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기 직전에는 1
2014년 3월 2일.
“자 이제 고3이니까 이제 내가 말 안 해도 다들 알아서 공부들 열심히 하고”
“네”
“그럼 쉬어라”
학생 수 총 35명, 담임은 강세찬인 3학년 1반의 첫 번째 조회가 이렇게 끝났다. 세찬은 나가면서 새로운 학년, 그것도 고3 첫날 조회부터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고 있는 남순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2년째 담임이라 지금 남순의 아버지의 몸이 좋지 않아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것도, 또 그래서 남순의 알바가 늘었다는 것도 모두 아는 세찬이라 그는 남순이 안쓰러웠다. 이럴 때 박흥수라도 같은 반이면 얼마나 좋아. 세찬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교실을 나갔다.
세찬이 나가고 거의 직후, 누군가 교실 문을 열었다. 학년 첫날이라 그렇지 않아도 조용했던 교실이 더 조용해졌다. 문 앞에 서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박흥수. 기억 속에 박흥수라면 남순에게 급식을 받아들던 흥수나 아니면 오정호 발밑에 급식 판을 내던지던 모습, 혹은 경찰에게 끌려가던 모습이 전부인 아이들은 겁에 질렸다. 흥수는 한숨을 쉬며 가장 문 가까이 앉는 아이에게 말했다.
“야. 고남순 좀 불러봐”
“으응?”
“니네 반에 고남순 불러보라고”
고남순이 누구야? 교실이 웅성거렸다. 교실이 웅성거려도 아무 반응이 없는 남순에 흥수는 직접 교실 안을 둘러보았다. 그런 흥수 눈에 교실 한쪽 창가에서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남순이 들어왔다. 저 새끼는 도대체 어제 알바를 몇 시까지 뛴 거야. 전날 흥수는 꽤 늦은 시간까지 자지 않고 남순을 기다렸지만 결국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잠들었었다. 흥수가 다시 반 아이 한명에게 말했다.
“저기 창가에 자고 있는 놈이 고남순이다. 불러봐”
반 아이가 조심스럽게 남순에게 다가가 그를 깨운다. 저기, 일어나봐, 하고 반 아이가 남순에게 말을 걸지만 남순은 미동도 없었다. 반 아이는 깨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흥수의 눈치를 보며 사색이 되어갔다. 그러자 보다 못한 민기가 공부를 하다 말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흥수가 그를 저지시켰다.
“됐다 김민기. 내가 깨울게”
그러고는 저벅저벅 당돌하게도 학년 첫날부터 남의 교실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갔다.
“야 일어나봐”
“…….”
남순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흥수는 잠시 곤히 자는 친구를 깨우는 데에 묘한 미안스러움을 느꼈지만 곧 남순을 흔들기 시작했다.
“잠깐 일어나 보라고 고남순. 아 좀 일어나라고”
흥수가 그를 꽤 격하게 흔들고 나서야 남순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들다가 흥수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씨 깜짝이야. 니가 왜 여기 있어!”
그러다가 셔츠만 입을 체 교복 마이는 옆구리에 끼고 있는 흥수를 보고는 말했다.
“근데 너 안 춥냐? 옷차림이 왜 그래”
몸 자랑하냐? 아주 벗지 그래? 하고 낄낄거리며 장난을 치는 남순을 보며 흥수는 잠시 때릴까 말까 고민했다.
“그게 아니라 마이 바뀌었거든?”
“응?”
“니 마이랑 내 마이랑 바뀌었다고.”
그 말에 남순이 자신이 입은 마이를 훑다가 ‘박흥수’라고 선명하게 새겨진 명찰을 발견하고는 아, 하고 말했다.
“어쩐지 유별나게 편하다 했다. 야 나 그냥 이거 입으면 안 되냐?”
명찰은 줄게, 하고 남순이 환하게 웃었다.
“아 난 너 거 작아서 못 입는다고. 빨리 내놔”
넌 나 키 클 때 뭐했냐? 흥수가 타박 아닌 타박을 주자 남순이 본인이 너무 크다고 생각한 적은 없냐고 투덜거리면서도 순순히 마이를 벗어주었다. 드디어 자신의 마이를 찾아 입게 된 흥수가 여전히 졸리듯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는 남순을 보고 말했다.
“남순아”
“응?”
“알바 좀……줄이면 안 되냐?”
남순이 흥수를 올려다보다 곧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줄여. 돈은?”
“그니까 알바 나랑 나눠서 하라고”
“됐어 이 새끼야. 너 공부한다며. 미안해서 어떻게 그래”
“우리 사이에 무슨”
“너 처음에 보태준 것만 해도 얼마였는데. 너 가지고 있던 거 나한테 다 줬잖아. 그만하면 됐지 뭘”
“…….”
흥수는 한숨을 쉬며 남순을 볼 뿐이었다. 그때 종이 울렸다. 남순은 흥수를 툭툭 밀치며 말했다.
