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인의 짝남 이영흠
무슨 사고를 쳤나요? 웬만하면 절제를 잘 해서 전날 일 다 기억하는데 드문드문 끊겨 있었음.
그러니까 어제 축제 첫날이었고, 술을 평소 마실 때보다 오버해서 마셨고, 노래방 갔고, 영흠이를. 영흠...영흠이를....영흠이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전날의 영흠들.
시발 가물가물한데 어쩌지. 무슨 말을 해서 내가 운 것도 같은데 설마 고백하고 차였나.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다리 긁고 있는데 알람이 울렸음. 뒤집어진 핸드폰을 똑바로 들었는데 알람 아니고 영상 통화였음.
...
네?
영상통화요?
놀라서 무릎 꿇고 앉은 채로 점프하다가 정강이 아려서 이불 위로 엎어짐. 시원하게 까진 이마 매만지며 얼굴 쓱 훑어 내렸는데 기름 장난 아니었음. 현 상태의 심각함을 느끼고 들을 수도 없는 핸드폰에 대고 기다려! 명령한 뒤 화장실로 달려감.
"잠깐만. 여기 누구 집이지."
더 이상 핸드폰은 울리지 않고, 나는 다시 돌아 나와 집안을 살폈음.
엔띠띠 물건들이 가득한 걸 보니 임제인 집이다. 엄마가 하도 뭐라 해서 임젱 집에 조금씩 쌓아놨음. 아마도 제인이는 수업 간 모양이었고, 나는 오늘 오후부터 수업 있으니 평화로워, 좋아.
이럴 때가 아니라고 재촉하듯 전화가 다시 왔음. 아까 제대로 못 봤는데 누구지? 하고 바닥에 놓인 핸드폰을 들다가 미끈거려 놓칠 뻔함.
잡긴 잡았는데 손이 통화 버튼을 눌러버림. 좆됐다. 황급히 카메라 전환해서 던져 버리고 그 앞에 엎드림.
"채리 누나아~ 잘 잤어요?"
나도 모르게 종료 버튼 눌러버림. 아침부터 혁명적인 얼굴 봐서 감당이 안됐음.
입 막은 그대로 굳어 있는데 다시 영통이 왔음. 세번째 걸려오는데 빡친거 아니야?어떡하지.
이번에도 내 얼굴 안 보이게 해놓고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함.
그러니까 괜찮다며 웃어줌. 순해빠진 웃음 소리 들으니까 가슴이 간지러워서 손바닥 착 붙이고 엎드려 누움.
"영흠아아- 혹시 나 어제 너한테 무슨 짓 했니?"
"음, 엄청난 일들이 있었죠."
"헐.어떡해. 미안해 진짜로. 근데 나 어제 운 기억 있는데 왜 울었는지도 아니?"
내 딴에는 얼마만큼의 쪽팔림이 밀려올 지 모르지만 그거 무릅쓰고 물어본건데 건너편에선 대답 안 해주고 웃기만 했음. 같이 웃자 좀.
"왜 그러는데,왜 웃는데, 나도 알려주라 혼자 알고 있지 말고."
"어제 누나가 절대 하지 말래서 말 안 할래. 어제의 누나에게 물어보세요."
투. 과거의 나에게
이새끼가 진짜.
"그런데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소리 지르지 않으려고 손가락을 물고 있었음. 왜냐하면 저장된 이름이 내영흠❤
이었거든. 미쳤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누나가 내일 모닝콜 해달라고 하면서 줬어요."
"너 왜 존대 써?"
"누나가 연하남은 반존대라면서 섞어쓰라고 했어."
와우 방채리.
제대로 망했는데.
실소가 나와서 베개에 얼굴 박고 흐느낌. 일어나 다시 봐도 영흠이는 아침부터 예뻐서 캡처해도 되냐고 물어봤음. 그러니까 또 웃어. 영흠이 되게 잘 웃는다. 눈은 반달 같이 휘어져가지고는. 남들한테도 이럴 거 아님. 쟈중나.
"아무리 그래도 나 이 정도로는 안 마셨는데."
"누나 어제 더 마셨어. 편의점 들어가서 봉투에 담을 정도로 샀어요."
"미쳤네. 그러니까 기억이 안 나지. 어떡해. 그럼 네가 나 여기 데려다 준거야?"
