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paris
# episode 02. new staff
/시테/
"¨여기에 도장 찍으면, 진짜 다 끝나는 거죠?"
"그렇다니까. 계약서 안 읽어봐도 괜찮나? 눈뜨고 코 베이는 건 생각조차 없나 보네요."
"저 상대로 사기라도 치시려고요?"
제 말에 그의 눈썹이 꿈틀댔다. 치, 자기가 말해 놓곤, 뭘. 조금은 신경질적인 그의 표정에 못 이기는 척 계약서를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제 1장….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는데 어지러워지는 머리에 두어 번 목을 가다듬고 다시 집중해 보려 애썼다. 그래, 이게 어떤 계약선데. 울 아빠 가게 넘기는 계약서다. 평생을 살면서 이런 걸 써 볼 일이 몇 번이나 있겠느냐마는, 처음이니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집중해서 한 글자씩 뜯어보듯 읽어 내려가니, 계약서가 아니라 완전 각서가 따로 없었다.
"이거 임대차계약서 맞아요? 아닌 것 같은데?"
"임대차계약서는 나랑 건물주랑 하는 거고. 그쪽이랑 나는 각서에 가까운 계약서지. 근로 계약서 겸."
"이게 법적 효력이 있단 말이에요?"
"아, 여기서 그것까지 따지시려고?"
그의 말에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하긴, 몇 달 밀린 임대료랑 직원거주주택까지 마련해 준다는데. 각서에 가까운 계약서는 나름 나에게 불리한 조건도 아니었다. 열심히 일하면 아빠의 가게를 돌려준¨ 돌려줘? 돌려준다고? 믿을 수 없는 조항에 두 눈을 손으로 비비고 다시 보았다. 애정을 가지고 일하면 돌려준다…. 내가 잘못 읽거나 돌려준다의 정의가 내가 아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계약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느슨히 잡았던 계약서를 다시금 고쳐잡았다. 돌려주는 대신, 노력으로 제과 자격증과 각종 대회의 수상이 조건으로 따랐다.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니 그는 턱을 괸 채 나른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거 뭐예요? 이런 조건이 세상에 있어요?"
"있으니까 이해솔씨 앞에 가져왔죠. 그래서, 싫어요? 계약서 다 읽어보니 마음이 바뀌었나?"
"아, 아니요! 계약, 할게요! 이거 완전 나한테 그쪽이 지고 들어가는 건데!"
"자격증 따는 거 꽤 자신 있나 보네."
"당연한 거 아니에요? 아빠 옆에서 배운 게 얼만데."
"보고 배운 게 나오리란 보장은 없지 않나?"
"시작도 안 했는데 초 치시긴."
자신 있게 도장을 꺼내며 그를 슬쩍 흘겨보았다. 이거 왜 이래? 파티쉐 딸을 뭐로 보고. 신나는 마음에 들뜬 손짓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괜스레 두 볼이 상기되는 느낌에 빙글 웃으며 그를 바라보니 그는 가게를 훌훌 둘러보다 대뜸 내게 물었다.
"어디서 자요?"
"저요? 저 그냥 여기 옆 창고에서 자는데."
"방 빼요."
"네?"
그의 황당한 말에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하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런 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지내는 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보았다. 아, 쪽팔리게 진짜…. 여기저기 널린 옷가지들과 너저분한 창고 안의 모습에 결국 얼굴을 두 손에 묻고 말았다. 저 인간은 대체 상식이란 게 없나?! 왜 남의 집 문을 그렇게 휙휙….
"가게 2층까지 확장할 거예요. 이 창고도 비워둬요. 벽 터서 가게 넓힐 거니까."
"그럼 전 어디서 지내는데요?"
"3층에서 지내요. 거긴 직원 휴게실로 만들 거예요."
"아니, 3층까지 계약을 한단 말이예요? 그럼 완전 건물 사는 건데?"
"건물 사버리면 가게는 그쪽한테 어떻게 돌려주고?"
그는 뭘 당연한걸 묻냐는 듯 말했다. 그럼 규모 완전 커지는데 둘이서 일해요? 제 말에 황당하다는 그의 표정이 대답을 대신했다. 아, 아니구나. 그의 표정에 입술을 삐죽이며 괜스레 익숙해진 작은 가게를 둘러보았다. 나름 작고 귀여웠는데, 아쉽다. 뽀얗게 먼지가 올라앉았던 테이블은 각진 계약서 모양대로 먼지가 지워졌다. 테이블에 턱을 대고 늘어져 그가 움직이는 대로 눈을 굴리니 그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창밖을 바라보다 이내 손을 흔들며 웃어 보였다. 누구지? 저 또한 그가 손을 흔든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웬 잘생긴 남자가 성큼성큼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헉, 훈남….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늘어졌던 자세를 바로 하고 정국의 옆에 서서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그에게만 들리게 물었다.
