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오세요 수인의 도시 NCITY!
ep.2 what is love?
이름이는 동영과 함께있던 시간 내내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울려대는 핸드폰에 짜증스레 전원을 껐다.
핸드폰을 가방에 던지듯 넣는 이름이의 행동에 동영은 그저 알만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단번에 핸드폰을 끈 이름이 조금 사랑스러웠다.
당장 내일 수업이 없는 학생 이름과 무슨 일이 있어도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 동영의 타협선에서 파한 술자리는 길지도 짧지도 않았다. 딱 적당히. 그게 꼭 동영과 이름이의 사이 같아서 둘은 서로가 편하다고 생각했다.
"데려다줘?"
"그럼 고맙...어, 아니.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 나 먼저 갈게."
제게 손을 몇 번 흔들어 보이더니 급한 걸음으로 가는 이름이의 뒷모습을 보며 동영은 웃었다.
핸드폰을 확인하자마자 뛰는 꼴이라니, 아마도 쟈니의 연락이었을 거다. 잃어버렸다는 지갑 찾았어, 하는.
이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서있던 동영은 큰 숨을 한 번 쉬고는 집을 향해 걸었다.
걔는 걔가 뭐가 그렇게 좋지-하는 생각은 그냥 털어버린 채로.
[지금 나 보러 오면 좋은 거 줄게.]
-쟈니-
이름이는 알고 있었다. 그 좋은 게 제가 잃어버린 지갑이었다는 걸.
그럼 굳이 이 늦은 시간에 찾으러 갈 필요는 없었는데 내일 산책 겸 들러도 되는 거였고 집에 들어오는 날 갖다 달라고 해도 되는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눈에 띌 정도로 내달린 이유는 그 지갑을 주는 사람 때문이 아닐까.
동영의 예상이 어느정도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경찰서 앞에 횡단보도 하나 있는 거리에서 저 앞에 서있는 쟈니의 모습을 확인한 이름이 숨을 고르고 걸었다. 물론 뛰어온 게 맞지만, 그걸 들키기는 싫었다.
야밤에 지갑찾으러 뛰어오는 건 좀 이름이의 기준에서 본인답지 못한 모습 같아서.
"안 본 사이에 좀 늙었네."
"그런 건 좋은 인사가 아닌데."
"안녕할 순 없잖아."
"뛰어 왔어?"
"아니."
뻔뻔스럽게 아니라며 눈을 맞추는 이름에 쟈니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이건 눈물이야?
이름이의 이마에 옅게 맺혀있는 땀을 손으로 쓸어 닦아주며 묻자 이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속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쟈니는 눈도 좋았지. 어쩌면 횡단보도 전까지 뛰던 제 모습을 봤을 수도 있다.
"지갑 때문에 뛰어온 거야."
"정말?"
"그럼?"
"지갑 안에 내 명함 있는 거 들킬까봐 뛰어온 거 아니고?"
지갑을 열어 안에 꽂혀있는 명함을 보이자 이름이 낚아채듯 지갑을 가져갔다. 남의 지갑을 왜 열어 봐. 하는 짜증도 잊지 않고.
"명함같은 건 줘도 안 갖는다더니."
"명색이 아는 경찰인데 한 장 정도는 있어야 될 거 아니야."
"왜?"
"왜냐니,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왜. 필요한 상황에 전화 한통이면 내가 바로 갈텐데."
쟈니의 집요한 질문에 이름이 한숨을 내쉬곤 가방에 지갑을 집어넣었다. 더 이상 받아줄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한 쟈니가 이름이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름이는 얼굴을 찌푸리지도 치우라며 한마디 꺼내지도 않았다. 그냥 어깨를 으쓱해 치워낼 뿐.
처음 만났던 날과 달라진 거라곤 키밖에 없는 이름 덕에 쟈니는 또 웃음이 났다. 본디 웃음이 많은 편이 아니었는데 이름이에게는 무슨 좋은 힘이라도 있는지 이렇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얼른 집으로 가, 말은 안 해도 요즘 흉흉해."
