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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락비/직경]Belated

w. Tabby

얼마 전에 걸려온 너의 전화 한 통. 어딘지 모르게 무거웠던 너의 목소리. 한차례 목을 가다듬더니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잠깐... 만날래?' 라는 말이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좋아서? 기뻐서? 아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굳어버렸다. 사람이 직감이란게 있으니까. '어디서 만날래?' 애써 밝은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며 약속장소를 잡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끊었다.

오랜만에 보는 너의 얼굴인데 왜 이런 표정으로, 이런 분위기로 만나야 하는걸까. 나까지 덩달아 긴장하게 만드는 네 표정에 괜히 침 한번 삼키고 너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무슨 얘기를 하려고...

경이 지호의 맞은편에 앉자마자 지호가 결심 한 듯이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나...결혼해. 너한테 제일 먼저 축하받고 싶어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이런 건가. 결혼. 네가 내뱉은 그 단어가 내 머릿속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너에게 오래된 애인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내 눈에 보인 그녀를 대하는 너는 진심이 아니었어. 그런데 결혼을 한다고? 그러면. 그러면...

"결혼....그래, 결혼..하는구나. 축하한다."

"어...고맙다."

지호의 대답을 끝으로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위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둘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알 수 없는 적막만이 감도는 둘만의 세계를 깨버린 건 지호였다.

"한 달 남았어. 결혼식."

"....한 달? 알았어. 꼭 갈게. 미안한데 내가 지금 몸이 좀 안 좋아서 가봐야겠다."

나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말들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그게 거짓말은 아니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으니까. 한 달 남았다고? 결혼식이? 우지호와 결혼.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그런데 왜 너의 결혼소식에 나는 이리도 이상한 반응을 내보이는 걸까.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한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데 왜.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늘어져 나왔다. 경은 애써 떠오르는 질문들을 떨쳐내려 노력했다.

지호의 뒷말을 들을 새도 없이 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남아있던 지호나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경이나 심란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지호는 경이 나간 문을 하염없이 쳐다보다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내들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다 언젠가 경이 '너 담배 한번만 더 펴봐. 진짜 나랑 끝이야!' 라며 소리쳤던 귀여운 협박이 생각나 다시 담배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경이 협박했던 그 순간부터 지호의 주머니에 있는 담배 개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왠지 폈다가는 정말 경이 떠나갈 것 같아서.

그렇게 헤어진 뒤 서로 아무 연락도 없기를 한참, 시간은 둘을 배려해주지 않고 빠르게 흘러가 어느새 지호의 결혼식 코앞으로 다가왔다. 달력을 보니 어느새 3월 16일. 지호의 결혼식이 하루 남은 날이었다. 약 한 달 동안 경은 나름 잘 지냈다고 생각했다. 초췌해진 얼굴과 집안 꼴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지만.

달력을 보고 정신을 차린 경이 천천히 집안을 둘러보다가 마지막에 시선이 향한 곳은 거울이었다. 자신의 지쳐있는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던 경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우선 집안부터 치우자."

거울을 보며 혼잣말을 한 경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집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쓰레기도 내다버리고, 빨래도 개어서 넣어놓고, 설거지도 하고. 한참을 걸려 집안을 치우고는 자신도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나와 한층 개운한 표정으로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데 갑자기 진동이 울렸다. 문자인줄 알았는데 계속 울리는걸 보니 전화인가 싶어 팔을 뻗어서 발신자가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누구세....아, 왜...전화했어?"

상대방이 아무 말도 없자 장난인가 싶어 발신자를 확인하니 경을 놀리듯이 '지호'라는 두 글자가 화면에 떠있었다. 도대체 왜...

[...문열어줘. 집 앞이야.]

경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우리 집 앞이라고?' 하고 되물었다. 지호는 작게 웃고서는 '빨리 문열어줘 밖에 엄청 추워.' 하고 답지 않게 재촉을 해댔다. 경은 재빨리 전화를 끊고 현관으로 달려가려다 거울 앞에서 옷매무새와 머리를 정리하고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왜 이렇게 늦게 여냐. 나 얼어 뒤지라고?"

"그냥 얼어 죽지 그랬냐. 들어와. 야,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

"맥주. 술이나 한잔 하자고."