"제인이 누나 불렀어요. 꽃에 물 준다고 나한테 마시던 거 부어서 안 되겠다 생각했어."
"시발..어맛. 미안. 못 들은 걸로 해줘."
주둥이를 치며 옆으로 누움. 망했어. 폭삭 망했어. 꽃에 물 준다니 씨발.
아. 영흠이한테 욕했어. 방채리는 이제 끝이야.
"누나. 괜찮아요. 귀여웠어요."
"위로는 고마워... 고마워 영흠아. 너는 오늘 뭐 하니."
"저는 누나랑 놀려구요."
"나랑?"
"응. 안 놀아줄거야?"
주님. 거둬주세요. 못 살 것 같아요.
방 안 데굴데굴 구르면서 소리 질렀음. 그러다가 옆집에서 벽 주먹으로 쳐서 이불 안으로 들어감. 친구가 제정신 아닐 정도로 취했으면 곱게 데려다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울컥)
임젠한테 우는 이모티콘 보내니까 키읔 존나 쳐댔음.
ㄱㅊ 귀여웠어
이걸 위로라고 보냈음 임제인이가.
얼탱이 터져서 절교장 보냄. 3시간 뒤에 화해하기로 함.
수업 시간 내내 딴 생각만 하다가 나옴. 사실 딴 게 아니고 영흠이 생각이긴 함.
곧 보는데 영흠이 보고 싶다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음. 이러니까 취해서 마음의 소리 다 뱉어냈지.
그나저나 정신 차리니까 너무 좋다. 몇 시간 전에 영흠이랑 영상통화 했다는 사실에 설레서 바보같이 웃었음. 당시엔 깬 지 얼마 안돼서 겨우 사태 파악만 했음. 감정 뒷북 치고 있는데 내 앞에 걸어오던 사람이 이상하게 쳐다 보길래 얼른 정색함.
학교 축제는 첫날만 재밌어서 그 다음 날부터는 전공 강의실에나 박혀서 과제만 했음. 그런데 이번 축제 땐 내 옆에 영흠이가 있잖아~!~!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벌써 데이트 데이트 흥얼거리는 중이었음. 두 손으로 소중하게 핸드폰 붙잡고 어떡하지, 뭐라고 보내지 발 동동 굴리다가 어떤 일 하나가 떠올랐음.
연애 생각 없다는 말.
들뜬 기분이 확 가라앉았음. 앞 뒤가 안 맞는데 뭐가 영흠이의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속상해졌음. 안 좋은 감정은 작아도 지독하니까. 결국 영흠이한테 아무런 연락도 못 하고 집으로 감.
고작 하루 외박하고 온 건데 일주일 만에 보는 것 같은 엄마는 나만 반가웠음.
울먹이며 보고 싶었다고 하니까 먹금함. 보고 있으면 괜히 연락 올까 기다리게 되니까 핸드폰 무음으로 해놓고 샤워 하러 감. 머리 말리고 나오니까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불러서 책상 위에 뒤
집어 놓은 폰 볼 새도 없이 저녁 먹었음.
배부르고 할 짓도 없고, 티비는 원래 잘 안 보고. 하는 수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왔음.
책상 위에 고요히 누워 있는 폰을 잡긴 했는데 상태바 깨끗한 화면일까 두려웠음. 실눈 뜨고 뒤집었음. 까만 액정에 얼굴이 비치는데 절로 어깨가 처졌음.
"놀자는 말은 빈 말이었냐."
혼잣말 하며 전원 버튼을 눌렀는데 뜬 화면에 부재중이 두 자리 수나 찍혀 있었음. 카톡도 문자도 쌓여있고. 갑자기 죄 지은 사람 돼서 불안해하며 밀린 답장하기 시작했음.
센빠!! 제 앞에 지금 영흠씨 있는데요?
-아 그래? 어딘데?
어디야? 영흠이가 니 찾아.
-헉.
야~채리방 어디로 피했음? 니남친 여자들이랑 춤 추고 있는데~~ㅋㅋㅋ
- 내가 남친이 어딨는데... 지금 영흠이 얘기 하는거? ㅅㅂ?
오늘 영흠씨 잘생긴듯.
야
야?
너 어디임?
