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정재현은 항상 그랬다. 비를 좋아하고, 햇빛을 사랑하고, 바람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정재현.
셰익스피어
W. 토텝
학교를 주기적으로 가지 않는 나와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모범생 정재현, 작은 슈퍼에서 담배를 사는 나와 작은 문구점에서 펜을 사는 정재현, 부모님의 지원은 커녕 잦은 폭력에 시달리던 나와 부모님의 지원과 총애를 받는 정재현, 정재현과 나는 도저히 가까워질 수 없던 사이였다. 그런 정재현과 지독하게 엮이게 된 건 늦은 여름 밤, 평소와 같이 부모님이 잠든 사이에 반지하를 빠져나와 작은 골목에 들어섰을 때였다. 틱, 틱, 담배를 피우려 들었던 라이터에는 기름이 없는지 제자리를 돌며 작은 소음만을 남겼고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 잔뜩 짜증이 솟구쳐 오를 때였다. 어두운 골목에 작은 불꽃이 일렁였고 그 끝에는 단정하지 않은 모범생 정재현이 있었다.
"너 담배도 피우니?"
정재현에게 처음으로 건넸던 말은 겨우 담배를 피우냐는 말이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던 정재현은 곧장 내 옆으로 와 내 손에 있던 담배를 물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처음은 아닌 것 같아 계속 바라보고 있는데... 글쎄, 애가 불을 못 붙이더라니까. 그렇다, 정재현은 담배에 불을 그냥 붙이면 붙을 줄 아는 모범생 중에 모범생이었다. 진지한 모습에 웃지 않으려고 노력한 지 어언 오 분, 본인도 당황했는지 본인 입에 있던 담배를 내 입으로 옮기더라. 그리곤 담배 끝에 불을 갖다 대 주더라, 제가 할 땐 안 되던 게 민망했던 건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재현의 손을 잡아 다시금 끌어당겼다. 너 나 알아? 잔뜩 날을 세운 목소리가 골목길을 울렸다. 넌 모르는 사람한테 불도 붙여 줘? 괜히 퉁명스럽게 나온 말은 정재현을 당황시키기 충분했다.
"난 너 알아, 정재현."
"나는 너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나도 왜 그렇게 정재현에게 말을 걸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랜만에 본 사람이 반가워서? 하필 그게 잘생긴 사람이라서? 하필 우리 반 반장이라서? 담배 피울 줄도 모르는 애가 라이터를 들고 다녀서?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때 왜 말을 걸었는지 모른다. 괜히 약점 잡은 것 같아서 기분 좋았을 뿐, 그것 말고는 없었다. 나 진짜로 몰라? 섭섭하게. 정재현의 얼굴에 가득 담배 연기를 뿜어내며 얘기하고 있었을까, 바로 앞 반지하 창문을 통해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 막 재미있었는데…….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정재현을 바라보며 담배를 벽에 지져끄고 있었을까, 내일은 학교 나올 거지? 아, 이 새끼 이거 골 때리네.
"나 모른다며, 재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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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과 맞담 아닌 맞담을 한 지 사흘이 지났다. 정재현은 만난 건 목요일, 다음 날 바로 학교를 가자니 아버지 되는 사람께 얻어맞은 상처가 너무 심해 패스, 주말이라 학교 갈 일이 없으니 이틀 패스, 그렇게 하다가 보니까 벌써 월요일이 다가왔다. 그때 정재현 표정 참 볼만했지. 모르는 척 내숭 떨 때는 언제고…. 학교에서 정재현을 마주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냥 내 자리에 앉아만 있어도 되는데, 뭘. 앞문과 뒷문이 동시에 열렸고 앞문으로는 정재현이, 뒷문으로는 김정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얼마만이냐며 소란스럽게 내가 다가오는 김정우와 다르게 정재현은 묵묵히 시선을 건네왔다. 짧게 마주친 시선이 짜릿하게 느껴질 즈음 입술 언저리에 있는 피딱지를 본 김정우는 또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뭐, 그게 사람이냐, 짐승이냐, 항상 하는 말이라 똑같지만 어쨌든 내 편이 있다는 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김정우에게 눕듯이 기대어 교실을 둘러보았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상 내 시선은 정재현에게 닿아있었다.
이윽고 맞닿았다, 시선이.
그리고 정재현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난 너 알아, 정재현."
"김여주, 나도 너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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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게 될 정재현은 항상 그랬다. 비를 좋아하고, 햇빛을 사랑하고, 바람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게 될 정재현.
첫글이라 많이 서툴러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