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의 동우는 그저 순탄하게 살아갈 줄만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 귀머거리 창녀였던 어머니는 세상에게 괄시 받고,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에 시달렸다. 어머니는 자살했고, 아버지는 술에 빠져 살았다. 어린 동우는 생각했다. 아, 하늘이 예쁘구나. 나는 어두운데, 너는 참 예쁘다. 어린 동우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큰 멍울에 동우는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온 감각을 잠재웠다. 그렇게 동우는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아니, 세상에게서 도망치는 법을 배웠다.
동우는 성인이 되던 순간 막노동에 뛰어들었다. 자신의 몸이 허약체질이 아니라는 것에 감사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고스란히 동우의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만 원짜리 몇 장을 손에 쥐고 집에 돌아오면 동우를 반기는 것은 지독한 소주 냄새와 아버지의 폭력뿐이었다. 그래도 남은 가족이라 생각하며 동우는 새하얀 마음이 문드러지도록 꾹꾹 눌러 참았다. 어김없이 술을 사오라며 쏟아지는 구타에 동우는 신발도 신지 못한 채 허겁지겁 대문을 나섰다. 여전히 하늘은 맑고 높았다.
계단이 굽이치는 달동네에서는 별이 보기 쉬웠다. 한껏 저를 뽐내며 빛나는 별이 동우의 눈에 고스란히 들어와 박혔다. 동우는 새삼 새까매진 발바닥이 부끄러웠다. 나도 저 별처럼 빛났으면. 끼익- 대문이 열리고 눈 밑이 발갛게 부어오른 아버지가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동우야, 이 애비가 미안하다……. 동우는 밝게 웃으며 아버지를 포용했다.
괜찮아요, 아버지. 다 괜찮아요.
-
아버지의 폭력은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시작됐다. 매번 계속 되는 악순환 속에 동우는 지친 기색을 내보였다. 오늘은 일도 없는데. 조용히 중얼거리는 동우의 눈은 하늘을 향했다. 역시나 오늘도 하늘은 마냥 높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하늘만 보던 동우의 어깨를 누군가가 툭툭 건드려왔다. 동우는 옆을 돌아봤다. 자신과 같은 자세로 저를 보는 사내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낮설지 않았다.
“왜 이러고 있어요?”
동우는 그 물음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해서 머뭇거렸다. 학교는 안 가요? 하는 물음에 동우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내는 그런 동우의 모습에 미안함을 느끼며 질문을 돌렸다. 하늘이 참 예뻐요, 여긴. 동우는 사내의 걱정이 무색하게 환하게 웃는 얼굴로 힘차게 대답했다.
“응, 정말로!”
사내는 순간 하늘의 태양이 저 남자의 뒤를 밝혀주려 내려온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조금은 날카롭게 보이던 눈매가 순하게 쳐져 내려오던 그 일 초가 세상의 모든 순간인 것 같았다.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이호원, 호원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동우는 지체할 것 없이 호야, 라고 애칭을 붙이며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호원의 손을 덥썩 잡은 동우는 손바닥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장, 동, 우’ 손바닥에 써내려지는 그 이름을 호원은 가슴에 새겼다.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호원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보고, 들었다. 동우의 아픔이 자신의 등줄기를 타고 문신처럼 타오르는 것 같았다. 가여웠다, 장동우는. 스물 한 살의 이호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처음 동우를 보았던 순간부터 호원은 강렬한 끌림을 느꼈다. 애정이라기엔 동정에 가깝고, 동정이라기엔 넘치는 마음이었다. 사랑보다 더 강한 소속감을 호원은 느꼈다.
동우는 호원으로 인해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멍이 하나 둘 보이지 않는 곳에 늘어갈 때 호원은 늘 자신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그 멍들을 호원은 보살폈다. 이미 새파랗게 죽어버린 마음의 멍까지도. 장동우는 잠들어 있던 감각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오롯이 이호원을 향해서. 동우는 호원이 자신을 달래주던 하늘과 같다고 생각했다. 반짝반짝 빛나고 아름다운. 나의 하늘, 이호원. 동우는 잠이 오지 않는 밤을 호원의 생각으로 지샜다.
-
호원은 여느 때와 같이 동우가 있을 그 자리로 갔다. 자리에는 온기만 남아있었고, 동우는 없었다. 호원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된 비명에 눈을 돌렸다. 초록색의 낡은 대문 사이로 보이는 건 머리채를 잡힌 동우였다. 그 누가 보더라도 일방적인 폭력에 호원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놈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어이, 장씨. 그러게 갚으랄 때 갚았으면 마음 아플 일 없을 거 아니야?”
“동우는 안 돼, 이 개새끼들아! 우리 동우는 안 돼, 안 된다고…….”
“그렇게 간절하면 애초에 이럴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지.”
호원의 태양은 비참하게 일그러졌어도 빛이 났다. 참을 수 없는 치욕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호원의 태양은 고개를 수그렸다. 한 떨기 꽃이 지듯 그렇게. 호원은 그간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마냥 웃기만 해야 하는 나의 사람이 타인에 의해서 울고 있었다. 호원은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무작정 달려들어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잘하는 싸움도 아니었다. 허공에 내질러지는 주먹에 놈들은 비웃으며 호원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저 방해만 못하게 하려던 속셈이었는지 그다지 세지 않은 강도에 호원은 버티기 시작했다. 구석에서 여전히 머리채를 잡힌 채 자신에게 오려고 발버둥 치며 울고 있는 동우가 보였다. 몇 분이 흘렀을까. 그들은 제 풀에 지쳐 하나 둘 씩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호원은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릴대로 질린 놈들은 마지막 경고라며 소리치고 여전히 울고 있는 동우를 내던지며 자리를 떴다. 호원은 놈들이 나가자 그대로 고꾸라졌다. 동우는 달려가 호원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동우의 아버지는 그나마 멀쩡한 몸으로 호원을 들어 힘겹게 방안으로 옮겼다.
-
동우는 성치도 않은 몸으로 며칠을 간호했다. 호원은 밤마다 열에 들떠 앓았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을 고쳐보려 항상 대문을 미친 듯이 서성였다. 흉하도록 부은 얼굴에 마음이 아파서 동우는 호원의 손을 꼭 붙잡고 눈이 짓무르도록 울었다. 그렇게 사 일이 지나고 호원은 눈을 떴다. 멍들고 부어 제대로 떠지지 않는 눈이지만 동우는 호원이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찾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동우는 호원의 손을 잡아 자신의 품에 품었다.
“동우야, 아프다.”
동우는 다시 비집고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동우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찬 수건으로 얼굴과 멍든 곳을 닦아주었다. 호원은 자신을 닦아주던 동우의 손을 꼭 쥐고 뻐근한 몸을 반쯤 일으켰다. 동우는 가만히 호원의 앞에 있었다. 호원의 입이 벌어졌다.
“우리 같이 살래요?”
“내가 무슨 일을 해서라도 지켜줄게. 같이 살아요.”
눈물을 뚝뚝 흘리는 동우를 호원은 가만히 바라보았다. 재촉하듯 몇 번이고 되물어 보는 호원에 동우는 마른입을 떼어 어렵게 대답했다.
사랑해, 호원아.
호원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우를 품에 안았다.
더보기 |
갱장히 오랜만에 찾아온 롭임다 음... 2탄이 나올지도 안 나올지도 모르는 신작ㅋㅋㅋㅋㅋㅋ 엄청 열심히 쓰긴 했는데 도저히 진도가 안나가서 급 마무리하고 올려요ㅠㅠㅠㅠㅠㅠ 필 받아서 2탄 쓰면 바로 올림요!! 알랏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