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 메마른 소리와 함께 빛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문을 열고 방에 들어온 김유권은 손에 작은 쟁반을 들고 있었다. 쟁반에는 라벨이 떨어진 와인과 당장 차가운 곳에서 꺼낸 듯한 생수 한 병이 놓여 있었다. 큰 크기의 방은 아니었지만, 내부는 굉장히 조용했다. 아니, 낮게 진동하는 기묘한 소리를 제외하면. 아니, 아니다. 방에 몇 없는 가구중 하나인 침대에 몸을 뉘이고 있는 남자가 간혹내는 신음소리까지 제외하면 비교적 조용하다고 할 수 있겠다.
"... ...."
침대 위의 남자는 나체였다.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았다. 목에 은과 비슷한 재질로 보이는 심플한 목걸이를 두르고 있었고, 악세사리라고 할 순 없지만 입이 하얀 천으로 묶여 차단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타액과 신음소리는 침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유권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다. 손에 들린 쟁반을 한쪽으로 올려놓고선 침대 끝에 걸터앉고선 그대로 몸을 숙여 입을 맞췄다. 막혀 있는 남자의 입술 위를 유권의 혀가 헛돌았다. 윤곽이 드러날 뿐인 입술 위에서 과한 움직임으로 혀와 입술을 움직였다.
벌써 이틀 째다.
박경에게 마취제와 최음제가 섞인, 다소 위험한 물질을 6시간마다 주입하고 있다. 약은 뜻하지 않은 중독효과마저 가져왔다. 아무 군데도 묶여있지 않은데 박경은 움직이지 못했다. 큰 눈은 유권을 주시하며 유권에게 여러가지를 갈구하고 있었다. 첫날, 두번째로 약을 주입했을 때 박경은 애원했다. 제발 보내달라고, 뭐든 하겠다고. 울것같은 얼굴이 볼만했던 것이다. 이쯤하고 박아버릴까, 했던 유권의 생각을 뒤집은 계기이기도 했다. 조금 놀려주려 했던 것이 이제 집착으로 바뀌었다.
유권은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박경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헤집었다. 이런 행동으로조차도 상당히 느껴버리는 박경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제 유권도 슬슬 한계였다. 어떤 음식도 심하게 익히면 맛이 없잖아? 지금이 바로 유권이 생각하는 '최고조'였다. 박경은 눈물샘도 말라버렸다. 메마른,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은 눈동자로 유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유권이 검지손가락으로 박경의 입에 에둘러진 흰색 천을 살짝 내리고, 갈증으로 말라버린 혀바닥을 자신의 욕정으로 채우는 것으로 방아쇠는 당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