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amor fati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가자, 데려다줄게. 나 술 안마셨으니까 걱정말고.”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차 조수석에 타 있는 나더라.
몰라, 그냥 술김에 그랬다고 치자.
“우리 진짜 오랜만에 보는거지? 나 아까 진짜 놀랐는데 거기서 대놓고 아는 척하면 너 불편할까봐 엄청 참았잖아.”
너는 오랜만에 만나는 내가 어색하지도 않은지 여전히 맑은 눈망울을 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신나서 재잘재잘 하듯 말한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또 넋놓고 있겠지.
“근데.. 우리 진짜 오랜만에 보는건데, 나한테 궁금한건 없어? 난 너 엄청 궁금했는데. 연락 없어서 조금 서운하기도 했고,”
아, 너는 모르겠구나. 내가 졸업 후 필사적으로 너를 잊으려고 피했다는 사실을.
혜윤이와 석진이와는 종종 연락하는 널 봤지만 나는 차마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아.. 나도 궁금했지. 그냥 해외 나가서 잘 지내고 있다고는 들었어. 미안, 나도 그동안 바빠서 연락할 정신이 없었나봐.”
“그래도 다행이야. 한국에선 처음 일하는 건데. 팀장자리라 부담도 엄청 컸거든. 거기서 너 보고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넌 안심이 됐구나. 난 걱정이 됐는데. 너로 인해 잔잔하기만 했던 내 마음에 파도가 치기 시작했는데.
나는 또 아무말 없이 너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조심히 가고. 그럼 주말 잘보내.”
“저기, 이나야. 나 번호좀 주라. 우리 서로 번호정도는 알고 있을 사이 되잖아?”
실은 주기 싫었다. 하루 온종일 폰만 쳐다보고 괜한 기대를 할 나의 모습이 뻔했기에.
하지만 여기서 거절을 해버리면 진짜 내 자신이 너무 못나보일까봐,
“그래, 당연하지. 핸드폰좀 줄래?”
나는 또 너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약해진다.
집으로 들어오자 마자 다리에 힘이 풀려 씻지도 못한 채 침대로 몸을 던졌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눈 떠보니 어느새 다음날 점심이더라.
'주말이니 늦잠이나 자야겠다.' 하고 더 자려는데 ‘카톡’ 알림음이 날 방해했다.
아, 그냥 보지말걸.
‘이나야, 오늘 뭐해?’
‘안 바쁘면 나랑 좀 놀아주라.’
나에게는 너의 카톡을 거절할 만한 능력따윈 없었다. 한참을 미리보기 알림창을 바라보며 뭐라고 보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래, 몇시에 만날까?’
서른의 나도 너에게 지고 만다.
조금은 어두워질 시간 나는 우리 집 앞에서 너를 기다린다. 둘 다 늦잠을 잤기에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우리 집 앞으로 굳이 데리러 오겠다는 너를 말리지 못하고 너를 기다리면서 너와 단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고민에 빠져있었다.
‘빠-앙’
너의 클락션이 울리기 전까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길래 차가 오는지도 몰라?”
"왔어? 뭐 그냥."
회사 밖에서 보는 너의 모습은 내가 좋아하던 스무살의 전정국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뭐 먹고싶었던거 있었어?"
우리 집까지 온 너가 고마워서 양심상 너가 먹고 싶어하는 걸 함께 먹어주고 싶었다.
"나 너랑 삼겹살에 소주 먹고싶었는데, 괜찮으려나?"
"뭐, 그래. 먹고싶다니까 같이 먹어준다, 내가"
이러고 있으니까 진짜 대학시절같네.
“와, 여긴 변한게 하나도 없네? 진짜 그대로인거같아.”
혜윤이, 석진이 그리고 너와 함께 자주 왔었던 우리 집 근처 삼겹살집.
너가 떠나고는 한동안 나도 안와서인지 나름 이 공간이 반가웠다.
석진이가 여기 엄청 좋아했는데. 나 배려한다고 그동안 오자고 안한건가 싶기도.
나의 걱정과는 다르게 둘이서는 근황, 추억거리를 나누며 어색하지 않게 시간을 보냈다.
차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잊은 건지 소주병의 개수도 시간이 지날수록 함께 늘어났다.
진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량이 늘었나.
나보다 술을 잘 마시던 정국이는 어느새 취했는지 볼이 발그레해져있었다.
“이제 그만 가자, 정국아.”
“아니야. 나 좀만 더 있다 갈래. 우리 조금만 더 있다 가자, 응?”
나는 얘네 집 주소도 모르는데 큰일이네 진짜. 이제 집에 가야할텐데.
걱정이 쌓이고 쌓였지만 너가 웃으며 말하는데 어찌 무시할 수가 있겠냐고.
“알겠어, 그럼 우리 딱 한 잔씩만 더 마시고 가는거야, 알겠지?”
“좋아, 예쁘다 우리 이나.”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마주치는 너를 나는 피할 수 없었다.
!!!!HAPPY J-HOPE DAY!!!!
기념으로 오늘은 꼭꼭 올릴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오늘도 재밌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