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내리 고된 훈련이 계속 되었던 터라 내무반의 새벽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1년 6개월 넘게 군대에서의 생활 패턴을 유지해 온 루한은 이른 새벽에 눈을 떴음에도 다시 잠에 들지 못한 채 새벽을 지새우고 있었다.사실 군대라는 게 정말 그랬다.남자들이 득실한 곳에서 매일 퀴퀴한 땀 냄새를 맡으며 수 개월을 생활하면 얼굴이 어여쁘건 어여쁘지 않건,몸매가 뛰어나건 뛰어나지 않건 생물학적 여자를 보면 즉각 군침이 도는 그야말로 여성의 존재 가치와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곳.한 달에 두어번 면회를 오는 어엿한 여자친구도 없이 입대를 한 루한은 1년이 넘도록 지극한 외로움에 시달렸다.그러나 최근 일주일 새 루한의 얼굴엔 웃음꽃이 만연했다.
“……김민석.”
몸을 틀어 누운 루한이 제 옆에 곤히 잠든 민석의 이름을 읊조렸다.잠결에도 저를 부르는 소리를 알아들었는지 눈썹을 찡그리는 귀여운 행동에 푸스스 웃음을 흘린 루한이 손을 올려 민석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쓰다듬기 시작했다.얼굴 선이 대체적으로 고왔다.남자치곤 꽤 작고 오똑한 코에 쌍커풀 없이 얇은 눈꺼풀,붉은기를 머금은 통통한 입술에 타고난 흰 피부는 어째 여성의 외모에 더 가까웠다.꽤 짙은 편임에도 귀엽게만 느껴지는 눈썹을 수차례 만져대던 루한이 도자기로 빗어놓은 듯 매끄러운 코를 검지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한참 코 끝을 문지르던 손가락이 살짝 벌어져있는 입술 위로 앉았다.윗 입술 아랫 입술을 번갈아가며 쓸어내리다 벌어진 틈 사이로 손가락을 밀어넣자 잠결에 루한의 손가락을 입에 문 민석이 아이가 젖을 빠는 양 쪽쪽 빨아대기 시작했다.
“깼나?”
꽤 큰 소리로 물었음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고요한 내무반,낯 부끄럽게 울리는 쪽쪽대는 소리에 헛기침을 두어번 한 루한이 주변을 살폈다.아직은 이른 새벽이라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어느새 귀까지 붉게 물들인 루한이 고개를 두어번 흔들고 손가락을 빼내었다.손가락을 빼냄과 동시에 스르르 눈을 뜬 민석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
“왜.”
“아닙니다.”
“왜 그런 표정을 짓나.”
“아니,눈 뜨자마자 보여서 놀래서 그랬습니다.”
“내가 눈 앞에 있는게 놀랄 일인가.”
“아닙니다…….”
속으론 귀여워,귀여워.하지도 못할 말을 연발하고 있음에도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무뚝뚝한 시비조가 전부였다.결국 입술을 비죽 내민 민석이 풀이 죽은 대답을 하곤 다시 눈을 감았다.어쩐지 양 볼이 붉게 물이 든 것 같기도 했다.
“김민석 이병.”
잠시간의 적막을 깬 건 민석을 부르는 루한의 목소리였다.민석이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네.”
“같이 씻을까.”
감은 두 눈이 번쩍 뜨여졌다.
“네?”
“어차피 아침부터 훈련이 있을텐데,준비를 좀 미리하는 건 어떤가.”
“어……,개별 행동은 금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걱정돼서 못가는 건가.”
“네.”
민석의 머리통을 두어번 쓰다듬은 루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물대에서 전투복을 챙겨들었다.이어 민석의 관물대에 개인 전투복까지 꺼내들고 한 손으로 민석을 일으켰다.별다른 거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민석이 일어 설 때 잡았던 루한의 손을 놓지않고 깍지껴 잡았다.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짜릿한 느낌에 입술을 꾹 깨문 민석이 루한을 따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