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쿠안] 제목 미정 3
作 불
bgm. 나 요즘
3
오후 늦게 부터 시작된 녹화는 위안과 대조되게 활기찼다. 평소처럼 타쿠야를 신경쓰지 않으려 했지만 좀처럼 잘되지 않았다. 타쿠야는 위안이 토크를 할 때면 진득한 눈빛을 보냈다. 취중고백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타쿠야와 뜻하지 않게 고백을 들어버린 위안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했어요.
...
감사의 의미로 커피...
지난번 녹화 때와는 달리 전문점에서 공수해온 커피였다. 제가 늘 마시는 커피였던지라 의외로 타쿠야와 취향이 통했다고 생각했다. 보통 쓴 맛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음식이 달달하다는 일본에서 온 타쿠야가 즐겨 마실 수 있을까도 의문이었다. 아무런 말 없이 제가 준 커피를 마시는 위안을 보니 실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쓴맛에는 취약한 타쿠야였지만 위안과는 무조건 같은 걸 하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덜 쓰게 느껴졌다. 장위안씨는 이런 맛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녹화 수고하셨습니다!
장시간이지만 즐겁게 녹화를 마치고 재빠르게 퇴근하려는 위안을 붙잡았다. 무슨 일이냐며 물어볼 법도 한데 꼭 네게는 관심이 요만큼도 없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것 같았다.
아... 저... 오늘 좋은 꿈 꾸시라구요.
...네.
표정없이 딱 잘라 대답하고는 유유히 제 갈길을 가는 위안이 더이상 보이지 않자 스스로를 자책했다. 좋은 꿈은 무슨... 연애라는 것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제가 느끼기에도 느끼한 작업 멘트였다.
타쿠야아~ 좀 부럽다아~?
원호의 부름으로 숙소가 아닌 연습실에 도착한 타쿠야는 그의 장난섞인 질투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떡볶이가 담긴 검정 비닐을 흔들어보이며 웃었다.
비정상회담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던 원호는 위안에 관해서도 캐물었다. 타쿠야의 마음이 상했지 않을까 기분을 풀어주려 물어본 원호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타쿠야는 묵묵부답이었다.
타쿠야는 검색창에 장위안을 치고 위안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어느 학원에서 강사를 하고 있으며, 과거의 모습은 어땠는지. 그 결과 타쿠야는 크로스진이 글로벌 프로젝트니 중국말도 잘해야된다는 그럴싸한 근거거리를 들고 장위안이 강사인 학원에 등록하기 까지 이르렀다.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거네? 타쿠야는 영문을 모르는 원호의 어깨를 팍 잡아끌더니 기쁨의 포옹을 했다. 평소 스킨쉽이 많기는 했지만 뜬금없는 타쿠야의 포옹에 원호는 당황하면서도 더 꽉 껴안았다.
타쿠야는 일본에서 모델이기는 했었지만 패션에 대한 애정 때문이라기 보다는 열도에서는 보기 힘든 큰 키 때문에 하게 된 일이었다. 때문에 늘 편하게 입자는 신념을 가지고 살던 타쿠야가, 새벽같이 일어나 치장을 하고 있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뭘 입어도 받쳐주는 외모와 키 덕분에 스트레스 없이 골라 입고는 숙소를 나섰다. 같이 배워주겠다는 원호도 개의치 않고 혼자 숙소를 나선 타쿠야는 아침 공기가 남다르다며 숨을 한껏 들이마시며 바삐 걸었다. 강남에 위치한 학원은 숙소 굉장히 멀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었다. 시작하기 10분 전에서야 헐레벌떡 도착한 타쿠야는 강사인 위안이 들어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커피를 강사용 책상에 두었다.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위안이 들어오니 수강생 전원이 일제히 你好 (: 안녕하세요) 를 외쳤다. 방송과는 또 다르게 여유로운 베테랑 강사 위안을 보니 사소한 걱정 따위 싹 가시는 것 같았다.
오늘 새로운 수강생 있다고 들었는데...
네, 접니다.
...
