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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연인을 위한 세가지 조건
Fin.






































백현은 한창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있었다. 하품이 나오려는걸 꾹 참고 눈에 눈물까지 고이며 필기를 하던 백현은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를 바라보니 잠이 솔솔 오는것만 같았다. 창가 바깥에 있는 구름이 보였고, 그 구름다리를 건너듯 이런 저런 생각을 건너고 또 건너보니, 문득 민석이 살고 있는 구름번지까지 닿았다. 자연스레 웃음이 피어나왔다.
미소가 지어지는 사람이다, 우리 형은. 형은 지금까지 자고 있으려나..언제 한 번 도시락 싸서 피크닉 가야 하는데.. 홀로 기분 좋은 생각에 들떠 씨익 웃던 그가 턱을 괴고 마저 노트를 내려보았다. 그때 그의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뭐해'




"어, 형이다."




평소에는 먼저 문자도 잘 하지 않던 민석에게서 문자가 온것을 몰래 확인한 백현이, 숨을 죽이고는 교수의 눈치를 보고서 얼굴은 교수를 보고 손가락 끝에는 촉을 세워 세 글자만 빠르게 써서 보냈다. 뭐 할것도 없이 형 생각중. 나야 늘 형아 생각 뿐이지.
아. 보고싶다. 정말로 보고싶다. 특히 이렇게 먼저 연락해주는 오늘같은 날엔, 더 보고싶다. 백현은 늘 민석을 볼때마다 짓는 푸근한 미소로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답장이 온걸 확인한 백현은 환호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였다.




'그래. 그럼 거기 있어. 내가. 딱. 갈게.' 




평소 민석의 말투와는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백현의 눈엔 그런것 따위 보이지 않았다. 왠일로 오겠다고 하는거지? 그렇다면 지금 이럴때가 아닌데. 아, 오늘 얼굴 상태 괜찮나?




"야 찬열아. 나 봐봐."
"왜."
"나 곧 민석이형 만나러 가는데. 오늘 괜찮아 나?"
"..아니. 넌 어제부터 개못생겼었어. 나가."




찬열이 귀찮다는듯 볼펜을 꾹 찍으며 이를 꽉 씹듯 대답하자 백현이 살갑게 웃으며 찬열의 팔을 툭 치고는 입고있던 티의 깃을 잘 다듬었다. 




- 보고싶어...형..























































































-























































































































"실례가 많았다."
"이런 배은망덕한새끼. 실례라는걸 알기는 아냐? 알면 진작 좀 오지 그랬냐!? 너는 지금 내 이런 푸르스름하고도 불쌍한 꼴이 안 보이니? 거울도 보기 싫다고!!!!"
"풀어, 풀어 임마."
"어휴. 이 새끼들. 사랑싸움에 내 등만 존나게 터지네. 이렇게 될 때까지 애 단속도 안하고 뭐했어!!! 어휴!!!!"




루한은 백현의 학교로 가기 전 종대의 집을 찾아갔다. 너덜해진 종대의 집 입구 상태가 평소와는 너무나 달라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게 딱히 민석의 짓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루한이였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난해해 보이는 환경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루한이 들어오자 마자 머리가 산발이 된 채로 미친듯이 달려나온 종대가 그의 멱살을 잡아제꼈지만 루한은 종대의 힘이 꽉 들어가진 손을 토닥이며 내려놓았다. 마법처럼 스르르 풀리는 손이 괜히 불쌍해졌다. 오자마자 종대의 잔소리 콤보를 듣게 되자 귀를 후비적 거리며 그를 한 번 더 다독이고는 난장판이 된 집을 한 번 둘러보았다. 쿠션이며 침대 시트며 나뒹구는 잡지들이며..이미 누가 깽판 한 번 쳤구나, 아주 속 시원하게.




"내가 좋아하는 카펫인데..힘들게 구한건데.."
"네 양말만 치워도 보기 좋겠어."
"몰라!! 몰라!!!!!!"




민석을 단속하지 못해 집을 이꼴로 만들어 미안하다며 빽빽 소리만 지르는 종대에게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따라 건네준 루한이, '마셔.마셔.' 하며 등을 쓸었다. 종대는 하지말라며 어깨를 털어냈고, 루한은 피식 웃고는 다른 컵에도 물을 따라서 꿀꺽꿀꺽 마셨다. 집안꼴을 이렇게 해놓은 자식은 어디 간거야. 여기 있을줄 알고 왔는데. 신발장에 꾸깃한 신발 하나가 더 있긴 했다만.. 




"아..입 아파서 물도 못 마시겠네..아오."
"엄살은. 걔 손이 조금 쎄냐? 그 정도 맞을 각오 정도는 했어야지."
"와. 이거 봐. 이거..이거 김민석이랑 쌍으로 미친 새끼.."
"그래. 나도 알아 나 미친놈인거."
"순순히 인정하지마라. 진짜 짜증나거든?"
"그..뭐더라."
"뭐."
"그때 네가 말했던거. 약속은 지켰다."
"뭘..?"
"네 계좌로 너가 원하는만큼 붙여놨다고. 그걸로 퉁 좀 쳐줘."
"..아, 그거."
"그래. 내가 대신 사과할게. 내가 미안. 이런 조건으로 네가 나한테 말한건 맞지만, 나보다 더 심하게 발악할줄은 몰랐다. 너 어디가 어떻게 됐지는 몰라도 내가 병원에는 데려가줄게. 그러니까..그만 풀자."
"....고맙다."
"너도 나한테 미안한 표정 짓지 말고."
".....김민석 지금 내 방 안에 있어."




