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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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쀼뀨 전체글ll조회 532l
여느 날처럼 평범한 날. 다른 점이라면 평소보다는 조금 늦게 일어났던 그 날. 생각없이 택시를 타고 서둘렀다면 그게 흠일까. 아니라면 내리고 녹기를 반복해 꽁꽁 얼어버린 빙판길 탓일까. 예상치 못했던 교통사고는 한 순간 내 시각을 완전히 가져가버렸다.    

    

"도경수 환자분."    

    

나는 지금 대학병원에 있다. 온통 어두움 뿐인 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상이 낯설기만 해 손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보호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냐는 물음에 대답하려 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보호자가 없으니까. 엄마도 아빠도 계시지 않았고 사촌들은 나의 존재 자체를 일체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그야말로 나밖에 없었다. 워낙에 경계심 많고 먼저 다가가지 않는 내 성격은 친구라는 것도 만들지 못하게 나 자신을 보이지 않는 벽으로 둘러싸여 있게 만들었다.     

    

"보호자분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고 물었습니다."    

    

"...없어요."    

    

겨우 입을 열어 말을 뱉으니 딱딱하게 물어오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고, 나에게서 멀어져가는 발소리만 들려왔다. 지금의 나로서는 주위의 소리에 귀를 바짝 곤두세울 수 밖에 없었다. 여러 사람이 오고가는 소리나     

끙끙대는 소리 같은 당연한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난생처음 누워본 병실이라는 곳은 내 생각보다 훨씬 적막에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도경수 환자 분 되시죠..?"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지금 상황에 또 내게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는 아까와는 다르게 약간 누그러진 듯한 말투였다. 나를 어떻게 할 건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될지 무엇을 먼저 물어볼까 하다 그 목소리가 다시 내게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렸다.    

    

"지금 의사선생님 뵈러 가실거에요."    

    

잔뜩 궁금했던 터라 빨리 의사와 얘기하고 싶었던 나에게 이 말은 좋게만 들렸다. 내 팔을 잡고 나를 일으켜주려는 듯 당기는 사람은 곧 나의 손을 꼭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사람 손을 이렇게 잡아본 게 얼마만인지 싶어 자꾸 이리저리 움직이는데 그럴수록 내 손을 마주잡은 간호사란 사람은 내 손을 더욱 꽉 쥐어보였다.     

    

"저는 도경수씨 담당 간호사에요."    

    

"..."    

    

"잘 부탁드립니다."    

    

대충 인사를 하고는 계속 어디론가 향하는 간호사와 나란히 걸어가니 어느 순간 멈춰서 노크를 하는 듯 똑똑 소리가 났고 곧 문이 열렸고, 나의 담당 간호사와 의사로 추정되는 남자의 목소리가 대화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많이 불편하실 텐데. 어떠세요 환자분."    

    

"제가 왜 시력을 잃은 거죠?"    

    

"그건 차차 설명해 드릴게요. 일단.."    

    

"..."    

    

"시력을 완전히 잃으셨어요."    

    

"..."    

    

"각막 기증이 많긴 한데..환자분 같은 분들이 기부하는 분들보다 많아서 현재로서는 조치를 취할 수가 없어요."    

    

말 그대로 그냥 가만히 병신처럼 누워있으라는 거였다. 갑자기 눈이 안 보이는데 어떤 사람이 진정할 수 있겠어. 보이지 않는 눈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그 1초, 1분을 답답하게만 만들었다.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인생은 처음 겪어본 시각 장애라는 문턱 앞에서 꺾여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저는 계속 입원해 있어야 하나요"    

    

"그건 환자분이 결정하실 사항이세요. 보이지 않는 게 많이 불편하지 않으시면 상관없지만 각막 이식을 원하시면 입원하시는 게.."    

    

어째 점점 알수록 희망만 꺼져가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너무나도 잔인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 이렇게 벌을 받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 순간, 나는 무너져 가고 있었다.    

    

사실 모든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쏟아부었던 나였기 때문에 돈 걱정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보험같은 것도 이렇게 저렇게 들어놓았고, 집에 있어봤자 보이지도 않는데 할 수 있는 것도 마땅치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나한테 각막 기증을 해줄 사람이 생길 거라고 나를 위로하며 그렇게 나는 입원를 결정했다.    

    

"..많이 불편하실 것 같아요."    

