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는 또 왜이렇게 더운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였다. 이쯤 되면 집에서 에어컨을 틀만도 한데 엄마는 아직 이 정도 더위는 더위도 아니라며 엄살피우지 말라고 버럭 화만 내셨다. 어쩔수 없이 선풍기에 의지하며 침대에 아이스크림 녹듯 녹아있는데 뜨거운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김민석 나와]
집에서도 더워죽겠는데 뭘 또 나오래! 휴대폰을 픽 던지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미친듯이 진동이 오는 휴대폰에 짜증을 내며 액정을 쳐다봤다.
[아이스크림 사줄게 나와]
[좀 나와]
[나 집나왔어 갈 곳 없어.]
맨날 하는 짓이 가출이지 나는 꿈도 못꾸는데. 다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다고 가출은 일삼아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냥 집에 엄해서이기도 했고 집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엄마에게 귀딱지 앉게 들어서일까. 아무튼 그런 이유때문에 가출을 하지도, 하고싶지도 않았다. 나는 아이스크림이란 말에 조금 혹했고 또 어쩔수 없이 이새끼의 가출 때문에 밍기적 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금 나감.]
대충 입고있던 브이넥 흰 티에 검은 오부 반바지를 입었다.거실에 누워서 부채질을 하고 계시는 엄마를 보고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나 나갔다 올게"
"이 더운데 어딜 나가"
"김루한이 나 보고싶데"
"멀쩡하게 생긴애가 왜 그런다냐"
"뭐를"
"어쩜 보고싶어도 니가 보고싶냐고."
엄마의 말을 끝으로 나는 현관문을 잡아당겼다. 집 안에서 덥다며 찡찡거리던 내가 정말 바보같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비록 아파트 복도였지만 벌써부터 느껴지는 태양형님의 열정에 나는 입술을 축였다. 순식간에 입술에 있던 침이 증발하는 느낌이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
"김루한!"
"왜 시발 이제 쳐 나와 시발"
"존나 더워 존나 더워! 시발 존나 더워!"
말하는 것좀 봐! 망측하기도 해라! 어쩜 저렇게 말 한마디가 다 욕밖에 없담.
동네 슈퍼에 가니 하얀통에 투명 뚜껑. 김루한이 문을 드르륵 열더니 설레임 화이트를 두개 잡는다.
"드럽게 비싸네"
"아 겁나 더워"
"니네 아파트 계단가자 거기 시원하잖아"
우리집과 가까웠던 슈퍼에서 우리 집 까지 걸어오는데 아이스크림은 살짝 물렁할 정도로 녹아있었다. 사실 설레임은 살짝 녹아야 맛있지만 그래도 아이스크림인데 꽝꽝 언것도 나쁘지 않은데.. 아이스크림 표면으로 송글맺힌 물방울들을 손으로 털어냈다.
아파트 계단에 나란히 앉아 김루한 얼굴을 쳐다봤다. 구렛나루가 땀에 젖어 살에 달라붙어있었다.
"가출 왜 했냐"
"그냥"
"으휴."
설레임이 입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온몸입 부르르떨렸다. 이 까지 시릴정도 였다. 달기는 정말 단데. 정말..차갑다.
김루한의 대답에 허! 하는 소리까지 입에서 나왔다. 이유없이 집을 나오는 또라이가 지금 이 김루한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야 넌 왜 여친 안사귀냐"
"겁나 뜬금없네"
"아 빨리 대답해라"
벌써 쪽쪽 다 빨아 먹은거지 발쯤 홀쭉해진 설레임이 아쉬워 입만 다시고 있을 적 김루한이 걸어온 말이었다. 가출한 이유가 저거구나. 여자친구. 잘생긴 외모 덕분에 학교에서 꽤나 인기있는 김루한은 여자친구 사귀는 꼴을 못 봤다. 아마도 집에서 이런면에서는 엄하나보다.
"집이 엄해서"
"핑계도 가지가지다"
내 대답을 듣고 와하하 웃는 김루한이 은근슬쩍 설레임 쓰레기를 계단에다 던져버렸다. 하긴, 사실이긴 하지만 내가 말해도 조금 어이업는 대답이었다. 집이 엄해서 여자친구를 안사귄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러고 보니 김루한도 집이 엄해서 안사귀는건 아닐텐데.
"넌 왜 여자친구 안 사귀는데"
"너네집이 엄해서"
빨고있던 설레임을 입에서 떼고 천천히 김루한을 돌아보았다. 묵묵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김루한의 옆모습을 보고는 어색한 분위기에 와락 웃었다. 장난도 참. 사실 조금 당황했다. 절대 그럴일은 없겠지만.
"놀랬네. 장난 좀 진지하게 치지마라"
"장난같냐?"
설레임의 맛이 조금 혀끝에 맴돈다.
아 그래서 설레임이구나.
-
이거 다 여러분들 실화죠? 다들 이런 경험있잖아요 그렇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