종대가 시선을 두지 못해 방황하다가 어버버 거리며 손가락으로 대충 다른 방을 가리키고는 루한이 따라둔 물을 다시 급히 마셨다. 




"곯아떨어졌어. 데리고 가든지 말든지.."
"있는줄은 알았어도 쳐자고 있을줄은 몰랐네."




루한이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방 안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침대 위에, 작은 체구의 민석이 눈을 차분히 감고 몸을 둥그렇게 만채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루한은 그 모습을 보고 실소가 나왔다. 누구는 아침부터 사람 잡으러 다니느라 바빠 죽겠는데, 누구는 졸립다고 편히 자고 있구나. 




"우리 김여사 잘도 자네."




늘 장난으로만 부르던 애칭이 지금은 너무 미웠다. 달달하기는 커녕 인터넷에서 한창 유행했던 못된 김여사와 오버랩되어 보였다.
민석이 숨을 쉬는 통에 작은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고 방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는것을 인지하지 못할만큼 깊히 잠들어 있었다. 루한은 천천히 다가가 위에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작은 민석의 얼굴에 루한의 그림자가 졌다.
이내 침대위에 걸터앉았다가 고민하듯 방 천장만 올려다보았다. 난 오늘 대체 뭘 한거야. 제대로 해결도 안될거면서 일만 벌려놨나. 그나마 크리스 그 새끼가 나쁜놈이 아니라서 망정이지. 온갖 잡다한 생각을 하던 루한이 고개를 휙 돌려 민석의 긴 속눈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들어 민석의 하얀 이마를 톡, 건들었다.




"김민석."




깊이 잠든 탓에 루한에게 동요하지 않고 꿋꿋히 잠을 자던 민석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김여사. 일어나 봐."




연기하는거 아니야 이거? 지금 얘 깨어있는거 같은데. 
민석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인상을 팍 썼다. 무슨 악몽 꾸냐? 잠도 이렇게 못생기게 자.




"무슨 짓 안할테니까 일어나보라고."
"..음...."
"결론만 물을거야. 너 나한테 잘못했어, 안했어."
".....함냐, 몰..라.."
"때리고 싶네."




루한은 여전히 민석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침도 먹지 않은탓에 달디 단 라떼만 들이부었더니 배도 고프고, 머리도 너무나 어지러웠다. 그리고 민석을 눈 앞에서 바로 보게 되자 긴장이 조금 풀린 루한의 눈에 졸음이 조금씩 차올랐다. 넌 늘 이렇게 내 바리케인 안에서 가만히만 있으면 참 좋을텐데. 왜 튀지 못해서 안달이냐.




"옆으로 좀 가봐."
"....흐어.."
"좀, 좀만 가보라고.."




성질 내는건 둘째 치고 졸음부터 해결하고 싶어진 그가 민석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애기들은 이렇게 하면 말 다 알아듣는다는데, 얘는 다 큰 애기라 그런지 말을 잘 못알아듣네.
민석이 깰까 싶어 어떻게 건들지를 못하던 루한이, 두 손으로 자그마한 몸을 침대에서 안아 들어 공중으로 띄운채 조금 옆으로 이동시켜 다시 내려두었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 아주 조용히 드러 누웠다. 




"침대가 에이스인가..흔들림이 하나도 없네."




이 와중에 침대에 감탄을 하던 루한이, 팔을 꺾어 세워 제 손에 자신의 머리를 올려둔채로 그대로 시선은 민석에게 향했다. 




"야. 너무 잘자는거 아니냐. 내 걱정은. 했어?"
"........"
"안했겠지."
"........"
"첫사랑은 무슨.."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네 첫사랑이 아니더라 해도."
"........"
"네 현주소는 나인데. 넌 나만 봤어야지."
"........"
"코로는 내 향만 느끼고."
"........"
"..입술은 나만 사랑한다고 해야지. 왜 다른 사람한테 한 눈을 팔아. 팔긴."




분명, 아침까지 화가 저 끝까지 나있었다. 민석이 눈 앞에 있으면 달려들어 어떻게든 해버리고 싶었다. 지금도 완벽히 풀린건 아니였지만 이렇게 조용히 숨만 들이마시고 내쉬는 아이같은 민석을 볼때면, 오늘같은 일이 아니더라도 화가 났을때엔 금방 풀리곤 했다. 그의 달콤한 숨은 늘 루한을 지배하고 있었고 오늘도 역시 다를건 없었다. 그리고 루한이 민석의 작은 손을 마주잡으며 제 입술에 가져다 댔다. 지금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현실적으로 넌 이해 해야 돼.




"자는척 하는거 아니지.."
"........"
"지금 일어나면, 있었던 일 전부 용서 해주고."




쪽, 쪽. 두 번이나 입을 맞춘 루한은 자신의 말에도 별반응이 없는 민석을 보며 다시 헛웃음을 흘렸다. 연기는 아닌가보다.




"어..? 눈 좀 떠봐."
"...긴존대....야..건들지마라...."




