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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파도가 방파제를 덮쳤다. 비는 그치고 구름은 여전히 하늘 위 유유히 떠 다닌다. 공기가 습한 탓인지 손에는 땀이 축축히 베어들고 있었다. 너도 슬슬 손에 땀이 찰 만도 한데 반팔 끝 자락으로 하얗게 뻗은 팔은 굳게 나를 붙잡고 있었다. 밤 바다는 시원하기 그지없다. 파도가 치고, 물 비린내가 인중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은근슬쩍 손을 미끄러 지게 놓으려 했다. 너는 옆에서 또렷히 하늘을 쳐 올려다 보며 눈을 껌뻑거렸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앞에 봐.”
“아빠.”
“왜”
“달이 쫒아옵니다.”
너는 나에게 아빠라고 불렀으며 나를 곧 잘 따랐다. 너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 보니 까만 크레파스로 대충 칠해 놓은 것 같이 군데군데 하얀 자국이 있는 하늘에 덤벙 노란 물이 젖은 달이 가만히 빛나고 있었다. 너의 손가락 끝을 보니 조금씩 떨리고 있다. 달이 너를 쫒아 온다고 하는 발상은 모름지기 너와 같은 발상이었다. 너는 나와 덩치나 머리로 보았을 때 그저 친구정도로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그 머릿속이. 뛰고 있는 심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뛰어다니기를 좋아하는 초등학생과 같았다. 그래. 너는 달랐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 다른 사람들이라서 달랐던게 아니라 보통사람들과는 달랐다. 너는 순수를 뛰어넘어 백지장 수준이었다. 나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백지장이었고 그냥 손에 힘을 주어 찢을 수 있는, 아주 아른한 생명줄을 가진 그런 백지장이었다.
“달이, 아까부터 나를 쫒아옵니다. 우리 엄마 입니까?”
너는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었다. 너는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눈썹을 움직여 대답했다. 발걸음이 뚝 멈춰선 너의 발 끝에 작은 개미 한마리가 지나갔다. 너는 신기하다는 듯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네가 못마땅했다. 나도 슬슬 지쳐갔다. 동네사람들의 모진 말들과 눈꼬리에 달린 시선들을 피하고 싶지도 않았고 맞서싸우기는 더더욱 싫었기 때문이다. 교복을 입고 지나갈 때면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아주머니는 혀를 쯧쯧차시며 앞치마에 손을 닦으셨다. 부모 잃고, 정신나간 놈을 데리고 사는 놈. 밥은 잘 챙겨 먹는지는몰라. 아주머니의 동정은 이내 나에게 비수로 꽂혀 들어왔다. 그래 사실 너와 나는 부모님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너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고 너는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엄마는.”
“…….”
“우리 엄마는 지금 달 속에 있습니다. 아빠의 엄마도 달 속에 있습니다.”
“빨리 가자 너무 늦었어”
“달 속에 있는 엄마가 나를 따라옵니다. 김종인을 따라옵니다.”
너는 아랫입술을 당겨 꼭 물었다. 숨을 들이마셨다. 심장이 미친듯이 뛴다. 너의 말에 나는 온 몸에 힘이 다 풀렸다. 다시 한번 바람이 크게 일렁거린다. 나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정리할 틈도 없이 너의 손을 꼭 잡았다.
“아빠의 엄마도 따라옵니다.”
“김종인.”
“엄마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엄마가 땅을 밟지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
“맞아, 없어 없으니까 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
그만 입을 막아야 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더 이상 네가 엄마에 대한 말을 한다면 나는 이 자리에 주저앉아 낙심할 것같아서.
“달에서는 엄마 향기가 납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달을 맡아 봅니다. 그러면 달은 이제 나를 안 쫒아 옵니다.”
나는 버럭 화를 내며 너의 머리채를 휘둘어 잡았다. 나도 더 이상은 힘들었다. 아무런 일을 할수도 없는 지체장애인을 데리고 먹여살리기란 쥐약같은 일을 자처해서 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그냥 충동적으로 너를 우리집으로 데리고 왔고 너를 재워주고 밥을 주었다. 너는 적어도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가슴 전체에 뜨거운 물을 붓게 해줄 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자꾸 나를 쫒아옵니다. 엄마가 나를 잊지 못했습니다. 나는 엄마를 잠깐 잊었습니다.”
“없어! 죽었다고. 쓸대없는 소리 그만하고 집에가 제발.”
“달은 계속 나를 쫒아올겁니다. 향기를 가지고요.”
나는 맥아리 없이 잡고 있던 머리채를 놓고 바닥에 앉아 숨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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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