- 나 집 ...ㅠㅠㅠㅠㅠ
(사진)
(사진)
(사진)
채리야 선물이야^^
- ㅁㅊ 뭐야? 저게 뭐야?
ㅠㅠㅠ뭐야? ㅠㅠㅠㅠㅠ
영흠이가 너 연락 안된다던데 둘이 싸웠니,,
방챌 어디얀
야
너 설마 집 감?
- 나 집이야...
누나, 나 오늘 공연 하는데 문라이트 와요?
그러니까 정리 하자면,
축제 둘째날에는 총학에서 주관하는 재학생 공연을 하는데 이름은 '댄싱인더문라이트' 고, 나 빼고 모두 학교에서 축제 즐기고 있고, 귀신같이 춤 잘 추기로 유명한 댄스 동아리에 영흠이가 있는데 (물론 알고 있었음) 그 공연이 오늘임.
제일 중요한건 영흠이 차례 지났대.
친구가 보내준 영상 누르긴 했는데 심란해서 크게 크게 넘겨서 보고 끝냄.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건 공연 끝나고 영흠이가 나랑 놀려고 했대.
그런데 내가 잠수를 탄거임.
뒷목 땡겨. 달빛 야시장 데이트고 뭐고 내가 다 엎은 셈이지. ㅎㅎㅎㅎㅎ시발ㅎㅎㅎㅎ
제인이 이름 떠서 바로 통화 버튼 눌렀다가 잔소리만 5분 넘게 들음.
꼬리 내리고 있다가 소심하게 지금이라도 갈까? 하니까 다 정리하는 분위긴데 뭘 오냐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사과함. 영흠이한테 전화는 했냐 묻길래 대답 안 하니까 한숨 길게 쉬었음.
제인이랑 전화 끊고 나서 내영흠❤ 이름 앞에서 손가락만 놀리고 있는데, 이번엔 윤영 언니한테 전화와서 한 소리 듣고, 진짜 진짜 영흠이한테 연락하려니까 해인 언니한테 전화오고.
그런 사정으로 밀리고 있었음. 그런데 눈물 나려는 게 영흠이가 보낸 카톡에 대답한 지가 한 시간이 넘어갔는데 안 읽어. 카톡 프사는 공연 끝나고 나서 찍은 사진으로 바꼈는데.
뜨거워서 만지기도 꺼려지는 핸드폰 노려보면서 찔끔 찔끔 눈물 흘림. 그깟 폰 좀 안 봤다고 다들 나한테 뭐라 그래. 서러웠음.
원망스러웠던 감정이 추스러져서 자리에서 일어남.
한 시간이 걸리든 두 시간이 걸리든 직접 만나고 싶어서 뛰쳐나갔음.
중간 중간 카톡 들어가서 영흠이 카톡 확인했는데 읽기만 하고 답은 없었음.
부재중 절반도 영흠이고, 다들 영흠이랑 내 문제로 연락하고 그랬으니까 카톡 읽씹 할 정도로 빡쳤겠지. 미안하기는 한데 그렇다고 프사는 바뀌면서 나한테 답장 안 해주니까 미웠음.
"여보세요, 영흠아 어디야?"
-저 친구들이랑 술 마시러 왔어요.
"아..학교 밖에서?"
-네.
"그래..알겠어~"
어떡해. 나 지금 지하철인데 가슴이 너무 저릿해서 주저앉고 싶어. 울먹이는 거 안 들키려고 느리게 말함. 말은 없고 시끄럽게 남들이 떠드는 소리만 들리길래 내가 괜히 불청객 같아져서 끊으려고 귀에서 뗐음.
-누나.
".ㅇ..응?"
- 어디예요?
"나? 나는 집이지."
거짓말도 마음대로 못하게 이번 역은 ㅇㅇ 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음. 건너편에서 영흠이가 어이없어 해서 티비 보고 있다고 둘러댔는데 안 통했음.
- 얼른 와요. 나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잖아.
"우웅.. 알겟서..."
목소리가 평소처럼 나긋해져서 내가 아는 영흠이가 됐음.
안심이 돼서 그런가 몸 안에 뭔가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음. 심장인가..!
영흠이가 오라고 한 역으로 가는 길에 조용히 눈물만 흘렸음. 사람들이 힐끔거려서 목 계속 숙이고 있는다고 혼났음.