무의식중에 종대를 말하는 그 얄미운 입술에서는 침이 한바가지 고이고 있었다. 루한은 눈가를 찡그리며 바깥을 괜히 노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민석의 손을 잡지 않은 또 다른 손을 들어 그의 입술을 스윽 닦아냈다. 무슨 약수터냐, 잠만 자면 이렇게 침을 흘려대..더럽게.




"...지금 안일어나도, 용서 할 수 있어. 사실은."




네 첫사랑이 내가 아닐지언정, 분명한건 내 첫사랑은 너니까.










































































































































종대는 다른 쇼파에서 잠이 들어 누워있었다. 그리고, 민석도 일정 시간이 지나자 눈을 꿈뻑이며 하품을 했다. 처음과는 다르게 자고 있던 위치가 좀 멀어진것 같아 이상한 낌새가 든 민석이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켰다. 뭐 어떠냐..여기 루한이 있는것도 아니고..




"........근데 얜 누구.."




민석의 비명이 천장을 찔렀다. 




"아, 씨...뭐야."
"........너..!!!!!!!!!!!!!!"
"더 자. 되게 시끄럽네.."




옆에서 대충 선잠을 자고 있던 루한이 보였다. 민석은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만 깜빡거린채 이불을 몸으로 가리며 루한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뭐. 어쩌라고. 손가락 안치워?"
"너..너..너....왜 여기에...."
"알 거 없잖아."
"이거 또 김종대가 꼰질렀.."
"..오늘 네가 여기 아니면 올데가 있어? 허튼 소리 하지 말고."
".....헐.."




민석은 진심으로 헐, 소리를 내며 이불을 털썩 떨어뜨렸다. 루한은 귀를 후비적거리다 미간을 찌푸리고는 민석을 확- 쏘아보았다. 민석은 이제 제정신이 들었는지 다시금 아침의 현실로 돌아와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꾹 감았다. 
날 옆에서 재워놓고 아무짓도 하지 않은걸 보면 진심으로 화가 난게 분명해. 그런데, 왜 네가 나랑 같이 있냐고..




"더 안자?"
"...화..풀렸어?"
"그럴것 같냐?"
"..아니..언제왔는지도 모르는데..그렇게 자고 있으면.."
"안 풀렸어. 착각은 금지."
"....그렇지?"




민석이 애매하게 웃으며 다시 표정을 굳혔다. 그럼 땅바닥에서 자든지, 왜 지랄이야. 왜..




"더 안 잘거면 일어나."




루한이 무언가를 생각하다, 짙은 쌍커풀을 만들며 눈을 팍 떴다. 그리고 몸을 일으키자 순간 민석이 움찔 하며 옆으로 홱 물러났다. 그 모습에 화가 난건, 앉은채로 대충 머리를 쓸어넘기려던 루한이였다. 손가락 끝이 머리카락에 닿았을때, 루한은 고개만 옆으로 돌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놀라는데."
"아, 아냐."
"..너 내가 무서워?"
"..아니라고."
"그런데 왜 놀라."
"아, 아니야. 나도 지금 나갈게."
"...씨발."
".......!"
"..그러게. 날 이렇게 만들지 말았어야지."
"......."




진중하게 욕을 내뱉는 루한의 모습에 민석은 저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것 같았다. 그리고 루한은 속으로 더한 욕을 했다. 차라리 일어나지 말지. 참았던 화가 갑자기 들끓는다. 아, 씨발. 오늘 하루만 해도 혈압이 몇 번을 왔다갔다 하는건지.
민석 역시 속으로만 말을 무한반복했다. 알아. 안다고. 내가 잘못한거 다 안다고. 그런데 제발 그렇게 나를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을 보는것처럼 쳐다보지 말아달라고..제발..!




"그나저나. 넌 애를 저렇게 만들면 어떻게 해? 보기 싫게 만들어 놓으니까, 좋아? 어디서 폭력이야. 못된것만 배웠어 아주."
"....잘못했어."
"사죄할것도 많다 넌."
".....으으.."




루한의 말은 겉잡을수 없이 민석의 심장을 여기저기 찔러댔다. 그리고 루한이 옷까지 마저 정리했을때, 믿기 힘든 말이 흘러나왔다. 




"종대 형 수술값 때문에 그런거야."




그래서 그는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뭐?




"몸이 많이 안좋대. 수술 해야 된다고. 알다시피 종대 그냥 알바생이잖아. 안그래도 너 요즘 캥기는거 있는거 같아서, 내가 종대한테 돈 꿔주는걸로 입 맞춘거야."
"......."
"따지고 보면 나도 나쁜 놈이지. 야. 그럼 나도 한 대 칠래?"




루한이 몸을 돌려 민석을 향해 썩은 미소에 가까운 미소를 보였다. 
그러자 민석의 심장이 조금 두근거렸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 상황에 그럴수 없는 말까지 들었는데, 루한이 무서워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그의 웃음이 민석을 동요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웃는 너를 내가 어떻게 때려..




"루한아.."
"조건이 있어서 나한테 말한거야. 더는 이런일로 종대 찾아오지마."
"......."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이는 아닌거 알지만. 저건 너무 심했잖아."




민석이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많이 때리지도 않았는데..두 세대 때렸나..사실 김종대 혼자 벽에 부딪히고 생난리 쳐서 난 상처인데..나는 종대 물건 집어 던진것 밖에는 없는데..




