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는 끝나지 않았지 08
오후 6시. 흥수는 퇴근 준비로 바빴다. 모처럼 야자 감독이 없는 날이라 우리 누군가의 주니어 같은 반 학생의 교내봉사를 봐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건만 아니나 다를까 정규수업이 끝나기도 전에 도망가 버린 최한에 흥수는 앞당겨진 퇴근을 기뻐해야할지 화를 내야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막 교문을 나서던 흥수는 주머니 속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끄집어내고는 ‘고남순’이라고 뜬 액정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다.
“어 왜. 오늘 촬영 늦게까지 있는 거 아니었냐?”
“오늘 대본리딩만 했어. 근데 너 퇴근 했냐?”
“지금 하는 중인데. 왜?”
“나 촬영장 갔다가 김민기 만났거든. 덕분에 김민기가 애들 다 모아서 이참에 동창회 앞당겨서 해버리겠단다. 나 거기 끌려왔어”
“그래서?”
“너도 오라고”
“싫어”
흥수는 단칼에 거절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지난 8년간 유독 끈끈했던 2학년 2반은 주기적으로 동창회를 열었고 또 흥수에게도 주기적인 왔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동창회에 나간 적이 없었다. 불편했다. 사람들의 기억 속의 흥수는 어쨌거나 ‘나이 많은 유급생’일 수밖에 없었고 흥수는 그것이 싫었다. 남순이 그렇듯이.
“흥수야. 이렇게까지 된 거 그냥 좀 와라. 나 너 없으면 외로워 이 새끼야”
남순의 칭얼거림에 흥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딘데 그래서”
“오정호네가 하는 치킨 집”
“금방 간다.”
흥수는 전화를 끊고 애꿎은 돌멩이를 발로 차버렸다. 그리고서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 시각, 남순은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강주는 익숙하게 인사를 나누는 이경와 남순을 보고 소리쳤다.
“고남순 뭐야? 우리랑은 연락 한번 없더니 오정호, 이지훈, 이이경 이 셋하고는 계속 연락하고 지낸 거야? 진짜 섭섭하게!”
“어 음.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이 나쁜 놈아! 동창회는 왜 안 나오는데!”
“그냥 뭐랄까. 음 그랬지”
남순은 강주의 눈을 피하며 빈자리에 앉았다. 가운데에서 분위기를 이끌어가며 떠들던 기덕이 남순이 앉는 것을 보며 말했다.
“우리 톱스타 고남순이! 너 그거 루머 진짜야? 이야 역시 쓰나미는 달라?”
이걸 한 대 쳐 말아. 남순이 고민하는 사이 강주가 한발 앞서 기덕의 등짝을 때렸다.
“마! 왜 때리나!”
“조용히 좀 해라?”
달라진 것 하나 없는 그 모습을 보며 남순이 웃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앞자리에서 조용히 앉아있던 하경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멈칫한 남순에게 하경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다, 고남순?”
“어, 잘 지냈냐?”
“나야 뭐…….”
하경이 말끝을 흐렸다. 아, 얘는 더 예뻐졌네. 남순은 그런 하경을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고 흥수가 들어왔다. 순간 가게 분위기가 묘해졌다. 남순과 함께 온 복도를 질주하며 장난치던 흥수도, 안경까지 쓰는 투혼을 발휘하며 공부하던 흥수도 그들 기억 속에 있었지만 여전히 흥수는 그들과 친하지 않은 조금 어색한 존재였다.
“어 왔냐?”
남순이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끄덕인 흥수가 빈자리를 찾아 앉기도 전에 갑자기 남순이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박흥수! 너 내 옷 입었지!”
“아 뭐”
하고 흥수는 자신의 옷차림을 훑어보더니 아, 하며 말했다.
“이 셔츠? 응. 네 건데”
“아씨 내 옷 입지 말라고!”
“옷도 많은 새끼가 쪼잔 하게. 너 지금 입은 외투 내 건건 아냐?”
“아 너 거였어?”
아 나 저 새끼가. 흥수가 중얼거리며 남순 옆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뭐 같은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들 오래간만이다.”
그 묵직한 인사를 기점으로 다시 가게 안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뭐냐? 둘이 같이 살아? 왜 서로 옷을 바꿔 입고 있어?”