에스컬레이터 타고 올라가는데 누가 출구 쪽에 서 있었음.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영흠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음.
"영흠아!"
어깨를 잡으니까 빙글 돌아 내 손을 잡아 내렸음.
"채리 제대로 지각."
"누나..."
"지금 그거 따질 때가 아니죠."
내 손을 단단히 잡고 가길래 어디 가냐고 물으니까 비밀이라고 했음. 아파트와 주택이 많고 길이 조용한 동네였음. 아이들이 해가 져서 돌아간 빈 놀이터에 들어가 하나뿐인 시소를 차지했음. 벤치로 가는 줄 알았는데 당연하게 시소로 가길래 얼결에 앉음. 둘 다 발을 땅에 딛고 있는 일직선의 상태로 애매하게 서 있었음.
여기서 사과 하면 되는 건가 싶어서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꺼냄.
"누나 나 무대 위에서 춤추는 거 멋있다며. 그런데 보러 오지도 않고."
"미안해."
"같이 야시장 가려고 했는데 혼자 집 가고. 연락도 다 씹고."
"진짜 미안해."
"미안하다고만 하고."
영흠이가 자리에 팍 앉아서 발이 붕 떴음. 하늘이랑 가까워지는 건 오랜만이라 무서워서 짧게 소리 질렀음.
"으악! 내려줘! 내가 잘못했어 영흠아!"
오늘 미안하다는 말을 많이 해서 이젠 내가 왜 미안해 해야하는 지, 뭘 잘못했는 지도 모르겠음. 자동 완성처럼 나오는 잘못했단 말에 뭐가 미안하냐고 영흠이가 물어왔음. 그 질문에 곰곰히 생각하는데 화가 나는거임. 툭하면 생각 나는 연애 생각 없단 말과 나한테 했던 행동들이.
아까보다 목소리가 낮아져서는 조곤조곤 얘기함.
"그런데 영흠아. 너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
"응?"
"연기하는 거에만 집중하고 싶다 그랬다며. 연애 생각 없다며."
차려입고 고백하고 싶었는데.
나는 내가 해 다 지고 어둑어둑한 놀이터에서,그것도 내가 위로 올라간 시소에서 고백하게 될 줄은 몰랐음.
"그래서? 포기하게요?"
"응? 아니 그건 아닌데... 그나저나 알고 있구나."
"모를 수가 ...없겠죠?"
"그..으렇지?"
"그런데 나 오늘 안에 여자친구 생길 걸?"
"어어? 왜? 누군데?"
여자 친구 발언에 흥분해서 몸 흔드니까 쑥 내려가고 영흠이가 올라갔음. 본인도 당황스러웠는지 작게 버둥거리다가 중심 잡음. 그리고는 아직까지도 자기 발언에 인상 쓰고 있는 날 보면서 허리 숙이고 웃었음.
"영흠아아..너 진짜 못됐다. 내가 너, 내가, 내가 너 무지 좋아하는 거 알, 알면서, 아이씨. 빡치게 혀 자꾸 꼬이네. 아무튼 다 알면서!"
요새 질질 짜기만 하는 것 같음. 손이 절로 눈가로 갔음. 울 준비를 마친 상태로 영흠이를 쏘아봤음.
"누군데에! 같은 과야? 언제부터?"
"같은 과 아닌데. 지금 나랑 마주보고 있는 사람이요."
삐걱이며 시소가 다시 수평으로 돌아옴.
-ep
채리가 아무리 옆구리를 콕콕 쑤셔봤자였다. 찌른 사람 손끝만 더 아팠다.
순진하기만 잘 할 줄 알았더니 안달나게 하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은 방채리만 둔해서 모르고 있었다.
따져서 무엇하나 싶지만 그럼에도 헤아려 보자면 영흠이 먼저 채리를 알고 있었다.
갓 새내기가 되어 선배들 공연 준비를 도우러 갔을 때, 무거운 조명을 양 손에 번쩍 들고 가는 씩씩한 모습이 이유 없이 좋았다. 거침 없이 높이 올린 사다리에 올라가는 모습은 동화 같았다. 채리가 제인에게 영흠이 누구인지 물었던 것보다 앞서 영흠은 태용에게 채리에 대해 물었다.