평소와 다름없는 지호의 모습에 경은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고마웠다. 지호가 평소처럼 대해주지 않았으면 어떤 분위기가 됐을지 알기 때문에. 그때의 어색했던 분위기가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둘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양손 가득 각종 안주와 맥주를 들고 자연스럽게 거실에 와 술판을 벌여놓는 지호를 보고 경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아주 집주인 납시셨네요.' 하고서 지호와 마주앉았다.

한잔 두잔 마시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취해갈 쯤에 지호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생각 나냐?"

"당연하지. 네가 나 싫어했었잖아. 다 기억한다고."

"쪼끄만게 나한테 와서 '내 이름은 박경이야! 친하게 지내자!' 이랬었는데 친해지고 싶었겠냐?"

"야! 그때는 너도 쪼끄맸어! 나중에 네가 확 커버린거지!"

"쪼끄만 애는 화내지 마시고. 벌써 몇 년이냐. 14년? 그 동안 별 일 다 있었는데."

"벌써 그렇게 됐나? 진짜 징글징글하다. 옛날에 생각나? 내가 여친 사귄다 그러니까 네가 만나는 족족 훼방 놓은거? 내가 그때 얼마나 화났는데."

"나한테 난리를 쳤었지. 왜 그러냐고. 대신에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너 내 여친한테 나 게이라 그랬잖아. 그때 씨발 그 소문 퍼졌으면 나는 매장이었어. 간도 크다 진짜."

"큭큭. 맞어 그랬었지. 너 그거 기억해야 돼. 너 교통사고 났을 때 내가 수업 필기 다해주고 맨날 와서 병수발 들어줬던거. 지금 생각해보면 뭐가 이쁘다고 해줬는지..."

"야 너 웃긴다. 나 퇴원하고 나서 한 달 내내 부려먹었던건 기억 안나냐? 등하교길에 가방 들어줘, 매점에서 빵 사다줘, 다리 아프다 그러면 업어줘. 차라리 병수발을 들고 말지."

"내가 해달라 그랬냐? 네가 고맙다고 해준거지."

"지랄 말고. 야, 나 같은 친구 또 없지?"

"너 같은 새끼가 또 어디있겠냐?"

"하긴."

"근데 아쉬워서 어쩌냐. 그 친구가 결혼을 한다네."

"......"

"...야, 장난이야 장난. 뭘 그렇게 표정을 굳히냐 하하..."

경의 어색한 웃음소리가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에 경은 이 상황이 매우 부담스럽고 당황스러웠다. 재빨리 다른 얘기로 화제를 바꾸려 했지만 지호의 눈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거야.

정적을 깬 것은 지호의 말소리였다.

"박경."

"....."

"...결혼, 관련돼서 할 얘기 있는데."

"...뭔데 그래."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말인데. 잘 들어."

"....."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지호가 입을 열었다.

"....널 만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난 너만 있으면 뭐든지 다 좋았고 그 순간순간이 행복했어. 날 보고 웃어주는 네가 좋았고 네가 울 때면 옆에서 항상 위로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니까.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어. 지금 지키고 있는 친구라는 자리마저 없어질 까봐."

"......"

"그래서 지금까지 친구란 이름을 방패로 네 주윌 맴돌고 너의 옆자리를 지키려고 했어. 네가 나에게 의지하고 털어놓고 기대는게 너무 좋았어.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너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 것 같아서."

"......"

"내 인생중 반을 넘게 너와 함께 했고 너를 바라봤어. 너와 함께한 지금까지의 시간들은 나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고 나의 재산이야."

점점 또렷해지는 너의 목소리. 내 시야에서 점점 뿌옇게 흐려지는 너의 얼굴.

차오르는 눈물을 참으려 눈을 꼭 감았다가 다시 떴다.

"박경."

"....."

" ....처음 널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

"사랑해."

지호의 마지막 한마디로 인해 드디어 모든 것이 풀렸다.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의 이상했던 감정, 어지럽던 경의 머릿속도, 불편했던 분위기도. 지금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느껴왔던 서로의 감정.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았던, 친구 그 이상으로 느낀 너란 존재를 드디어 머리로 받아들였다. 언제부터니. 언제부터 넌 나에게, 난 너에게 친구가 아니었던 거야.

