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비밀세훈x준면w.BM 이제는 항상 세훈과 아침을 맞이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세훈은 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나는 그런 세훈을 마중해주었다. 세훈이 집을 나서고 집에 완전히 혼자가 되면 그때 내 방 서랍 한 구석에 숨겨놓은 동생의 일기장을 꺼내온다. 일기장을 보다보면 문득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서 부러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일기장을 펼친다. 동생의 일기장은 2010년도의 어느 날 이후로 쓰이질 않았는데, 아무래도 그간 동생이 바빠서 못 쓴 것도 있고, 지금은 죽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고 짐작해보았다.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대충 넘겨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조금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첫 장을 넘겼다. 나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따금씩 내 형이 잠든 모습을 볼 때면 기분이 이상해지곤 했다. 그리고 그 날 꿈에 형이 나왔고, 나는 첫 몽정을 했다. 죄책감이 들었다. 이제 나는 형을 어떻게 봐야할까. 탁. 일기장을 덮었다. 나도 모르게 떨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작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고 식은땀이 절로 났다. 일기장의 첫 장 내용이 처음 일기장을 발견하고 중간 즈음을 펼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내 동생이 나를, 나를……. 머릿속이 꼬여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조심스럽게 일기장을 다시 펼쳐 첫 장의 내용을 또 읽어 보았다. 처음에는 화가 났었지만 어쩐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는 사라졌었다. 어쩌면 동생은 알게 모르게 혼자서 모든 성장통을 다 겪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일기장에는 동생이 견뎌 내야했던 통증들이 담겨있을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오히려 전보다 훨씬 차분해지는 것 같은 기분에 바로 다음 장으로 넘겼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형과는 조금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교하면 비어있는 집이 전혀 익숙해지질 않았다. 대학생들은 원래 그렇게 바쁜 건가.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처음 눈이 마주쳤던 오세훈. 그 눈빛이 잊어지질 않았다.*** 아직 중학생 티를 완전히 다 벗지 못한 풋내기 남학생들이 모인 공간에서 담임선생님은 각자 출신 중학교를 말하며 자유롭게 자기소개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유치하게 뭐하는 거냐며 반발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막상 자기소개가 시작되니 앞줄부터 차례로 일어나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수줍음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종인은 창틀에 손가락을 두드리며 무료한 표정으로 그 모습들을 눈에 담고 있었다. 일부러 졸업한 중학교에서 먼 곳으로 지원했기에 같은 중학교 출신은 없이 전부 다 생소한 사람들뿐이었다. 딱딱딱딱. 손가락을 두드리는 횟수가 점차 늘어날 때, 종인의 차례가 되었다. 거의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기에 본인의 차례인줄도 몰랐던 종인은 어영부영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종인이라고 합니다. H중학교 나왔고, 현재 대학생인 형이랑 둘이서 살고 있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짧게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중학교에서부터 온 생활기록부를 넘겨보던 선생님이 종인을 다시 불렀다. -여기, 동아리 활동 기록 보니까 댄스 동아리였던데. 나중에 종인이 춤 볼 수 있는 거야? -아…… 기회가 되면요. 종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을 하자 순식간에 왁자지껄 해졌다. 대부분은 지금 보여 달라는 말로 입이 맞춰져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종인은 뒷머릴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나중에요. 종인이 자리에 앉자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한데 나왔지만, 담임선생님은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보자며 자기소개를 이어서 하라고 지시했다. 