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x or wolf ?
1. 여우에게 꼬이면
황인준이 헤어졌다. 하루에 삼백번도 더 자랑한 블루실크 하이린보다 예쁜 여자친구가 황인준보다 키 크고 잘생긴 사람이랑 바람이 나는 바람에. 페북에서 사진 봤는데 잘생기긴 했더라 응 챌린저던데 인준아 너는 거기 대면 약간... 브론즈? 당연히 쨉도 안 되지.
"슬아아... 슬아아..."
"아 그만 좀 해, 고양이 찾는 것도 아니고 존나 무서워죽겠네."
"우리 슬아... 진짜... 파우치 떨궈서 파우더 개박살 기원..."
황인준 멘탈의 상태가...?
"립스틱 돌려 넣는 거 깜빡하고 그냥 뚜껑 닫길 기원..."
미쳤네...
"야, 괜찮냐?"
"난!"
"아 시발 놀래라."
"그래도 괜찮아... 너처럼 연애 못하진 않으니까..."
"인준아 병이랑 네 머리 중에 뭐가 더 먼저 깨지나 해볼래?"
나는 왜 황인준이랑 친구인걸까 고등학교 때 황인준이 예쁜 정상인인 척 하면서 말 걸었을 때 난 나보다 예쁜 사람 싫어한다고 쌩깠어야 됐는데 인준이 어머님은 왜 인준이를 이렇게 낳아놔서 제 삶을 피곤하게 하는지.
와 씨. 아까 배신자 이제노가 집에 간다고 했을 때 급하게 황인준을 얹어서 보내야 됐는데 왜 그 새끼한테 먼저 가라고 했을까 성이름 너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자원봉사자야?
"야 무릎 말고 발로 좀 걸어 봐 집에 가게."
"이거 놔!"
"뭘 놓는데 너의 명줄을...?"
횡단보도 지나가는데 자기 놓으라고 하면 내가 진짜 놓고 싶잖아.
내가 자원봉사자 할테니까 저승사자가 와서 이 개놈자식 데려갔으면 좋겠다. 명부에 없어도 괜찮아요 언젠가 나한테 쳐맞아서 명을 다 할 놈이었으니까.
황인준이 내 몸 반절 정도로 가볍긴 하지만 계속 지랄을 다발로 싸는게 빡치고 난 얘를 집까지 데려갈 힘이 없고 택시는 태워보낼 돈이 없으니까 이젠 포기해도 되는 거 아닐까... 누가 그렇다고 좀 해줘. 내가 지금 황인준을 둘 수 있는 곳은
"아 이 분이 길에 취해서 누워 계시길래... 걱정 돼서요..."
"어이구 학생이 고생 많았네, 연락처만 좀 적어주고 가요."
미안해 인준아 절대 네가 나보고 연애 못한다고 해서 내가 널 버리고 가는게 아니라 널 집까지 데려갈 자신이 없어서 그래. 파출소에서 깨도 순경님들 보고 놀라지 않긔 약속하긔... 우리는 칭구칭긔.
순경님께 전화번호까지 적어드리고 물론 이제노 번호임. 어차피 황인준 일어나면 기억 못 할텐데 저 편하자고 먼저 간(먼저 가라고 했음) 이제노가 갑자기 생각나니까 속이 뒤집어져서. 우정을 져버린 놈에겐 죽음 뿐. 파출소에서 술이 깰 황인준과 후에 황인준에게 갈굼 당할 이제노를 생각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음. 코로 요들송도 부를 수 있을 듯. 캬 내일은 주말이니까 폰 꺼두고 하루 종일 자야지~
아까 인간 덜 된 황인준이 5분 안에 안 나오면 고딩 때 장기자랑 나가서 후레시맨 레드 한 거 인스타에 푼다 그래서 존나 급하게 나가느라 이어폰도 못 들고 나와서 집 가는 길이 너무 심심하다 이거에요. 길에 내 발소리밖에 안 들리니까 간 쫄려서 혼자 랩하면서 걸을까 했다.