하나를 인정하고 나니 나머지는 쉬웠다. 나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자 난리를 치며 훼방을 놓았던 너. 사실 그거 아니. 그 여자 친구는 네 질투를 보고 싶어서 사귄거라는거. 서로의 연애사에 간섭하며 끝끝내 깨지게 만들었던 너와 나. 내가 해달라고 했던 것들은 표정을 찌푸리면서도 다 해주던 너. 내가 아프거나 하면 화부터 내던 너. 화를 내면서도 손수 만든 죽과 약을 갖다 주던 너. 나에게 만큼은 한없이 다정하고 친절했던 너. 날 사랑해준 너. 그런 널 사랑하는 나.

인지할 새도 없이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고 코끝이 찡해졌다. 결국 경은 무릎을 끌어안아 그 안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다.

지호야. 진작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이제서야 확실히 들은 너의 마음과 확실해진 내 마음에 다시금 머릿속이 터질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는 기쁨. 그리고 불안감. 불안감? 왜?

"미안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런 말 하는 것도 미안하고, 지금까지 속여서, 말 안해서 미안해. 이제는....안되겠지, 네 옆에 있는 것도."

"...왜.."

"....?"

"...왜..그걸 이제서야...."

"경아..."

"진작 말해줬으면...그랬으면..나도...나도 너...."

경이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서럽게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다. 왜 이제서야 말하는 거야. 나도 너처럼. 지금까지 너를...

뒤늦은 고백. 너무 늦어버린 고백. 내일이면 다 소용없어질 말들, 마음들, 고백들. 뒤늦게 알아버린 서로의 마음에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었다. 나도 널 정말 사랑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너는 내일이면... 내가 너를 붙잡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밝은 너의 미래에 내가 오점이 되지 않을까. 너의 창창한 앞날, 화목한 가족, 행복한 생활, 그리고 그와 어울리지 않는 네 옆의 나. 나는 너에게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경아...."

"....."

"우리 그냥."

"....."

"도망 가버릴까."

혼잣말 하듯 내뱉는 지호의 말에 경이 고개를 들고 지호를 쳐다봤다. 동그랗게 커진 눈에는 아직도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코끝은 빨개져있었다.

"저 멀리,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

"아니면 외국으로 떠날까. 네덜란드로 가서 결혼이라도 해버릴래."

"....."

"너만 있으면 다 버릴 수 있어. 내가 가진 지위도, 명예도, 친구들도,"

"....."

"가족들도. 전부 다."

진심이 담겨있는 너의 눈빛을 보고, 너의 말을 듣고 나는 알 수 없는 느낌에 몸을 떨었다. 기쁨. 가족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나를 사랑해주는 너에 대한 기쁨. 그리고 두려움. 내가 이런 감정을 너에게 받아도, 너에게 느껴도 되는가에 대한 두려움. 지호야. 내가 네 인생을 망칠 것 같아.

"장난치지 마. 지금 그럴 상황 아니잖아."

"장난? 내가 지금 시시한 농담 따먹기나 할 것 같아?"

경의 머릿속은 더욱 더 혼란스러워졌다. 여기서 경이 떠나버리자고 하면 진짜로 갈 지호였다. 그러면 그곳에서 지호와 둘이 잘 살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지호는 누군가의 애인이자 자랑스러운 아들, 좋은 친구이다. 갑자기, 그것도 결혼식 전날에 사라져버린다면? 파장은 만만치 않게 클 것이다. 그래도 자신과 지호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내가 너에게 짐이 되는 것 같아. 나만 네 인생에서 빠져주면 모든 것이 다 완벽해지잖아.

한참을 말이 없던 경이 지호를 향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모든 걸 다 버릴 수 있다고...?"

"....."

"그러면,"

"....."

다 거짓말. 지금부터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전부 다 거짓말이다. 널 위해 하는 거짓말. 너는 속여도 내 마음까지는 속일 수 없는 거짓말. 사실은 네가 알아채주길 바라는 거짓말.

"날 버려."

"뭐...?"

"후회할거야. 너도 후회할거고 나도 후회할거야."

다 안다. 너도, 나도 후회하지 않을거라는거.

"힘들겠지."

힘들어도 너와 함께 있는 그 시간이 내겐 하늘이 주신 선물 같을 거야.

"호적에서 파일지도 모르고 가족들도 보고 싶을거야."

