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민X도경수
수많은 우주, 그 안에서
Aqualung -good time Gonna Come
너덜너덜 해진 손가락이 식탁 위에서 춤을 춘다. 네가 그렇게 집중하는 밥 그릇을 엎고 싶어, 뇌 회로가 멈춘다. 경수야. 딱딱하게 메마른 입술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도경수 이름이 울컥 튀어나온다. 아예 고개를 쳐박고 있던 도경수가 몸을 움찔하며 푹 깔고있던 시선을 찬찬히 들어올리는 꼴을 보고있자면 온 몸 구석구석에서 짜증이 솟는다. 도경수,
도경수.
나는 네가.
싫어.
경수의 무심한 눈이 얼굴을 탄다. 오른다. 올라간다. 닿는다. 태민이 웃는 듯 우는 듯 묘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면서도 몸을 떤다.
태민에게 경수는 남은 가족이자 하나뿐인 친구였다. 경수를 대하는 태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집에만 박혀 사는 태민에게 바깥 세상이나 다름 없는, 오직 ‘나’만 바라봐줘야 할 존재. 태민은 제가 만든 좁은 틀에 경수를 접고 접어 맞춰 넣는 것을 좋아했고, 그 틀에 박힌 경수가 가만히 있어주길 바랐다. 날 좋아해줘, 너는 날 좋아해줘야 해.
사랑해 줘.
하지만 경수는 늘 무심했다. 경수에게 태민이란 그저 죽어버린 아빠가 남기고 간 쓰레기에 불과했다. 경수가 여전히 감정없는 눈빛으로 태민의 얼굴을 훑다가, 고개를 돌렸다. 또 이사를 가야한다. 제대로 풀어놓지도 못한 짐들이 또 남는다. 날 버리지 말라고 제발 버리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끔찍했다. 다시 밥그릇에 얼굴을 쳐박으면, 태민의 목소리가 좁은 부엌을 울린다. 경수야, 도경수.
날 가만히 놔둬. 한 날은 그렇게 말했다. 아빠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경수의 말에 태민은 대답했다. 씨발, 하고.
그 날 부터 경수는 모든걸 깨달았다. 이태민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하지만 싫었다. 사랑을 주기 싫었다. 받은 적도 없는 사랑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왜 주어야 하는지 몰라서였다. 경수는 늘 화가 났다.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아빠는 왜 죽어버린거야? 왜 이태민을 남긴거야? 가져갈거면 끝까지 가져가지 왜? 왜? 왜? 왜? 왜? 왜? 왜?
경수가 반도 먹지 않은 밥그릇을 싱크대에 쏟아 부었다.
음식물 쓰레기 같은건 상관 없었다. 어차피 이 집도 곧 떠날테니까.
다시 짐을 챙겼다. 이태민은 버림 받을까봐 겁에 질린 얼굴로 얼른 따라붙었다. 마른 팔이 보였다.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네가, 아니면 내가.
밖은 비가 내린다. 경수가 힘 빠진 손을 푹 떨구고 창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반지하는 어두웠다. 밖은 더더욱 어두웠다. 벌레가 기어다니는 느낌이 들었지만 소름은 돋지 않았다. 더러운 날이다.
몸을 던지면, 부서져버릴까. 비가 너를 녹여버릴까.
태민이 낮은 목소리를 뱉었다. 경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천장에 달린 작은 형광등이 깜빡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