    

간호사라는 여자 목소리 같았다. 첫날 내 손을 잡고 의사한테 가던 여자. 꽤 가까이에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딱히 그 간호사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부탁할 것이 있을때나 말하면 되지 다른 말을 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우선 나는 지금 대답같은 걸 할 정도로 정신적인 여유가 남아 있지 않았다. 여자는 내 대답을 기다리다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저한테 말 걸지 마세요."    

    

"네?"    

    

"저 그렇게 친절한 사람도 아니고 지금 되게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니까, 되도록 저한테 말걸지 마세요."    

    

여자는 알겠다며 약간 풀 죽은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 듯 발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너무 말을 예의없게 했나 싶어 고민하다 결국은 내 성격이 문제라는 게 또 한번 느껴졌다. 이러니까 병문안 올 친구도 못 사귀는 거 아니냐며 혼자서 내 자신을 나무랐다. 그 때, 내 옆으로 걸어오는 또 다른 발소리가 들렸다.    

    

"경수..야"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곧 그 목소리는 내게 괜찮냐며 물어왔고 나는 그저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 사람에게 닿으려고 했다. 아마 아르바이트하던 가게 주인 누나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는 내가 입원했다는 건 아무도 몰랐을거야.    

    

"..누나?"    

    

"어쩌다 이렇게 됐어.."    

    

처음으로 마음을 털어놓던 사람이었다. 남들에게처럼 딱딱하게 굴던 나한테 끝없이 상냥하게 대해줬던 사람. 어쩌면 그런 그녀에게 마음을 내준 건, 친구 이상의 감정이었을지도 몰랐는데. 어떻게 왔냐며 최대한 얼굴을 펴보이자 들리는 건 한숨소리 뿐이다.     

    

"답답하지..?"    

    

그냥 웃어보였다. 최대한 밝게 웃어보였다. 누나는 내 얼굴을 봤는지 웃지만 말고 말을 하라며 내 어깨를 흔들었다. 그래도 누나, 나쁘지 않아. 잔인하고 치졸한 세상 그거 안보여서 편해. 곧 내 귀에 들리는 건 그녀 목소리가 아닌 목이 매여 우는, 그런 소리였다.    

    

"..바보."    

    

"누나 울지마요."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해 경수야."    

    

"진짜 자꾸 그럴,"    

    

"오늘 찾아온 거 아마 처음이고 마지막일거야."    

    

누나가 가끔 오면 적적하진 않겠다 싶었던 생각은 지울 수 밖에 없었다. 잘 풀리는 일은 하나도 없고 아마 남은 생은 더 비참해지겠구나 생각한 채 누나 목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누나는 어떤 모습일까? 문득 그녀의 얼굴을 떠올려 봤지만 생각이 나질 않았다. 보고싶은데.    

    

"나 앞으로 여기 안 올거야. 아니 한국에 안 올거야."    

    

누나는 가게가 망한데다가 사채업자들이 불을 키고 자기들을 찾고 있다며 차라리 외국으로 이민을 가버릴 생각이라고 했다. 내 눈이 보인다면 도울 수 있었을텐데. 한편으로는 내가 다시 원망의 대상이 되어 내가 나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등신새끼라고, 그것도 등신 중에 등신이라고. 나는 내가 싫다. 꼭 절묘한 순간에, 중요한 순간에 아무 것도 못하는 새끼라서 싫다.     

    

ㅡ    

    

세상과 단절되었다. 한 문장으로 내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다. 마치 나 혼자 사는 것처럼 그렇게 혼자 살아가고 있었다. 자꾸 말을 걸어오는 한 여자만 빼면 완벽하게. 간호사라는 여자는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계속 화장실 가고 싶지 않으세요, 배고프지 않으세요, 그렇게 물어오고는 했다.     

    

"환자분. 화장실 안 가고 싶어요?"    

    

"아니...무슨."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이 간호사라는 여자와 친해지고 싶은 생각도 없었는데 자꾸만 가까이 오려하는 사람을 내 선에서 막고 있는 건데, 이 사람은 그럴수록 더 밝게 나한테 다가왔다. 환자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건 기본적인 건데 나 혼자 너무 복잡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딱딱하네요 진짜."    

    

"그러니까 말을 걸지 말라니까요."    

    

그녀와 나는 오직 환자와 간호사의 관계고, 나를 옆에서 보듬어주는 게 이 사람이 해야 할 일일텐데 자꾸 나에게 말을 걸어올 때마다 내 마음 속으로는 다른 생각만 피어났다.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서 그녀의 목소리가 좋았다.     