"김민석, 옷 입고 따라와."















































































대충 종대에게 인사를 하고 루한은 자신의 차 안에 올라탔다. 민석은 종대에게 다가가 '다음에는 그러지마.' 하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한 뒤 루한을 따라 쫄래쫄래 밖으로 나갔다. 그러다 다시 종대가 멍하니 서있는 곳으로 돌아와 애매한 포옹을 한 뒤 또 다시 총총총 뛰어나갔다. 종대는 '저 미친놈이..' 하며 욕을 중얼거렸고, 반 고장난 문은 쿵- 하고 닫혔다.



민석은 루한의 차 곁에 서서 우물쭈물 서서 괜히 동네만 두리번 거렸고, 루한은 핸들을 잡고서 고개를 삐딱하게 한채로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민석은 루한이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나오기는 했는데, 이제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손가락만 만지며 루한의 눈치를 봤다. 이럴줄 알았으면 잠에서 깨지 말걸. 허리가 결려서 일어났더니 이런 대참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용서해줄때까지 절대 안나타나겠다고 했는데, 용서는 무슨. 화가 두 배가 된 것 같다.
루한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발로 땅끝만 툭툭 차는 민석이 답답하다는듯 인상을 쓰며 차 문을 홱 제꼈다. 그 모습에 또 움찔해버린 민석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또 놀랐냐며 루한에게 큰 호통을 들을것 같아 망부석처럼 돌처럼 몸을 굳혔다.




"시위해?"
"..아니."
"그러면 타."
"...왜?"
"차 타라고. 같이 갈 곳 있으니까."
"나랑? 어디를..?"
"한 번 말 할때 안들을래? 뭐가 그렇게 궁금해? 앞으로 나를 얼마나 더 피하려고 그러는건데."




루한의 눈에 또 다시 불이 활활 타오르는게 보였다. 아니, 그냥 물어본건데..물어보지도 못하게 만들어..
민석은 그것들을 생각에만 그치고 고개를 야무지게 끄덕이며 조수석 문을 바삐 열고 올라탔다. 그리고 루한은 서서 조수석 문을 쾅- 닫아주고는, 운전석으로 넘어가려다 멈칫했다. 그리고는 다시 조수석 문 앞으로 걸어와 유리창 너머로 민석에게 창문을 내리라 손짓했다.
왠지 이렇게 하면 남의꺼 쳐다보는 기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어떤지 좀 보자.




"왜..?"




빼꼼. 고개를 들어 루한에게 지금 지을수 있는 가장 차분하고 예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이러면 좀 풀리려나. 아니면 되려 욕이나 먹을까.. 민석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애써 웃어보였다.
루한은 창에 팔을 걸쳐놓았다가, 그 얼굴을 보고 할 말을 잃은듯 다시 팔을 쑥 빼냈다. 그리고는 손짓으로 다시 창문을 올리라고 한 뒤, 저벅저벅 운전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운전대를 잡은 이후로 별 말이 없다. 
민석은 그런 모습에 팔자주름을 만들며 눈을 가들게 뜨고 루한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뭐, 이런게 다있어..

























차 내에서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민석의 입 안에서는 미안하다는 말만 수없이 멤돌고 있었고, 루한의 입 안에서는 널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는 말과 생각들이 지나치게 엉키고 있었다. 민석이 손을 뻗어 루한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럴때마다 그는 이미 그런 눈치를 알고 있었는지 한 손으로만 운전을 하거나 제 바지 벨트를 잡거나 했다. 민석은 울고싶어졌다. 이 숨막히는 분위기, 내가 제일 싫어하는건데.



또 몇 분간 말이 없자 결국에는 루한이 먼저 한숨을 내쉬며 민석에게 뭔가를 던지듯 내밀었다.




"자."
"아, 내 핸드폰.."
"내가 한 말 기억하지."
"뭘..?"
"내 앞에서 너랑 만나는 놈들한테 만나지 말자고 말하기로 했던거. 기억 못해?"
"........"
"통화 최근기록 봐. 변백현, 걔 보이지. 지금 바로 전화 걸어."




루한의 입에서 백현이라는 이름이 나올줄은 전혀 몰랐다. 놀랐지만서도 핸드폰을 받아들며 홈버튼은 누르지 않고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말을 붙였다. 




"저기, 루한.. 나 있잖아. 이제 그 사람들 안만날..건데. 나, 크리스도..백현이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전부 다 안만날거야. 친구도..너한테 허락 맡고.."
"그래서."
"...전화는 안 하면 안될까. 네 앞에서 전화하는거, 너도 싫잖아."
"지금은 내가 하라고 했잖아. 못들었어?"
"안만날게. 다시는, 정말 다시는.."
"알아. 만나지 말아야지. 그건 당연하잖아."
"........"
"전화하는게 싫다..그럼 잘 됐네. 얼굴 보고 얘기해."
"..어?"
"지금 너랑 나, 그 새끼 보러 가고 있는 중이거든. 딱 좋네."
".........뭐?"
"......."
"네가 왜?"




진심으로 묻는 말이였다. 진심으로. 왜? 루한아, 대체 네가, 아니 우리가 같이 왜..? 지금 내가 뭘 잘못 들은건가?




"왜긴. 분명히 네가 어제 새벽에 사라질때, 내가 분명히 경고했잖아. 지금 네가 가면 너 만났던 새끼들 다 어떻게 해버리겠다고."
"......."
"갔잖아. 그래서. 내 말 다 무시하고."
"......."
"그래서 오늘 아침에 크리스 만났어."
"뭐!?!"




