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연이는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여기서 구급상자를 쓰라고 말했다.
이재환은 오히려 고맙다며 가까이 다가와 털썩 앉았다.
"밖에 비가 오더라고! 고마워. 아.. 택운이, 어라. 학연이도 있었네?"
나의 명찰을 힐끗,
옆에 있는 차학연의 명찰도 힐끗 보던 이재환이 반갑게 아는 척을 했다.
차학연 눈에 시퍼렇게 생긴 멍이나 이마의 상처가 자기가 한 일인지도 모르고 반갑다며 웃어대는 이재환이였다.
"아까 옆에 있었지, 그건 잊어주라! 나 그런 이미지 아닌데."
"어, 응."
"뭐야. 너는 왜 이렇게 다쳤어!"
이재환이 차학연의 상처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놀란 눈으로 상쳐를 만지자 인상을 짓는 차학연을 보고 화들짝 놀래더니 손을 뒤로 빼고 만다.
그제야 자기가 한 짓을 깨닫고 허둥지둥 구급상자를 여는 바보였다.
"나 말리느라 그런 거구나! 미, 미안해! 어떡하지?"
하는 수 없이 내가 이재환의 교복을 끌고 뒤로 당겼다.
"...이미 내가 조금 치료해줬어."
"아.. 그래? 근데, 너 어디서 나랑 본 적 있지 않아?"
아니면 말고, 하며 바보같은 웃음을 지어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생생히 몇 개월 전의 모습이 떠오르는데 얘는 아닌가보다.
*
이재환은 옆에서 쭈구리고 앉아 태연하게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있었다.
차학연과 나는 그저 피아노 의자에 걸터앉으며 그런 그 놈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재환이 우리의 시선이 신경쓰였는지 우리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었다.
"둘이 닮았어. 둘 다 무용쪽 준비한댔나?"
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재환은 뭐가 웃긴지 웃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미술하거든. 고등학교 때 정한거라 조금 힘들지만."
이재환이 구급상자를 닫고 옆으로 밀어던졌다.
그리곤 연습실 거울에 살짝 기대는 놈이었다.
저러다 거울 깨지면 안 되는데.
거울 걱정도 잠시 이재환이 칭얼칭얼 대며 말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근데 친구 놈이란 새끼들이 미술 하는걸 무시하는거야. 꿈도 없는 주제에!"
꽤 화난 듯한 모습이었다.
차학연이 옆에서 화나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나는 분위기나 파악하라고 어깨로 툭 밀었다.
이재환은 차학연의 말에 더 흥분한듯이 말을 내뱉다 어깨가 축저지며 말했다.
".....진짜 걔네랑 같이 다니면 내 인생이 후회될 것 같아서 싸웠는데 더 걱정이야.
내일은 나 혼자 밥 먹나~"
우리를 겨냥한 말인가 싶었지만 표정변화 없이 이재환을 바라보았다.
이재환이 씩 웃더니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리켰다.
"같이 다니자. 이렇게 셋이."
차학연이 그 말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차학연 하나로도 충분히 시끄러운데,
이재환은 전혀 상관 없단 식으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마! 학연이 너, 걔네가 뭐 시키면 말해. 가만히 있나 봐, 내가!"
"근데 재환아, 우리랑 다니면 적응 못 할까봐.."
"예전처럼 몰려다니는 것보단 좋겠네."
내가 중간에 학연이의 말을 끊었다.
같이 다니던지 말던지 이젠 조금 체념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 모습에 이재환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
콜록, 콜록,
잘 있던 이재환이 거칠게 기침을 했다.
당황한 나랑 학연이가 괜찮냐며 말을 건넸다.
이재환은 손사래를 치며 옆에 있던 휴지로 입을 막고 계속 기침을 했다.
겨우 기침을 멈춘 이재환이 실없이 웃었다.
"흐, 내가 몸이 좀 좋은 편은 아니라."
말이 앞뒤가 안맞는 듯했다.
싸울 때는 몇 대를 맞아도 꿈쩍도 안 한다는 애가 순식간에 핼쓱해 보였다.
"오늘은 피곤해서 그런지 조금 심하네..?"
눈을 세게 깜박거리던 이재환이 머리를 흔들었다.
그 때 살짝 깨달을 수 있었다.
이재환이 평소에 티가 안 내게 행동했을 뿐이었다는 것을,
"많이 안 좋냐."
"조금이거든? 어릴 때부터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병원에서 과격한 짓 하지 말래서."
"지금도 많이 하잖아, 과격한 짓."
"그래서 아픈거야!"