    

"환자분!"    

    

"..그만."    

    

"나가실래요? 밖에 눈 진짜 많이 오는데"    

    

이번에는 밖에 눈이 내린다는 게 신이 난 듯 잔뜩 부풀어 오른 목소리는 괜히 내 마음까지 들뜨게 했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어딜 나가냐는 내 투덜거림에 그녀는 다짜고짜 처음 만난 날처럼 내 손을 잡았다. 자꾸 그 사람에게 누나가 겹쳐 느껴졌다. 희망도 없다고 생각했던 삶은 그녀의 목소리로 약간은 생기를 띠는 듯 했다.    

    

"아 맞다."    

    

병실을 나가려던 찰나에 그녀는 무언가를 다시 찾으려는 듯 하더니 곧 손을 내 손에서 목으로 옮겨갔다. 목에 두터운 게 감겨졌고, 이내 그게 목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환자분 감기같은 거 걸리면 안되니까."    

    

"..목도리에요?"    

    

"네. 따뜻하죠?"    

    

헤헤거리며 웃는 목소리가 들리고 그녀는 다시 내 손을 꼭 붙잡고는 밖으로 향했다. 건물 밖에 나온 듯 차가운 바람이 약하게 불었고 나는 목도리를 좀 더 여맸다. 여자는 나에게 앉으라며 한 곳을 툭툭 치고는 내가 앉자 그 옆에 앉아 내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환자분! 눈 느껴져요?"    

    

"네 뭐."    

    

"기분 어때요. 상쾌하지 않아요?"    

    

"..그냥 차갑다고 해야되나."    

    

"그렇구나."    

    

평소보다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는 여자에 의아해하다 문득 내 손을 잡고있는 그녀의 손의 많이 차갑다는 걸 알고는 다른 손으로 그 손을 덮어주었다. 잠깐 흠칫하던 손은 금방 잠잠해져서는 내 온기를 점점 나누어 가는 듯 했다.    

    

"..손 차갑죠"    

    

"왜 이렇게 손이 차요?"    

    

"몇 달 전부터 좀 으슬으슬해요. 심한 건 아니고"    

    

추운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를 세우고 들어가자며 재촉하고는 우리는 다시 건물로 들어왔다. 그녀는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날 병실에 데려다 놓고서는 화장실 좀 다녀온다며 다시 나갔다.    

    

몇 분 있지도 않았는데 왜 저렇게 기침까지 한대. 저래서 누굴 간호해. 그렇게 어느새 투덜거리며 걱정까지 하고 있었다. 혼자 있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싶어 고민도 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감정이 단순한걸까 싶기도 했고 그냥 몇 분 끙끙 혼자 생각하고 낸 결론은 내가 어쩌면 저 사람을 좋아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구나, 라는 거였다.    

    

ㅡ    

    

"근데요 환자분."    

    

"네"    

    

"제 이름 알아요?"    

    

"...그러고 보니까 이름도 모르네요"    

    

여태 간호사간호사거리기만 했지 이름으로 그녀를 부른 적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자기가 이름도 안 알려줬냐며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다시 내 눈이 원망스러웠다. 눈이 보였다면 그 얼굴도, 명찰에 이름도 볼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와서 보이지 않는 눈을 탓해 봤자 바뀌는 것도 없었다.    

    

"여주에요. 김여주."    

    

"여주.."    

    

"그쪽은 경수. 도경수."    

    

".."    

    

여주. 그렇게 그녀의 이름을 계속 되뇌이던 찰나에 내 이름을 불러오는 목소리에 당황해 어버버거렸다. 이름 되게 이쁜 것 같아요 도경수 환자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설렘? 심장 뛰는 게 온 몸에서 느껴지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정말 좋아하는 구나, 그렇게 느껴졌던 건 이때였던 것 같다 아마.    

    

"우리 나이도 똑같은데. 몰랐죠?"    

    

"아.."    

    

"그냥 말 놔요. 여주야. 이렇게 불러요."    

    

"그 쪽도 그럼 그냥 경수야. 이렇게 해요."    

    

동갑이구나 우리 둘이. 여주를 더 알게 될수록 내 감정이 같이 더불어 짙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계속 짙어져버려서 나중에 여주가 사라져버리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했다.    

    

"여주야."    

    

"왜 경수야."    

    

"너는 어떻게 생겼어?"    

