참여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다. 물론, 과연 학연 스스로가 자신을 그저 택운 앞에서 정택운 전속의 ‘칼럼니스트 차학연’ 으로서 택운을 대할 수 있을 것인지가 문제이긴 하다만.

“그럼요. 괜찮죠.”
- 오늘 칼럼 굉장히 중요해요. 그건 학연씨가 제일 잘 알죠? 인터뷰 싣기 전에 한 페이지 가량 정도로 채울 거니까.
“저야 영광이죠. 제 첫 전속 칼럼이 정택운 메인으로 실린다니.”
-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에요.
“그럼…”
- 말 그대로 칼럼이잖아요. 아무래도 학연씨가 택운씨 칼럼을 쓰다보면 감정적으로 힘들어 질 것 같아서요.

지극히 칼럼니스트의 주관적인 시선으로 쓰여 지는 글. 아무래도 대상에 대한 사적인 감정이 배제되기는 힘든. 그 점은 택운의 공연 칼럼을 쓰기에 앞서 학연 자신도 굉장히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이었다. 학연은 잠시 뜸을 들이다 이내 슬슬 뚫리려는 기미가 보이는 도로에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걱정 마세요. 저 프로잖아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지금 학연이 굉장히 떨고 있다는 건 아마 핸드폰 너머의 홍빈에게까지 전해질 것이다. 가벼운 이야기가 오간 뒤 전화는 끊겼고 학연은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예술의 전당 앞에 도착했을 때, 학연은 북적거리는 인파에 한 번 놀라고, 그 인파가 대부분 언론계 기자들과 방송국에서 나온 취재팀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공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 상황. 대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리사이틀이라지만 대개 피아니스트의 공연 시작 전부터 이 정도로 취재진들이 모여 있는 경험은 처음이라 학연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만큼 모든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는 택운의 공연. 그런 택운의 전속을 자신이 맡게 되었다는 사실 역시 새삼 믿기가 어려워졌다. 오롯이 자신의 인터뷰에만 응하고, 자신이 속한 Luve의 잡지에 택운의 공연을 주제로 한 칼럼을 싣게 되고. 모든 것이 학연에게는 꿈만 같은 일들이었다.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는 별이나 다름없는 택운. 누구나 택운을 동경했고, 택운의 연주를 칭찬했다. 비록 연주자 ‘정택운’ 은 혐한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덕에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곤 했지만 감히 그의 연주 자체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안에 들어선 학연은 택운의 전속 칼럼니스트라는 명을 받고 있는 덕에 미리 대 공연장 홀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학연은 노트와 펜을 들고 다니며 꼼꼼하게 그때, 그때 느끼는 자신의 기분을 짤막하게 적어 내려갔다. 포인트가 될 부분은 강조를 하고, 중요하다 싶은 부분에는 밑줄을 긋고. 아무리 이번 공연이 택운의 공연이라 할지라도 우선 학연에게는 주어진 일이었다. 절대 사사로이 다뤄서도 안 되고, 감성에만 젖어서도 안 되는. 공연장을 모두 둘러보고 난 뒤, 대기실에서의 택운을 미리 만나야했다. 택운의 대기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카메라와 기자들로 인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약간 소란스러운. Luve가 택운의 전속 잡지사임을 알고 있는 기자들은 학연이 대기실로 향하자 자연스럽게 길을 비켜주었다. 자신을 향한 약간의 웅성거림 역시 귓가에 들려왔지만, 대기실을 찾은 학연을 환하게 맞아주며 문을 열어주는 재환에 학연 역시 가벼운 눈인사와 함께 대기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 짤막한 시간에도 기자들은 놓치지 않고 문 틈 사이로 셔터를 눌러대었다.

아직 무대에 오르기 전, 편안한 차림의 택운이 홀로 MP3를 듣다 안으로 들어선 학연에 그를 향해 미소 지어 왔다. 등 뒤로 문이 닫히고 오롯이 대기실 안엔 택운과 학연만이 존재하였다. 어색한 침묵과 함께 둘 사이를 흐르는 묘한 기류. 택운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맞은 편 자리로 학연을 안내하였다.

“일찍 오셨네요.”
“더 일찍 나왔는데 차가 많이 막혀서 좀 늦었습니다.”
“지금 인터뷰를 해야 하나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칼럼에 필요해서 잠시 들렀습니다. 방해가 된다면 이만 가보구요.”
“괜찮습니다. 둘러보세요.”