저도 모르게 낯부끄러움을 느낀 종인이 손부채질을 하다가 문득 반대편 가장 끝자리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제 형만큼이나 하얀 피부를 가진 남학생이었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쳐다보기에 어리둥절해서 같이 보고 있으려니 먼저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이 어딘지 께름칙해 종인은 기분이 뒤숭숭해졌다. 그리고 종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남학생의 차례가 되었다. 조금은 어수선하던 반 분위기가 그 남학생의 차례가 되자 눈에 띄게 조용해진 것 같았다. 드륵. 남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학생이 일어섬과 동시에 종인의 시선이 같이 따라 올라갔다. 딱 딱 딱 딱. 창틀에 두드리던 손가락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H중학교 나온 오세훈이라고 합니다. 딱. 종인이 깜짝 놀라 남학생을 보았다. 남학생의 시선 역시 종인을 향해 있었다. 어라? 분명히 제가 알기론 이 학교에 지원해서 붙은 사람은 저 혼자뿐이라고 들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동창의 등장에 종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남학생이 자리에 앉고, 자기소개는 다시 이어졌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종인은 사각형의 공간 안에 저와 세훈뿐인 것 마냥 계속해서 세훈과 시선을 마주했다. 「처음에는 형을 생각하는 횟수가 더 많았지만 요새는 세훈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된다. 그 이후로 세훈과 나는 동창이라는 이유로 친해졌던 것 같았다. 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우린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건 아니었지만 항상 같이 다녔던 것만큼은 확실했다.」 준면은 휴일임에도 분주히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종인은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바쁘게 부엌과 방을 오가는 형에게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아무리 대학생이라지만 요새 준면이 늦게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도 엄청 지독한 담배냄새와 술 냄새 같은 잡다한 냄새들을 잔뜩 묻히면서 말이다. 요즘 들어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 형이 걱정스러워 준면은 텔레비전을 끄고 준면의 방문 앞으로 갔다. 종인이 있는 줄도 모르고 가방을 챙기는 준면의 손길이 꽤 다급했다. 종인은 문지방에 서서 팔짱을 끼고 준면을 지켜보았다. -형. -어, 어? 내가 문지방에 서있지 말랬지. -그건 또 언제 보고. 참, 요새 바빠? -아 이런. 미안해, 형이 요즘 잘 못 챙겨줬지. 밥 해놨으니까 꼭 챙겨먹고. 아니면 먹고 싶은 거 있어? 돈 놔두고 갈게. -……. 다급하게 제 할 말만 해버리는 준면으로 인해 종인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조용해진 종인으로 인해 준면은 그제야 문간에 서있는 종인을 보았다. 저보다 훨씬 키가 크지만 여전히 어린 테가 남은 소년의 불퉁한 표정에 준면은 웃고 말았다. 마저 가방을 챙기고 등에 멘 준면은 종인의 앞으로 가서 팔을 길게 뻗어 종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미안해. 형이 요즘 아르바이트해서. 너 대학 보내려면 부지런히 돈 모아야지. -그깟 대학, 가면 뭐가 좋다고. -씁. 정 집에 혼자 있기 심심하면 친구라도 불러서 놀아. 알았지? -것보다 어디서 일하는데? 매번 늦게 오는 것 같아서, 데리러 갈게. -괜찮으니까 기다리지도 말고 일찍 자. -걱정되니까 그렇지. 형은 모르겠지만 사실 나 오토바이 자격증도 있어, 오토바이도 있고……. -알아도 모른 척 해줬더니… 어휴.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해. 형 다니는 대학교 근처에. -그럼 정문 앞에 서있어, 몇 시에 끝나? 시간 맞춰서 갈게. -오늘은 일찍 가니까 밤 열한시에. 대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응, 알았어. 조심히 가고. 종인은 현관 앞까지 준면을 배웅했다. 준면은 굳이 뒤를 돌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에 종인 역시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집에 혼자 남은 종인은 준면이 나갈 준비를 하면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청소를 시작했다. 옷가지들을 한데 모아 세탁기에 집어넣고 빨래도 해놓았다. 정 혼자 있기 심심하면 친구라도 불러서 놀아. 모든 집안일을 다 끝내 놓고 소파에 앉아 있으려니 문득 스치는 준면의 말에 종인은 곧장 세훈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세훈의 집 근처에도 가본 적도 없었고, 세훈을 제 집 근처에도 부른 적 없었다. 이참에 집에 초대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휴대폰을 들었을 땐 세훈의 연락처를 누르질 못했다. 한참이고 망설이던 종인은 눈 딱 감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 긴 통화음이 울리지 않고 세훈은 전화를 받았던 것 같았다. -여보세요. -어, 나 종인이. 너 지금 뭐하냐? -잠깐 밖에. 왜? -아… 그냥, 집에 혼자 있기 심심해서. -미안. 