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여기."
하품을 내쉬며 택운이 재환에게 종이비행기를 건넸다.
"고맙다. 택운이!"
"그 여자한텐 뭐라고 말했냐?"
재환은 종이비행기를 펴 읽으며 대답했다.
"여행 갔다왔다고 했어."
"그래서 그걸 믿어? 뭐 물어보지는 않았고?"
재환은 택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택운은 바보 아니냐며 등을 긁적이다가 재환의 침대에 몸을 기댔다.
"누구는 너랑 마주치게 해줄려고 백화점이나 따라갔구만."
"별빛 씨랑 말 해봤어?"
"아, 한숨을 많이 쉬길래 한 마디 했다. 이름이 별빛인지도 이제 알았네."
택운은 손가락으로 입을 매만지다 무겁게 몸을 일으켰다.
나가는 택운의 뒤로 재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내가 아팠다는 건 절대 말하지 마."
"안 말해. 븅신아."
재환의 피식거림에 택운은 혀를 차며 방을 나섰다.
*
"부탁 좀 하자는 게 뭐가 그렇게 또 싫어?"
전화기 너머로 짜증이 솟구치는 소리가 여기까지 느껴진다.
뭐라 말하긴 하는데 흥분했나,
진짜, 무슨 말 하는지 좀 알아듣게 말할 것이지.
'아! 뭔데!'
툴툴대면서도 뭘 부탁하냐고 물어오는 한상혁의 목소리에
너의 입가가 스르르 올라갔다.
너는 행여나 옆 집에 들릴 세라 조용히 핸드폰을 갖다 대고 소근거렸다.
"너 대학교에서 이재환 이라는 사람 좀 알아봐줄 수 있어?"
'무슨 내가 FBI임? 내가 우리 학교 이재환이라는 사람 다 찾아다니라고? 미쳤냐?'
귀를 울리는 한상혁 목소리에 멀찌감치 핸드폰을 떨어뜨려놓고 눈을 감았다.
잔소리 좀 몇 번 듣다보니 잠잠해진 틈을 타 다시 너가 몰아붙였다.
"나이는 아마 비슷할 거야. 아! 미술 관련 학과라고 했어. 미술 전공으로 알아봐줘."
'진짜, 너가 뭐가 예쁘다고. 하.. 고생한다, 상혁아. 힘들지?'
짜증 낼 땐 언제고 칭얼칭얼 구는 한상혁이었다.
너는 숨겨논 비장의 카드를 꺼내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너, 내가 부신 이어폰이 아니라
너가 갖고 싶다고 조르던 이어폰 산 건 알고 있니?"
'헐! 누님! 그거 비싼데!'
너는 눈 앞의 놓여진 외국에서 들어온 비싼 브랜드의 이어폰을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누님 부탁 잘 들어주는거다?"
*
다음날, 너는 슬리퍼를 짝짝 끌며 슈퍼로 향했다.
한 손엔 장바구니를 들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먹고 싶던 라면을 마구 집었다.
한 쪽 이어폰이 자꾸 흘러내려 힘들게 계속 끼워가며 장을 보고 있었다.
"별빛 씨!"
"깜짝이야!"
뒤에서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는 남자 때문에 너가 놀라 순간 몸을 움츠렸다.
뒤를 돌자 너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이재환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놀라면 어떡해요! 내가 더 놀랐네!"
"저는 죽는 줄 알았거든요?"
너가 흘러내리는 이어폰을 꽂는 것을 포기하며 손으로 양 쪽 이어폰을 뺐다.
이재환은 웃으며 너의 장바구니를 바라보았다.
"무슨 이 아침에 라면을 이렇게 많이 사가요?"
"제 나이가 라면 좋아할 나이에요. 몰랐어요?"
세일한다는 전단지가 문 앞에 놓여져 있길래 사가는 것도 이유고 해서
너는 장바구니를 들어올리며 눈짓을 날렸다.
이재환이 씩 웃으며 너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나이도 모르네요. 물어봐도 돼요?"