대기실보다는 이 대기실 안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공연을 준비하는 택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생각이기에 학연은 잠시 택운의 말에 머뭇거렸다. 그런 학연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택운은 별 다른 말이 없는 학연에 간단하고 아주 일상적인 말들을 걸어왔다. 오늘 날씨가 꽤 쌀쌀하다는 둥, 공연 준비로 약간 긴장이 된다는 둥, 식사는 하셨다는 둥. 표면적이고 불필요하며 겉치레에 불과한 질문들뿐이었다. 학연은 간간히 택운의 이야기를 자신의 노트에 담았다. 간결하면서도 후에 완벽히 당시 느낌을 기억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전속이 제가 처음이시라고 했죠?”
“네, 그렇죠.”
“어쩐지 펜을 잡고 있는 게 조금 어색하긴 하네요.”
“어색하긴요. 전 프로잖아요, 택운씨 말대로.”

학연은 자신에게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잠시 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으며 이야기 하는 학연에게 택운 역시 예의 그 알 수 없는 얼굴로 웃음을 지어왔다. 택운은 이렇게 학연을 마주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정말 10년 전의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린 것일까. 차가운 얼굴이지만 언제나 제게만큼은 따뜻하게 웃어보이던 택운을 떠올린다. 학연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어 택운에게 이만 가봐야겠다며 공연을 기대하겠다는 뻔한 멘트와 함께 대기실을 벗어났다. 택운 역시 그러한 학연을 잡지 않았다. 상처 받았나. 학연은 택운에게 상처를 받은 것일까. 굳이 자신을 칼럼니스트 차학연으로서 대하는 택운에게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이제 익숙해져야했다. 학연은 대기실 앞 많은 인파들을 아무렇게나 제치고 발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걸었다.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 등 뒤에서 어깨를 턱 잡아왔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학연은 이 손길이 택운의 손길이었음을, 하고 바랐다. 한번만 자신을 잡아주었으면. 그것은 아주 우습고 유치한 생각이었다.

“찾았다.”
“……”
“놀랐죠. 나 오늘 어때요?”

눈앞엔 원식이 서 있었다. 까만 반코트차림에 베이지색 면바지. 키가 큰 원식은 무엇을 입어도 태가 사는 편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들고 어떠냐며 물어봐도 아마 돌아올 대답은 정해져 있을 텐데. 학연은 원식의 차림새보다는 어째서 지금 원식이 자신의 앞에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여긴 어쩐 일이야?”
“정택운씨 공연 보러 왔죠. 홍빈이 형이 VIP 티켓 한 장 주던데요.”
“아…”
“근데 내가 정택운씨 VIP는 아닌 것 같은데.”

원식의 손에 익숙한 티켓이 한 장 들려있다. 학연은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있던 티켓을 원식에게 들어보였다. 반가웠던 모양인지 원식은 밝게 웃어 보이며 이내 학연을 데리고 예술의 전당을 나섰다. 아직 공연 시작 전이니까 우리 저녁 먹을까요? 내가 살게요. 학연은 들고 있던 노트를 원식에게 보였지만 원식은 학연의 노트를 빼앗아갔다. 나랑 있을 땐 일 생각 잠깐만 접으면 안 돼요? 원식의 물음에 학연은 생각했다. 왜 내가 너랑 있을 땐 일 생각을 접어야 하지? 하지만 차마 입으로 뱉지는 않았다.

원식과 주변에서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공연 시작 전 원식과 함께 대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하나 둘씩 자리를 채워가는 관객들. VIP 석에 익숙한 얼굴들이 몇몇 보여 학연은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하였다. 그리고 원식은 자신의 자리를 두고, 굳이 비어있는 학연의 옆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언제든지 자리의 주인이 도착하면 비워준다는 약속을 했지만 공연 시작 전까지 결국 자리의 주인은 오지 않았다.

오후 7시. 커튼이 오르고 정확한 시간에 택운이 무대 위로 등장하였다. 꽉 찬 관객석과 조용한 공연장. 학연은 잠시 노트를 덮었다. 공연을 관람하며 자신의 느낌을 작성하는 것은 연주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대기실에서 보았을 때와는 달리, 택운은 이번 리사이틀에 어울리는 간단한 메이크업과 의상으로 갈아입은 채였다. 택운이 관객들을 향해 인사하고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오프닝 곡을 연주할 준비를 하자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죽였다.

“피아노 공연은 처음이라서 그러는데, 원래 이렇게 다들 조용해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자신에게 귓속말을 해오는 원식에 학연은 아프지 않을 만큼 원식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숨을 고르는 택운. 그리고 그의 손이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강하게 건반 위를 유영했다. 자주 택운의 공연 영상을 찾아보던 학연에게 아주 익숙한 오프닝 곡이었다.