민석이 튀어나올듯 몸을 루한을 향해 틀며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차 신호는 빨간색으로 바뀌었고 루한이 갑작스런 민석의 행동에 놀라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욕을 내뱉으며 오른쪽 팔을 뻗어 민석의 몸이 다시 시트로 닿게 세게 가슴을 눌렀다.




"씨발, 차 안에서 위험하게 뭐하는 짓이야. 죽고싶어?!"
"너 진짜 크리스 만났어? 왜? 왜 그랬어!?!"
"지금 그게 중요해? 따지지 말고, 좋게 가자."
"..왜? 왜 그랬는데? 정말 그래야 했어?"
"좋게 가자고 했다."
"......아...나 안갈래. 루한아 내려줘, 나 내려줘."

"미친 소리해. 또. 너 혹시 겁나? 그 사람 보는게 겁나? 아니? 난 네가 그 새끼 얼굴 좀 보고 말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지금 직접 데려가는거잖아."
"......너 대체 왜 이래?"
"왜 이러냐니."
"..루한아. 아니, 나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래. 너 대체 나한테 왜 이래..너 원래부터 이렇게 집착이 강했어? 어쩌다 한 번 만난 사람들한테,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그럼 그 사람들한테 내 입장은 어떻게 되는건데!!!! 좋게 헤어질 수 있는 틈은 줘야 할거 아니야!!!"
"..민석아. 정말 너 나한테 어떻게 당하고 싶냐?"




소름돋을만큼, 루한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민석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매달려있었고, 루한은 그 눈물을 보며 어이없다는듯 웃어버렸다. 차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기 1분 전. 루한은 핸들을 강하게 내리쳤고 클락션이 세게 울렸다. 
그럼 뭘 어떻게 해야되는데. 지금 나한테 감히 이해를 바라는건가? 정말 그런건가? 미친거야?




"너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나본데. 넌 어제부로 나한테 그런 말 할 자격 잃었어."
"...뭐?"
"세상 어떤 남자가 내 애인이, 내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만나서 히히덕 거리는데 그걸 그냥 가만히 냅두고 있겠냐. 그럼 어제 넌 내 경고를 무시하지 말았어야지. 그 상황에 그럼 내가 너한테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네가 처음부터 그런 짓을 안하는데!!!!!!!"
"하..."
"맞아. 나 원래 이렇게 집착 강한 놈이야. 근데, 집착이 없이 사랑이 완성이 돼? 미쳐버리겠는데 어떻게 해? 내가 무슨, 내가 그 사람들 어떻게 죽이기라도 했냐..? 왜 지금 네가 날뛰는건데, 왜!!!"
"이미 저질러진 일이잖아!!! 저질러졌는데, 이미 다 시작해버렸는데..그런 나한테..그럼 그 사람들은..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
"어떻게든 되겠지."
"이기적이야, 너도. 그래봤자 다 너처럼 다 똑같이 상처받는건데 그것들을 다 어떻게 하라는...!!!"





짝,




"....하.."




민석의 고개가 루한의 손바닥에 의해 세게 돌아갔다. 루한은 핏줄이 선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가장 중요한 자신의 상처는 보듬어주지도 않은채 저가 아닌 다른 남자의 상처 먼저 안아주려 생각하는 민석이 괘씸해, 그리고 그런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워져 자신도 모르게 욕보다 먼저 튀어나가버린 행동이였다. 손 끝에 닿은 민석의 얼굴 감촉이 사라지지 않는다. 미칠것만 같았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뜨겁고도 아릿한 느낌에 손을 떨며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민석은 허, 하는 강한 숨소리와 함께 참고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결국엔, 이렇게 될거였나보다. 
나는 처음부터 이러려고 한게 아닌데. 이건 모두가 생각하는 그런 더러운 불륜이 아니였는데, 정말로 나는..그런게 아니였는데. 




"..미안해."
".....내려줘."




민석이 안전벨트를 급히 풀어내려 손을 옮겼을때 루한의 그의 손을 꽉 잡았다. 그들의 손에는 차가운 땀이 베어나왔다.




"벨트, 풀지마.."
"......."
"내리지도 말고, 어디 가지도 마.."
"......."
"..너 손 안댈테니까. 무서워 하지마.."
"..미안해."
"..아니. 지금은 내가 미안해.."




민석이 루한의 나지막한 숨소리가 섞인 말에 안전벨트를 꾹 부여잡으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리고 루한 역시 그런 민석을 바라보며, 함께 울어버렸다.







































































































































* * 



























백현은 민석이 어서 자신에게로 오기를 기다리며 캠퍼스 벤치에서 몇 시간째 앉아만 있었다. 오늘따라 조금 늦게 나타나는 민석 때문에 불안했지만, 핸드폰과 시계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는 와중에 저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힘껏 부르는 누군가에 의해 백현은 다시 미소를 찾았다.




"형!"




민석이 조금 붓고 빨개진 얼굴로 그에게 뛰어가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는, 루한이 차 안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방금 전 편의점에서 사온 담배를 물며 불을 붙였다. 민석이 담배를 싫어해 끊었는데, 또 다시 민석에 의해 피고 있다. 다녀와서 또 어떤 난리를 칠지 몰라 루한은 환기를 하기 위해 창문을 열어두었다.




