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자마자 집업을 벗어 던졌다.
그리곤 너 몸뚱아리가 어찌 되든 상관 없다는듯이 침대로 풀쩍 누웠다.
민망하고 쪽팔려서
어딘가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상혁~"
얼굴이 반 눌린 상태로 입술을 움직였다.
너가 엄마를 찾듯이 한상혁을 불렀으나 작은 핸드폰 너머로 싸늘한 목소리만 들려왔다.
"누구신지."
"한상혁! 너 임마, 너는 나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술 먹었냐?"
"술 마시고 싶다. 야, 올래?"
너가 힘없이 축 팔을 늘여놓았다.
저 멀리 핸드폰에서 취했다는 소리가 너 귀에도 들려왔다.
술은 입에 한 모금도 대지 않은 너가 한숨을 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진짜 쪽팔리게 하는 데 선수인가봐... 진짜 뭐야.. 이재환..."
*
선글라스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주위를 살폈다.
끝내 이어폰이 없으면 찾아가지 않겠다는 한상혁 때문에
하루 굶어서라도 이어폰을 사러 나가는 길이었다.
"이거 이렇게 비, 비싼..."
"네, 외국에서 들어온 이름 있는 브랜드라서 조금 비싸세요."
너가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손에 든 이어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난 날에 이어폰을 부신 너 자신을 미치도록 후회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너는 이렇게 후줄근하게 입고 백화점 온 사람은 너밖에 없을거다 생각하며
주위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커플인지 솔로인지 옷은 어떻게 입었는지
시간을 보내다 한숨을 내쉈다.
이어폰도 비싸고 누구 집에는 무서운 사람만 있고.
"그렇게 한숨쉬면 땅이 꺼지나 봐요."
너가 고개를 들었더니 아까 이재환 집에 있던 남자가 너를 빤히 바라 보고 있었다.
그 남자는 너를 보곤 너 옆에 아무렇지 않게 앉았다.
너가 너무 놀라 벌떡 일어섰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이 곳은 너의 집과 멀리 떨어진 백화점 한가운데였다.
"앉죠?"
너가 남자의 목소리에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뭐예요? 설마 여기까지 나 따라온 건 아니죠?"
"미쳤어요?"
역시나 싸늘한 눈빛으로 너를 바라보는 남자의 모습에
너가 주눅이 들어 의자에 살짝 걸터앉았다.
그냥 이어폰이나 사러 가는게 덜 불편할 것 같다.
"커피라도 마실래요?"
지 혼자 커피 쪽쪽 마실 땐 언제고 너한테 커피를 거내는 남자였다.
너가 입꼬리를 힘들게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재환이랑은 아는 사이?"
너는 불편의 한숨을 내쉬다 갑자기 들어오는 질문에 숨이 막혔다.
너가 헛기침을 해 대자 남자는 꽤 흥미로운 표정을 하며 너를 쳐다보았다.
"맞아요?"
"그냥 이웃인데요."
너는 '그냥'을 강조해서 남자에게 설명했다.
저 쪽은 별로 강조해서 들은 것 같진 않지만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남자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며 입을 열었다.
"그쪽은 무슨 사이시길래 이런 걸 물으세요."
너를 내리보는 남자의 시선에 순간 너가 말을 끝내자마자 시선을 피했다.
"친구."
"친구..?"
"제가 그 쪽한테 이런 거 물어보는 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지,
오해는 안 해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아까 그 상황도.
전 정택운이라고 합니다."
정택운이란 남자는 오히려 너에게 오해만을 늘리곤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의 이름을 묻지도 않고 말을 툭 내뱉는다.
저 남자, 말투가 원래 저런가.
"지금 집 가요?"
"아, 저, 그게. 저는 아직 사야할 걸 못 사서요."
"네."
너가 말을 다 제대로 끝내지도 못했는데 말을 끊고 사라지는 정택운이었다.
무슨, 커피 사러 백화점 온 건지.