“야 종쳤다. 빨리 너네 교실로 가라”
“쳐 자라”
남순의 어깨를 툭 친 흥수가 교실을 빠져나갔다. 남순은 그런 흥수를 웃는 얼굴로 바라보다가 아이고, 하는 푸념소리와 함께 안 욱신거리는 곳이 없는 몸을 책상에 뉘었다.
3학년 2반. 자신의 반으로 들어간 흥수는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가 앉았다. 아직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은 교실은 시끄러웠다. 우리 여전한 변기덕 덕분에. 흥수는 칠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가방에서 얼마 전 맞춘 안경을 꺼내 썼다. 그때 교실 뒤쪽에서 장난을 치던 지훈과 이경이 흥수를 발견하고는 그리로 쪼르르 달려왔다.
“형 또 남순이형한테 갔다 왔죠!”
“뭐 둘이 사귀어요? 학교도 같이 오더니 그 사이를 못 참고 또 가요?”
“뭐야, 형 안경 썼어요?”
“안 어울리게 진짜. 형 진짜 공부하게요?”
“가라 좀”
흥수는 양쪽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지훈과 이경에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훈과 이경은 흥수 책상 양 쪽에 걸터앉았다.
“형 오늘 야자 튀고 놀아요.”
“너네끼리 놀아라”
“아 진짜! 정호도 없고 남순이형도 바쁘다고 안 놀아주고 우리 둘이 심심하다고요!”
“난 한가해 보이냐? 니들 친구 많잖아. 아무랑 놀아”
“걔네랑 놀면 좀 그렇게 놀아야 되잖아요!”
“아 진짜 좀 가라고”
흥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경이 다시 입을 열어 무엇이라 말하려는 순간 앞문이 열리고 세찬이 들어왔다. 세찬은 누군가의 책상에 이경과 지훈 둘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이지훈, 이이경. 너네 남의 책상에 앉아서 뭐하냐? 괴롭히는 거냐?”
그 말에 지훈이 몸을 재껴 흥수를 가려졌던 흥수를 보여준다. 그러자 세찬이 아, 하고 긍정의 대답을 보낸다. 그 모습에 흥수가 허, 하고 황당하게 웃자 세찬이 따지듯 말했다.
“너 왜 그렇게 웃어? 반항이냐?”
“아닌데요.”
“어우 야 너 안경 써도 무섭다. 정색하지마라”
그 말에 지훈과 이경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너네는 빨리 자리에 가서 앉아라. 벌점 줄까?”
지훈과 이경은 말없이 잽싸게 자리로 돌아갔다. 세찬은 그들을 보며 웃었다.
“자 수업 시작하자”
*
다음날 세찬은 조회를 위해 반에 들어왔다가 남순의 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 고남순 아직 안 왔냐?”
“네”
세찬의 물음에 민기가 대답했다. 세찬은 흐음, 하고 잠시 생각하다 분위기를 바꿔 말했다.
“뭐 고남순은 언젠가 알아서 올 테고. 학급 임원을 뽑아야 되는데 부회장 할 사람?”
“어 그래 이지수”
세찬은 손을 든 여학생의 명찰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럼 회장?”
“…….”
조용한 교실에 세찬은 어깨를 으쓱했다.
“없어? 그럼 추천은?”
그제야 교실이 떠들썩해지며 김민기니 송하경이니 하는 소리들이 오갔다. 결국 작년처럼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민기가 사색이 되어 말했다.
“선생님, 저 진짜 안하면 안 될까요?”
“그럼 너 말고 누가 하냐”
“하경이도 있고…….”
두 번째로 표를 많이 받은 하경은 위기감을 느끼며 몸을 획 돌려 민기를 노려보았다.
“송하경도 싫은 모양인데? 그냥 너가 하지?”
“아 선생님…….”
민기의 얼굴이 점점 울상이 되어갔다. 결국 민기가 포기하고 알겠노라 대답하려는 차 교실 문이 우당탕하고 열렸다. 세찬은 고개를 돌려 문 앞에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남순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어이구 고남순. 개학한지 이틀 만에 지각이셔?”
“어, 음. 죄송합니다.”
“오늘은 박흥수가 안 깨워주든?”
“박흥수가 항상 저희 집에서 자는 건 아니잖아요.”
지도 집이 따로 있는데. 남순이 중얼거렸다.
“일단 자리에 가서 앉아라.”
남순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자리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고남순. 너 지각한 벌 뭐로 받을래?”
세찬이 자리에 막 앉은 남순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그냥 벌점 주시죠?”
“넌 벌점에 굴할 얘가 아니라서 싫다. 너한테 벌점 아무 소용없잖아”
“그럼 뭐해요?”
남순이 굉장히 지친 표정으로 물었다.
“어 뭐 빽빽이 어떠냐?”