선약이 있어서. -여자 친구라도 있어서 그런가 보다? -……. 종인이 웃는 낯으로 물었던 질문에 세훈은 답을 망설이는 것 같았다. 종인이 느끼기엔 그랬다. 장난 식으로 물었던 것과는 달리 답이 없는 세훈으로 인해 외려 종인이 당황하고 말았다. 한참을 답이 없기에 종인은 전화가 끊긴 건가 싶어 귀에서 떼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숫자가 바뀌는 것으로 보아 전화가 끊긴 것은 아니었다. 전화가 끊기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귀에 대니 그제야 세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인은 있어. 그 순간 종인은 직감적으로 세훈이 말한 애인이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마 종인은 꽤 놀랐던 것 같았다. 어색한 웃음으로 데이트 잘 하라고 답한 뒤 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심장이 세차게 뛰며 호흡이 가빠지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애인이 있다고? 그것도 어쩌면 남자일 확률이 높은, 애인.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차라리 여자 친구 있냐는 물음에 바로 그렇다는 대답을 했더라면, 세훈 역시 동성애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텐데. 종인은 세훈의 대답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때 종인은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세훈이를. 종인은 그 순간 자신이 느꼈던 모든 감정들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차마 제 형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성정체성과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다가 갑작스럽게 알게 되어버린 짝사랑을.BGM. Keren Ann - End of MayBM종인이의 이야기입니다. 죽기 전에, 일기장 속에 이야기를 풀어낸거라고 해야할까요.흠... 대략 8-9화 까지는 이런 식으로 종인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가족의 비밀은 15편 내외로 끝을 낼 예정이구요. 번외나 그런 것을 포함한 15편 내외입니다.어째... 보는 사람 입장에서 더 꼬인 것 같은 건 제 기분탓, 노파심이길 바랍니다...^_T아무튼 설 연휴 다들 잘 보내셨는지요. 전 시골에 내려가서 문명세계와 단절되어 설 연휴를 보냈습니다 크흡. 쓰리지가 잘 안터지더라구요...아 그리고 설연휴 끝나고 오겠다는 말, 약속 지켰습니다! 저 지금 매우 뿌듯해요ㅋㅋㅋㅋ
가족의 비밀세훈x준면w.BM 이제는 항상 세훈과 아침을 맞이했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세훈은 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고, 나는 그런 세훈을 마중해주었다. 세훈이 집을 나서고 집에 완전히 혼자가 되면 그때 내 방 서랍 한 구석에 숨겨놓은 동생의 일기장을 꺼내온다. 일기장을 보다보면 문득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서 부러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일기장을 펼친다. 동생의 일기장은 2010년도의 어느 날 이후로 쓰이질 않았는데, 아무래도 그간 동생이 바빠서 못 쓴 것도 있고, 지금은 죽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고 짐작해보았다.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대충 넘겨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읽어보자는 생각으로 조금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첫 장을 넘겼다. 나는 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따금씩 내 형이 잠든 모습을 볼 때면 기분이 이상해지곤 했다. 그리고 그 날 꿈에 형이 나왔고, 나는 첫 몽정을 했다. 죄책감이 들었다. 이제 나는 형을 어떻게 봐야할까. 탁. 일기장을 덮었다. 나도 모르게 떨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작은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고 식은땀이 절로 났다. 일기장의 첫 장 내용이 처음 일기장을 발견하고 중간 즈음을 펼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니까 내 동생이 나를, 나를……. 머릿속이 꼬여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조심스럽게 일기장을 다시 펼쳐 첫 장의 내용을 또 읽어 보았다. 처음에는 화가 났었지만 어쩐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분노는 사라졌었다. 어쩌면 동생은 알게 모르게 혼자서 모든 성장통을 다 겪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일기장에는 동생이 견뎌 내야했던 통증들이 담겨있을 것이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오히려 전보다 훨씬 차분해지는 것 같은 기분에 바로 다음 장으로 넘겼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 형과는 조금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교하면 비어있는 집이 전혀 익숙해지질 않았다. 