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지: 햇빛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자그마하게 낸 창
*본 소설의 인물은 허구이나, 사건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구성했습니다. 사건의 연도는 실제 사건의 연도와 다름을 밝힙니다.*
2
비가 멎었는지도 모른 채 책을 품 속에 넣고 이십 분 가량을 걸어가던 승현이 목적지를 찾은 듯 발걸음을 멈추었다.
'華立堂'
화립당, 제대로 찾아왔구나.
승현이 화립당이라 쓰여 있는 꽤나 커다란 한옥의 대문 앞에서 심호흡을 했다.
"계십니까-"
손님이 이미 와 계셨던 것인지 사랑채의 문이 열렸다.
중후하게 멋이 든 중년 남자와 건실해 보이는 청년이 밝은 얼굴로 승현을 맞이했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이승현군! 잘 왔네, 오랜만일세"
"어르신 오랜만입니다. 그간 변고 없으셨지요! 형님도 안녕하셨습니까."
"나야 안녕했지! 그런데 승현아 꽤 오랜만인듯 하구나. 혹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승현은 잠시 아차 하다가 품 속에 고이 숨겨둔 책을 꺼내들었다.
"별일은 아니고, 여기. 연락망입니다."
"오, 상해에서 연락이 닿았나 보군, 이 군의 이름도 이제 올라가 있겠구먼"
허허 너털웃음을 지어보인 중년의 남자가 승현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치고 안으로 안내했다.
한옥의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 보다 단출했다. 꼭 있어야 할 것들만이 자리를 하고 있었으며 난향이 온 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고고하지만 개방적인 선비의 방. 막 개화(開化)를 맞이한 듯한 모습이었다.
"방이 참으로 어르신을 담은 듯 합니다."
"허허, 그런가? 나를 담다니 그것 참 마음에 드는 소리로군"
"소박하고 정갈하나 개방적입니다. 개화를 막 시작한 지금 조선의 모습 같습니다."
"이 군이 사람을 보는 눈이 있군 그래"
"원래 승현이가 어릴 적 부터 다방면에 뛰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가는 아이이지요."
"나도 잘 알고 있네. 참, 조금 긴 이야기가 될 테니 내 다과상을 차리라 하겠네."
잠시 앉아 있으니 곧 여종이 다과상을 내 왔다. 승현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참인지 눈이 꽤나 진지해졌다.
책을 펼쳐 들고 작은 붓으로 필사를 하는 모습이 중년 남자의 옛 친구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야망이 넘치는 사내였고, 용기와 정이 넘치는 사내였다. 옛 기억에 잠시 잠겼던 그가 말문을 텄다.
"그래, 본격적인 것은 언제쯤이 될 듯 하는가?"
"구월 스무날 쯤이 시기가 될 듯 합니다. 그 때에 일본군의 감시가 흐트러진다 합니다."
"상해에서 따로 연락이 온 것은 없는가. 연락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네만."
"본부에서 직접 연락이 오지는 않았으나 연해주에 잠시 피신해 계시는 박 선생님께서 새로이 한 명의 동지를 더 필요로 하신다더군요. 형님께서 가는 것이 어떨지요."
"그래, 그러면 그 곳에는 김 군이 가는 것이 났겠구나. 김 군, 며칠 이내로 채비를 하게. 드디어 자네가 바라던 일이야."
"예 어르신, 박 선생님께 가서 많이 배우고, 듣고, 실천하겠습니다."
"인후 형님, 몸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오시자마자 저희 집에 들르시는 겁니다. 아셨지요?"
"걱정 말거라 승현아, 내 잘 다녀올테니 너 또한 조국을 위해 힘 써주거라."
"예, 형님."
어느덧 노을이 한옥을 비추고 있었다.
승현은 다시 책을 펼쳐 들고 이야기를 해 나갔다.
"오늘이 칠월 칠석이군요. 어쩐지 비가 많이 온다 했습니다."
"그래, 견우와 직녀가 만났나 보구나. 이제 보내줄 때가 되었는지 비가 멎었구나."
"어르신, 저는 언제쯤 활동에 참여합니까."
"이 군. 자넨 아직 너무 젊어. 열 여덟밖에 안 되었지 않는가. 나 같은 늙은이에게 몸 바치는 일은 맡기고 자네는 교육에 힘 써주게."
"하지만 어르신. 곧 총독부에서 더욱 거센 탄압을 실시할 듯 합니다. 이번 만세운동에서의 타격이 너무 컸어요."
"자네의 마음도 이해하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이제 그만 갈 때가 되지 않았는가? 이 집에서 나서자마자 곧장 가면 한 식당이 나올 것이네. 그 곳에 가서 권지용 동지를 찾아 뜻을 같이 하게."
"..알겠습니다. 내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편안히 계십시오."
작별인사를 마친 승현이 화립당을 나서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고운 여인이 승현을 맞이하였다.
"어서오세요 손님. 이리로 오시겠어요?"
"아니, 나는 권지용이라는 분을 찾으러 왔습니다. 혹 아십니까?"
"오라버니를 찾으시는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예. 식당 안쪽 방에 자리를 잡은 승현은 식당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꽤나 호화스러운 것이 고위직 일본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것 같았다.
가증스러운 왜놈들. 그 대가리를 패버리고 싶었다.
곧 방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봐 이치로, 네 놈은 너무 정이 없어. 히로시 통감님이 그렇게 잘 해주시는데 네 놈은 왜 이렇게 쌀쌀맞게 구냔 말이야"
"자네 많이 취했어. 어서 집으로 돌아가게. 아내가 기다리지 않겠는가."
"염병할, 아내는 무슨 년의 아내! 그 년이 여기저기 다른 사내들이랑 다니는 걸 내가 모를까봐! 이치로, 자네 나 놀리나?"
"내가 자넬 왜 놀리겠나. 그만 진정하고 집으로 돌아가세, 내 인력거를 부르겠네."
"하여튼 멍청한 조센징들이 문제야, 오늘도 그깟 쥐새끼같은 놈 하나 못 잡아서 우리만 깨지고! 젠장!!"
방 밖에서 들리는 일본인들, 어쩌면 친일을 하는 매국노들일지도 모르는 자들의 조국을 깎아내리는 소리가 승현의 화를 돋구었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그나저나 권지용인지 뭔지 그 사내는 왜 오지를 않는 거야.
드디어 그 더러운 일본인무리가 나갔는지 식당이 꽤나 고요해졌다.
아, 심심한데.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것을 모르는지 그는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승현은 모르는 사람을 향해 이토록 분노를 느낀 것은 처음이라며 식탁을 손으로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그 때,
드르륵-
"오래 기다리셨지요. 곧 오실 테니 차라도 한 잔 하고 계세요."
"아 감사합니다."
겉으론 그랬지만 속으로는 왜 이제야 차를 권하는건데? 도대체 곧이 언제냐고!
화를 내며 차를 한 입에 들이키다가 혀를 데인 승현이다.
혀를 내밀고 식히고 있는데, 다시 드르륵-
"권지용입니다. 본의 아니게 기다리게 했네요. 미안합니다."
"에! 아영하세여 이스여이니다."
혀를 내민 채로 얼떨결에 인사를 해버린 승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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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부딪힌 후 첫 대면!! 두구두구두구구두구
오 쫌 분량이 길어졌어요!! 흫흐 기분이 참 좋아여 내일 또 올게요 꼭 올거니까 기다리고 있어주세요 독자님들!
참 참 암호닉!
♥공학용 계산기/사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