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드라마 01
부제; 그렇고 그런 사이
(Prologue가 있으니 읽고 오시는 걸 추천!)
우리가 고2의 끝자락 쯤에 있었을 때였지. 고3 언니, 오빠들은 수능을 마친지 한두달이 좀 넘었었고 우리는 고3이라는 타이틀을 얻기 직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었어. 몇몇 애들은 막간을 이용해서 도시에 있는 단기 학원을 끊었고, 벌써부터 고3이라며 밤을 새가며 공부를 시작하는 애들도 있었고...
우리는 뭐했냐고?
나랑 오세훈은 그냥 미친듯이 놀았어ㅋㅋㅋㅋ 진짜 이게 마지막이라는 듯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놀았어. 그 때 잠깐잠깐씩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안 놀아두면 진짜 후회 할까봐서. 같이 놀러다닌다는 애들이 없길래 우리 둘이서 그냥 놀았지 뭐...
그렇다고 그 시간동안 공부를 아예 손에서 놨다는건 아니야!! 공부도 열심히 하고 남는 시간에 놀았어 남들이 따로 학원 다니고 개인공부 하는 시간에!
그건 그렇고 오늘 부제목이 왜 '그렇고 그런 사이' 냐면 우리가 딱 이 날부터 이 날까지만 놀자- 했던 날의 마지막 날에 세훈이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기 때문이야. 진짜 제목 그대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말을...ㅋㅋㅋ
***
학교 보충을 마치고 우리 둘인 만나서 바로 집으로 향했지. 서로 11층, 12층에 가서 가방을 딱 내려놓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서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했어. 둘이서 컵라면에 삼각김밥 하나씩 들고 허겁지겁 먹으면서도 느껴지는 좀 우울한 분위기? 당연히 우울 할 수 밖에... 미친듯이 놀기로 한 마지막 날인데.
처음부터 마지막 날엔 밤까지 동네나 걸어 다니면서 마음을 좀 가라앉히자- 했었기 때문에 그땐 진짜 마지막 이라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있었어.
"야 김여주"
"뭐"
"우리 피씨방 갈래?"
그 때 내표정이 진짜... 라면 입에 물고 ㅇㅅㅇ? 이 표정ㅋㅋㅋㅋㅋㅋㅋㅋ 몇초동안 벙 쪄 있다가 당장 콜!! 을 외친 나를 데리고 오세훈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사람이 많던 피씨방으로 갔어. 나는 와본적도 없고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서 그냥 오세훈이 하는대로 가만히 있었지. 둘이서 피씨방 두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무려 3시간 동안 열심히 크아에 메이플에 카트도 했었고 테런도 했었고... 아 유치하다...ㅋㅋㅋ
암튼 둘이서 욕도 해가고 서로 졌다가 이겼다가 열심히 게임하고 나오니까 겨울이라 해가 빨리 져서 그런가 벌써 밖이 깜깜하더라. 오세훈이 내 어깨에 지 팔을 떡하니 걸치고는 '가자' 한마디에 우리는 원래 계획대로 좁고 볼거없는 시골 동네를 휘젓고 다녔지. 중간에 마트도 들러서 세훈이 커피도 사 마시고, 마침 그 날이 동네에 5일장이 서는 날이라 어묵꼬지도 사 먹었고... 그렇게 걷다 걷다 보니까 체육공원에 와있더라.
우리 동네에 체육공원이 있는데 아저씨들 족구하고 중고등 학생들 축구나 농구하고... 유명한 축제도 하는 그런 곳이야. 거기 내려가는 계단 중간에서 세훈이가 딱 걸터 앉는거야. 나도 그냥 아무 생각없이 걸터 앉았고.
근데 그날따라 거기가 너무 조용했어. 가로등만 간간히 켜져있고, 추워서 그런가 운동하러 나온 애들도 없었고. 막 하늘에 별도 많고 달도 밝았고. 갑자기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있던 소녀감성이 울컥- 하는 밤이었지. 오세훈도 비슷했는지 한참동안 말이 없었어. 나도 말이 없었고.
머릿 속으론
'아, 진짜 이게 수능 치기 전 맹탕맹탕 노는 마지막 날이구나. 정말로 얼마 안 남았구나.'
하는 생각에 또 괜히 우울해지고. 그러다가 먼저 입을 연 건 세훈이였어.
"진짜 얼마 안 남았지."
"그렇지."
"우리 이제 고3이야."
"아니까 조용히 해."
"왜ㅋㅋㅋ 싫어?"
"그럼 넌 좋아?"
"그럴리가"
그러고 세훈이가 입을 닫더라. 누가 보기에도 더 할 말이 있어 보였거든? 근데 다시한번 정적이 찾아왔어. 그리고 세훈이가 고개를 틀어서 턱을 받치고 날 쳐다보길래 나도 똑같이 쳐다봐줬지. 또 그렇게 몇분을 가만히 있었던 것 같애. 둘 다 추워서 입김이 막 나오고 코랑 볼이 시뻘개져서도.
"김여주"
"또 왜"
"넌 안 힘들어?"
"...힘들어. 갑자기 그런건 왜 물어봐"
"그냥. 힘든거 있으면 앞으론 나한테 바로바로 말 하라고."
"너나 잘해ㅋㅋㅋ"
분위기가 조금 진지해지려 하길래 어색해서 웃으면서 말을 끝맺으려 했는데 오세훈은 장난이 아닌 것 같더라.
"나 그럼 힘든거 지금 너한테 말한다?"
아, 얘가 내 생각보다 많이 힘든 일이 있는건가.