네가 내 가족이 될텐데 그게 무슨 걱정일까.

"그리고 나 때문에 너한테 피해가는거 싫다. 나랑 가면 다 놓아야 하잖아. 난 그런 거 싫어."

경이 말을 계속 이어가는 와중에 지호가 경에게 물었다.

"그럼 넌, 내가 이대로...이대로 결혼해도 괜찮아?"

"......"

아니. 전혀 괜찮지 않아. 어떻게 그래. 그래도 대답할 수 없는 이유는. 내가 널 잡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결국 너를 더 힘들게 하는 일인 것 같아서. 널 위해서야. 난 평생 이렇게 살더라도 너만은 예쁜 아내, 귀여운 자식들 낳고 잘 살아야지. 널 위해서, 널 위해서...

"너는, 넌 내가 결혼해도..."

"그만 집에 가라. 내일 결혼할 사람이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되냐."

경이 지호의 말을 끊어버리고 말했다. 그 말을 하는 경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와 동시에 지호의 표정도 굳어졌다.

"박경,"

"내일이잖아 결혼식."

"내 말 들어봐,"

"안나가봐도 돼? 시간 늦었..."

"사랑한다고 했잖아."

이번엔 지호가 경의 말을 끊고 말했다. 물기어린 목소리에 경이 흠칫하며 지호를 쳐다봤다. 지호의 표정은 어느 때 보다도 절실했고 슬펐다. 경은 그런 지호를 보며 더 슬픈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다시 굳은 표정으로 얼굴을 바꾸었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나도 말했잖아, 날 버리라고. 그럼 여기서 어쩌라고, 좋다고 너 따라서 야반도주라도 하자고? 그게 당장 가능할 것 같아? 만약 어디로든 간다고 쳐, 그러고 나서는 어쩔 건데. 너랑 나만 그렇게 떠나버리면 어쩔 건데! 제발 현실적으로 생각해. 가능한 걸 말하라고."

경은 속으로 울고 또 울었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상처가 될 말을 내 입으로 내뱉고 있는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아. 내가 너에게 이렇게도 모질게 굴어야 하는 걸까.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혔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한 달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니, 그 보다 훨씬 전으로 돌아가서 사랑한다고 너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면 적어도 이런 상황은 피했겠지. 이렇게 후회할 짓은 하지 않겠지. 그럼에도 경의 입에선 자꾸만 잔인한 말이 나갔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그러면 뭐가 달라져? 네가 날 사랑한다고 수십, 수천 번을 외쳐도 이 상황에선 달라질 것 하나 없어. 너는 내일 결혼할거고 난 옆에서 그런 널 지켜 볼 거야. 네가 날, 내가 널 사랑해도 결혼이 내일이고 그 결혼의 주인공이 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이젠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시 돋친 말들이 나간다. 이건 내가 나에게 하고 있는 말들이다. '내가 지금 너에게 사랑한다고 외쳐도 달라질 것은 없다. 내일 너는 결혼 할 것이고 나는 옆에서 지켜봐야한다.' 너를 잡으면 안된다는 것을 세뇌시키는 과정.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너를 잡아버릴 것 같으니까. 부탁이야. 상처받지 말아줘. 널 향한 말이 아니야. 병신같이 너를 붙잡으려는 나를 향한 말이야. 내 말 듣지마. 너에게 상처를 주고싶지 않아.

"....경아."

"집에 가. 내일 결혼하잖아."

지호에게 쏘아 붙이던 경이 한층 누그러진 기세로 지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경은 지호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얘기하려 했지만 입가는 파르르 떨렸고 눈은 울고 있었다. 지호는 그런 경을 보며 더 무슨 말을 하려다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지호가 경에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좋아한다고 했잖아. 너도 날 사랑한다고.."

"...미안."