강주의 활기찬 질문에 남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집에 얘가 얹혀살지”
흠, 하고 흥수는 말없이 앞에 놓인 과자를 집어먹었다. 그리고 뭐라고 더 말하려는 남순의 입에 손수 과자 한 주먹을 넣어주었다. 덕분에 남순이 켁켁거리며 웅얼거리자 기덕이 웃음을 터트리며 한쪽에서 일하던 알바생에게 외쳤다.
“여기 잔 두 잔만 더 주세요!”
네, 하고 대답한 알바생이 설렁거리는 발걸음으로 한참 시끄러운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발견하고 멈칫하더니 급하게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발견한 흥수가 오호?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이 거기 알바. 그대로 뒤돌고 직진”
알바생을 반응이 없었다.
“빨리 다시 뒤돌고 여기로 직진하라고”
알바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주방에서 치킨을 가지고 나오던 지훈이 그 관경을 발견하고 흥수 앞에 치킨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 왜 뜬금없이 일하는 애한테 시비에요? 이거나 먹죠? 학교 다닐 때도 안하는 짓을 다 커서 진짜”
“넌 내가 지금 장난치는 걸로 보이냐? 거기 알바. 빨리 와라 일단 잔은 줘야지”
알바생이 죽상을 하며 흥수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앞에 잔 두 개를 쾅, 하고 내려놓았다. 그 터프한 모습에 이경이 옆에서 아 애 원래 안 이런데, 하고 흥수의 눈치를 살폈다. 훙수는 슬쩍 도망가려고 하는 알바생을 붙잡으며 말했다.
“우리 하루에 한번만 튀자 최한?”
최한은 짜증을 부리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의외의 전개에 지훈이 옆에서 형, 애 알아요? 아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 흥수를 대꾸 없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최한을 바라보았다. 최한은 신경질을 내며 말했다.
“아 쌤이 여긴 왜 왔는데요.”
“너 보러 온건 아니었는데 네가 있네. 나 네 사장님들하고 고등학교 동창이거든. 그나저나 오정호 애 언제 뽑았냐? 저번에 왔을 때만 해도 없더니”
“얼마 안됐는데”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정호가 대꾸했다. 최한은 흥수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아 무슨 동창이에요? 쌤이 한 살 더 많잖아요!”
“아까 나 유급했다고 했잖아. 넌 내 말 다 귓등으로 들었냐? 내가 오늘 야자시간에 너 교내봉사 한다고 말 했냐 안했냐?”
“아씨. 남는다고는 안했거든요?”
“나도 너한테 선택권이 있다고는 안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모두가 얼이 빠져 있었다.
“아 선생님이 제가 교내봉사를 못해서 유급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요.”
“내가 네 담임이거든?”
“아 어쩌라고요”
아 이놈 싸가지 봐라. 흥수가 주위를 쓱 둘러보더니 말을 이었다.
“너 그래도 다행이다? 오늘은 선생님 안 오셔서. 지금 모인 이 동창회 담임선생님이 강세찬 선생님이랑 정인재 선생님이거든. 너 큰일 날 뻔했다?”
흥수는 무언가 불안한 듯 바닥을 툭툭 차는 최한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됐고 일단 여기 앉아라.”
“뭐라고요?”
“여기 앉으라고”
흥수는 자신의 옆자리를 팡팡 쳤다. 최한이 머뭇거리며 앉았다. 흥수는 그런 최한을 보고 웃고는 닭다리 하나를 건넸다.
“이거 먹고 있어라. 또 튀지 말고”
순간 당황에 어버버 거리는 최한을 남겨두고 흥수는 벽에 기대 서 있는 정호의 뒷덜미를 낚아채고 질질 밖으로 끌고 나갔다.
“뭔데! 아 놔요 형!”
“얘기 좀 하자고”
그리고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 모두의 시선이 멍하니 닭다리만 바라보고 있는 최한에게로 모여졌다.
“네가 최한이구나”
남순이 턱을 괴며 말했다. 최한은 존재만으로도 신기한 유명 연예인이 자신에게 아는 척을 해 오자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흥수가 자기네 반에 하는 짓이 오정호 닮은 애가 있는데 이름이 최한이랬거든.”
“사장님이요? 제가요?”