"누구예요, 이 잘생긴 분은?"
"잘생긴 분이 누구긴, 내 친구. 여기서 일하게 될 파티쉐."
"헉, 그렇게 크게 이야기하면 다 들리잖아요!"
"하하, 반가워요. 저는 박지민이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저는 이해솔 이라고 합니다."
붉다 못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으, 진짜!! 단 한 번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어요! 질린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자 정국은 아무렇지 않은 듯 슬쩍 웃어보였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날 가지고 놀아? 꽤나 다정하고 조곤조곤한 지민의 말투에 봄 눈 녹듯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 아, 정말 멋있는 것 같아. 근데 어떻게 둘이 친구지? 전혀 다른 극과 극인데?
"아, 정국이랑 저는 대회에서 자주 만나서 친해지게 됐어요."
"내 라이벌이었어, 박지민."
"에? 라이벌인데 라이벌 가게에서 일한다고요?"
제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국과 지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게 가능해요? 제 물음에 지민은 재밌다는 듯 밝게 웃었다. 그런 지민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니 정국은 한숨을 작게 내쉬며 말했다.
"박지민이 특출난 거지. 어느 누가 라이벌이랑 친구를 해, 바보도 아니고."
"형, 그럼 내가 바보라는 거야?"
"너 같은 바보가 또 어딨어. 일등 빼앗겨도 좋다고 따라다니는데 바보 맞지."
"진짜요? 일등을 이 사람한테 빼앗겼어요? 대체 왜?"
"이해솔씨, 그게 왜 그런 거냐고 물을 일이에요? 당연히 내가 더 뛰어나니까 일 등 한 거지."
헐. 정국의 자신감에 몸을 잘게 떨었다. 나 지금 소름 돋은 것 같은데, 한 번 볼래요? 팔의 옷을 걷어 올리며 보여주자 그는 짜증이 이는 듯 옅게 인상 쓰며 제 팔을 밀어냈다. 예민하긴, 장난친 건데. 입술을 삐죽이며 그를 바라보다 이내 지민에게 물었다. 근데 형이라뇨? 친구라면서요.
"아, 정국이가 한 살 형이에요. 전 스물여섯이고."
"아, 스물여섯¨. 스물여섯이요? 그럼, 사장님은 스물일곱?!"
"뭘 그렇게 놀래요. 왜, 내가 너무 어리게 생겼나?"
"인정하긴 싫지만, 그래도 저랑 몇 살 차이 안 나는 줄 알았어요."
"해솔씨는 몇 살 이예요?"
"전 스물 셋이에요."
정국은 스물셋이라는 저의 말에 되려 놀라는 척했다. 뭘 그렇게 놀래요? 그를 슬쩍 노려보며 그가 했던 말을 따라 하니 그는 이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그쪽 나이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훨씬 더 많아서. 네? 그럼 제가….
"내가 그렇게 동안이에요?"
"그게 아니라 꼭 고등학생처럼 작으니까."
"근데 저기, 사장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사장님은 저 언제 봤다고 그렇게 자꾸 저를 놀려요?"
짐짓 화난 척 목소리를 깔며 팔짱을 끼니 그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 뭐야, 그 잘난 척은? 그의 코웃음에도 아랑곳 않고 뚫어져라 바라보니 그는 나를 진득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기억 안 나나? 하긴 그땐 내가 좀 통통했으니까."
"… … ?"
"나만 기억하는 게 좀 억울해서 언제 봤는지는 노코멘트. 그래도 그 쪽 기억 속에 내가 있을 줄은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네요."
"장난이 아니라, 진짜 우리 본 적 있어요?"
"그럼 내가 그쪽은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그쪽 아버지를 어떻게 알겠어요?"
+++
아.. 달방에서 내 글 스포했어요..ㅠㅠ 힝구
모든 멤버들이 파티쉐와 직원으로 나올 예정이었는데
(물론 탈은 안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흑.. 예상치 못한 곳에서 스포당했네요.
*암호닉*
백공
■계란말이■
쿠키
백지
히야
슈가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