경이 진심을 담아 한 그 한마디에 지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는 왜....끝까지 모질게 말하지 왜, 마지막에 이렇게... 지호가 그대로 뒤를 돌아 집을 나갔다. 혼자 남은 경은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결국 너를 보낸 건 나다. 잡을 수 있었음에도, 너와 사랑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너를 보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너와 그녀가 백년가약을 맺겠지. 그녀의 자리가 어쩌면 내 자리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또 쏟아졌다. 너에 대한 내 사랑도 함께 쏟아져 버렸으면 좋겠는데 눈물이 나간 빈자리에 내 사랑이 차오르고 있어. 줄어들지를 않아. 점점 늘어만 가. 이젠 너를 놓아줘야 하는 걸까. 이제야 인정한 내 마음을 이렇게 빨리 버려야 하는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딱 하나. 처음부터. 처음부터 잘못된 관계. 남들과 다른 감정을 가진 것 자체가 잘못이다. 아직 세상은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줄 만큼 착하지 않다. '다르게'가 아니고 '틀리게'본다. 애초에 '틀린'사랑을 한 것 자체가 손가락질 받고 비난받을 일이다. 이런 세상에 태어난 게 잘못이고 이런 감정을 가진 게 잘못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다면 우린 행복했을까. 조금만 더 착한 세상에서 태어났다면 우린 함께할 수 있을까. 부질없는 질문들이 머릿속을 헤엄쳐 다녔다.

경이 눈을 뜨자 절대 올 것 같지 않았던 아침이 와있었다. 새삼 실감이 나 또 눈물이 날 것 같아 경은 애써 다른 생각들을 하며 욕실로 향했다.

예식장 앞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진짜 정신을 놓고 있었나보다.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벌써 도착이라니... 입구에는 익숙한 얼굴들도 몇 찾아볼 수 있었다. 말을 걸어오는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도, 예식장을 안내해주는 안내원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도 믿기지 않아, 이 모든 상황이. 이 사람들은 널 축하해주러 온 것이고 이 화려한 건물이 널 위해 쓰이고.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보고 경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에 있는 거울을 보며 눈은 붓지 않았나, 혹시나 눈가가 빨개지지 않았나. 지호를 보면 웃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웃는 연습도 한번. 옷매무새를 다듬고 나가려는 순간 문 앞에서 지호와 마주쳤다. 경이 당황해 뭐라 할 새도 없이 지호가 경의 손목을 붙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아무리 지호에게 소리쳐도 지호는 듣지 않았다. 잡힌 손목을 빼내려 할수록 지호는 경의 손목을 쥔 손에 힘을 더 꽉 주며 조용히 어디론가 끌고 갈 뿐이었다.

그렇게 지호와 경이 도착한 곳은 건물의 옥상이었다. 허술하고 낮은 난간이 위험해 보이는 조용하고 넓고, 높은 옥상. 옥상에 도착해 문을 잠그고서야 지호가 경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손목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경은 이 상황이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급작스러워서 할 말도 찾지 못하고 부은 손목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지호는 여기까지 끌고 와놓고 난간에 기대어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고 경은 그런 지호를 보고만 있었다. 그대로 시간은 흘러 결혼식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지호가 입을 열었다.

“잠시 후면...시작해. 난, 이제라도 가고 싶다. 너랑 같이.”

“우지호...”

“생각...안 바뀌었냐.”

“지호야.”

“......”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지호를 쳐다보며 경이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려가자.”

“...이게 마지막이야. 지금 내려가면, 더 이상...”

“다들 너 기다리겠다. 빨리 내려가.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되잖아.”

“박경!!”

“어제 끝난 얘기 아니었어? 제발 정신 차려. 이제 다 끝났어. 도망 칠 기회도 끝났고, 네가 이런 데서 여유부리고 있을 시간도 끝났고,....너랑 나도 끝났어. 이미 늦었어.”

경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호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런 지호를 보는 경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하지만 널 위해서. 네 행복한 미래를 위해서. 지금 아프더라도 나중엔 지금 아픈 만큼 행복할 거야. 지금은 울어도 나중엔 웃을 거야. 너에게 짐이 되기 싫어. 이렇게 해야 네가 행복할 테니까. 경이 눈물을 참으며 지호에게 말했다.

“내려가. 가서 너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도 맞고 결혼식도 무사히 끝내. 이럴수록 더 힘들어져 너도, 나도.”

“....마지막으로 하나만 물을게. 날 사랑해...?”

“......”

끝까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은 경에 지호는 모든 걸 포기한 듯이 일어나 천천히 옥상 문으로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딛는 지호를 보며 경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지호가 한 걸음 걸으면 경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지호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고 경은 그제야 펑펑 눈물을 쏟았다. 이 눈물을 다 흘리고 나면 네가 잊혀 질까. 그 때가 되면 널 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평생 울 만큼을 지금 한 번에 다 운 것 같다.