"나 이제 어린 애 아니거든요. 야근이나 열심히 하세요."
데려다주지 못해 더 걱정되는 마음은 언제쯤 눈치 챌지. 이름이는 고양이과 치고 유독 눈치가 없다고 쟈니는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눈치가 없어서 좋을 수도. 눈치로 제 마음을 다 알아챈다면 분명 저 성격에 못 버텼을 테니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피곤함에 쓰러지듯 잠든 것이 아까울 정도로 일찍 일어난 이름이는 침대 아래로 떨어진 핸드폰을 찾아 집어들어 전날 확인 못했던 수많은 연락들을 확인했다. 나는 진짜 뭐 이런 사람들이랑만 인연이 있지. 이름이는 자신의 별난 인복을 아주 조금 후회했다.
[술병이라도 났어요?]
-동혁-
[누나 없으니까 학교가 너무 재미 없어요...]
-맠리-
[집에 잘 들어갔다고 문자 정도는 해주지.]
-우리 도영쌤-
문자도 아주 제각기로 많이 와있었다. 이젠 제법 자연스레 받아들일 줄도 안다만 일일히 다 확인하는 건 여전히 귀찮았다.
미리보기로 본 내용들은 그냥 안본 척 두는 게 나을 것 같아 핸드폰을 내려두려는데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는 달꼬리.
"여보세요."
"아 다행이다. 일어나 있었구나."
"응, 왜?"
"그... 너 수업 없는 날 이런 부탁해서 미안한데 오후에 잠깐 서점 좀 봐줄 수 있어?"
태일의 목소리가 꽤나 조급했다.
자기 서점을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 자리를 뜨는 일이 별로 없는데 여간 급한일이 아니었나보다 하고 이름이는 생각했다.
"그래 뭐, 급한 일 생겼어?"
"응, 근데 부탁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언제까지 가면 되는데?"
"점심 때 지나서 오면 될 거야."
태일은 대부분이 칼같지 못한 사람이라서 가끔 이름과 소통이 잘 안 될 때가 있었다. 지금처럼.
날이 어두워지는 시간도 어쨌든 점심이 지난 시간인데? 이름이는 태일에게 정확히 몇 시냐고 물으려다 관뒀다. 적당히 알아서 가면 되겠지.
"알았어, 이따 봐."
통화를 끝내고도 한참을 누워있던 이름이 비척비척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켰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덜 피곤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
.
.
.
.
"아마 5시 쯤이면 다시 올 거야."
"알았다니까, 얼른 가봐. 늦은 거 아니야?"
"어? 어 그렇지, 진짜 미안해. 잘 부탁해."
태일은 문을 닫고 나가기 전까지 뒤를 돌아봤다.
이름이는 핸드폰 액정에 얼굴을 비춰보며 본인이 그렇게 못미덥게 생긴 얼굴인가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매번 서점에 올 때마다 태일이 앉아있던 자리에 있으니 기분이 묘해진 이름이는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태일이 사용하는 책상에는 이것저것 용도가 쓰인 수첩이 많아 살펴보니 '외상'이라고 적힌 것도 있기에 이름이는 그 수첩을 보자마자 별 생각 없이 재민의 이름을 찾아봤는데, 재민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또 거짓말이었구나.
고요한 서점 안에서 매번 태일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름이 핸드폰을 들어 밀린 연락에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응. 아니. 하는 짧은 대답이라도 그냥 의무처럼 하고 있는데.
"성이름?"
재현이었다. 매일 체육관과 기숙사만 다니던 재현이 무슨 일로 서점에 다 찾아왔는지 이름이는 괜히 드는 얼떨떨한 기분에 목덜미만 긁었다. 어, 그래.
"의외네 서점까지 다니고."
"지나가다가 너 보이길래 들어왔는데. 지금 그거 무시야?"
"조금."
