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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석민] OFF ON OFF _ DECAF ESPRESSO | 인스티즈 

 널 보면 심장이 막 뛴다니까?

야, 구라 아니고 진짜야.















어떤 새끼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지랄을 떨어 댔다. 진짜 구라 아니고 너만 보면 마음이 뻠뻥해! 쥬씨 라지 사이즈를 쪽쪽 빨아 입가에 진득한 자국을 묻힌 초딩 같은 놈. 끈적이는 입술을 손등으로 쓱쓱 문지르고는 곧바로 티셔츠 중간 쯤 번지르르한 오렌지 물감을 남긴다. 혼자 페인트 칠 하셨냐고요. 인상을 구긴 채 한 발치 멀리 떨어지자 눈치 없이 달려든 초딩은 슬쩍 팔짱을 끼며 대답을 부추겼다.




— 지금 말해.

— 뭘?

— 우리 사귈지 말지.

— 또라이야, 넌 지금 그런 말이 나와?

— 안 나올 건 또 없자네.

— 티셔츠 하나 사달라고 일부러 닦은 거냐?

— 어예, 정답!




그래, 넌 웃고 있을 때가 좋아. 어디 가서 말하지 마. 그냥 입을 열지 마. 알겠지. 친구의 진중한 조언에 석민이 눈을 흘긴다. 이윽고 오락실로 들어서는 내 뒷덜미를 잡고 오렌지 향을 훌훌 풍겼다. 중대한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 은밀하고도 치밀한 분위기를 뿜으면서 말이다.




— 김여주.

— 이석민, 또 이상한 말 해라.

— 너 때문에 가슴 열라 뛰는데 만져볼래?













이 개새가.















OFF ON OFF
; DECAF ESPRESSO



















이석민과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짝이었다. 어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부모님이 친구니까 우리도 친구가 되어버렸다 뭐 이런 얘기다. 한겨울 장독에 묻은 고추장을 퍼먹으려다 된통 혼이 나면 석민의 집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었다.

우리 집 냉장고에 고추장 진짜 많아. 너 다 먹어. 고추장과 더불어 북어 포, 김치, 국물 내는 왕 멸치까지 비닐에 담던 녀석이었다. 이렇듯 뭐든 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집이 거덜 나더라도 퍼주던 석민은 어엿한 성년의 길로 들어선 지 두 해가 지났을 때 대뜸 내게 고백 했다. 2018년 설날이 채 가시지 않은 날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좋아한다. 이제부터 날 막지 말아줘. 이석민다운 방식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 시간마다 좋아한다 울려 댔다. 알람인가. 미친놈이 틀림 없었다. 어디 가서 거하게 차이고 나한테 화풀이 하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녀석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은 쳐다보지 않았다 악을 질렀다. 그날은 도서관 앞이었는데 5층에서 공부하던 학우들이 창문 너머로 쳐다볼 정도였으니 음량은 알만하지 않은가. 워낙 목청이 커 조금만 날을 세워 말해도 소리를 지르는 것 같달까.

갑자기 현기증이 인다. 과거 여행은 급하게 했으니. 스물 하고도 두 살이나 먹은 나는 현재 가쯔오부시 국물에 소바를 담그며 안정을 취했다. 역시 소바는 찍먹이지. 담먹 꺼져라. 맞은 편에 앉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자 스물 하고도 두 살이나 같이 먹은 초딩은 음음-, 거리며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거렸다.




— 감질나게 무슨 짓이야.

— 너보단 나아.

— 찍어 먹으면 면에 국물이 제대로 베지 않는다고.

— 널 봐, 소바가 무슨 잔치 국수냐?




작디 작은 종지에 안쓰럽게 구겨진 면을 들어 보란 듯이 원샷 원킬을 때린다. 소바는 말아먹기, 탕수육은 담가 먹기, 비빔밥은 야채 먼저 빼먹기 등 이석민은 희한한 식습관을 가진 존재였다. 아이라 칭하는 이유는 하는 짓이 진짜 애니까. 아아, 스물 두 살? 그건 올해 감기 약봉지에 돌돌 말아 버린 기억이 있다. 물론 출처는 이석민 본인에게.




— 오늘부터 우리 집 보수 공사 하거든? 시끄러워도 좀 봐줘라, 알겠지?

— 공사를 집만 해?

— 그럼 뭘 또 해?

— 맨날 좋아한다 어쩐다 정신 빠진 소리 하는 너는 괜찮고?

— 어허, 소바를 어서 대령하지 못 할까!




