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정재현은 항상 그랬다. 비를 좋아하고, 햇빛을 사랑하고, 바람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정재현.
셰익스피어
W. 토텝
사랑하는 것 같아, 너를. 무덤덤한 말투와는 달리 넌 떨었었다. 고백은 아니었다, 그냥 사랑하는 것 같다고 했던 거지.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던 정재현. 그런 정재현과 내 시선이 허공에 맞닿았다.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는데. 네 눈을 보면 빠져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내 모든 것이, 내 치부가 드러나는 기분이 든다. 난 네 생각만큼 괜찮은 사람이 아니거든.
넌 위험하다, 나락 끝에서 너를 그릴 정도로 넌 위험한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됐는데?'
'넌 소설 결말을 알고 읽진 않잖아.'
내 대답은 명백한 거절이었다. 정재현이 시작한 관계에서 정재현이 끝내는 관계가 될 것만 같아서, 너에게 거는 내 기대가 언젠간 나를 죽일 것만 같아서, 나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는 정재현을 시험해 본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거절해도, 너는 날 그대로 사랑할 수 있니? 너는 나를 모르는데, 날 사랑할 수 있니? 하는. 정재현은 내 말 이후에도 나와 마주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정재현 손에 들린 담배를 뺏어 물었고, 연기를 뱉어내려는 찰나에 내 시선엔 정재현이 가득 찼다. 한없이 다정한 눈빛과 다정한 입맞춤, 다정한 손길에 난 너에게 조금씩 잠겨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달라진 게 있다면 정재현은 더이상 반지하를 찾아오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정재현이 반지하를 찾았던 이유는 오직 나를 보기 위함이었으니. 정재현과 같이 살면서 좋은 점은 맞아 죽을 생각은 안 해도 된다는 거, 나쁜 점은 뭐, 굳이 말을 해야 아나? 정재현은 한창 호기심이 많을 나이니까. 내가 정재현과 같이 살면서 알 수 있었던 점은 정재현은 비를 좋아한다, 비 오는 날 주말에는 굳이 창문을 열어 빗소리를 들어야 한다. 정재현은 햇빛을 사랑한다, 흔한 평일마다 볼 수 있는 햇빛임에도 정재현은 주말마다 햇빛을 쐬야 한다며 나와 공원을 찾았다. 정재현은 바람을 사랑한다, 내게 자주 바람을 쐬자며 본인의 오토바이를 끌고 나올 정도였으니까. 정재현은 나를 사랑한다, 정재현은 이것에 대해 딱히 얘기하지 않았고, 나도 굳이 이것에 대해 정재현에게 묻지 않았다. 정재현은 티가 나는 사람이니까.
"여주야, 오늘은 비 오니까 우산 챙겨서 가자."
정재현은 내게 한없이 다정했고, 다정했으며, 언제나 그런 행동으로 나를 녹이려들고는 했다. 같이 산 지는 이제 한 달, 내가 집을 나온 지도 한 달, 정재현에게 다시금 확답을 주지 않은 것도 한 달, 정재현의 태도와 눈빛이 묘하게 달라짐을 느껴가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정재현은 항상 그랬다. 비를 좋아하고, 햇빛을 사랑하고, 바람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정재현.
다들 아실지 모르실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글은 조금씩 달라요 이것도 보는 재미가 나름 있을 겁니다!
곧 下로 찾아뵐게요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