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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서 탭댄스를 
w. 문달 
















20










다행히 치타폰의 허리를 끌어안기는 했다. 문제는 지금 내 발에 닿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지. 어릴 때 나는 놀이공원을 그렇게 좋아했다. 당시에는 용감했던 꼬마 방채리는 무서운 것만 골라타기를 특히 즐겼다. 입구에 들어서고 몇 걸음 걷다보면 제일 첫 번째로 나오던 게 아마 내 바랜 기억으로는 거대 꽃밭 시계를 앞에 두고 있는 자이로드롭일거다. 천천히, 막힘없이 쭉쭉 하늘을 향해 올라가서 철컥 거리며 걸린 소리를 내면 그때부터 전혀 안 무서운 척 개미만해진 경치를 즐긴다. 해랑 나랑 마주보고 있어! 구름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언제 떨어지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속으로 숫자를 세도 기구는 여전했다. 이때쯤이면 옆에 사람들도 하나같이 언제 떨어지냐며 다리를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한다. 떨어진다? 하는 순간에 바로 심장이 철렁하며 올라올 때보다 두 배는 더 빠른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다리가 올라가면서 밖에 널어둔 빨래처럼 팔랑거린다. 자이로드롭은 안전장치라도 있지 내가 붙잡고 있는 건 안전 바도 아니고 치타폰의 얇은 허리였다. 내가 공중에 떠 있어? 생각하며 눈을 뜬 그 순간에 영롱한 빛깔의 바다가 보이면서 미친 속도로 가까워졌다. 나 이렇게 외딴 곳에서 만난지 이틀 된 연예인이랑 죽는 운명이구나. 






“꺄아아아악~ 채리씨이이!”






치타폰 얘는 뭘까. 혹시 외계인은 아닐까. 인간의 탈을 쓰고 자기도 여기 영문 모르고 불시착한 척 사실 인간인 날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외계 생명체일지도 모른다. 허황된 상상이 아니라,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이 상황에서 그처럼 신나할 수가 없잖아!






후회한다. 나 혼자 살 걸. 괜히 나댔다. 






































21








부딪친다. 죽는다. 엄마 안녕. 내 몸에 숭숭 뚫려있는 구멍이란 구멍으로 물이 마구 들어왔다. 피가 날 정도로 아팠다.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내 시신은 온전치 못할 거고, 머리부터 떨어졌으니 지금 감각이 없어진 건 대가리가 쪼개졌단 뜻이겠지? 죽는다, 죽는다, 이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는 살고 싶었나보다. 미친 듯이 팔 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뭔가가 내 팔을 휘감았다. 미역인가. 정체 모를 미역은 내 팔을 당기더니 이내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게 감아왔다. 고통스럽게 죽는 게 나의 마지막이라니. 다 놓자, 하고 힘을 푸려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채리씨!”






“푸우엑! 컥!”






졸지에 물구나무 선 자세로 코와 입에서 물을 콸콸 쏟아냈다. 치타폰이 붙들고 있던 내 다리를 놓자마자 대 자로 엎어져 앓는 소리를 냈다. 






“채리씨 안 죽었죠?”






“예헤... 보다시피요...”






“우리 치킨 먹을 수 있어요!”






용케 산 것도 모자라 해맑은 얼굴로 치타폰은 마찬가지로 바닷물을 많이 마셔 배가 똥똥 튀어나온 야계의 모가지를 잡고 흔들어보였다. 셋 중에 닭만 죽었네. 






“와, 어떻게, 떨어졌는데 멀쩡하네요?”






“그렇더라구요. 저도 신기했어요. 럭키?”






그가 눈 한쪽을 감아 윙크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치타폰이 내 머리를 보더니 미역 같다며 웃었다. 






“치타폰씨도 지금 물에 젖은 생쥐 같거든요? 그리고 봐요. 눈 밑 상처 났어요.”






약이 있는 것도 아니라 걱정하는 눈치로 상처를 톡 건드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그가 눈을 찡그리며 갑옷 같은 자기 옷을 들춰보았다.






“옷 너무 무거워졌어요.”