"23살, 이재환 씨는요?"
"어, 동갑인데요!"
순간 너와 이재환이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같은 대학생이니까 비슷한 또래일거라 생각은 했지만 동갑일 줄은 전혀 몰랐다.
동갑인 걸 알자 존댓말도 하기에 불편해지고 그렇다고 반말을 하기에도 불편해졌다.
그 때 이재환이 쭈뼛쭈뼛 허공에 손을 휘휘 젓더니 말을 꺼냈다.
"어... 말 놓을까요..?"
"그, 그럴까..?"
허허,
서로 바보같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머리를 긁적대다 이재환을 쳐다보았다.
"그러면 저는 계산하러.."
"아, 이, 이따 봐.. "
"어, 그래.."
너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눈을 질끈 감고 계산대로 향했다.
이렇게 친화력이 없는 사람이었나, 내가!
이런 생각에 재빨리 계산을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너는 슈퍼에 나가기 전 슬쩍 슈퍼 안을 쳐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흰 셔츠에 장바구니를 끼고 턱에 손을 괴며 장 보는 데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은 귀엽기 짝이 없었다.
*
[말 놓으니까 더 편한 듯!]
[그런가..ㅋㅋㅋㅋㅋ]
이제 너는 제법 종이비행기를 무사히 옆 집에 보낼 수 있었다.
모양은 여전히 이상했지만, 반말도 어색했고.
이재환은 다시 예전처럼 혼자 그 집에서 살고 있고 너와 태평하게 종이비행기를 보낸다.
너는 그 사실에 내심 평안함을 되찾은 것 같았다.
너는 종이비행기를 주고 받다 그를 불렀다.
"이재환 씨!"
"재환아, 가 아니고?"
"후, 재환아?"
"응!"
재환아 라는 말에 기분이 좋나 본지 웃어보이는 이재환이였다.
강아지 같아, 칭찬해주면 꼬리 흔드는 애처럼.
"친구 만나기로 해서 이제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여자?"
이재환의 말에 순간 여린 너의 마음이 움찔 거렸다.
하지만 한상혁은 성별 따위가 필요 없는 아이 이기에,
"여자지."
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었다.
*
근처 카페 앞에서 한상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졸리고 피곤한 데 집에서 만나기엔 시간이 없다고 말하길래 너가 직접 찾아와 준 것이다.
너가 연락도 안 오는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별빛!"
"왔어?"
한상혁은 꽤나 만족한 표정을 보이며 너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는 웃으며 상혁이를 카페 안으로 서둘러 데려갔다.
앉히자마자 이어폰을 꺼내 눈 앞에 보여주었다.
이어폰을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지는 한상혁이였다.
"정말 고맙다. 너 거지인 거 다 아는데.."
"알면 나 커피 좀 사줄래?"
상혁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는 그 사이에도 들을 준비를 하고 경건한 자세로 앉으려 노력했지만
왠지 손가락이 멈추지 않고 덜덜 떨고 있었다.
이렇게 남에게 시켜서 누군가를 알아 보는 것도 처음이라 이게 맞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너는 메마른 침을 삼키며 들을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근데 걔 누구냐."
놀랍게도 상혁의 입에서 싸늘한 톤의 목소리가 나왔다.
너의 눈이 커지자 상혁이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너를 바라보았다.
"이재환. 23살. 회화과. 유명하신 분이더만. 지금은 휴학 중이시고?"
유명..?
너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싸이코, 누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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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ㅠㅠㅠ됴르륵
다음편은 아마 콘서트도 가야하고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막콘인 일요일이나!
그 다음 날인 월요일날 올라올 수 있어요ㅠㅠㅠㅠㅠ
재밌게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ㅠ퓨ㅠㅠㅠㅠ
(저번화에 재환이 멀쩡하셔서 다행이라고 하셨던 분들...^^ 차마 사실..ㅎ.. 이라고 답글을 못하겠었어욬ㅋ큐ㅠㅠㅠ)
다음편에서 뵙시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