    

"..에이."    

    

니가 보고싶다고 말하고 싶었다. 여태까지 수도 없이 내 눈을 원망했지만 요즘만큼 많이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네 얼굴이 궁금해. 눈은 어떻게, 코는 또 어떻게 생겼을까. 어떻게든 너는 사랑스러울 것만 같았다. 자기는 못생겨서 너가 보면 도망갈 거라고 말을 하는데 좋은 생각이 났다.    

    

"이리 와 봐."    

    

"어?"    

    

"빨리. 내 옆으로 와 봐."    

    

허둥지둥 내 옆으로 의자를 끌고는 내 옆에 앉은 너를 그렇게 몇 초 가만히 앉혀놓다가 손을 들었다. 그렇게 손을 위로 해 너의 얼굴을 쓸었다. 머리부터 이마까지. 너는 약간 당황하는 듯 하더니 다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나는 그렇게 손을 밑으로 조금씩 내렸다. 눈썹, 눈, 코, 입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을 옆으로 기울여 너의 볼을 쓸었다. 부드러워. 너의 목소리처럼 역시나 니 얼굴도 부드러웠다. 그래서 더 보고 싶어졌다.    

    

"부드럽다."    

    

"그래..?"    

    

너의 볼이 약간 뜨거워지는 것도 같았다. 부끄러워? 그렇게 묻자 너같으면 안 부끄럽겠다며 헛기침을 하는 너였다. 그냥 그것마저 귀엽게만 느껴졌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을 뭐 때문에 보지 못하게 된 걸까, 다시 자책을 하는 나였다.    

    

"이런 말 해도 될까 싶은데"    

    

"응? 뭐가"    

    

"너 되게 귀엽다 지금."    

    

"...뭐래. 장난치지마."    

    

"볼 뜨거워. 바보야"    

    

".."    

    

더 뜨거워졌다. 너도 지금 나처럼 설레는지 묻고 싶었다. 너라는 존재에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그냥 지금 내 옆에 있는 김여주가 너무 좋아져버렸다. 누구든지 빨리 내게 각막을 기증해줄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가 웃어보이자 너도 웃는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손에 그대로 느껴졌다. 그 날은 잊을 수가 없다. 너에게 내가 다가선 첫 걸음이었으니까.    

    

ㅡ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환자를 상대로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될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난 그랬다. 코끝까지 설렘으로 가득 찬 기분이 계속 맴돌았다. 몇 주 전 새로 온 실명 환자. 처음에는 옛날에 학교에서 얼굴을 잘못 맞아 실명된 남자애가 생각났다. 자존심 세고, 지는 건 못 참는 그런 애였는데. 결국에는 자살했다고 들었다. 너무 답답해서. 혹여나 이 환자도 그렇게 될까 안절부절 못하며 더 신경쓰게 된 것 같았는데, 지금 내가 느끼는 건 안쓰러움보다는 좋아하는 감정에 가까웠다. 조금은 도를 넘어선, 그런 감정.    

    

볼에 느껴지던 손은 곧 다시 내려갔고 너는 여전히 맑은 미소를 띠고 있다. 니가 날 볼 수 있었다면 이렇게 될 일도 없었겠지? 어쩌면 내가 너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을 고마워하고 있는지도 몰라.    

    

"..으"    

    

"왜 그래?"    

    

"별 거 아니야. 좀 체했나봐"    

    

요즘 들어 괜히 몸이 더 피곤하다. 옛날보다 더 뻐근하고 가끔 구역질이 날 때도 있고. 그냥 가볍게 체한 줄 알았는데 의사선생님께 가야 할 정도로 심해졌다. 왜그러지. 혹시 심각한 병에 걸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여주야!"    

    

"네"    

    

친한 간호사 언니가 나를 부르기에 금방 간다고 대답하고는 경수에게 갔다오겠다며 병실을 나섰다. 무엇 때문에 부르는지도 모른 채 그냥 무작정 언니가 있는 곳으로 갔다. 뭔가 불안했다. 저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보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는 건데.    

    

"왜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요?"    

    

"그게..그 전담 있잖아."    

    

"네."    

    

"너 전담 바뀔 것 같아. 그 정신과 병동에 환자가 들어왔는데 거기 간호사 수가 좀 모자라서..너 오라고 하더라. 너 정신과도 공부했었잖아."    

    

"아.."    

    

"그 실명된 남자 분은 우리가 잘 모실게."    