"한 번의 키스와 함께 날이 선듯한 강한 이끌림..."
그리고 실행에 옮기는 건 어렵지 않지. 두 번의 키스 뜨겁게 터져버릴 것 같은 내 심장을...
"으악! 악!"
"잠시만요 제발 조용히, 조용히 좀."
나는 그 노래 고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남자가 내 손을 붙잡고 골목에 숨길래 놀라서 쪽팔리게 질러버림. 아니 시발 지금 뭐하세요?
붙잡은 것도 모자라서 내 입에 뭘 쏙 넣어주곤 입까지 막은 남자가 다짜고짜 잠시 가지고 있어달라고 부탁하는데 이게 뭔줄 알고 내가 입에 담고 있어 미친놈아... 구린내가 난다 구린내가... 삘이 딱 인신매매 아니면 납치 같아서 남자 발을 밟고 진짜 있는 힘껏 뛰었다. 제 장기 멀쩡한 거 하나도 없어요! 저 줄담배 피우고 술을 물처럼 마신다구요!
헐 아ㅎ 근데 나 방금 뛰면서 입에 있는 거 삼켰져ㅎ 본능적으로 입에 들어오니까 먹는 건 줄 알구ㅎ
도망가는데 점점 졸린 듯 싶더니 숨도 턱 막하는게 뭐든 다 쳐먹으면 탈이 난다더니... 혹시 파출소에 잠들어 있을 황인준의 저주인가 싶었다. 인준아 네가 안전해지길 바라서 거기다 뒀는데 너는 내 간을 빼가려고 해 어떻게 그래.
그리고 암전.
.
.
.
.
"골 깨진다... 이게 내 머린가..."
나 어제 집에 몇 시에 들어왔지... 아니 집에 어떻게 들어온 거야... 일단 물이라도 마실까 입 안이 존나 사하라 사막이라 숨 쉬면 집 안에 황사바람 불 것 같아.
"물 마시려고요? 여기."
"아 땡큐..."
?
뉘신지...
아무리 생각해도 목소리가 어제 그 남자 같은데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게 아니라면 지금 내 집에서 저 남자한테 장기를 팔리게 된 상황인가? 아니 무슨 방문판매도 아니고 이런 걸 원래 찾아오는 서비스로 집에서 하나요? 출장매매 같은 게 성행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왜 여기 계세요?"
"아, 말하자면 긴데..."
말하자면 길거나 어려운 말은 처음 만난 사이에 안 해줬으면 좋겠다 들을수록 빡칠 것 같으니까. 그 얼굴로 사랑고백 할 거 아니면 무조건 나가주세요. 저 지금 혼자있고 싶단 말이에요.
"내가 구미호, 그 비슷한 건데요."
? 어쨌든 뭘 빼가긴 빼간다는 거네요... 하하하 요즘엔 각자 맡은 장기로 코드네임 같은 걸 끼얹나? 그래서 저 인간은 구미호인가. 본인은 간을 가져가는 부분? 하하하. 유쾌하다 유쾌해. 내가 물컵 든 손을 벌벌 떨었더니 남자가 웃는 얼굴로 내 손에 들린 컵을 내려놨다. 내가 이걸로 내려칠까봐 뺏은게 분명해 나 이제 무기도 없어. 제노야 파출소 순경님한테 전화는 받았니? 살면서 황인준이 욕하는게 그리워질 줄은 몰랐어 인준이한테 잘 해.
"역시 말로 하면 이해하기 힘들죠. 아, 지금 구슬이 없어서 완벽하게 못 보여주는데."
하더니 귀에서 머리색하고 비슷한 귀가 뿅 하고 나오는 것 아니겠어요? 친구들 오늘 이야기도 재미있었나요? 그럼 이제 저 또라이를 내 집에서 내쫓는걸 도와주세요. 성공하면 텐텐 사준다. 크흑.
"...나가요."