“그래 보여요. 벗어서 말려야죠.”






치타폰이 겉옷을 벗어 모닥불 근처에 펴 놓았다. 지금 당장 손가락 하나 까딱 거릴 힘도 없었지만 그것보다는 배고픈 게 우선이었으므로 혼신의 힘을 다해 불을 피웠다. 가슴팍에 달라붙은 얇은 셔츠를 펄럭이던 치타폰이 몸에 닿는 축축함이 거슬렸는지 단추를 끄르길래 기겁을 하며 다급히 그의 손을 제지했다.






“지금 누구 앞에서 상탈을 하는 거예욧!”






“얘도 말리고 싶어서...”






“아주 그러다 팬티까지 훌렁 벗겠네. 안돼요. 우리 서로 선은 지킵시다.”






단호한 어조로 말하자 치타폰이 팔로 엑스자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치타폰씨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절대 안 일어날 거거든요? 그리고 저 연하는 사절이에요.”






“연하? 채리씨 나보다 나이 많아요?”






나이 부심 부리기 싫었지만 퉁명스레 팔짱을 끼고 그렇다면 어쩔 건데요, 하며 빈정댔다. 






“누나예요? 누나 채리?”






“그냥... 계속 채리씨라고 합시다.”






누나 동생 하다간 정이 들 것 같았다.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절대 치타폰과 친해진 상태로 집에 돌아가지 않을 테다. 닭을 손질하며 나는 그런 결심을 했다. 






































22










오랜만에 고기를 먹으니 포만감에 기분이 좋아졌다. 치타폰도 마찬가진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서는 배를 두들기며 앉아 있었다. 






“맨날 치킨 먹고 싶어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다리를 쭉 뻗은 자세로 발만 자동차 와이퍼처럼 움직이며 딱딱 부딪치던 치타폰의 신발이 눈에 띄었다. 






“탭댄스 잘 추게 생긴 신발이네요.”






“탭댄스! 그거 이번에 맡은 역할이에요. 탭댄스 잘 추는 남자예요. 말해주면 안 되는데 제목만 스포해줄까요? 룰루랄라 랜드라고.”






발연기를 한다고 평이 나 있는 배우의 진짜 발연기 도전이라니. 이 무인도를 나간다면 발연기 배우의 리얼 발연기니 뭐니 하며 조롱처럼 따라다닐 기사거리들이 얼마나 넷상을 도배할지 내가 다 현기증이 났다. 






“그래서, 실제로도 잘 춰요?”






그가 침묵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딴 곳을 쳐다보며 말한다. 






“조금, 연습 많이 해야 돼요.”






뺨을 긁적이며 시선을 회피하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23
















종일 뛰고, 걷고, 그러다 목숨도 잃을 뻔 하고, 포식하고. 많은 일을 한꺼번에 겪어서 그런지 피곤했다. 말수가 적어지니 자연에서 나오는 소리 말고는 나와 그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없었다. 친한 건 아니고 그렇다고 이렇게 민망하게 어색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수다스럽던 사람이 말이 없으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내 쪽에서 먼저 헛기침을 하며 말을 걸었다. 






“치타폰씨.”






내가 자기를 부르자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려왔다. 나는 눈을 은근슬쩍 다른 데로 돌리며 심심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심심한데 졸려요.”






졸리다고 말하는 동시에 그가 뒤로 드러누웠다. 다시 일어나기는 귀찮았던지 슬금슬금 다리로 자기 발 아래 있는 바나나 나뭇잎을 끌어다 배 쪽으로 당겼다.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까요? 어차피 나 오늘 밤 새서 불 지켜야 하니까. 내 얘기 듣다가 잠 엄청 오면 집 안에 들어가서 자고.”






“좋아요!”






치타폰이 눈을 번득이며 내 쪽으로 아예 몸을 돌려 누웠다. 에어로빅 강사 일을 하며 아줌마들에게 배운 건 거침없는 입담 말곤 없었다. 내가 실감나게 모사를 잘하는 것도 있고. 하여튼 치타폰은 어느새 일어나 앉아서 경청하더니 내가 뭔 말만 해도 박수를 치며 꺄르르 넘어갔다. 