    

"네.."    

    

전담이 바뀌면 이제 경수 얼굴 자주 보진 못하겠구나.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내 볼을 쓸어내리던 손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 우울했다. 매일 보던 너로부터 한 순간 멀어지는 것은, 나로서는 힘든 일이었다.    

    

ㅡ    

    

며칠이 지나고 나는 새로운 환자를 맡게 되었다. 이름은 오세훈. 정신과 환자로, 심한 조울증과 망상장애가 있는 환자.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전 여자친구를 데려오라고 난리를 그렇게 쳤다고 한다. 그게 심해져서 이제는 모든 여자들을 자기 전 여자친구로 본다고.     

    

"안녕하세요"    

    

"..주연아."    

    

"저는 앞으로 오세훈씨 전담하게 된 간호사에요."    

    

"최주연.."    

    

남자는 울먹거리며 나에게 말을 했다. 그리고는 나를 안은 채 얼굴을 내 어깨에 묻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우는 듯 어깨가 축축하게 젖어들어가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갑자기 내 팔목을 다짜고짜 잡고는 니가 날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냐며 큰소리치기 시작했다.    

    

"숨어봐 어디.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찾아낼거니까."    

    

"...저기."    

    

"미친년."    

    

"환자분."    

    

"더러워. 너 같은 거."    

    

이제는 심지어 내 어깨를 꽉 쥔 채 욕을 해왔다. 한참 그렇게 미친년, 씨발련 소리를 해오던 그는 갑자기 정신을 잃고는 침대위로 쓰러졌다. 이 정도면 조울증도 보통 조울증이 아닌데 다른 환자들에게 폐가 되진 않을까했다.     

    

"좀 있으면 깨어날 거에요."    

    

".."    

    

"계속 저랬대요. 몇 달 전 부터."    

    

"생각보다 심각하네요."    

    

"그래서 김여주 간호사 부른 거야. 잘 부탁해요."    

    

"..네."    

    

다른 정신과 간호사와 잠깐 얘기하는 사이 깼는지 다시 벌떡 일어나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남자. 눈에 초점이 없다. 그냥 빈 컵 같이 텅 빈 눈 속은 그저 공허함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눈 뿐만이 아니라 얼굴에도 핏기가 없었다. 창백하게 질려있는 얼굴은 누가봐도 그가 환자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지금은 나를 주연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접촉하지도 않았다. 그저 눈을 뜬 채로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다. 내심 불쌍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저렇게 인생이 깨져버린 사람이.    

    

"..환자분"    

    

"제 여자친구..어딨는지 아세요?"    

    

"죄송하지만 그건 저희가.."    

    

"...."    

    

나에게 자기 여자친구가 어딨나며 물어오는 남자는 내가 한 대답이 자기가 원한 대답이 아니였는지 나를 지긋이 노려봤다. 방금까지만 해도 힘이 없어보이던 남자는 이번에는 일어서서 나에게 한걸음 한걸음 걸어왔다. 잔뜩 겁을 먹은 나는 그가 한 걸음씩 올 때마다 뒤로 물러섰다. 그것도 잠시, 등이 벽에 닿자 그는 내 턱을 쥐고 말했다.    

    

"주연아. 그만 도망쳐."    

    

"..난 주연이가 아니에요. 놔요."    

    

"아니고 싶은 거겠지. 씨발."    

    

"그만해요!"    

    

"..지겨워."    

    

턱을 잡은 손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고 나는 최대한 턱을 비틀어 빼내보려 했다. 하지만 빼내려 할수록 턱은 더 조여왔고 그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턱은 부서질 것 같이 아팠다. 이러다가는 정말 이대로 죽을 것 같았다.    

    

"너같은 건 그냥 죽어야돼."    

    

"이거 놔요 빨리!"    

    

"죽어."    

    

그 말을 하면서 그는 내 목을 졸랐다. 계속 저주 가득한 말을 해대면서. 죽으라고. 너같은 미친년 다시는 꼴도 보기 싫다고. 그렇게 손까지 부들부들 떨면서도 내 목을 놓지 않았다. 그 뒤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냥 잠깐 호흡곤란으로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ㅡ    

    

여주가 보이질 않는다. 새로 온 간호사라는 여자에게 여주가 어디있냐고 묻자 정신과 병동쪽에 있다고 했다. 정신과면 말 그대로 정신병자들 있는 데잖아. 그렇게 위험한 데에 여주를 보내면 어떡해. 날마다 간호사에게 그녀가 잘 지내고 있냐며 물었지만 간호사는 매일같이 시큰둥하게 잘 지내지 않겠냐며 말해왔다. 병원이라는 세계가 너무나 답답하다. 니가 내 옆에 없으니까 숨이 트이지를 않아.     