학연은 택운이 있어야만 마음을 놓고 춤을 출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리 귀에 익은 곡에 몸을 맡기고 움직인다 하더라도 택운이 보이지 않으면 어딘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하고 안정되지 않아 중요한 대회 날이면 꼭 택운이 참석할 수 있도록 신신당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택운 역시 연주 연습 날이면 학연과 함께했다. 학연은 택운의 피아노 옆에 앉아 택운의 연주를 감상했고 택운은 악보보다는 자신의 연주를 감상하는 학연을 보며 연주를 하는 날이 많았다. 택운은 연주에 귀를 기울이는 학연이 예쁘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연주가 끝나면 뒤에서 택운을 꼭 안으며 좋다는 말을 빼먹지 않던 학연. 이제는 너무나 멀어져 버린 택운을 본다. 분명 택운은 눈앞에 있지만, 손이 닿지 않는 무대와 관객석의 거리만큼이나 그는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진다.

1부가 끝이 나고 잠시 휴식 시간, 무대의 커튼이 내려오고 관객들은 저마다 택운의 리사이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멍하니 연주하는 택운을 바라보던 학연은 원식이 자신을 톡톡 두드렸을 때, 그제 서야 1부가 끝이 났다는 것을 깨달았고 얼른 노트를 펼쳐 아직 가시지 않은 감상들을 빠르게 적어 내려갔다. 최대한 택운과의 사적인 감정들은 배제한다. 자신이 보고 들었던 택운의 공연만을 평가하는 칼럼. 어느 덧 노트 한 페이지를 넘어서는 감상에 학연은 아차, 싶어 급하게 펜을 내려놓았다. 이렇게 두서없이 길어지는 감상은 쓰레기나 다름없다.

“나 더 이상 여기 못 앉아있겠어요.”

그리고 원식의 작은 투덜거림에 학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피아노 공연은 처음이라더니 아무래도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가.

“도저히 질투 나서 참을 수가 있어야죠.”
“뭐?”
“나 거의 형 보고 있었어요. 알아요?”
“……”
“형은 계속 정택운씨만 보고 있잖아요. 정택운씨 손이 아니라, 연주를 하고 있는 사람만.”

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사실 택운이 연주하는 모든 곡들은 이미 영상으로 몇 십번 씩 들어온 곡이라 익숙할 뿐이지 학연은 내내 택운을 바라보며 택운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자신이 적어 내려가고 있던 감상이 쓰레기가 아닌 연주를 듣고 있던 관람객으로서 자신의 자세 자체가 쓰레기였다.

“끝나고 너희 카페 가자.”
“학연이 형.”
“딸기 주스 마시러.”

싱긋 웃어오는 학연을 보며 원식은 결국 그 자리에 묶이고 만다. 휴식시간이 끝난 뒤 커튼이 오르고 2부가 시작되어 의상을 갈아입은 택운이 무대 위로 등장했지만 원식은 여전히 학연을 흘긋거릴 뿐이었다.

모두들 숨을 죽인 채 택운의 연주에 집중한 시간. 오로지 단 두 사람만이 택운의 공연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택운을 보고 있는 학연과, 그런 학연을 지켜보고 있는 원식. 학연은 스스로가 VIP로 초대된 관람객으로서의 자질이 제로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투박한 연주에 집중하지 못했다. 자신을 향해 언제나 부드럽고 섬세한 선율을 들려주던 익숙한 곡이 10년이 흐르자 아주 거칠고 딱딱해졌다는 생각 따위를 했다.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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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거의매일 올라오는 글에 정신을 못차릴것같네요 매일
이글을 읽으면 참 부드럽고 편하면서도 섬세하게글을쓰신다는 느낌이들어요

10년 전
독자2
헐헐 ㅠㅠㅠ 진짜... 정택운 차학연 김원식 진따 셋다 불쌍해서 어뜨케여 ㅠㅠㅠㅠㅠㅠ 진짜..진찌 이글은 작품인듯...ㅠㅠ엉엉 작가님 정말 진짜 너무 멋져요 ㅠㅠㅠ 사랑해여 ㅜㅠ 자주연재해주시니 전 행복할따름이고 ㅠㅠㅠ
10년 전
독자3
허루ㅜㅠㅠㅜ나진짜대밌다ㅜㅜㅠㅜ진짜ㅜㅠㅜㅜ기다렸어여ㅜㅠㅜㅜㅜ
10년 전
독자4
으아아아아ㅏ택운이의 연주가 왜 거칠고 딱딱해졌을까요ㅠㅠㅠㅠㅠ학연이 때문인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빨리 마음을 알아차렸으며뉴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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