“아, 너무 웃겨요.”






웃겨 죽겠다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오그리고 앉은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흐느끼는 이 남자를 어찌하지. 
























24












목이 따가웠다. 치타폰은 새근새근 자기 팔을 베고 자고 있었다. 채리씨 나 너무 졸려요. 나른해진 목소리로 말하더니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턱 아프게 연속으로 하품을 하고 장작을 더 집어넣었다. 불과 마주한 면은 덥고, 반대쪽은 춥고. 제자리에 서서 빙글빙글 돌아가며 불을 쬐기도 했다. 혼자 노려니까 지루하고 시간도 잘 안 갔다. 모기 같은 게 주변에서 활개를 쳐서 잡는다고 손뼉을 짝 짝 치다가 치타폰의 눈치를 봤다. 다행히 그의 눈은 꼭 감겨있었다.


안도하며 다시 앉았다. 갑자기 숨소리도 조심하게 된다.


치타폰의 얼굴을 보다가 먼 바다를 보다가. 불 때문에 환한 그의 얼굴을 마주보고 옆으로 누웠다. 신이 망설임 없이 그은 이목구비 선에서 자신만만함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피조물일세. 


졸릴 때마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던 치타폰과 나를 떠올리며 잠을 떨쳐냈다. 
























 






















25








하늘이 불그스름한 해를 뱉어내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나는 선선한 공기를 마시며 기지개를 켰다.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은 자세로 누웠다. 졸려 죽겠다. 


밤사이 내가 불을 잘 지킨 덕택에 치타폰은 평화로운 표정을 하고서 잘도 잤다. 새삼 잘 생긴 게 왜 재밌다는 건지 이해가 가더라. 이리저리 뒤척이는 통에 슬쩍슬쩍 치타폰의 눈, 코, 입을 건드리다가 얼마나 제 발 저렸는지 모른다. 밝아지는 하늘에 그림 같은 뭉게구름이 둥실 떠다녔다. 누워서 하늘을 가만 쳐다보니 뭐가 많이 없다는 것만 빼면 여기가 무릉도원이구나, 싶었다. 엄청난 강도의 잠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눈앞이 정전되어 꺼진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나를 흔들어 깨우는 통에 신경질을 내며 눈을 떴다. 한낮의 태양을 등지고 치타폰의 얼굴이 동그랗게 떠 있었다. 






“으악, 놀래라! 아이씨, 너무 가깝잖아요!”






“채리씨 죽은 듯이 잤어요.”






“밤새서 그래요. 야근이라고도 하죠. 하으아아”






치타폰은,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특수한 환경에 처해 있다 보니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했다. 입을 가리지 않고 벌렁거리는 콧구멍을 노출시키며 하품하니 그가 자기 손으로 입을 대신 가려줬다. 






“채리씨, 내가 재밌는 거 알았어요.”






“뭐요?”






무언가를 찾은 모양인지 맑고 투명한 안광이 반짝였다. 나를 이끄는 치타폰의 손에 그늘 하나 없는 모래벌판 한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치타폰의 길쭉한 손이 서쪽을 가리켰다. 


그의 손 끝에는 특이한 모양의 바위가 걸려 있었다. 






“...네! 이제 재밌는 걸 보여줘요.”






“저기요. 쟤. 코끼리 똥같이 생기지 않았어요? 보고 엄청 웃었는데!”






“즈에가아... 코끼리 똥을 본 적이 없어요. 보고 싶지도 않고.”






“헐. 어떻게 못 봐요. 잘못 살았네.”






치타폰이 실망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내 인생은 그의 한마디로 인해 코끼리 똥도 한번도 못 본 실패적인 삶이 되었다. 






“아무튼 내가 쟤 이름 지어줬어요. 뚱이. 히히.”






“스폰지밥 나오는 그 뚱이요?”






“네.”






“아, 네. 와!”