대학생들은 원래 그렇게 바쁜 건가.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처음 눈이 마주쳤던 오세훈. 그 눈빛이 잊어지질 않았다.*** 아직 중학생 티를 완전히 다 벗지 못한 풋내기 남학생들이 모인 공간에서 담임선생님은 각자 출신 중학교를 말하며 자유롭게 자기소개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유치하게 뭐하는 거냐며 반발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막상 자기소개가 시작되니 앞줄부터 차례로 일어나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수줍음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던 종인은 창틀에 손가락을 두드리며 무료한 표정으로 그 모습들을 눈에 담고 있었다. 일부러 졸업한 중학교에서 먼 곳으로 지원했기에 같은 중학교 출신은 없이 전부 다 생소한 사람들뿐이었다. 딱딱딱딱. 손가락을 두드리는 횟수가 점차 늘어날 때, 종인의 차례가 되었다. 거의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기에 본인의 차례인줄도 몰랐던 종인은 어영부영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종인이라고 합니다. H중학교 나왔고, 현재 대학생인 형이랑 둘이서 살고 있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짧게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려던 찰나, 중학교에서부터 온 생활기록부를 넘겨보던 선생님이 종인을 다시 불렀다. -여기, 동아리 활동 기록 보니까 댄스 동아리였던데. 나중에 종인이 춤 볼 수 있는 거야? -아…… 기회가 되면요. 종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을 하자 순식간에 왁자지껄 해졌다. 대부분은 지금 보여 달라는 말로 입이 맞춰져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종인은 뒷머릴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나중에요. 종인이 자리에 앉자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한데 나왔지만, 담임선생님은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보자며 자기소개를 이어서 하라고 지시했다. 저도 모르게 낯부끄러움을 느낀 종인이 손부채질을 하다가 문득 반대편 가장 끝자리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제 형만큼이나 하얀 피부를 가진 남학생이었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쳐다보기에 어리둥절해서 같이 보고 있으려니 먼저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이 어딘지 께름칙해 종인은 기분이 뒤숭숭해졌다. 그리고 종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남학생의 차례가 되었다. 조금은 어수선하던 반 분위기가 그 남학생의 차례가 되자 눈에 띄게 조용해진 것 같았다. 드륵. 남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학생이 일어섬과 동시에 종인의 시선이 같이 따라 올라갔다. 딱 딱 딱 딱. 창틀에 두드리던 손가락의 속도가 느려지고 있었다. -H중학교 나온 오세훈이라고 합니다. 딱. 종인이 깜짝 놀라 남학생을 보았다. 남학생의 시선 역시 종인을 향해 있었다. 어라? 분명히 제가 알기론 이 학교에 지원해서 붙은 사람은 저 혼자뿐이라고 들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동창의 등장에 종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남학생이 자리에 앉고, 자기소개는 다시 이어졌지만 전혀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종인은 사각형의 공간 안에 저와 세훈뿐인 것 마냥 계속해서 세훈과 시선을 마주했다. 「처음에는 형을 생각하는 횟수가 더 많았지만 요새는 세훈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된다. 그 이후로 세훈과 나는 동창이라는 이유로 친해졌던 것 같았다. 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일 수도 있다. 우린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건 아니었지만 항상 같이 다녔던 것만큼은 확실했다.」 준면은 휴일임에도 분주히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종인은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바쁘게 부엌과 방을 오가는 형에게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아무리 대학생이라지만 요새 준면이 늦게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것도 엄청 지독한 담배냄새와 술 냄새 같은 잡다한 냄새들을 잔뜩 묻히면서 말이다. 요즘 들어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 형이 걱정스러워 준면은 텔레비전을 끄고 준면의 방문 앞으로 갔다. 종인이 있는 줄도 모르고 가방을 챙기는 준면의 손길이 꽤 다급했다. 종인은 문지방에 서서 팔짱을 끼고 준면을 지켜보았다. -형. -어, 어? 