이름이의 대답에 재현은 그저 웃었다. 눈이 웃음에 따라 도톰하게 애교살이 따라 올랐다.
늑대라는 재현은 고양이 같기도 강아지 같기도 했다. 한 번도 재현이 늑대라는 걸 느껴본 적이 없는 이름이는 아마 평생 모를 터였다.
우연히가 아니라 이름이의 냄새를 맡고 서점까지 온 재현을.
"동혁이가 너 엄청 찾던데, 자면서도 네 이름 잠꼬대로 부르더라."
"소름 돋는다. 걔 왜 그래."
"네가 나 이기면 밥 사준다고 했다며. 솔직히 너무한 거 알지."
"아 맞다. 어제 경기 있었지. 그래서 걔가 너 이겼어?"
"어. 나 경기하면서 걔 으르렁 거리는 소리 많이 들어봤어도 어제처럼 무서웠던 적이 없어."
이름이 앉아있는 데스크에 아예 턱까지 괴고 서서 빙글 웃는 재현이 꺼낸 말에 이름이는 등골이 오싹했다. 저런 스포츠는 다시 태어나도 하고 싶지 않아. 하루라도 빨리 동혁과 한 약속을 청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밥 언제 사줘?"
"내가 네 밥을 왜 사줘."
"이동혁은 해주면서 왜 나는 안 돼."
데스크를 넘어올 기세로 물어오는 재현에 이름이는 태일의 마음이 아주 조금 이해가 갔다. 곰 수인이 외상 해달라고 몸을 들이밀면 무섭긴 했겠네.
그런 재현에게 이름이는 알았다며 손을 내저었다. 귀찮게 하지 말라는 뜻인 걸 재현이 모를리가 없었다. 이름이 귀찮은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기에 더 이상 떼 아닌 떼를 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저는 나재민 같은 여우가 아니니까.
"전화하면 좀 제 때 받고."
"한 마디 더 하면 차단한다."
"알았어, 간다 가."
이름이는 적당히 할 줄 아는 재현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까, 나재민 같았으면 간다고 해놓고선 한참을 안 가고 버텼을텐데 그대로 쿨하게 나가는 성격이 말이다.
태일이 오기까지는 3시간이나 남았는데 서점에는 개미새끼 그림자 하나가 안 보였다.
손님은 이렇게 없고, 매번 외상해 가는 놈들만 있으면 태일은 길바닥으로 나앉는게 아닐까. 이름이는 처음으로 남 걱정을 다 해 봤다.
"오늘은 웬일로 예쁘장한 게 앉아있나 했더니 성이름 너였네."
심심함을 못 이겨 책을 꺼내 읽던 이름이의 머리 위로 제법 날카로운 소리가 내려앉았다. 이름이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고개를 들고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아는 얼굴인것 같긴 한데 이름이 뭐였지.
끈덕지게 웃는 얼굴에 기분이 나빠진 이름이 소리나게 책을 덮었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기억 중에 저 얼굴이 생각 났다.
이름이 고등교육을 받던 시절부터 사이가 안 좋았다. 제 아무리 살기 좋은 도시라도 예외는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먹이사슬이나 계급 같은 걸 대부분이 못 느끼고 산다고 해도 일부는 그에 의존해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거였다.
이름이의 앞에서 빈정대며 웃는 저 얼굴이 딱 그런 타입이었다. 이름이는 본래 여러 곳에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라 먹이사슬이고 뭐고 좋으면 친구였고 안 맞으면 남이었다.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꾸준히 이름을 괴롭히던게 시간이 지나서도 버릇처럼 남았나보다고 이름이는 생각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봤는데 좀 웃어라, 어?"
"너처럼 웃느니 안 웃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이름이는 성격이 안 좋았다. 그건 이름 자신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누군가와 싸우는 걸 주변인 중 한 명도 보지 못한 이유는 이름이 싸움을 못 해서가 아니라 싸우느라 감정소모 하는 게 상상만 해도 피곤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름이 마냥 참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으면 그건 꽤나 틀린 말이었다.