치타폰은 정말 외계인이 아닌가. 겉모습은 완벽하게 인간의 모습을 구현하고 있지만, 알맹이를 까보면 후크 선장이라든지, 보아 뱀이라든지, 동화 속 어떤 인물들이 막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만큼 그의 영혼은 때 묻지 않고 순수했다. 연예계는 엄청 더럽다던데. 내 딴에 해줄 수 있는 건 의미 없이 감탄사를 지르는 것뿐이었다. 그게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는 에덴 동산에 살던 태초의 인간처럼 섬의 모든 것들에 이름을 부여해주기 시작했다. 






















26












치타폰은 제일 먼저 이름을 붙여주었던 뚱이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아침에 깨면 체조를 하고나서 항상 마무리로 뚱이를 향해 안녀엉 하며 손 인사를 했다. 같은 무인도에 떨어졌고, 같은 생활을 하며 지내는데 그는 정말 휴양지에 온 사람 같았고, 나는 그냥 조난 당한 사람. 




치타폰은 이제 자기 혼자 힘으로 물고기도 잘 잡았다. 인정하긴 싫지만 내가 다섯 번 허탕 치고 겨우 한 마리 잡는다면, 치타폰은 작살을 던지는 족족 물고기가 걸릴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앞서 내가 먼저 자존심을 세운 적이 있기 때문에 살 한 점 구걸하기도 뭐했다. 아, 소금 쳐서 먹고 싶다. 그나마 살이라고 붙어는 있는 조각을 떼 먹으며 혼잣말 했다. 






“조개껍질 엮어~”






어디서 뜯어 왔는지 가는 잎줄기에 칼로 대충 구멍을 낸 조개 껍질들을 끼우며 그가 흥얼거렸다. 계속 드는 생각이지만 누가 봐도 놀러 온 여행객 같다. 아니면 극히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아무 생각이 없다거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남는 끝부분을 리본 모양으로 두 번 묶어 완성한 조개껍질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나는 고맙단 말도 제대로 못하고 껍데기의 껄끄러운 겉면만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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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오웅.. 나도 아직 살면서 코끼리 응아는 봐본적이 없는데... 잘못살았나...? 그래서 이름이 뚱이라니.. 작가님 그거 아시나요..? 뚱이 원래이름은 영어로 patrick 인거.. 전 영어로만 알다가 중학교땐가..? 초등학교땐가 친구들이 야 너 뚱이알아?? 해서 알았던 기억이 있네요...(코쓱/유루
5년 전
문달
안녕 유루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거 같애요 뚱이 ㅋㅋㅋㅋㅋㅋㅋ 뻘하게 터졌네요 ㅋㅋㅋ
5년 전
비회원148.21
토끼또잉이에요! 탭댄스 볼때마다ㅠㅠ 테니ㅠㅠ 치타폰 진짜 너무 귀여워요ㅠㅠ 테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귀여웠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헿ㅎㅎ 바위에 이름 붙여주고 인사하는 거 왤케 귀엽냐규여ㅠㅠ 흐앙ㅠㅠ
5년 전
문달
안넝 토끼또잉님~ 진짜...테냐로 처음 써 본 글이 탭댄스라 본체의 사랑스러움을 최대한 닮게 담으려고 노력 했었는데 좀...그래 보이나요? ㅋㅋㅋㅋ
5년 전
비회원221.25
문달님 보면 ㄴ우는사람이에요오 작가님 글은 봐도봐도 너무 좋네용♥♥♥♥하루의 끝을 작가님 글을 보며 마무리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ㅠㅠ 늘 감사해요 사랑해용♥♥♥문달님 킹왕짱 최고짱 ( •̀ᄇ• ́)ﻭ✧
5년 전
문달
정말... 너무너무 감사한데 차마 제가 직접 부르기 민망한 이름의 도짜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근데 정말 너무너무 감사해요 ㅠㅠㅠㅠ 암호닉마저 애정이 넘치셔서 댓글 볼 때마다 미소 짓습니다 ㅋㅋㅋ ㅠㅠㅠㅠ 행보캐요 감댜해용~~
5년 전
독자2
아 인간적으로 테냐 낙천적인 거 너무 어울리거 사랑스러워요ㅜㅜㅜ일 척척해내는 거도 대견하고 둘이 정말로 귀여워요ㅜㅜ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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