내가 문지방에 서있지 말랬지. -그건 또 언제 보고. 참, 요새 바빠? -아 이런. 미안해, 형이 요즘 잘 못 챙겨줬지. 밥 해놨으니까 꼭 챙겨먹고. 아니면 먹고 싶은 거 있어? 돈 놔두고 갈게. -……. 다급하게 제 할 말만 해버리는 준면으로 인해 종인은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조용해진 종인으로 인해 준면은 그제야 문간에 서있는 종인을 보았다. 저보다 훨씬 키가 크지만 여전히 어린 테가 남은 소년의 불퉁한 표정에 준면은 웃고 말았다. 마저 가방을 챙기고 등에 멘 준면은 종인의 앞으로 가서 팔을 길게 뻗어 종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미안해. 형이 요즘 아르바이트해서. 너 대학 보내려면 부지런히 돈 모아야지. -그깟 대학, 가면 뭐가 좋다고. -씁. 정 집에 혼자 있기 심심하면 친구라도 불러서 놀아. 알았지? -것보다 어디서 일하는데? 매번 늦게 오는 것 같아서, 데리러 갈게. -괜찮으니까 기다리지도 말고 일찍 자. -걱정되니까 그렇지. 형은 모르겠지만 사실 나 오토바이 자격증도 있어, 오토바이도 있고……. -알아도 모른 척 해줬더니… 어휴.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해. 형 다니는 대학교 근처에. -그럼 정문 앞에 서있어, 몇 시에 끝나? 시간 맞춰서 갈게. -오늘은 일찍 가니까 밤 열한시에. 대신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응, 알았어. 조심히 가고. 종인은 현관 앞까지 준면을 배웅했다. 준면은 굳이 뒤를 돌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에 종인 역시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집에 혼자 남은 종인은 준면이 나갈 준비를 하면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청소를 시작했다. 옷가지들을 한데 모아 세탁기에 집어넣고 빨래도 해놓았다. 정 혼자 있기 심심하면 친구라도 불러서 놀아. 모든 집안일을 다 끝내 놓고 소파에 앉아 있으려니 문득 스치는 준면의 말에 종인은 곧장 세훈을 떠올렸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세훈의 집 근처에도 가본 적도 없었고, 세훈을 제 집 근처에도 부른 적 없었다. 이참에 집에 초대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휴대폰을 들었을 땐 세훈의 연락처를 누르질 못했다. 한참이고 망설이던 종인은 눈 딱 감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 긴 통화음이 울리지 않고 세훈은 전화를 받았던 것 같았다. -여보세요. -어, 나 종인이. 너 지금 뭐하냐? -잠깐 밖에. 왜? -아… 그냥, 집에 혼자 있기 심심해서. -미안. 선약이 있어서. -여자 친구라도 있어서 그런가 보다? -……. 종인이 웃는 낯으로 물었던 질문에 세훈은 답을 망설이는 것 같았다. 종인이 느끼기엔 그랬다. 장난 식으로 물었던 것과는 달리 답이 없는 세훈으로 인해 외려 종인이 당황하고 말았다. 한참을 답이 없기에 종인은 전화가 끊긴 건가 싶어 귀에서 떼고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숫자가 바뀌는 것으로 보아 전화가 끊긴 것은 아니었다. 전화가 끊기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귀에 대니 그제야 세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애인은 있어. 그 순간 종인은 직감적으로 세훈이 말한 애인이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마 종인은 꽤 놀랐던 것 같았다. 어색한 웃음으로 데이트 잘 하라고 답한 뒤 급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심장이 세차게 뛰며 호흡이 가빠지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애인이 있다고? 그것도 어쩌면 남자일 확률이 높은, 애인.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차라리 여자 친구 있냐는 물음에 바로 그렇다는 대답을 했더라면, 세훈 역시 동성애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텐데. 종인은 세훈의 대답이 원망스러웠다. 그리고 그때 종인은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세훈이를. 종인은 그 순간 자신이 느꼈던 모든 감정들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차마 제 형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의 성정체성과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다가 갑작스럽게 알게 되어버린 짝사랑을.
BGM. Keren Ann - End of May
종인이의 이야기입니다. 죽기 전에, 일기장 속에 이야기를 풀어낸거라고 해야할까요.
흠... 대략 8-9화 까지는 이런 식으로 종인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가족의 비밀은 15편 내외로 끝을 낼 예정이구요. 번외나 그런 것을 포함한 15편 내외입니다.
어째... 보는 사람 입장에서 더 꼬인 것 같은 건 제 기분탓, 노파심이길 바랍니다...^_T
아무튼 설 연휴 다들 잘 보내셨는지요. 전 시골에 내려가서 문명세계와 단절되어 설 연휴를 보냈습니다 크흡. 쓰리지가 잘 안터지더라구요...
아 그리고 설연휴 끝나고 오겠다는 말, 약속 지켰습니다! 저 지금 매우 뿌듯해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