벨이 있음에도 테이블을 두드리는 녀석은 이쯤 되면 공사가 아닌 정밀 검사가 필요했다. 같은 아파트 바로 위층에 사는 석민은 나름 배려심 넘치는 주민이랍시고 1층부터 37층까지 공지를 돌렸다. 전단을 돌린 상태였다. 인간의 우애는 인권 중 기본이라 나를 다그친다. 우애가 아니라 정이겠지. 빠른 정정에도 들은 척 하지 않는 녀석은 소바 한 그릇을 더 비우고 나서야 계산서를 들었다. 김여주, 내가 이런 우애를 가진 사람이다. 녀석의 말을 빌리자면 대충 이런 표정이었다.




— 24번 테이블 계산이요.

— 아까 친구 분이 결제 하셨어요.

— 예? 벌써요?




딱 벌어진 어깨가 금세 쪼그라든다. 직원은 멋쩍은 듯 웃으며 자리를 떠났고 이곳의 승자인 나는 머리를 넘기며 유유히 입구를 빠져나갔다. 울상이 된 녀석은 안 봐도 뻔했다. 네가 계산을 왜 하는데? 오늘 특별히 한도 풀린 카드 가지고 왔는데? 이럴 거면 산지 직송 랍스터 먹을 걸 그랬어! 석민이 왕이 될 팔자였다면 분명 궁에 가기 싫어 궁시렁대는 불만 많은 역대 지도자가 됐을 것이다. 상투 틀고 징징대는 녀석을 상상하자 웃겨 죽을 것 같다. 보도 블록을 밟으며 내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오던 석민이 손을 잡는다. 휙-, 뒤들 돌아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이 숨을 참는다. 좋아한다고 그렇게 고백하더니 눈도 못 마주치고. 애다, 애야.


— …… 뭐…….

— 네가 매일 돈을 내다시피 하니까 그런 거잖아. 너 때문에 지갑을 못 바꿔요. 쓴 적이 없어서.

— 다 사주고 싶은 내 맘을 모르겠어? 아직도?

— 네가 무슨 내 통장이냐?

— 그래! 까짓것 해준다 내가! 이석민이!

— 그 말이 아니잖아 새끼야!




나 말고 널 위해서 쓰라고 좀! 퍽퍽 등을 내려치며 다그쳐도 녀석은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길거리에 차고 넘치는 카페 중 제일 큰 문을 열어 내 등을 그대로 밀어 넣었다. 가라! 피카츄! 너의 주특기 아이스 모카 두루치기를 써! 커다란 목청 덕분에 모든 이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향해있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허리에 두른 셔츠를 풀어 얼굴 가리기에 급급했다. 구석에 냉큼 몸을 숨겨 녀석과 남인 척, 아무 사이도 아닌 척, 문자 하나 오지 않은 휴대폰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바쁜 백수 역할을 맡는다. 눈치 없는 녀석은 코를 훌쩍이며 내게 다가온다. 저거 봐라, 그새 또 감기 걸렸구만.




— 야.

— 쪽팔리지?

— 너 이번 주에 소개팅 하냐?

— 어떻게 알았어?

— 우리 엄마가 소개 시켜 주니까 알지 멍청아.

— 네가 더 멍청이 같거든?




모카 두르치기 어쩌고 즐거워하더니 이젠 핸드폰만 손에 쥐고 말이 없다. 인제 보니 타이밍을 잡고 있었던 것 같았다. 물어 볼 타이밍. 소개팅을 나갈 건지 말 건지. 상처 받은 듯한 얼굴을 보니 여태 좋아한다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닌 건가 싶기도 했고. 그때, 녀석은 다리를 꼬더니 허세 가득한 자세를 취하며 눈썹을 꿈틀댔다. 턱을 바짝 올리는 걸로 봐선 절대 기죽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석민에게 인생 최대의 결단이 내려진 것이다.




— 나 요즘 에습프레-쏘 마신다.

— 뭘 마신다고?

— 인생의 쓴맛을 겪어 본 사람들만 안다는 에씁- 쁘레쏘-.

— 네가 에스프레소를? 미쳤냐?

— 내가 알아봤는데 너랑 소개팅할 사람 커피 못 마신대.

— 그래서?

— 너 커피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잖아.

— 근데?

— 이제부터 나 좋아하면 되겠네.




정녕 미친 게 확실했다. 소량의 카페인에도 심장이 벌렁거린다던 석민은 당당히 원액을 주문하러 카운터로 사라졌다. 혹여 에스프레소를 초콜릿 머시기 따위와 헷갈린 건 아닌지 재차 확인해도 커피 원두의 향이 마치 자신을 닮았다 더욱더 미쳐가는 중이었다. 작은 컵 두 잔을 들고 총총 달려오는 석민의 이마에 식은 땀이 흐른다. 저 봐, 구라쟁이.