    

몇일이 지났을까 이제는 아무 생각없이 주는대로 밥을 먹고 나머지 시간은 온통 너를 생각하며 보냈다. 이러다가는 내가 정신병자가 될 것 같았다. 보고싶어 여주야. 혹시나 환자들이 손찌검을 한다거나 그러진 않겠지 항상 노심초사하는 게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그 때, 한 간호사가 들어오며 다른 간호사와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김여주 있잖아요'    

    

'맞아요..그 간호사 실신했었다면서요.'    

    

'오세훈 환자. 그 환자가 목을 졸랐대요.'    

    

'어머..'    

    

'그렇게 쓰러진 걸 또 손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두 간호사가 속닥거리며 내는 소리는 나를 흥분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혹시나 하던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 둘을 불러 여주를 데리고 오라고 해야 한다. 아니면 내가 그녀가 있는 곳까지 가야 한다. 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빛이 되어준 건 그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김여주 데려와요."    

    

"네?"    

    

"김여주 데려오라고."    

    

"환자분 일단 진정.."    

    

"김여주 데려오라고!!! 씨발!!!!!"    

    

무작정 손에 집히는 건 다 던졌다. 손등에 붙어있던 링거도 빼버리고 난리를 쳤다. 그 좆같은 정신병자 새끼는 김여주 왜 때렸는데? 왜 때렸냐고 묻잖아. 왜 씨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리는데 그 미친새끼는!! 한참동안 숨을 몰아쉬며 간호사한테 몰아붙였다. 내 행동에 당황한 듯 간호사는 여주를 데려온다며 급하게 나갔고, 나는 침대에 앉아 최대한 진정하려고 했다. 지가 뭔데 김여주 목을 졸라. 걔가 뭘 잘못했다고. 여주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빨리 나한테 와서 웃어줬으면 좋겠다.    

    

"...경수야."    

    

".."    

    

"도경수."    

    

"여주..야"    

    

정말 네가 왔다. 지금 내 옆에 니가 서 있다. 그 예쁜 목소리로 나와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옛날보다 많이 쳐진 듯한 목소리에 괜히 더 걱정이 되서 괜찮나며 안부를 먼저 물었다. 이리저리 팔을 휘두르다 잡은 너의 가는 손에는 얼마 지나지 않은 듯 링거 바늘 자국이 고스란히 만져졌다.    

    

"괜찮아? 어디 다친거야.."    

    

"소란 피우지마."    

    

"..어?"    

    

"나 없다고 소란 피우지 말라고. 이 병원에 너만 있는 거 아니잖아. 알면서 왜 자꾸 애처럼 큰 일을 만들어?"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었는데. 네가 나에게 한 첫마디는 그렇게 내 심장을 쿡쿡 찔러왔다. 너는 내가 하나도 보고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래. 조금만 잘해줘도 그 사람한테 빠져버려. 그만큼 상처도 쉽게 받고. 그냥 좀 서운해. 나만 니가 좋았구나, 싶어서.    

    

"..미안해 여주야."    

    

"뭐...?"    

    

"앞으로는 소란 안 피울게. 너무 미안해."    

    

마냥 웃으면서 말했다. 너를 좋아한다, 그렇게 말할 자신 같은 것도 없었고 그저 네가 내 앞에 있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여주야 너 다른 사람 전담 간호사라며. 그렇게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 너와 한 마디라도 더 하려고 애를 썼다.    

    

"정신과였나?"    

    

".."    

    

"근데. 적어도 다치면 안되지."    

    

"..도경수."    

    

"다치지마. 제발."    

    

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는데 갑자기 나를 안아오는 손. 갑작스럽게 나를 감싸오는 손에 어떡해 해야할지 몰라 나도 너의 등을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그러자 나를 더 꽉 안으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너에 더 당황하며 너의 등을 토닥이고 너를 달랬다. 그럴수록 더 커지는 네 울음소리에 울지말라며 너의 머리를 더듬어 쓰다듬었다.    

    

"여주야..울지마. 응?"    

    

"너무 무서웠어.."    

    

"...그러니까 내 옆에 있지 왜."    