네. 위안은 타쿠야의 목소리를 알아들은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솔직한 반응을 보이는 위안이 재밌어 타쿠야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 큰 수강생의 자세를 취했다.
헐, 타쿠야...
대박. 잘생겼다...
강사인 위안이 출연해서인지 몇몇 수강생들은 위안과의 대립 구도인 타쿠야를 알아보고는 수군대기 시작했다. 절대 사이가 좋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둘을 한 포커스에서 보니 놀라는 것이 오히려 당연해보였다. 덕분에 위안은 벌개진 얼굴로
...첫시간이니까 이해하겠습니다. 다음부턴...ㅇ,
抱歉. ( : 죄송합니다)
연신 기초 수준의 질문을 하던 타쿠야가 어색한 억양으로 서툴게 말을 하니 굳었던 안면근육이 풀어졌다. 저도 모르게 웃어버린 위안은 타쿠야에게 제 표정을 들켰을까 재빨리 표정을 굳혔다. 그러면 타쿠야는 그 섬세한 변화를 눈치채고서는 그게 그렇게 귀엽다고 조용히 웃어댔다.
위안쌤! 타쿠야씨랑 사이 좋네요. 방송 보고는 아닐 줄 알았는데...
아, 아ㄴ
보기 좋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타쿠야는 곧이 곧대로 설명하려는 위안의 말을 자르고 답하며 위안의 손을 잡았다. 남자끼리 하는 스킨쉽이 꽤나 익숙하다는 변명으로 손깍지까지 끼면서. 도중에 위안이 손을 빼려했지만 그럴 수록 더 세게 쥐었다. 모든 수강생들이 교실을 빠져나갈 때까지 깍지 낀 한 손은 절대 놓지 않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애인이라도 된 것 마냥 수강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요?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와요.
...하아.
그래도 수강생 한 명 더 늘었잖아요.
...네.
저 중국어 배우러 온 거 맞아요. 어쩌다보니 강사가 장위안씨인 거에요. 하하하...
그게 아니라,
손 좀... 그제서야 민망해진 타쿠야가 멋쩍게 웃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위안은 타쿠야가 잡았던 손의 온기가 어색해 닭살이 돋았다. 남자 끼리 손깍지라니. 취향 참... 위안은 제가 한 말에 놀라 입을 다물었다.
하아. 무슨 말을 못하겠네.
장위안씨가 좋아요. 수줍게 말하던 취중의 타쿠야가 떠오를 때면 저도 모르게 헙 하고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나 이제 어떡하지? 솔직히 요즘은 가끔씩 생각나던 첫사랑 보다도 자주 생각났다. 분명 나는 여자를 좋아했는데. 좋아...했는데?
좀 아픈가보다. 병원 가봐야겠어...
위안은 스스로를 자신의 세계는 존재하지만 그 판도를 엎어버릴 만큼 독특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즈음 제게 화제인 동성애는 평범하지 못하다. 독특하다. 그래서 난감했다. 이도저도 못할 약점 하나가 생긴 것 같았으니까. 사춘기 때에도 당연스럽게 생각했던 성 정체성이 서른이 넘어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게 놀라웠다. 고지식한 위안에게 든 생각은 타쿠야를 피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띠링.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타쿠야의 문자였다.
위안씨, 저 방금 작가님한테 문자 받았는데요. 우리가 노래 한 곡 같이 불렀으면 좋겠대요.
...노래요?
네. 〈내게 오는 길>이요.
노래만 같이 부르는 거니까요. 윙크 하고 있는 이모티콘을 계속해서 보내는 타쿠야에게 넋을 놓고는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위안은 눈에 띄게 너그러워진 제 자신이 익숙하지 않아 입 안에 있던 껌을 초조한듯 질겅질겅 씹었다.
그럼 연습 한번 꼭 해야 되요. 만나서.
만나서?
잘하는게 좋잖아요.
그런데 내가 요즘 바빠서...
아... 네.
타쿠야는 위안의 생각과는 달리 한치의 의심도 없이 위안을 놓아주었다.
글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타쿠안 행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