옆에서 차학연이 껄껄 대며 웃어댔다.
이재환도 어깨를 들썩이며 크게 웃는 모습이었다.
정말, 영 적응 못할 듯 싶다.
**
"....아파요?"
너 말에 정택운이 움찔거렸다.
".......재환이가 몸이 안좋아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빤히 바라보니 정택운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랬네, 저번에 놀러갔다는 것도 뻥이구나,
역시나 아파서 사라진 거였구나,
너가 바보같이 믿었었구나,
"말하지 말랬는데,"
정택운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너를 바라보았다.
너가 의미없는 한숨을 내쉈다.
정택운은 말하기 망설여하다 팔짱을 풀고 입을 열었다.
"모른 척 해줘라. 걔한테도."
"....알았어요."
"티 내면 말해버린다. 이재환한테, 얘가 너 좋아한다고."
"아직도 고등학생이에요? 유치하게!"
정택운은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가 어딜 가는 거냐고 소리치며 정택운을 붙잡았다.
"어딜 잡아."
"아니, 뭐 얘기 해줬다고 지금 가요? 저 이제 그쪽 안 무서워요!"
"그럼 반말해봐."
너가 입을 꾹 다물었다.
도저히 반말은 못 할 것 같았다.
정택운이 피식 웃더니 너의 팔을 내려놓았다.
"이 정도면 만족해라. 나도 바쁘거든."
"안 바빠 보이는데.."
너가 꿍하게 중얼거리자 정택운이 너의 핸드폰을 냅다 뺐었다.
너가 당황하며 핸드폰을 되찾으려 했지만
워낙 키도 크고 팔도 길어서 뺏기란 불가능했다.
정택운은 뭔가를 핸드폰에 치더니 너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정 그렇게 더 듣고 싶으면 얘한테 듣던가."
핸드폰에 찍혀있는 것은 차학연의 전화번호였다.
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냥 알려주기 싫다고 말하죠."
"어떻게 보면 얘가 더 자세히 말해 줄수도 있어. 나보다 착해."
"둘만 어떻게 만나냐구요..! 이 쪽이 나를 싫어하는데! 정택운 씨랑 조금 붙어있었다고 그러는 건지,
아니다, 같이 만나요. 셋이 만나면 되겠네."
"난 바쁘다니깐."
정택운은 의자에 놓여진 가방을 들어 메고 앞으로 걸어갔다.
너가 이번엔 차마 붙잡지도 못하겠어서 빤히 정택운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기분 탓인지 정택운의 등마저 얄미워 보였다.
띵똥,
누군가에게 도착한 문자메시지에 너가 시선을 핸드폰으로 돌렸다.
정택운이 보낸 문자였다.
[화이팅]
핸드폰을 당장이라도 정택운 머리에 던질까 고민했지만 참기로 했다.
그랬다간 뒷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곰곰히 그 자리에서 생각하다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핸드폰에 보이는 차학연의 번호를 계속 주시하다가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래. 이만큼 들은게 어디야,
어릴 땐 차학연이란 사람도 착했던 것 같은데, 아니 지금도 착하긴 한 것 같은데
도통 너를 싫어하는 이유를 못 찾겠어서,
순식간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별로 만나기 싫은 사람인 건 확실했기 때문에 결국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
"재환이?"
집에 도착하자 문 앞에서 서 있는 이재환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로 우리 집까지 온 건가 싶어 단숨에 계단을 올랐다.
이재환은 뭐가 많이 들은 듯한 검은 봉지를 들고 있었다.
"과일을 너무 많이 사서 너랑 나눠먹으려고 했는데 다행히다, 와서."
너는 배시시 웃는 이재환을 뒤로하고 문을 열었다.
이재환은 비밀번호를 보지 않겠다고 굳게 뒤돌아 서있었다.
너는 그 모습이 귀여워 웃다 그런 이재환 어깨를 콕콕 찔렀다.
이재환이 그제서야 뒤를 돌아보았다.
너는 환하게 웃으며 과일 봉지를 집어들었다.
"문 열었거든. 들어와, 차 정도는 대접할 수 있어."
"대접은 무슨."
이재환이 부끄러운 듯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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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만 흑지고 현재는 백지로 하려고 했으나ㅋㅋㅋ 과거만 14편에 넣기엔 짧아서 그냥 합쳤습니다!
개인적으로 흑지는 눈 아파서 싫어요@.@ 그래도 이해하고 봐주세요♥
다음편은 예고한대로 스토리 정리로 올게용 신알신 왔는데 15편 아니라고 실망하시면 아니되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