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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이틀 후,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회장의 일과 관련된 사람일 것 같아 조금 뜸을 들였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차분하고 조용하게 목소리를 냈다. 감히 사창가의 남창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도록.





ㅡ변백현 씨?
"네,맞는데요."
ㅡ회장님과 면접을 보셨다고 하셔서 연락드렸습니다.
"아,네."
ㅡH 기업 이사,박찬열입니다.
"…네."





그것은 열등감이었을까,긴장감이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그 모든 것이 섞인 기대감이었을지도 모른다. 몸이 약간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반가웠지만 동시에 역겨웠다. 이중적인 마음을 숨기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대답했다.




낮은 목소리가 간단하게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회장님의 따님을 찾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이고,절대로 누설되어서는 안 되며 월급은 매달 1일,통장으로 보내주겠다고. 금액도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겨우 백,이백을 생각했던 게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로. 내가 사람을 찾는 일을 한 적이 없는 데다가 회사의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완전히 혼자 일을 시키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 말에서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럼,혹시.





ㅡ백현씨는 저와 함께 일을 하게 될 겁니다.





나는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작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잘 부탁드려요. 웃음기를 없애고 대답했다. 미팅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잘 해보자. 찬열아.



우리의 공식적인 첫 미팅은 내일이였다.












박찬열이 나를 기억할까. 흰 셔츠를 입으며 생각했다. 기억하던 하지 못하던 상관 없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막상 그를 보게 되니 조금 긴장이 됐다. 뭐라고 말을 해야 내가 널 쉽게 잡아먹을 수 있을까. 네가 날,좋아하게 만들 수 있을까.





호텔에서 박찬열을 만났던 날처럼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었다. 검은색의 코트를 입고 머리를 매만졌다. 하필이면 이런 날,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 하지만 손을 대기 시작하면 더 마음에 안 들어질 게 뻔해 입맛만 다시며 손을 뗐다. 방을 한 번 둘러보며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8시 30분. 마담에게 외출 허락을 받고 걸어가면 딱 맞겠다. 방문을 열고 발을 뗐다. 박찬열에게로 가는 첫 번째 걸음이었다.




계단을 내려가 1층의 구석에 있는 방 앞에 섰다. 두어 번 노크를 하자 문이 열렸다. 자다 일어난 것이 뻔한 마담이 나왔다. 피곤함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이 나를 쳐다본다.





"마담. 죄송해요,잠 깨워서."
"괜찮아. 무슨 일이야?"
"오늘도 나가봐야겠어요."
"또?"
"죄송해요,요즘에 일이 생겨서…."
"…도망은 안 돼."
"당연히 알죠. 죄송해요."
"가봐."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뒤돌아 나왔다. 등 뒤에서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로 경고한 그녀가 불안한 얼굴로 나를 끈질기게 쳐다보고 있는 것일테다. 손수 문을 닫아주고 싶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가게 문을 나섰다. 순이가 도망간 일이 아직까지도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걱정마요,마담. 나는 위험하게 도망가는게 아니라 당당하게 내 발로 걸어나갈테니까.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일하러 가는 거에요. 가게의 최대 돈벌이인 내가 도망가 버릴까봐 불안해 할 마담의 얼굴이 상상이 되어 조금 자만감이 들었다. 비록 사창가였지만.




시계를 흘끗 봤다. 36분,조금은 서둘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 프런트에서 박찬열을 찾았다. 여직원이 일러준 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수많은 버튼 중 20이 새겨진 네모난 것을 꾹 눌렀다. 붉은 빛이 켜지며 커다란 쇳덩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홍등가의 밤과 같아 조금 웃었다. 이렇게 비싸고 고급스러운 호텔도 사실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장도,엘리베이터도. 붉은 등이 켜지면 수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게를 지키는 사람이든,가게를 찾는 사람이든. 홍등가라는 커다란 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엘리베이터에는 도착지가 있지만 홍등가에는 없다. 그저 뱀과 먹잇감,그것들을 우리에 가두고 지배하는 인간들만 있을 뿐.




18,
19,
20.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천천히 문이 열렸다. 발걸음을 옮겼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벽과 그것에 걸린 미술품. 역시나 이곳도 고급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것을 보며 혀를 찼다. 거 되게 비싼 척 하네. 그러면서도 은근히 돈이 되어 보이는 것들을 구경하다 여직원이 말해준 대로 왼쪽 복도의 가장 안쪽에 있는 사무실로 걸어갔다. 내 걸음에 따라 구둣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댄다. 문 앞에 서서 손을 들어올렸다. 가볍게 주먹을 말아쥐고 작게 노크했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다시 한 번 더 크게 노크했다. 그제야 방 너머에서 낮은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크흠. 작게 목을 가다듬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정면에 있는 흰 책상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앉아있는 박찬열. 그 순간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긴장 속의 희열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변백현입니다."