장난끼 많은 오세훈 한테서는 평소에 잘 볼 수 없는 진지한 표정이었어.
"누나가 들어줄게. 말해봐"
"니가 왜 누나야."
"들어준다고 할 때 말을 해"
오세훈은 또 또 또 입을 꾹 다물고. 나는 그냥 기다려줬어. 좀 하기 힘든 얘긴가보지, 하면서.
"사실 내가 요즘 많이 복잡해. 우리는 이제 고3이고, 고3은 살면서 제일 열심히 공부 해야 할 시기 중 하나니까."
"응, 근데."
"근데..."
"......"
"너 때문에."
???
나 때문에? 왜? 난 엄청 놀랐지... 내가 세훈이한테 좀 뭐랄까 항상 치대고 들러붙고 피곤하게하고 그런건 사실이었거든. 진짜 갑자기 미안해져가지고
"야 내가 그렇게 니 귀찮게 굴었나..."
"인정은 해ㅋㅋㅋㅋ?"
"아 야... 진짜로? 아 미안해, 난 그냥....."
"니가 뭐가 미안해."
"귀찮다며."
"알긴 아네."
나 급 시무룩...ㅋㅋㅋ 진짜 이때까지 내가 너무 귀찮게 굴었나? 오세훈이 진지한거 보면 저거 진심인가? 속으로 백번씩 생각하고 그냥 그땐 내 쿠크가 바스락 바스락....
그런가 보다- 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될지, 오세훈이랑 있는 시간을 더 줄여야될지 고민만 하고 있었어.
"김여주, 나 좀 봐."
"아 왜..."
"사실 방금 한 말 다 뻥이야ㅋㅋㅋㅋㅋ"
"구라 치네."
"구라 아니면 어쩔래"
"몰라."
오세훈이 그런 나를 또 뚫어져라 쳐다보더라. 눈빛이 부담스러울 만큼? 나는 시선처리가 안 돼서 앞만 쳐다보고 있고... 그러다가 오세훈이 입을 열고 하는 말이,
"내가 너 좋아해."
"그래서 요즘 많이 복잡해."
"너 때문에 공부하기가 힘들어."
헐, 진짜 말 그대로 헐. 나를 평소에 좀 잘 챙겨주고 우리 둘이서 유난히 붙어다니기는 했어도 그냥 어릴 때 부터 친해서 그런건 줄로만 알았지 나는...
"정신 좀 차려ㅋㅋㅋ"
"어?"
"너랑 사귀자고 안해. 표정이 왜 그따구야"
그러면서 세훈이가
'이제 우리 둘 다 고3이고, 너가 싫던 좋던 연애 할 생각은 없어. 너한테 그런 말 꺼내지도 않을거고. 우리 둘 다 가고싶은 대학 있으니까 더 열심히 공부 해야지. 근데도 너 좋다고 말 꺼낸건 그냥 말 그대로 요즘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그랬어. 딱히 대답 듣고싶은 마음도 없고, 나 후련하자고 말 한거니까 너도 마음에 담아 두지는 마.'
이렇게 말을 속사포로 우다다다 내뱉더라고.
사실 우리 둘 다 목표대학이 높은 것도 그렇고(중경외시 안쪽) 목표를 그렇게 잡은 만큼 나랑 세훈이가 공부를 안 하는 것도 아니었거든. 세훈이는 이과에서, 나는 문과에서 세 손가락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성적이었지. 그런데 만약 우리 둘이 '연애' 같은 걸 하다가 성적이 떨어지면? 안 그럴 수 도 있겠지만, 확률이 없는게 아니잖아. 둘 다 공부에 욕심도 많고 꿈이 확실하니 그땐 어쩔 수 없는 거였어.
나도 절대 오세훈이 싫은건 아니었지... 오히려 따지자면 좋은쪽?
"세훈아, 너가 말 하려는게 뭔진 알겠어."
"나도 너랑 딱히 다른 마음 아니야."
"그러니까 우리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서울 가자. 꼭 둘이 같이."
이러고 사이좋게 걸어왔던 것 같아. 분위기가 예전이랑 똑같았다면 거짓말이지만...ㅋㅋㅋㅋ
그 날 이후로 우린 정말 그 일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었어.
딱히 이유를 말하자면, 우리는 예비 고3이라는 우리의 위치를 너무 잘 알고있었고, 그 좋아하는 마음만큼 꿈에 대한 마음도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오세훈이 이 날 그런 말을 한 바람에 우리는 진짜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거지... 친구라 하자니 좀 어색하고,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썸 같은 것도 아니었어. 진짜 어떻게 표현 할 방법이 없는 그렇고 그런 사이.
#사담
와... 오늘 글 쓰면서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ㅋㅋㅋㅋ 진짜 우리가 저랬구나... 혹시 이 글을 보고있는 고등학생 익인들ㅠㅠ 고등학생 때가 진짜 추억 많은 것 같아요ㅠ 어떻게 고딩 때 한 공부도 지금 생각하면 추억인지ㅠㅠㅠㅠㅠㅠ 돌아가고싶다... 음 오늘은 딱히 할 말이 없네요ㅋㅋㅋㅋㅋㅋㅋ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ㅂㅂ!
+)ㅠㅠㅠㅠ 제가 경남사람 이라서 그런지ㅠㅠㅠㅠㅠㅠㅠ 중간중간 글에서도 사투리가 튀어나와요ㅠㅠㅠ 일부러 서울말처럼ㅠ 쓰고있긴 한데ㅠㅠㅠㅠㅠㅠㅠ 망할 놈의 사투리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