"아, 맞다. 걔 핸드폰 없어요."
고개를 살짝 들며 너에게 말해주는 정택운을 끝으로 그는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다.
핸드폰이 없구나.
그 말에 내심 안도감을 느끼는 너였다.
하지만 그 것도 잠시, 여전히 찝찝함은 가시지 않고 한쪽 구석에 남아 있었다.
너는 그렇게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다 이어폰을 사러 일어났다.
"정신 차리자."
*
선글라스고 뭐고 이어폰과 함께 작은 가방에 담아 터덜터덜 집 골목에 들어섰다.
어느새 핸드폰도 전원이 꺼지고 점점 흐려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한상혁과는 내일 하루종일 붙잡고 얘기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늘은 너무나도 피곤했다.
힘 없이 집으로 향하는데 큰 가방을 들며 걸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이재환이었다.
표정은 밝아보였고 나는 괜시리 그런 그 모습에
또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라고 느끼며 웃을 수 없었다.
"아, 별빛 씨."
너를 느낀 이재환이 어색하게 다가왔다.
너가 그제서야 실제라는 것을 깨닫고 눈이 커졌다.
"몇 일만이에요, 이게."
"택운아~"
너를 바라보는 이재환의 눈빛도 순간, 또 어떤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택운아, 택운아,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
이재환 뒤로 걸어오는 정택운 모습이 보이자
아까 쌓였던 피로가 또다시 분출되는 기분이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집 쪽으로 돌아갔다.
뒤 쪽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신경쓰였지만 신경 안 쓴척 하기로 했다.
택운아 하고 외쳐대던 남자는 큰 키에 꽤나 순둥해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살짝 이재환을 바라보았다.
이재환은 곤란한듯 너를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자 입을 뻥긋 거렸다.
[이따 말해요]
너는 고개를 끄덕인 뒤 너의 집으로 향했다.
*
"많이 화났어요?"
넋을 놓고 있다 이재환이 걱정스럽게 물어보았다.
너 꿈 속과는 다르게 이재환이 너를 걱정하고 있었다.
너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니, 뭘 화내요. 내가 뭐라고."
"기대한다곤 해놓고선 3일 동안 아무 연락 없었잖아요."
너는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재환이 말하기를 급하게 친구들이 연락이 오더니 즉석여행을 계획했다고 했다.
이재환은 갑작스러웠지만 재밌었고 즐거웠다고 얘기했고
그제서야 너는 걱정이 놓으면서 웃을 수 있었다.
"이제 웃네요?"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친구들 때문이죠?"
너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사실도 그렇고 하니까,
친구들 얘기에 미소가 번지는 이재환이었다.
택운이랑 학연이는 막상 저래 보여도 좋은 친구들 이라며 너에게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너가 엄마미소로 바라보고 있자 이재환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런 얘기 너무 하고 싶었어요. 이제 좀 후련하다."
"이재환 씨."
이재환은 너의 말에 고개를 기울이며 네?라고 답했다.
이재환에 대해 도대체 아직도 무슨 사람인지 모르겠는 너가 입을 열었다.
"이재환 씨도 여기 앞에 대학교 다녀요?"
"별빛 씨 다니는 대학교요? 에이, 저는 저기 빅스숲대학교 알아요? 거기 다니는데."
너가 눈이 커지며 이재환을 쳐다보았다.
이재환은 영문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으며 거실로 향했다.
"전화 좀 받아라."
너가 급히 핸드폰을 들고 초조해했다.
딸깍 소리가 나며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렸다.
"한상혁!"
"너가 내일 오라면서요."
"아니, 그게 아니라. 너 빅스숲대학교, 맞지."
"어. 그렇지."
"부탁 하나만 하자!"
핸드폰 사이로 한상혁의 짜증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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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허어어어어어 힘들어요어으으어어어ㅓㅇ
어째 시험은 끝났는데 시간은 더 줄어든 기분...^^
10p로 내렸습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 싸게싸게 보세용 여러분
댓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