    

그렇게 몇 분을 안겨서 눈물을 뚝뚝 흘리던 너는 품에서 멀어졌다. 훌쩍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나는 너에게 다시 말을 꺼냈다. 얼굴 가까이 해봐. 너는 아까보다 나에게 더 가까이 앉았고 내 손을 얼마 전처럼 너의 얼굴을 스쳤다. 예전 그대로 이마, 눈썹, 눈 이렇게 하나하나 훑을 때마다 상처같은 게 살짝 만져졌다.     

    

"..왜 이렇게 다쳤어."    

    

".."    

    

"예쁜 얼굴에 상처나면 어떡해."    

    

너는 가만히 내 말을 듣다가 손을 잡고는 살짝 웃어보였다. 많이 안아파. 근데 만질수록 이상한 건 저번에는 나지 않던 식은땀이 이마에 흥건했던 점이었다. 뭐 이상한 일이 있겠어 싶어 너의 얼굴을 마저 쓸어내렸다. 코, 입 이렇게 내려가서는 턱까지. 그렇게 손을 내려 너에게 다른 말을 꺼내려 하자 너는 갑자기 내 손을 꽉 쥐고는 끙끙거리는 소리를 냈다.    

    

"왜그래. 어디 아파?"    

    

"아..아니야."    

    

네 숨이 차오르는 게 나에게 분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너는 계속 끙끙댔고 나는 그런 너에게 왜 그러나며 묻는 일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내 손을 꼭 쥔 니 손이 한 순간에 부르르 떨다가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손 뿐만이 아니라 너의 얼굴이 내 어깨에 힘없이 안겼다. 왜그래. 왜그래 여주야. 일어나. 몇 번이고 너를 불러봐도 너는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그렇게 간호사를 부르자 간호사는 비명을 지르고는 의사를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태풍이 쓸고 지나간 듯 지금 이 병실 안은 고요했지만 내 머릿속은 완전히 혼란스럽기만 했다. 왜 갑자기 니가 쓰러졌는지. 이상한 느낌에 손을 움직이자 뭔가가 묻은 듯 계속 침대로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질척거리다 못해 끈적거리기까지 하던 손은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이게 피는 아닐거야. 그렇게 몇 번이고 되뇌였지만 피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ㅡ    

    

눈을 떴을 때는 병실이었다. 매일 걸어오던 병실. 환자들이 있어야 할 침대에 내가 누워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기만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잠시 저번처럼 느껴지는 두통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끔찍하다, 그저 이 말로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앞이 흐려지고 모든 게 으스러지는 느낌. 숨을 참아봐도 가시지 않는 두통에 잠시 눈을 꾹 감고 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멀쩡하게 돌아온 몸. 이렇게 변덕스럽기만 한 내 몸이 싫다.    

    

"여주 씨."    

    

가까이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돌아보니 의사선생님이 서 계셨는데 썩 좋은 표정을 짓고 있지는 않았다. 몇 달 전부터 머리가 미칠듯이 아파오기도 하고 속도 많이 게워낸 탓에 여러 번 의사선생님을 찾으려 했었지만 말 뿐이었던 탓에 뵙지 못했는데, 직접 오셨다는 건 내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았다. 한숨을 깊게 내쉬던 선생님은 안경을 여러 번 정리한 뒤에야 말을 꺼냈다.    

    

"어떻게 참으셨는지 모르지만"    

    

".."    

    

"정말 심각한 수준이에요."    

    

"네.?"    

    

"뇌종양 말기에요."    

    

뒤에서 세게 한 대를 맞은 것 같았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뇌종양에 걸릴 수가 있는지, 환자를 간호한다는 간호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몸 관리도 못하는데 간호사를 한다고 설쳤는지. 눈물이 났다. 건강하게 낳아줬는데 병에나 걸려버려 부모님께도 죄송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냥 편히 쉬세요."    

    

"선생님.."    

    

"치료해도 살 가능성 정말 없어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의사면 치료해주시는 게 우선.."    

    

"가능성 없어요. 여주씨, 모르는 거 아니잖아요."    

    

여태 의사가 환자에게 이렇게 말할 때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 눈물을 흘리며 애타게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말하던 환자들 심정을 이제서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 이런 상황이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의사선생님이 옆에 앉아 나를 빤히 쳐다보며 서 있었고, 나는 한참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내가 남은 시간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냥 죽고 싶었다. 죽을 때까지 고통에 시달리며 죽는 것 보다는 지금 그냥 죽는 게 나을거야. 그렇게 생각하고는 링거 바늘을 빼려고 한 쪽 손을 잡았을 때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건 다름아닌 경수였다. 어쩌면 죽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 일을 하고 나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선생님."    