"형, 보고싶었어."
"..어. 백현아."
"근데 형 얼굴이 왜이렇게 빨개? 아, 자다 나왔구나. 어디 아픈건 아니지?"
"어. 응..내가 어디가 아프겠어."
"그럼 다행이다. 우리 어디갈까? 여기 근처에 맛집 생겼더라, 형. 배고파? 밥 먼저 먹을까?"
"..백현아."
"응?"




오랜만의 데이트를 할 생각에 들뜬 백현이 해맑게 웃어보였다. 민석은 그런 그의 수수한 눈웃음을 좋아했다. 완전히 마음을 내어준게 아니였다 할지라도 그의 웃음만큼은 진심으로 좋아했다. 전부를 다 좋아한게 아닌데, 난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한 일부만을 좋아한것 뿐이였는데. 민석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루한에 대한 생각만이 가득히 찼다. 




"왜. 말 해봐. 가고싶은데 있어?"
"..백현아, 있잖아."
"응."
"우리.."
"응. 뭔데, 왜 그렇게 뜸을 들이는데."
"...그만 만나자."
"...응?"




나 아파서 못놀것 같아, 같은 그런 전형적인 미안한 말인줄 알았다. 그럼 백현은 '형 집에 가서 놀자. 내가 간호해줄게.' 라고 되받아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이렇게 이별을 통보받을 것이란건 전혀 생각치도 못했기에, 백현의 미소가 아주 천천히 굳어갔다. '왜?' 라고 묻기도 전에 백현에게 붙들려 있던 민석의 팔이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이러면 안돼."
"..무슨 소리야 갑자기. 장난 치지마, 형."
"장난 아니야."
"왜 그러는데. 내가 형한테 요즘 못한거 있어? 아니면 잘못한거라도 있어? 말 좀 해줘. 내가 반성할게. 어? 기분 풀어. 응?"




아냐. 반성할건 네가 아니야.




"너는 늘 나에게 충분히 잘했어."
"그런데 왜."
"있잖아. 백현아."
"..말 해."
"너랑 나랑은 이렇게 아름답게 헤어지면 안돼. 붙잡는다고 해서 돌아갈수도 없고, 붙잡아달라고 옥신각신 할 수도 없어. 그래, 우리는 처음부터 이러면 안되는 사이였어."
"그게 무슨 소리인데. 형. 설마. 우리 둘이 뭐..같아서 그러는거야? 형.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이유라면 늦어도 한참 늦었잖아."
"...그런게 아니야.."
"..그럼. 아직도 형은 내가 아니야?"




민석이 백현의 가슴을 밀어내며 고개를 떨궜다.


두 사람, 백현과 민석은 아직까지 사귀는 사이가 아니였다. 백현이 일방적으로 민석을 좋아한것 뿐이였다. 민석은 단지 백현이의 귀여운 애교와, 눈웃음을 좋아했을 뿐이였고 곁에 있는 사람들이 늘 두 사람을 장난으로 의심한게 다였다. 어쩌다 한 번 '백현이 요새 너무 귀여워.' 라고 하면 사귀냐는 듯 몰아간게 진실이였고, 어쩌다 그게 종대의 귀까지 들어간것 뿐이였다. 모든게 그랬을 '뿐'이였다. 민석은 그런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자 더욱 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래, 아니든 맞든 모든건 다 내 불찰로 생긴 일인건 분명하다.




"네가 들으면 욕할수도 있어. 나 때려도 돼. 맞을짓 하고 있으니까."
"내가 형을 어떻게 때려."
"..내가 만약, 숨겨놓은 애인이 있다고 해도...그래도 나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을거야?"
"......."
"애인...있어. 있는데, 너랑 같이..다닌거라고 해도, 그래도..?"
"......."
"....미안해. 백현아. 내가 미안해. 내가. 내가 정말 미안해. 미안해. 미안."
"...아."




백현이 상처받은 눈을 했다. 동시에 표현하지 않으려 잡고 있던 민석의 팔을 놔주었고 뒤를 돌아섰다.
형이 좋아하는 모자까지, 답답해도 쓰고 있었는데. 이제 이런거 안써도 되는구나. 아니..처음부터 쓸 필요도 없었구나.




"미안해...형이..형이...."
"...그랬구나."
"..미안해. 미안해."
"아."




백현이 혀로 입술을 쓸며 헛웃음을 지었다. 민석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백현은 가만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아니 어쩌면. 예상했을수도 있는 일이였다. 진작에 의심부터 하지 않았던게 잘못이였다. 




"그런거구나."
"........"
"그래도, 나는 형이 나 가지고 논거라고 생각 안해. 나도 알아요. 내가 형 일방적으로 사랑한거."
"........"
"..그러네. 내가 바보였네. 진짜,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지..?"
"........"
"형이 이렇게 예쁜데, 애인이 없을거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야. 아..내가 병신이였지.."
"........"
"와, 어떻게 이러지."




하지만 그 역시 명백히 민석을 사랑했던 사람으로써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그것들을 품고 민석을 놔줘야 했을뿐. 
지금보다 나중이 더 강한 충격을 가지고 올거란 예상은 하고 있는 중이였다. 더 큰 슬픔이 오기 전에 백현은 떠나야 했다.




"형 애인이, 형이 말했던 그 첫사랑 맞죠."
"........"
"욕 잘하고 그렇게 집착 쩐다는."