"원래 내가 꼬박 900년을 채워야 인간이 되는데,"
"나가라고."
"어제가 딱 900년 되는 날이었거든요."
"와 좋으셨겠네, 그러니까 나가주세요."
"근데 어제 내 구슬을 이름씨가 꿀꺽하시는 바람에 하루를 못 채운 꼴이 됐어요."
"아니 저기, 제가 잘 먹게 생기긴 했어도 구슬을 먹진 않거든요."
"어제 먹었어요. 내 구슬. 내가 입에 담고만 있어 달라고 했는데."
남자가 손가락으로 내 볼을 찌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구연동화 같은 걸로 내가 그러려니 하게 만들어서 구슬을 핑계로 배를 갈라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뜻?
"그러니까 내가 삼킨 것때문에 하루를 못 채워서 인간이 못 됐다고요?"
"응. 그거죠."
"토 하고 올까요? 할 수 있는데."
"그렇겐 못 빼요. 이미 이름씨 심장 한 가운데에 자리 잡았을 걸요."
"아니 근데 제 이름은 어떻게 아세요?"
"아까 학생증에서 이름 봤거든요."
남의 학생증까지 봐놓고 뭐가 그렇게 당당하신거지요? 아까부터 계속 싱글생글 웃는 얼굴에 내가 뭐라고 하든 한 마디도 안 지고 대답 하는게 솔직히 여우 같아서 구미호라고 해도 믿을 수 있긴 한데 주토피아도 아니고 무슨 저 귀가 진짜 귀라고? 그럼 귀가 네 개야? 이어폰 네 개 착용 가능?
"원래 구슬만 있었어도 완벽한 혼연 정도는 보여줄 수 있는데 이름 씨가 내 구슬을 삼켜버려서-"
"됐고, 그럼 그 구슬은 어떻게 빼요? 심부전증 같은 거 오는 건 아니죠?"
"몸에 영향은 없어요."
"그거 참 불행 중 다행..."
"딱 열 달은."
롸...?
"넘기면 죽어요?"
"아마?"
상큼하게 아마 같은 소리 하네 누군 야마 돌게 생겼는데... 자기는 안 죽는다고 지금
"그리고 난 다시 900년을 빌어야 되고. 그러니까 우리 둘이 구슬 꺼낼 방법을 꼭 찾아야 한다 이거죠."
"방법을 찾는 건 뭔데요, 방법을 몰라요?"
"모르죠. 나도 누가 내 구슬 먹은 건 처음인데."
아 그러니까 다들 함부로 아무 거나 먹지 맙시다. 입에 들어왔다고 다 음식이 아니고 재수 없으면 나처럼 열 달 안에 목숨을 부지하는 판타지 스릴러를 찍어야 할지도 모르니까. 아무리 막 살았어도 서른은 넘길거라고 생각했는데 콜레스테롤이 아니라 구슬 때문에 죽다니 억울하다.
"그래서 방법 찾을 때까지 가까이서 살면 좋겠는데, 앞 집에 누구 살아요?"
"...나가요."
"구슬이 갑자기 이상반응 일으키면 어떡해요."
"그 전에 홧병으로 죽을 거 같은데 당신이 화를 일으켜서."
"이게 다 이름씨를 위한 거라니까~"
"나가."
그렇게 말한 남자가 정말 앞집으로 이사온 건 정확하게 7시간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황인준과 이제노
"이제노 넌 어떻게 친구를 파출소에 버리고 가?"
"내가? 그런 적 없는데. 어제 너 이름이가 데리고 갔어. 난 먼저 오고."
"근데 왜 네 번호가 적혀 있는데."
"인준아, 네가 파출소에서 잔 건 안 됐는데 벌써 답 나오지 않았어?"
"...어, 그니까 끊어봐."
/하루에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와 웹툰을 몰아서 봤더니 이런 글이 나왔습니다. 모쪼록 읽어주셨다면 부디 불편한 부분 없이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바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