“너네 사장님 학교 다닐 때 닮았다고”
그 말에 이경과 지훈이 어, 닮았긴 했지. 난 오정호의 숨겨둔 동생인줄 알았다 하며 말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이경이 최한을 보며 물었다.
“근데 저 흥수형이 애들 잘 가르쳐? 난 저 형 사범대 간다고 했을 때부터 쇼크였는데”
“아 뭐…….”
최한은 말꼬리를 흐렸다. 사실, 수업을 안 나가서 잘 몰랐다. 남순은 최한을 빤히 보다가 말했다.
“근데 넌 다른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공손한데 학교 선생님한테만 그렇게 삐딱한 거냐? 학교가 싫나봐?”
“…….”
최한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잠시 가게 안에 아무런 소음도 없었다. 그러다 별안간 지훈이 모두에게 물었다.
“근데 저 두 사람 나가서 뭐하는 거야? 정호 형한테 맞고 있는 거 아냐?”
“설마! 너 언제 행님이 누구 함부로 때리는 거 봤나!”
“못 봤지만 서도…….”
흐음, 테이블에는 묘한 신음소리만 가득했다.
“에이 아닐 거야”
그렇게 말하는 남순이 얼굴에도 어딘가 어색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아 좀 놔요! 왜 끌고 나오는데요!”
가게 밖으로 나간 정호는 흥수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대며 외쳤다. 흥수는 순순히 정호를 놔 주었다.
“야”
“왜요?”
“너 쟤 고등학생인거 알고 뽑은 거냐?”
정호가 흥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네”
“고등학생 야자 할 시간이라는 거 알면서 왜 그랬냐?”
“형 어차피 쟤 여기서 일 안해도 학교론 안돌아가요”
“오정호”
흥수가 정호를 쳐다보았다.
“차라리 딴 데 가서 사고치고 험한 꼴 당하는 것 보다 내가 데리고 있는 게 낫잖아요.”
그 말을 들은 흥수가 정호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만다.
“그래서 데리고 있는 거예요. 원래 고등학생 안 써요. 술도 파는데 애들 있어서 좋을 거 없잖아요.”
“어이구 오정호. 철들었네.”
“철든 지가 언젠데”
정호가 투덜거렸다. 흥수가 그런 정호의 어깨를 툭툭쳤다.
“그래도 앞으로 쟤 보면 학교로 좀 돌아가라고 해라. 최한, 선생 말을 안 들어도 너희 말을 듣는 것 같던데.”
“알았어요.”
“들어가자 그럼”
흥수는 정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안으로 들어간 흥수는 닭다리를 다 먹고 이제 날개를 먹고 있는 최한에게 말했다.
“넌 이제 그거 다 먹고 가라. 내일 지각하지 말고. 내일은 1교시부터 교내봉사 할 테니까 어디가지 말고 좀”
최한은 대답 없이 먹던 닭은 던져놓고 옷을 챙겨 나가버렸다. 흥수는 한숨을 쉬며 남순 옆에 앉았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을 위해 외투를 입던 흥수는 주머니 속에서 느껴지는 생소한 감촉에 응? 하고 주머니를 뒤졌다. 그리고 딸려 나오는 담뱃갑에 중얼거렸다.
“이게 왜 내 주머니에 있어?”
그러다가 문득 어제 이 옷을 남순이 입고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아 고남순. 담배 끊은 지가 언젠데”
흥수는 속이 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남순의 루머를 퍼트린 그 놈에게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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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몰라욯ㅎㅎㅎㅎㅎㅎㅎ휴ㅠㅠㅠㅠㅠ
그래도 좀 기니까 저퀄이라도 봐줘요 ㅠㅠㅠㅠ
다음편은 학교2013 고3ver로 외전입니다. 이 얘기 지쳐서 쉬야겠어요ㅋㅋㅋ
비랑님, 이경님, 몽쉘님, 바삭님, 꼬꼬마님, 오징어님, 이진기님, 남순고남순님, 흥순홀릭님, 31님, 사탕님, 수열분자님, 미미님, 콘칩님,꺆님, 깡주님,맷님,이남자가제남잡니다님, 보라돌이님, 소금님, 메가톤님, 흥배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없을 것 같지만 암호닉 신청하실분 저는 언제나 열려있으니 항상 감사하게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