— 억지로 마시지 말고 내놔.

— 소개팅 안 가면.

—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 내가 진짜로 널 좋아하니까.




장난기는 온데간데 없고 눈만 지그시 바라보는 녀석만 남았다. 정말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야? 네가? 나를? 왜? 단숨에 벌건 얼굴로 에스프레소를 거덜 낸 녀석이 잘게 호흡한다. 빠르게 뛰는 녀석의 심장이 내게 옮겨 붙는다. 덥석 손을 잡고 짧게 숨을 몰아 쉬는 기색이 꼭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정말 미쳤나 봐. 아니, 나 말이야. 나는 왜…….










[세븐틴/석민] OFF ON OFF _ DECAF ESPRESSO | 인스티즈

 — 너랑 같이 있으면 계속 이렇게 뛰어.


— …….

— 나 안 좋아해도 되니까 이번엔 나가지 마.

— …….

— 아니, 나가는 건 네 맘이긴 한데…… 그래도……. 그래도 안 나가면 안 돼?





대환장 쇼 주인공 이석민은 뿌리채 날 흔들고 있었다. 저 투박한 고백과 왕 소심쟁이처럼 말까지 흐리는 녀석에게 내가 왜……. 조심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던 석민의 입술이 굳게 닫힌다. 잡은 손도 다시 멀어졌다. 울상이 된 녀석이 입술을 꾹 깨문다. 간간히 콜록거리는 병약함도 잊지 않는다. 빤히 자신을 훑는 나와 눈을 맞춘다. 서로가 말이 없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만 배경이 될 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잠시 후, 내 손에 들린 두 개의 잔 중 하나가 석민의 앞에 놓인다.




— 디카프 에스프레소. 카페인 없는 커피.

— …….

— 사실 디카프 마시는 사람 좋아해.




내 말에 녀석이 눈을 질끈 감고 잔을 든다. 잔뜩 쫄은 얼굴에 하마터면 뿜을 뻔했다. 석민은 물로 입을 헹구며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에도 푹 얼굴을 숙여 웃음을 참으면, 그제서야 나를 따라 웃는 바보 같은 녀석이었다. 나중에 시킨 카푸치노에도 입을 대더니 이게 그나마 낫다 칭찬의 박수를 보냈다. 부드러운 우유 거품이 오뚝 솟은 코에 닿는다. 아무것도 모른 채 훤히 웃는 녀석에게 열린 내 세상의 문. 언제부터였는지 나도 모를 만큼.




— 이리와 봐.

— 왜?

코에 뭐 묻었어.

— 우리 사겨?

— 뭐?

— 뭐 묻어서 떼어 주는 건 연인들만 하는 거잖어.




녀석은 얼굴로 날아온 티슈를 집어 들고 코를 벅벅 닦았다. 그럼에도 웃는 건 멈출 수가 없는지 내 눈치를 보며 슬쩍 카푸치노에 다시 입을 댄다. 또다시 묻은 거품. 뭐든지 다 대충대충, 이러니까 신경이 쓰여 안 쓰여. 이번엔 티슈가 아닌 손가락이 녀석의 얼굴로 향한다. 뭐든 너무 애타게 하면 인간 사이에 우애 없어보이니까. 손끝에 매달린 우유 거품, 토끼 눈으로 바라보는 녀석, 그리고 내 마음과 알맞은 음악까지.










— 오늘부터 우리 1일.

—  ……어?

— 여보 자기 하자고.


















+

[세븐틴/석민] OFF ON OFF _ DECAF ESPRESSO | 인스티즈 

 — 여보.

 — 맛 들렸지.

 — 자기.

 — 그만해.

 — 나 좀 봐봐. 

— 왜 갑자기 그렇게 봐?

 — 난 항상 너 이렇게 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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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제가 방금 넘어졌는데,,, 그것은 선샌님 가방끈,,,
5년 전
독자2
아 작가님 진짜 사랑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작가님 글 진짜 최애글이라니까요 저 진짜 외울만큼 읽었서여.....ㅠㅠㅠㅠㅠㅠㅠㅠ 그전에도 좋았는데 더 좋아질 수가 있군여!!!작가님 ㄹㅇ 천재십니다 ㅜㅜㅜ 금손ㅜㅜ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작가님 글 다시 읽는 나 행복해....❤
5년 전
독자3
쩜 죽고싶내요,,,,,,,
5년 전
독자4
석민이 설렌다.....
5년 전
독자5
여보님...작가님...자기님....사랑한다고 제가 말했던가요 사랑합니다 오조오억번을...
5년 전
독자6
미쳐따............. 이렇게 맘에 드는 글 오랜만이예요 ㅠㅠ 감사합니다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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