태용은 웬만큼 눈치가 있었지만 영흠이 숨기기에 능해서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제 여자친구만 신경 쓰기에도 초 단위로 모자란 지라. 미안하지만 관심이 그닥 가지 않았다.
영흠이 보는 채리는 지나치게 귀여워서 이름만 불러봐도 미소가 걸리게 했다.
원래 웃음이 헤픈 이미지라 다행이라 여겼다.
채리가 얼마나 귀엽냐면, 진득한 시선이 느껴져 돌아보면 반드시 그녀였다.
방금까지 봐 놓고서 최선을 다 해 안 그런 척 하는 게 웃겼다. 참 재밌는 누나.
처음엔 도끼병인 줄 알았다. 채리와 연관 있는 사람들이 영흠을 보면 동공부터 확장되는 게 아리송 했다. 자길 유독 오래 보는 시선들은 채리와 아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같이 사는 선배의 여자친구가 채리의 친구였다.
공연을 올려서 데면데면 알고 지내는 그녀의 과 친구들도 그렇고 자기에게 은근히 채리 얘기를 자주 했다. 태용은 영흠과 가까웠기에 대놓고는 아니더라도 넌지시 채리 이름을 일부러 말하곤 했다.
채리는 정직했다. 미세하게 떨며 자기에게 말을 거는데 뺨이라도 꼬집어보고 싶었다. 아직 영흠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 뒤돌아서 오두방정을 떨었다.
가능하면 발랄하게 움직이는 뒷모습을 오래 보고 싶어서 매번 모르는 척 넘어갔다.
학교에 놀러와서 우연히 영흠을 보고 반한 친구가 있다며 동기가 옆에서 졸라댔다.
영흠아 여소 한번만 받아. 내 친구가 너 무지 좋아해.
조금 멀리, 목소리를 일부러 한 톤 키운다면 닿을 거리에 채리가 영흠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주치려 할 때마다 눈을 내리까는데 여전했다.
나 무지 좋아하는 사람은 저기 있는데.
연애 생각은 고백 받으면 해야지.
지금은 공부하는 데에 더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채리 얼굴이 대놓고 울상이 됐다.
제인이 영흠의 속마음을 알게 된 건 축제 당일 날이었다. 밥 먹었어? 라는 물음에 누나, 나 채리 좋아해. 라고 답했다. 충격적인 동문서답에 제인은 채리가 너보다 누나라고 정정해줬다. 자리 만들어주면 되는거냐고 하길래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채리는 영흠과 노래방에서 단 둘이 만났다. 생각보다 채리가 자기를 좀 더 좋아하고 있었다. 취해도 영흠아 하고 잘도 불러댔다.
"치사해. 맨날 나만 사랑한다 그래. 됐어. 영흠이는 아무것도 하지마. 사랑은 누나가 다 해줄게."
"채리 토라졌네."
"너 은근히 말 막 놓더라?"
"채리야."
"와. 날 채리라 부른다는 건 제인이를 제인아 라고 부른다는 거고 그것은 최종적으로 하늘같은 선배님인 태용씨를 태용아 라고 부르는 셈이야!"
"채리 말이 많네."
열 받아하는 모습을 즐겁게 보던 영흠이 채리에게로 다가가 입 맞추곤 떨어졌다.
잠깐 고장난 채리가 머리를 세차게 저으며 소리쳤다.
"..반칙이야!"
"반칙이야? 뭐가요?"
"그, 그, 갑자기 하는 거!"
"갑자기 뭘 해요? 아~ 이거?"
그리고 이번엔 아랫입술을 머금었다가 쵹, 소릴 내며 뗐다.
하늘이 검푸른 색으로 젖고 있는데 채리의 두 뺨이 붉어진 건 선명히 보였다.
"이영흠 미워."
"사랑은 않고?"
"..사랑은 엄청 하지."
나도 그래요.
영흠은 이번엔, 체리 안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
와 드디어 샐러드 글들 모두 복구했습니다. 이제 무인도 글만 다시 복구하면 되네요 ㅎ..여러분 같은 글 계속 봐서 지루하시죠 ㅠㅠㅠ
인티 서버가 다시는 아프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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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마지막 완결편들에 구독료를 거는 이유는 글 읽으신 분들이랑 댓글 수를 비교 해보기 쉬워서요 ㅎㅎ
요새 날이 좋아요. 앞으로 더 좋을 거예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