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나 기억 못 하겠어?"
에네스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병실 침대에 앉은 다니엘에게 물어봤다. 벌써 몇번이고 던진 질문이었지만 그 때마다 대답은 늘 한결 같았다. 다니엘은 미안하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에네스는 벌써 교통사고 후 이주일 째 이곳에 병문안을 오고 있었다. 사실 좋아해서 일방적으로 쫓아다니던 쪽은 다니엘이었지만 에네스는 어린애라는 이유로 전혀 상대해주지도 않았었다. 이주전 눈 앞에서 다니엘이 술 취한 운전자의 차에 치여 눈 앞에서 날아가기 직전까지도, 에네스는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동정으로 이렇게 찾아오는걸까. 에네스는 자신이 다니엘, 이 조그만 아이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항상 눈 앞에 있었기에 사라짐을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그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덜컥 두려워졌다. 다니엘이 수술실에 있는 동안 에네스는 자신이 믿는 신 뿐만 아니라 세상에 알려진 모든 신들에게 기도했다. 저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기에 벌써 데려가려 하시느냐고 차라리 자신을 데려가라며 울었다.
"사과 먹을래?"
"응."
다행이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정신적인 충격 문제인지 다니엘은 에네스'만'을 기억하지 못했다. 에네스는 이주 내내 면회가 시작되는 시간에 오고 끝나는 시간 바로 직전까지 아쉬워하며 머물렀다. 사과를 예쁘게 깎아 다니엘의 입에 넣어줬다. 다니엘은 아기처럼 오물오물 잘도 받아먹었다. 영원히 나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런 불안감이 에네스의 마음 한구석을 좀 먹어갔다. 자기가 눈길 한번 안줬어도 늘 뒤를 쫓으며 짝사랑했던 다니엘을 생각하며 에네스는 다시 맘을 다잡았다. 기억하지 못하면 다시 한번 관계를 쌓으면 되고, 기억을 쌓아주면 되는 일이다. 이번엔 자신이 짝사랑할 차례라고 생각했다. 심심할 다니엘을 위해 원래 수다를 떠는 성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에네스는 쉴 새 없이 재밌는 이야기를 했다. 다니엘의 손을 꼭 잡고 다정한 눈빛을 보냈다.
"우리 교대해요. 밥 먹고 오세요."
다니엘의 친구인 줄리안이 들어오며 에네스에게 말했다. 다니엘의 손을 놓고 눈에서 잠시나마 그가 떨어지는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에네스는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병실을 나갔다. 줄리안은 에네스의 발자국 소리가 한참 멀어지고 나서도 문을 빼꼼 열어 그가 있는지 확인한 뒤 문을 잠궜다.
"너 아직도 말 안했지?"
뭘? 다니엘이 태연하게 아작아작 사과를 씹어먹으며 줄리안에게는 시선도 주지않고 보던 패션 잡지를 마저 읽었다.
"3일 전에 기억 돌아온 거 말이야."
다니엘은 그저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