내 인사에 박찬열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한 발,한 발 걸어올 때마다 내 안의 희열은 커져갔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박찬열입니다. 깊은 목소리로 말하곤 손을 내민다. 잠시 뜸을 들이며 내려다본 손은 얇고 길면서도 남자다웠다. 박찬열은 쓸데없이 손도 잘생겼다. 나는 그제야 손을 내밀어 맞잡았다. 짧게 닿은 손바닥에서 작게 정전기가 났다. 그럼에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손을 뗐다. 박찬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옆의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말했다. 대답없이 그의 손이 향한 곳에 앉았다. 책상에서 무언가를 가져온 박찬열이 건너편에 앉았다.




탁,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놓인 것은 두꺼운 서류 봉투였다. 빤히 쳐다보고만 있는 내게 눈길도 던지지 않는 박찬열이 제 두 손가락을 세워 백색 봉투를 톡톡 쳤다.





"이거."
"……."
"다 보셔야 합니다."





저걸 다? 미간을 슬쩍 찌푸린 나를 힐끗 본 그가 따라서 표정을 구겼다. 변백현씨.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서류에서 눈을 떼고 그를 쳐다보자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쉽게 돈 벌 수 있을 줄 알고 온 모양인데."
"……."
"그럴거면 지금이라도 나가십시오."





아무래도 박찬열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걱정마,찬열아. 나도 네가 좋아서 이러는 거 아니니까. 나는 박찬열의 눈을 똑바로 보며 대답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기분 나빠보이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얘가 왜 이러나. 원래 성격이 안 좋은 건지,아니면 진짜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지. 전자라면 어쩔 수 없는 개새끼지만 후자라면,왜? 혹시 이미 알고 있는 건가.





"그럼 먼저 설명부터 해드리겠습니다."
"…네."





찬열이 봉투를 뜯어 서류를 꺼내들었다. 익숙하게 테이블에 서류를 탁탁 치며 가지런히 정리하는 동안 그의 표정을 살폈다. 아마 알고서 이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전 저를 대하던 태도가 급변한 것도 제가 남창이라는 걸 알고 나서였으니. 박찬열은 서류를 윗장부터 훑으며 내 쪽으로 내밀었다.





"계약서입니다."
"……."
"변백현씨는 이 계약에 관한 사실을 유출하실 수 없습니다. 그것만 지켜주시면 됩니다."
"네."





나는 계약서의 글자들을 대충 읽어본 후 박찬열이 준 인주를 엄지 손가락에 묻혀 종이 위에 꾹 눌러 찍었다. 빨갛게 물이 든 손을 떼자 휴지를 내민다. 고맙다고 말하며 슬쩍 웃었지만 반응 없이 계약서를 받아 가져간다. 나도 개의치 않고 서류로 눈을 돌렸다.





"회장님은 사모님과 슬하에 한 분의 아들을 두셨고,저희가 찾고 있는 분은 내연 관계에 계신 분의 따님이십니다."





…성매매를 하셨던. 작게 덧붙이는 박찬열이 나를 흘끗 쳐다본다. 나는 피하지 않고 두 눈을 쳐다보았다. 설마,너도 내가 두려워? 그럼 조금 시시해질 것 같다. 그는 다시 말을 잇는다.





"2년 전에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리셨습니다."
"……."
"저희는 아마 어머님이 성매매를 하셨다는 걸 알고 그 충격으로 집을 나가셨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따님이 사라지신 날 두 분이 크게 싸우셨다고 하셨습니다. 사실은 일방적으로 따님이 화를 내셨답니다. 사창가에서 일하고 실수로 자신이 생긴 거 아니냐면서."
"……."





실수로. 우리 엄마도 그랬을까. 엄마도,실수로 아이를 가지고 낳게 된 건 아니었을까. 그래서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를 죽일 듯 욕했을까. 갑자기 수도꼭지를 돌리듯 차오르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고 찬열의 말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자꾸만 머릿속에선 예전 일이 떠올랐다.





"더럽다고 욕을 하셨다고 합니다."





온종일 술만 달고 살던 아버지. 어린 아이에게 입에 담기도 힘든 폭언을 하며 술병을 던지던 아버지. 벽에 맞고 깨진 유리 조각을 밟고 응급실에 갔던 기억. 엄마가 어디선가 벌어온 돈을 뺏어 집을 나서던 아버지. 그리곤 며칠,혹은 몇 주만에 돌아와 또 다시 술을 마시던.



그 때에 밟았던 유리는 꽤 깊게 피부를 파고들어 아직까지도 흉터가 남아있었다. 징그럽다. 살이 찢어진 모양대로 오돌토돌하게 남은 자국이 아버지의 웃는 입 같아 역겨웠다. 떠올리고 싶지 않던 기억에 잠시 멍하게 있던 나는 입술을 깨물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려 애를 썼다.





"…그리고 이건 아가씨의 사진입니다. 얼굴은 무조건 외워두셔야 합니다."