민석은 대답 대신 고개만 살며시 끄덕였다. 그러다 바보같은 웃음이 터졌다. 맞아. 걔. 그런데 나 오늘 걔한테 맞았어, 욕도 잘하고 집착도 쩌는 그 놈한테..
근데, 하나도 안아파. 그냥 내가 다 미안해.




"..지금 우리 뒤에서 형 쳐다보는 그 사람, 맞는거죠."
"........"
"나 여기서 형한테 입 맞추면 진짜 개처럼 맞겠네..이별인사 치고는 너무 격하겠다. 그렇지."
"..미안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 밖에는.."
"나 대신에 좀 많이 사랑해달라고 해줘요."
"........"
"그리고, 내 상처보다 저 형이 받은 상처 먼저 달래줘요."
"백현아,"
"지금은..그게 가장 좋을 것 같아."




백현이 민석을 한 번 끌어안고, 멀리 서있는 루한의 눈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루한은 저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헛웃음을 지었다. 좋은 날씨에, 벚꽃도 흩날리고, 다 좋은데. 정말..다 좋은데.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떠나주는것 밖에 없겠네요."
"........"
"나는 처음부터 형을 안아줄수도 없었고, 만질수도 없었고. 그 흔한 뽀뽀도 할 수 없었고."




그렇게 말하고는 바보같이 웃어버리는 백현의 눈웃음은 여전히 예뻤다. 민석이 손을 올려 백현의 눈가를 매만졌다. 




"저 갈게요. 앞으로 연락은 안할거에요."
"현아..백현아.."
"우리 둘을 위해서 그래줘요. 그리고 형도 형 나름대로 생각 많이 했으면 좋겠어."
"......."
"..그만 갈게요."
"백현아. 늘 그렇게 웃어야돼..형은, 나는, 네가 웃는 모습이 좋았어..이것만 알아줘."
"..응."




백현이 고개를 숙이며 뒤를 돌아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민석과 백현의 마지막 만남이였다.










































































* *






































루한과 민석 두 사람은, 어제 찾아왔던 한강 둔치로 다시 찾아왔다. 하염없이 대학 주변만 빙빙 돌기를 몇 시간. 민석이 그만 집에 가서 쉬고 싶다고 하자 루한이 데려온 곳이였다. 어제와는 사뭇 달라진 두 사람의 분위기가 차 안을 차갑고도 따뜻하게 만들었다. 차가운건 감정이였고, 따뜻한건 두 사람의 체온이였다. 두 손을 마주잡고 있었다.




"내가 처음에 말했던거, 기억나?"
"아니. 하도 많이 말해서 단 하나도 기억이 안나."
"머리는 왜 달고 다녀..."
"..그 말 했던건 기억 난다."




민석이 바보처럼 베시시 웃어보였다. 루한도 똑같이 웃으며 손을 들어올려 민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마, 나도 너한테 말은 안한것 같지만.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널 위해, 작지만 몇 가지정도는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
"..알 것도 같아."
"뭔데."
"욕하고, 때리고, 집착하고. 또 옵션으로는 나한테 따로 또 복수하고."
"...다 맞긴 한데. 때린건 내가 미안해. 정말로, 많이 아팠지."




때리고, 라는 말을 강하게 발음한 민석 덕분에 안그래도 그 일에 대해 너무 미안했던 루한이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를 만지던 손을 내려 민석의 왼쪽 볼을 살살 문질렀다. 많이 아팠을텐데,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그런 루한의 손을 잡아 내리끄는 민석이 가여워보였다. 나중에 다 민석에게 듣게 된 이야기는 루한을 더 미안하게 만들었다.




"네가 무조건 두 사람에게 전부 바람 들린 건줄 알았어. 한 쪽은 무작정 널 좋아했고, 또 한 쪽은 부성애였다니. 내가 그것까지 제대로 알 턱이 있나."
"부성애까지는 아니거든.."
"..그래도 크리스는 맞잖아. 변백현인가, 걔는 짝사랑이라면서."
"...나한테 크리스는, 그냥 동경이였지."
"..그랬냐."




루한이 몸을 틀어 핸들에 팔을 기댄채로 민석을 바라보았다. 차분히 내려간 머리를 쓸어넘기다보니, 훤칠한 이마가 보였고 그 밑에 자리한 가지런한 눈썹도 보였다. 




"나만의 세가지 조건이 있었어."
"......."
"첫 번째, 일단 너한테서 그 새끼...아니. 그 놈들 다 떼놓는거."
"성공했네..."
"성공해야지. 그 난리를 떨었는데. 그리고 두번째, 네가 네 잘못을 자각하는 거."
"....알아. 이젠."
"..그리고 세번째."
"......."
"..네가 아무데도 못가게,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완벽하게 나한테 묶어놓는거."
"......."
"조금 잔인하긴 해도. 지금 이렇게 늘, 무슨 일이 있어도 나만 보게 만들어주는거."
".....응."
"이건, 성공한것 같아? 어때. 민석이 네가 봤을때는."




루한이 민석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서, 하루종일 볼 수 없었던 다정한 눈빛을 보였다. 얼굴을 쓰다듬던 손이 어느새 목언저리로 내려가 뒷목을 만지고 있었다. 루한의 애정표현이였다. 




"..그것도 성공."




