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눈에 담을 때마다 잊은 줄 알았던 감정이 새삼스럽게 흘러나와 당황스러웠던 때도 한 두번이 아니지만 그는 오늘도 그녀의 손을 한 번 꼬옥 잡아주었다.
그리고 잠깐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엇다 내뱉을 즈음에 그녀가 손을 마주잡아주는게 느껴져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슬며시 떠 그녀를 바라보며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입을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 그 날 기억나? 우리 처음 만난 날 ”
첫번째 이야기
★
솔직히 말해서 그 날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조금 어렴풋해. 뚜렷히 기억나는 건 추운 겨울이었고, 너를 만난 일 정도?
나 기억력 좋은거 알잖아. 근데 그 날에 대한 기억은 진짜 너무 흐리게 남아있어서 네가 듣다 보면 또 삐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기억나는대로 말할테니까 들어줘 . 나중에 너한테도 하나하나 다 물어볼거야, 그 날 기억 나느냐고.
그 날 추웟던 건 어떻게 기억하냐면 내가 누나들이 그렇게 입고 나가면 쪽팔리다고 해도 추워서 패션이고 뭐고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따뜻하게만 입어야겠단 생각 하나에 옷을 진짜 엄청 껴 입엇었거든.
현관문 열고 나오기 전에 잠깐 전신거울을 봣었는데 내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여서 결국 갈아입고 나왔는데 예상대로 더럽게 추웠어.
그래서 기억해, 더럽게 추운 날로.
여하튼 멋 부린답시고 갈아입고 나와서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 기다리고 있는데 한참 기다린 것 같은데도 버스가 안 오는거야.
마냥 기다리기도 뭐 해서 택시라도 잡을까 하다가 그럼 그동안 버스 기다린 시간이 억울해져서
한 5분만 더 기다려보자 하고 손이라도 녹이려고 양쪽 주머니에 손을 넣고 가만히 기다렸어.
그런데 5분이 지나도 안 오는거야.
그래서 어쩔까 하다가 지금 택시 잡아서 가면 5분 더 기다린게 괜히 억울해질 것 같아서 주머니에 손 넣은 채로 무작정 다음 정거장까지 걸었어.
평소 자주 타고 다니던 버스라서 다음 정거장이 어디인지 정도는 알고 잇었으니까.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다음 정거장이 코 앞으로 보이기 시작해서 여유로워진 마음에
전보다 느리게 걷기 시작했는데 옆으로 기다리다 못해 찾아나서기까지 한 버스가 지나가는거야.
넋이 나가서 버스 뒷번호판만 보고 있는데 코 앞에 있던 정거장에 잠깐 멈췄다가 태울 사람이 없으니까 그냥 그대로 출발하려는거야.
그 때 누가 횡단보도를 급하게 건너오더니 이미 그 다음 정거장을 향해 떠나는 버스를 향해 손짓을 크게 하다가
좀 전에 횡단보도를 전속력으로 건넌게 숨이 찻는지 정거장에 있는 벤치에 주저앉다시피 해서는
떠나는 버스를 잡으려 했던 열정은 어디갓는지 그냥 그대로 고개를 푹 수그려버리더라고.
당연히 버스는 이미 떠나버렷고.
버스는 이미 떠낫으니 급할 게 없어진 나는 앞에 떨어져 있는 돌맹이를 발로 차면서 천천히 걸어서 정거장으로 향했어.
정거장에 도착해서 보니 아까의 그 열정적인 사람이 아직까지 벤치에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머리카락이 긴 걸 보곤 여자였구나 싶어서 놀랏어.
달리기 속도가 진짜 엄청낫었거든.
사람은 위기 상황이 오면 초능력이 발휘된다고 하던데, 이 여잔 버스가 떠나는게 위기 상황이었나 싶어서 웃기기도 했고.
고개를 수그리고 있어서 뒷통수밖에 안 보이니 얼굴은 어떨까 하고 상상해보다가 찬 바람이 훅 불어와 손을 들어서 비니를
꾹 눌러 대강 머리 상태 정리를 하고 나서야 추운게 느껴져서 옷깃을 여미고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몸을 한 번 떨엇었어.
근데 그 때 그 여자가 말을 걸어온거야.
“ 그렇게 입으니까 춥지. ”
아니다, 말을 건 게 아니라 혼잣말 한건데 내가 귀가 좋아서 들었던거엿었어.
초면에 저게 뭔 소리인가 싶어서 벤치 쪽을 내려다보니까 지가 말한 게 소리가 컷던건 알았는지 내 눈치를 보다가 눈이 딱 마주친거지.
눈이 마주치자마자 놀랏는지 놀란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데 그게 웃기더라고.
“ 저 말한거에요? ”
검지손가락으로 내 가슴팍을 가리키면서 물어보니까 그 여자는 본인 입을 손바닥으로 막더니 아니라고 고개를 좌우로 젓는거야.
근데 그게 또 재밋더라. 그래도 추운건 추운거니까 손은 주머니에 넣고 다시 물어봤지.
“ 저 말한거 맞는 것 같은데? ”
“ 아니라구요!! ”
놀리듯이 말꼬리를 늘이면서 물어보니까 입을 가렷던 손바닥을 떼더니 날 째려보면서 외쳐오는거야.
그리곤 또 지가 말한거에 지가 놀랏는지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고선 내 눈치를 보는데 ..
거기서 느꼇어, 택시를 안 탄게 다행이라고.
그래.
그 여자가 너야, 별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