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말하지, 여자는 꽃이라고.
근데 나는 아냐, 나는 뚱뚱하고 못생겼는데 이런 나를 누가 꽃으로 봐.
정말... 난 그냥 저런 말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비참해지니까.
-9-
[나랑 지원이가 대화한 걸 다 들은지, 중간에 들은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만 약속해, 오해는 하지 말아줘.]
이 쪽지를 보고 어땠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저 그랬다.
오해를 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한빈이었다.
한빈이가 정말 지은이와 괜찮은 건지, 이젠 아무렇지 않은지 모르겠다.
쪽지 뒷 편에 '무슨 오해?'라고 적고 싶은 것을 가라 앉히고
그냥 '응' 이렇게 썼다.
*
의미없는 시간이 흘러 어느 새 하교시간이다.
급하게 서두르진 않지만 그냥 멍하니 책상에 있는 책들을 가방 속으로 집어넣는다.
"저기.. 여주야"
"어?"
"시간 괜찮으면 잠깐 나랑 어디 갈 수 있어?"
"...그래"
*
한빈이가 나를 이끌고 도착한 곳은 다름아닌 우리 집 근처 병원이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있는 병원이다.
"여긴.. 왜 온거야?"
"벤치에 가서 얘기하자."
말을 꺼내기 전 까지는 한빈이는 많이 고민하는 듯 했다.
무슨 얘기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며 얘기를 하는 걸까...하다가
"난 괜찮으니까 지금 어려우면 나중에 해줘도 돼." 라고 말했다.
"아니야, 지금 할께. 여기 사실 우리 여동생있어.."
"그리고 그 이유는 교통사고였는데..."
한 가지 병원에 대해서 모를까봐서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사실 이 병원은 정신질환을 겪고있는 사람들만 집중적으로 관리하며 치료해주는 곳이다.
우리엄마도 그래서 여기 있는데.. 그 말은 즉 한빈이 여동생이
정신질환을 겪고있다는 말인가..?
"교통사고를 낸 범인이 바로 이지은이야."
잠깐만... 지금 한빈이가 무슨 소릴 한거야..?
지은이가 교통사고를 냈다고?
그러니까, 한빈이 여동생의 정신 질환의 원인이 이지은...이라는 거?
"이걸 알게 된 이상 지은이와는 더이상 사귈 수가 없어서... 헤어졌어."
많이 혼란스럽지만, 한빈이가 헤어진 이유는 마음이 떠나서가 아니라
여동생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위해서.. 였다는 거구나.
마음은 아직 그 아일 좋아하는데 한빈이는 지은이와 헤어졌구나..싶었다.
"계속 방황했었어. 마음에서는 증오가 생기는데....
지은이가 범인이란 걸 믿고 싶지 않았으니까."
"한빈아.."
그만 듣고싶었다. 내가 싫은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있는 한빈이가 너무.
너무 힘들어 보인다.
"동생이 다쳤는데 나는 한동안 옆에 못갔어...동생이 날 보면 무서워해서.."
"근데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내게 사과를 하더라고
미안하다고 날 무서워해서.. 미안하다고. 오히려 내가 더 미안했는데..."
"하루도 빠짐없이 동생에게 갔어. 그런데 얘가 내가 안 사준 초콜릿을 들고 있는거야.
누가 준거냐고 물으니까 여주언니가 줬대."
"그리고 그 애가 내 동생한테 나를 용서해주라며 옆에 대신 있어주며 같이 놀아줬대."
"고마워 여주야. 내 대신 한별이 돌봐주고 곁에 있어주고 한별이에게 날 용서하라는 마음을 가지게 해준거."
"아니야..."
특정공포증을 앓고 있는 우리엄마를 돌보는데 병실에 어린 아이가 들어왔다.
김한별이라는 예쁜이름을 가졌는데 우리엄마와 똑같은 병을 앓고 있어서
그 애와 같이 놀아주는 시간이 많아졌다.
"언니! 언니 엄마는 누굴 무서워서 여기 있어?"
"한별아 그럴 때는 계시냐고 묻는 거야."
"그니까 왜 계셔??"
"한별이는 왜 여깄는데?"
"아!!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한별이가 말 안하면 언니도 말 안해줄래"
"씨...난 어떤 언니랑 우리오빠."
"오빠? 왜?"
"우리오빠가 그런 언니랑 사귀는 게 싫었어. 그 언니는 다른 오빠한테도 좋아한다했고
우리오빠한테도 좋다했어! 양다리는 나쁜거야!"
"오빠가 잘못한건 없네"
"그래도 그냥..."
"한별아 그래도 오빠는 용서해주자. 언니 봐. 언니 엄마는 언니 아빠 무서워 하셔서 언니 이렇게 고생하잖아.
그니까, 한별이는 오빠 용서해주자. 한별이 착하지?"
한별이 오빠가 김한빈이었다니 새삼 놀랍지만
내가 모르는 지은이의 모습을 알게되서 약간은 충격이다.
양다릴 정말 걸친건지.. 어쩌다가 교통사고를 그렇게 어린 아이에게 낸건지...
내 친구였던 지은이와는 전혀 다른 지은이로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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