민석 역시 루한에게 눈을 떼지 않고 답했다. 루한이 이를 드러내지 않고 웃으며 민석의 뒷목을 끌어당겼고, 두 사람은 이내 입술이 닿았다.




"너 첫사랑, 나더라."
"그건 또 누구한테 들었어?"
"네 바람 1호. 크리스한테."
"아.."
"잘 나오지도 않은 사진은 왜 들고 다니냐. 나중에 더 멋진걸로 줄테니까 그건 버려."
"왜 버려, 사진을. 평생 가지고 있을건데.."
"외계인 같잖아."
"아니? 실물은 안그렇잖아."




그리고 민석이 다시 루한을 잡아당겨 진한 입맞춤을 나누었다. 




"나한테는 아니라면서. 따로 있다고 했으면서."
"조금 질투 나라고 그랬지."
"근데, 이렇게 크게 질투가 날줄은 몰랐지?"
"..응. 미안해, 루한아."
"사랑해. 난 이 말 밖에 안할래."
"나도 그럴거거든? 사랑해."





민석의 차 시트가 루한의 손에 의해 뒤로 당겨졌다. 루한의 머리카락이 민석의 목에 닿을때마다 간지럽게 웃는 소리가 들렸고, 루한은 그 웃음소리를 입술로 막아내기에 바빴다.




"김여사.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내 첫사랑도 너야. 혹시 이건 알아?"
"응...알아- 아.."
"쉿, 힘 빼."
"으응.."




민석은 놓치기 싫다는 듯 루한을 잡았고, 루한 역시 민석을 놓치기 싫다는듯 원래부터 소유하고 있던 장난감을 들어올리듯이 민석을 들어 제 위로 올렸다. 마주보는 얼굴들은지금껏 봤던 미소중 제일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루한아, 난 네 미소가 제일 좋아.
그래? 나도 네 여기가 제일 좋은데.
바보야..
넌 늘 나만 봐. 알았지?
응. 너도. 그리고 나도, 약속.







어제와 같은 자리에 둥글게 뜬 달이, 또 어제와는 다른 빛을 내며 체온을 함께 나누는 두 사람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
라스트 팡은 달달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뺨 맞은 민석아 미안하다!!!!!!!!!!!!!!!!!!!!!!!!!!!!!!!!!!! (와장창)

결국 미니도 하니뿐이였대요~
크리스는 동경의 대상이였대요~
결국 두 사람은 오늘 또 역사를 썼대요~ 

다음에는 귀여운 애기들을 데리고 올거에요*^^* 학원물? 에로물? 산타물? (ㅋㅋㅋㅋ넝담~ㅎ)
벌써 다음꺼 쓸 생각에 설레서 이 글에 집중을 못했다는 이야기가..(아..아닙니다)

전편에 댓글 달아주셨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당신들을 위해 글을 씁니다..*_*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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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백현이 너무 아련해요 작가님.. 123편 꼬박꼬박 다 챙겨봤는데 진짜 금손이시다 어떻게 이럴수가있죠 푹 빠져서 봤어요ㅠㅜㅜㅜ 마지막은 그래도 해피엔딩이라서 좋다ㅠㅠ 진짜 다음 글은 무슨 소재로 찾아오실지 모르겠지만 혹시 암호닉 받으신다면 바로 신청하러 올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0년 전
독자2
ㅜㅜ벅현이너무 막 아련해요ㅜㅜ그래도민석이가 모든걸깨끗하게정리하고 루한한테돌아가서다행이에요ㅜㅜ
10년 전
독자3
아 진짜 금손이네야ㅠㅠㅠㅠㅠㅠㅠㅠ 민석이 어떡해ㅠㅠㅠㅠ 아니 그래도 루한이는 민석이를 때리면 안됐죠... 야 그럼 안돼.... ㅠㅠㅠㅠㅠㅠㅠ 민석이가 정리해서 다행이예야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4
치즈스틱이에요ㅠㅠ.. 간만에 울어서 눅눅해졌어요ㅠㅠ.. 엉엉 배켜나ㅠㅠㅠ 루하니가 밍속이 때린것도 좀 막 너무 안타깝고 그런데 그래도 민석이가 깨끗하게 정리하고 결국 하니한테 돌아가서 다행이에요 우늉늉우늉늉 다행인데 그래도 먹먹하고 아련하고 막 그른게 너무 막 ㅇ엉엉엉엉엉 그래요ㅠㅠㅠ 비지엠이 몇번이나 돌고돌도록 천천히 한글자 한글자 다 읽었어요 하 작가님글은 그런 매력이있어..♥ 제가 요즘 인티는 못해도 작가님글은 꼬박꼬박 읽을라고 노력중이에요 전 이번에 콘서트 막콘가는데 우리 작가언니님도 오시나~? 왔으면 좋겠다ㅠㅠ 보고싶어요ㅠㅠ 아 또 블로그? 하신다고 하셨나..? 그거 하면 꼭꼭 알려주세요 거긴 여기보다 훨씬 자유로울테니까 더더더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이께쬬~? 저는 작가님의 다음글도 그 다음글도 다다다음글도 모든글을 항상 기대하고 열심히 읽을 준비가 되어있어요! 우리 작가님 오늘(한참 늦었지만 ㅎ..)도 좋은 글 써주시느라 너무너무 수고하셨구요 또 사랑해요 워아이니 워씨환니 아이시떼루 콜라쿤캅 쥬뗌므 이히리베디히~♥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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