눈앞에 있는 너를 내손으로 직접 떠나보냈다. 잘한 걸까. 너에게 이다지도 큰 상처를 준 것이 잘한 걸까.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다 내가 잘못했다고 빌며 너에게 달려가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그리고 너의 품에 꼭 안기며 사랑한다고, 떠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건너온 강이다. 매일 아침 눈 뜨면 네가 보였으면 좋겠고 눈감을 때 너를 보며 잠들었으면 좋겠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서로 좋아하면, 사랑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이제야 고백한 마음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다니. 조금만 더 용기 내볼걸. 조금만 더 일찍 말할걸. 조금만 더... 후회는 또 다른 후회를 낳고 후회는 눈물을 낳는다.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난 사랑이 불쌍해 자꾸만 더 눈물이 나온다.

가진 적도, 잡아본 적도 없는 너를 보냈고, 놓아줬다. 가슴을 난도질  당한 것처럼 아프다. 너는 생각보다 내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나 봐. 이렇게 아플 수도 있구나 싶어. 눈앞에서 멀어졌으면 마음에서도 멀어지지 왜 내 마음속 더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아, 왜. 심장을 도려내버리고 싶어. 너를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어. 가지 말라고 잡아도 모자를 판에 모진 말을 하며 너를 보낸 내가 한심하고 원망스러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너에게 닿지 않을 외침. 그 외침은 공중으로 흩어져 아무 소용없는 말이 되어버렸다.

지호는 옥상을 나와 계단에 걸터앉았다.

끝. 끝이다.

주머니를 뒤져 담뱃갑을 꺼냈다. 귀여웠던 경이 생각나 또 웃음이 나왔다.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였다. 머릿속에 지나가는 한 장면.

'너 담배 한번만 더 펴봐. 진짜 나랑 끝이야!'

응, 끝이야. 끝내고 싶다. 이 담배를 마지막으로 너와 끝나고 싶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담배가 줄어가는 만큼 너에 대한 내 사랑도 이렇게 줄어가기를...

담배가 경이라도 되는 것처럼 앉은 자리에서 담뱃갑을 다 비워낸 지호가 일어나서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갔다.

경이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꾸만 나오는 눈물을 계속해서 닦으며 천천히 걸어갔다.

너를 만나러. 너에게 용서를 빌러. 너무나도 못된 나를 용서해 달라고, 그런 나라도 사랑해 달라고. 너를 만날 수 있을까.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걸음씩 내딛는 걸음이 불안정해 보였다. 천천히, 그리고 위태롭게. 경은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었다.

--------

저번에 썰을 받아서 써놨는데 알고보니 I.F-Rainbow...

좋은 소재도 망치는 똥손.....^_ㅜ

사실 검토도 안해보고 올리는거라서 무슨내용인지 몰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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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윽.....구독료 받는게 너무 죄송한 글이에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소설일 뿐인데도 문장 하나하나 표현하나하나 다 가슴에 와닿고 그래서 더 슬프게 느껴지구ㅠㅠㅠㅠ흑흑 그나저나 마지막에 경이 어떠케 되는거죠...ㅠ.ㅠ...? 한걸음씩 내딛는 걸음이 어디로 내딛는 걸까여...ㅠㅠㅠ??? 제가 생각하는게 아니길ㅠㅠㅠㅠㅠㅠㅠ으으ㅠㅠㅠㅠㅠㅠㅠㅠ작가님 글 보고 I.F-레인보우랑 같이 들으면서 한번 더 보니까 더 슬프구 그러네요ㅠㅠㅠㅠ좋은 글 잘 읽고가여 ㅠㅡㅠ!!!
11년 전
독자2
우와ㅠㅠㅠㅠㅠㅠ이런분위기 취향저격이네요ㅠㅠ 오랜 친구사이라니ㅠㅠㅠㅠㅠㅠㅠㅠ계속 찾고있었는데 드디어 발견하다니!!!!!!!
다음 내용이 어떻게 될지 계속 궁금해져요ㅠㅠㅠㅠㅠㅠㅠㅠ허러러러ㅠㅠ 둘이 잘됬으면 좋겠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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