이름이는 되로 받으면 말로 돌려주고, 누군가 자신을 이유 없이 싫어하면 좆같은 이유 하나 정도는 만들어주는 타입이었으니까.
"싸가지 없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네."
"알면 그냥 가, 그 정도 지능은 되잖아?"
빠득, 하고 이가 갈리는 소리와 더불어 그르렁 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어째 길어질 것 같은 기싸움에 이름이는 아주 잠깐 재현을 일찍 보낸 걸 후회했다.
틈만 노리면 달려들 것처럼 보이는 행색에 이름이 눈가를 꾹 누르며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저 새끼가 뭐였더라. 혼현이 자신과 비슷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안 나도 상관은 없지만.
"요즘엔 애들도 너같은 짓 안 해 이새끼야."
비슷한 말을 꺼내려던 건 맞지만 이름이 하려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언제 왔는지 둘 사이에 톡 끼어든 동혁이 한껏 굳은 얼굴로 한 마디 했을 뿐.
동혁의 오렌지 색 머리카락만 바라보던 이름이 한시름 놓은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목을 조를 듯 굴던 놈의 기세가 확 꺾였다. 호랑이 기가 세긴 세구나. 제 앞에선 한 번도 내보인 적 없는 -사실 경기 때 보이긴 했으나 이름이 기억하지 못한다.- 모습이라 이름이는 어색하게 동혁의 눈치만 봤다.
더 개겼다간 기가 아니라 목이라도 꺾일 것 같았는지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던 놈은 이내 서점을 나섰다. 찌질한 새끼.
"누나는 겁도 없이. 진짜 달려들었으면 어쩔 뻔했어요?"
"그것까진 생각 안 해봤는데."
태평한 이름이의 대답에 동혁이 어깨를 축 내리더니 여우나 뱀도 아니고 재규어잖아요. 하며 이름이의 옆에 와 앉았다. 그에 이름이 동혁을 빤히 쳐다보자 귀가 붉어져 이름이에게 되려 큰소리를 내는 동혁이었다.
"왜요."
"왜 자리 잡고 앉나 해서."
"나 가면 그 새끼 또 올까봐요."
본인이 생각해도 괜찮은 변명이라 동혁은 안심했다. 보고 싶어서 왔는데 그냥은 못 간다, 같은 오글거리는 말은 곧 죽어도 할 수가 없으니까.
서점에 들렀다가 왔다는 재현의 몸에서 나는 이름이의 향에 급히 서점으로 온 동혁은 뒤에 남은 수업 정도는 안 들어도 되지 않을까, 하며 심각한 자기합리화 끝에 '보호차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꼭 틀린 말은 아니지. 그렇고 말고.
게다가 동혁 자신은 민형처럼 이름과 단 둘이 있을 시간도 없었으니 오늘 같은 날은 동혁 인생에 있어 놓치면 안 되는 날 정도 되시겠다.
그러니까,
[자기야 뭐해?]
-재민새끼-
지금처럼 저런 여우새끼가 이름과 자기 사이를 방해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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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저번화 보니까 태일이 얘기가 많더라구요! 너구리 태일 귀엽져 ㅎㅅㅎ
독자님1 : 왜 여기서 끝나요? (멱살짤짤)
하핫 제 나름대로 필요한 부분을 나눠서 쓰고 있답니다 변명이 아니라 진짜로... 믿어주세여...
이런 식으로 전개하다간 언제 끝을 봐... 싶지만 생각보다 관계는 금방 얽히고 풀리고 한다는 것.
모두가 그녀를 사랑하지만 사랑의 종류가 전부 달라요! 그걸 주의깊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소제목을 달아두는 것도 다 그 이유니까요.
혹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사소한 거라도 물어봐주세요! 저는 소통을 사랑한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참고로 이번화의 포인트는 여주가 재규어와의 기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의 깡이 있다. 였습니다.
여주는 지지않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