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은 슈가볼의 '여름 밤 탓'을 추천합니다 뀨
과제-여름 밤 |
‘조별과제란 공상주의가 실패한 단적인 예’라는 말은 누가 했는지는 몰라도 진짜 어렸을 때 씽크빅 좀 갈기고 ‘어린이 세계 명작 전집 52’ 요딴 것 좀 읽었을 것 같은 아이디어 뱅크가 한 말임에 틀림없다. 그니까, 박 교수님은 바보야… 공산주의가 왜 실패했는지도 모르고 맨날 조별과제만 내주는 바보… “인희야 다 했어?” “예?” “아까 부탁한 거 다 했냐고.” “아… 아니요. 아직…” “그럼 얼른 하자. 안 그래도 애들 또 다 내뺐는데 우리라도 열심히 해야지.” 그렇게 말하면서 아까 사왔던 캔 커피를 슥 내 쪽으로 건넨다. 아직 어렴풋하게 온기가 남아있는 걸 보니 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감싸고 있었나 보네. “아, 저기 오빠.” “어 왜.”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힐끔거리며 물었다. “시험 끝나고 바쁘세요?” “시험? 기말?” “네.” “어… 아닐걸? 왜?” “어, 그래. 너 수고 많았으니까 그 땐 내가 사줄게.” 오빠는 원래 저런 성격이다. 무심한데, 도대체 뭐가 매력인지도 모르겠는데, 다들 좋아한다. 그래서 인기도 많고. 교수님, 과대, 선배, 동기, 후배 모두 다 오빠를 좋아한다. 물론 나도 오빠를 좋아한다. 신입생 환영회였던가? 갓 대학생이 된 나는 선배들이 주는 술을 대부분 받아 마셨고, 집에 돌아갈 쯤에는 조금 휘청거렸다. 집이 비슷한 방향이라던 오빠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부축해 함께 버스에 탔고, 나는 맨 뒷자리에서 본의 아니게 오빠의 어깨에 기대어 반쯤 잠들어 있었다. 그 때 오빠는, 언제나의 일정한 그 톤으로, 담담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이야기들. 의미를 부여할래야 할 수 없는 그런 따분한 이야기들. 그러나 그 때의 그 목소리의 파편들은 내게 다가와 깊숙하게 박히었고, 아직 춥던 3월, 나는 그렇게 그를 좋아하게 되었다. “야, 인희야, 너 또 멍 때리지.” “네?” “안 되겠다. 야, 바람 좀 쐬고 오자.” 우리는 오빠의 자취방에서 나와 근처 놀이터를 좀 걸었다. 내내 과제만 하다 간만에 나와서 그런지 오히려 오빠가 들떠보였다. “너 어렸을 때 사고 많이 쳤지?” “예? 아니요. 저 되게 얌전했는데…” “얌전한데 맨날 놀면서 다치는 애들 있잖아, 너 왠지 그랬을 것 같아.” “헐.” “맞지?” 오빠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그네에 잠시 앉아 있다가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다는 오빠의 말에 동네 슈퍼를 들렀다. “아, 날 좋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산들바람은 불어 선선한 여름 밤. 느긋하게 걷는 서로의 손이 가까워졌다 닿지 못하고 멀어질 때마다, 오빠, 좋아해요. 꽤 오랫동안 좋아했어요. 결국은 못할 게 뻔한 말들만 쌓여간다. “… 오빠.” “오, 인희야, 너 이 노래 알아? 나 이 노래 되게 좋아하는데.” 아… 어쩌다 내뱉긴 했는데 타이밍 완전 나빴다. “아, 응. 왜?” “아이스크림 맛있다고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오빠는 웃으며 싱겁다고 말했다. “… 오빠, 좋아해요.” 신이 나서 앞서 걷고 있는 오빠의 등 뒤에 대고 말했다. 제발 못 들었어라… “어? 뭐라고?” “아, 아니에요!” “나한테 뭐라고 했었던 거 같은데 진짜 아니야?” “네…” 아이스크림 막대를 양손으로 꼬옥 쥐고 어색하게 웃어보이자, 오빠는 그제서야 다시 룰루랄라 신이 나서 걸었다. “야, 인희야, 생각해봤는데, 아까 했던 구성 말고… 야! 너 왜 아직도 거기 있으면 어떡해! 얼른 이리 와!” 저 앞에서 오빠는 내게 소리쳤다. “오빠! 진짜 진짜 좋아해요! 전부터 좋아했어요!”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내가 한 순간 미친 이유는, 이게 다 맨날 조별과제 내줘서 오빠랑 붙어 있을 수밖에 없게 만든 박 교수님 때문이고, 맨날 되도 않는 핑계대면서 내빼서 오빠랑 단 둘이 있게 하는 조원들이랑, 결정적으로 살랑살랑 여름 밤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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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익쁘니들... 역시 나는 남치니가 없어야 이런 게 잘 나오는 듯...ㅠㅠ
암튼 이 둘은 여자애가 얼굴 시뻘개져서 가방이고 노트북이고 다 두고 주머니에 있는 버스카드로 집 갔다가 다음 날 선배가 아이스크림 사주며 해피해피하게 끝나는 겁니당!
는 대학에선 이런 일 없어영...ㅋ 그치만 망상이니깐...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