어느새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버린 찬열의 설명을 들으며 몇 장의 사진을 훑었다. 예쁜 얼굴이 청순하게 생겼다. 솔직히 말하면 사창가에 있을 확률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우발적인 가출이라면 계획적인 것과 다르게 제정신이 아니었을 테고,그 상태로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나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마 몸만 뛰쳐나가서 아무것도 없었을 테다. 휴대폰이나 챙겨서 나갔다면 다행이었을 상황이었다.





지난 2년간 전국의 모든 곳을 살펴봤습니다. 처음엔 각 지역을 싹 찾았는데 아가씨가 있을 만한 곳은 찾지 못했고,다시 한 번 구석구석 찾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단서 하나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찬열은 프레젠테이션을 브리핑하듯 막힘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최근 회장님의 병세가 악화되어 시간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창가를 포함한 성매매 업소까지 찾을 계획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척 했다. 일단 변백현씨는 한 달의 기간동안 계약이 유효하고,그 다음부터는 추후에 결정하시게 될 겁니다. 그 말에 알았다고 대답하자 찬열이 한참을 움직이던 입을 다물었다.





다시 박찬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를 대하는 태도로 봐선 나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겁쟁이는 아니다. 그럼 답은 하나였다. 내가 정말로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 씁쓸해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집안만 잘 골라 태어났어도 우리가 이렇게 만날 일은 없었을 거다. 나는 지금쯤 대학에 다니며 연애든,공부든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했을 것이고,너는 나처럼 불행한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찬열아. 네 운만 아니었으면 너와 내가 별 다를 게 없다는 말이야. 그 좆같은 운만 아니었으면.




박찬열이 나머지 서류는 알아서 읽어보라며 다시 봉투에 집어넣는 것을 보며 물었다.





"저는 어떤 일을 해야 하죠?"
"저와 같이 돌아다니시게 될 겁니다. 변백현씨가."
"네?"
"…사창가 출신이라고 하시던데요."
"……."
"그럼 사창가를 잘 아시겠죠. 마침 사창가를 뒤져야 하고. 그 부분에서 변백현씨가 필요한 겁니다."





역시나,사창가라는 것이 싫은 모양이었다.



미묘하게 찌푸려진 표정을 보며 입을 열었다. 찬열씨는,제가 사창가 출신이라 싫습니까? 내 말에 박찬열이 나를 쳐다본다. 마주한 두 눈이 사납다. 처음 가게 앞에서 봤던 날처럼.





"…아닙니다."





박찬열은 재빨리 표정을 숨기고 대답했다. 재밌네. 언제까지 숨길 수 있나 보자. 나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에요,그럼.





"사실 사창가라고 하면 다들 안 좋게만 보니까…."
"……."
"찬열씨는 그런 분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네요."





약간의 감동을 받고 고마워하는 척 웃는 얼굴로 말하자 다시 서류를 정리하던 박찬열이 멈칫거렸다. 이것만으로도 성공이었다. 예의바른 척하던 그의 마음이 틀어졌음을 확인시켜준 것이었으니까. 이만하면 됐다.





"그럼 오늘은 이만하고 갈까요?"
"……."
"찬열씨."





내 부름에 그제야 눈을 든다. 여전히 사납고 무표정한 얼굴. 그 속에 무엇이 숨어있든 상관없다. 어떻게든 넌 나에게 무릎을 꿇게 될테니. 박찬열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깜빡이는 행동도 없이 기계처럼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 9시까지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네. 아,서류는 다 읽어 올게요."
"……."
"안녕히 계세요."





조금은 밝게 인사하며 미련없이 그곳을 나섰다. 그새 입을 굳게 다물고 묵묵히 앉아있는 박찬열을 힐끗 쳐다보고 고개를 돌렸다. 내일 봐. 등 뒤로 닫히는 문에 대고 인사했다. 싱글싱글 웃어주면서. 가볍게 흔든 손을 내리고 복도를 걸었다. 자,이제 어떻게 구워 삶아야 할까. 응? 찬열아. 내가 널 어떻게 해줘. 어떤 방법이 가장 재미있을까…. 저절로 당겨오는 구미에 입맛을 다시며 씩 웃었다.





프롤로그를 지나 우리의 연극의 첫 장을 무사히 넘겼다. 내 컨셉은 정해져 있었다. 충분히 매혹적이고 밝지만 위험하고,남창이지만 싸구려는 아닌. 나는 이 인물에 완벽하게 몰입하고 있었다.나쁘지 않은 첫 발자국이었다.




잘해보자,찬열아.




나는 진심을 다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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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었죠? 3월은 역시나 바쁘네요....ㅠㅠ

다들 잘 생활하고 계시죠?

힘내시고 건강 챙기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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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와아아 밀투 새편이다!! 꿀잼!!! 찬열이가 변화하는 모습이 어떨지 상상이 안가요ㅋㅋ 백현이가 자알 구워삶겠죠?ㅇㅅㅇㅋㅋㅋ
10년 전
독자2
계속기다렸어요ㅠㅠㅠㅠ항상좋은작품올려주셔서감사합니다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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