    

"..."    

    

"저..혹시 기증같은 거 되나요?"    

    

"뇌 말고 신체 다른 부분은 느끼실테지만 너무도 멀쩡해요."    

    

"그럼 각막도 기증할 수 있을까요?"    

    

"그냥 기증이요? 물론.."    

    

"한 사람에게 특별히 해줄 수은 없을까요"    

    

의사선생님이 하던 말을 멈추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적잖이 당황하신 것 같았지만 해야 할 말은 계속 해야 했다. 말하는 마디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말했다. 우리 병원 도경수 환자. 그 환자분께 할 수는 없을까요.    

    

"소문 진짜였구나"    

    

"네?"    

    

"둘이 서로 좋아한다고 병원에 소문 쫙 난 게 진짜였네요"    

    

"그런 소문이 언제.."    

    

"기증 되요."    

    

"정말요?"    

    

"기증 언제할까요?"    

    

"최대한 빨리 해주세요. 최대한."    

    

너와 나의 소문이 퍼졌다고 했다.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그냥 하루빨리 네가 세상에 눈을 떴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각막을 기증하기로 한 날은 오늘로부터 3일 뒤였다. 3일동안 너의 얼굴을 질리도록 봐놔야겠다고 생각한 채 네가 있는 병실로 뛰어갔다.    

    

ㅡ    

    

"경수야"    

    

너는 내 목소리가 들린 듯 쳐진 어깨를 곧게 핀 채 내 쪽을 향해 밝게 웃어보였다. 너의 얼굴을 보니 괜히 목이 매이는 것 같아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쉰 후에 너를 향해 걸어갔다. 어디 아프냐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찾는 너는 너무나도 멋있기만 했다. 3일 후에 너는 내가 보이고 나는 네가 보이지 않겠지만 너의 눈썹, 눈망울, 콧대, 입술, 입꼬리 너의 모습 하나하나는 마치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만 같았다. 그저 너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고,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되뇌이고는 너의 품에 그대로 안겼다.    

    

"여주 어디 많이 아픈 건 아니지..?"    

    

"누가 그래 아프다고. 이렇게 건강한데"    

    

거짓말치지 말라며 약간 화가 난 말투로 나에게 타이르는 듯 말을 하는 너의 모습조차 웃음이 나올 정도로 멋있기만 했다. 하지만 네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는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 너는 내가 아픈 걸 알아서는 안 되는데,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너 쓰러질 때 내 손에 묻은 거. 피잖아."    

    

"..아니야."    

    

"거짓말치지마. 왜 거짓말하는데"    

    

"아니라니까?! 아니라고!"    

    

약간 흥분한 채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며 앉아있다가 곧 일어나 다시 내 침대로 왔다. 너만은 모르기를 바랬는데 내 바램은 빈 캔처럼 구겨져 들어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병실에서 혼자 하늘이 어두워지고 해가 뜰 때까지 시곗바늘만 보며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마지막으로 세상에 작별을 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은 나에게는 너무 차갑기만 했다. 창밖의 눈처럼.    

    

이틀이 지났다. 너에게 각막을 기증할 날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은 오늘이 마지막이고, 내가 생각했던 마지막 세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실망도 했다. 푸른 하늘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큰 바램도 아니였지만 창 밖은 눈이 녹아 온통 회색빛으로 물들어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지금 볼 용기가 없었다. 네가 눈을 떴을 때 보이는 세상은 푸른 하늘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김여주 간호사."    

    

".."    

    

"도경수 환자 얼굴 보고 와요."    

    

"..네?"    

    

"어차피 내일이면 얼굴도 못 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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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쀼뀨
첫댓!감사해여~
10년 전
독자2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말도안돼 ㅠㅠㅠㅠ일요일밤에 이렇게 울게하기 있기없기 ㅠㅠㅠㅠㅠ잔인해여 엉엉
10년 전
쀼뀨
우셧다니ㅜㅜ첫글봐주셔서감사합니다♥앞으로도많이노력할게요!
10년 전
독자3
어떡해.... 작가님 글 잘 읽었어요 다음편도 잘 써주세요
9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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