“싫은데요.”
남순이 단칼에 거절했다. 아 싫으냐? 하고 되물은 세찬이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듯 표정이 밝아지며 말했다.
“그러면 네가 회장하는 건 어떠냐?”
“예?”
“지금 회장 뽑는 중이었거든.”
“싫어요.”
“그럼 빽빽이?”
“그건 더 싫은데요.”
“그럼 회장해라.”
“애들이 싫어할걸요.”
남순의 말에 세찬이 반 아이들을 향해 싫어? 라고 묻는다. 그러자 지금이 회장이 되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인 것을 알아차린 민기가 작년에도 남순이 회장이었노라고, 꽤 잘 했었노라고 설득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작년 2반 아이들이 진짜 그랬다고 긍정을 표하며 합세하자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을 표했다.
“봐라 고남순. 안 싫단다. 그럼 우리반회장은 고남순.”
“아 진짜 싫다니까요?”
세찬은 남순의 말을 그대로 씹어 먹었다. 그리고 말했다.
“자 이상. 회장?”
남순은 작년 어느 날처럼 세찬은 자근자근 노려보며 말했다.
“차렷, 경례”
“쉬어라. 그리고 회장, 부회장은 교무실로”
남순은 신경질적으로 교실을 나섰다.
*
“자 여기. 이건 야자 신청서고 이건 급식비 납부 안내서다. 야자 신청서는 내일까지 걷어오고”
“네”
교무실에 도착한 세찬이 남순과 부회장, 이지수에게 프린트물을 건넨다. 이지수가 네, 하고 대답한데에 비해 남순은 공격적으로 세찬을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세찬은 모르는 척 하며 말했다.
“그럼 가 봐라”
이지수가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간다. 세찬은 여전히 남아있는 남순을 보며 물었다.
“뭐 할말 있냐?”
“왜 그러셨어요.”
“뭐가 말이냐?”
“저 회장 왜 시키시냐고요.”
“김민기가 하기 싫어하는 것 같아서. 마침 네가 지각해서 벌도 받아야 했고”
“지금 그 말이 아니잖아요.”
세찬은 대답 없이 남순을 바라보았다.
“선생님 지금 제 상황 빤히 아시잖아요. 학교 나오는 것 자체가 무리하는 거라는 것도 아시잖아요. 저 진짜 밤에 못자서 학교에서는 자는 것만으로도 시간 부족해요. 아시잖아요. 근데 회장까지 하면…….”
“고남순”
세찬이 타이르듯 남순을 불렀다.
“너 이런 자리라도 안 맡으면 일 년 내내 애들하고 말 한마디는 섞겠냐?”
“예?”
“너 작년에도 그랬잖아. 회장이니까 그나마 하경이나 다른 애들하고 몇 마디쯤. 올해는 말 걸어주는 이강주도 없고 사고 수습할 오정호도 없고. 너 그냥 만날 자고 멍하니 앉아있고 말거잖아.”
“그래서 그게 어떤데요.”
“네가 박흥수라는 굉장히 친하고 좋은 친구가 있는 건 나도 안다. 그래도 반 얘들하고 몇 마디쯤은 해야 하지 않겠냐?”
“…….”
“지금 힘든 거 안다. 근데 아버지 좀 있으면 다시 일 시작하실 수 있다며. 그 전까지만 조금만 수고해라, 응?”
“…….”
남순은 대답이 없었다. 세찬은 그런 남순의 등을 두들겨주며 말했다.
“그럼 가 봐라”
남순이 인사를 하고는 교무실을 등을 돌렸다. 세찬은 그런 남순을 바라보다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남순아”
“예?”
“정 힘들면 나한테 말해라. 내가 좀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괜찮아요.”
세찬의 도와준다는 의미가 어떤 것을 말하는지 뻔히 아는 남순이 힘겹게 웃으며 대답했다. 돈까지 빌릴 수는 없지. 남순이 속으로 다짐했다. 그리고 막 다시 교무실 문을 나서려던 남순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말했다.
“선생님”
“응?”
“감사합니다.”
“뭐가?”
“이것저것…… 다요.”
다시 남순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세찬은 멀어져가는 제자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
좀 늦은 감이 있는 이유는 제가 요즘 동영상만드는데 정신이 팔려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물이 꽤 똥이므로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ㅋㅋㅋ
그래도 좀 긴듯 하니 용서해주세요 뿅★
쓰고 보니까 남순이 눈물나네요. 남순이 화이팅
비랑님, 이경님, 몽쉘님, 바삭님, 꼬꼬마님, 오징어님, 이진기님, 남순고남순님, 흥순홀릭님, 31님, 사탕님, 수열분자님, 미미님, 콘칩님,꺆님, 깡주님,맷님,이남자가제남잡니다님, 보라돌이님, 소금님, 메가톤님, 흥배님, 비올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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