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예전에 예쁘다고 사둔 옷들이 많을 텐데 이렇게 나가려고 보니까 왜 없는 거냐구. 원피스가 어디 있을 텐데... 여깄다. 이런 거 입어도... 오바스럽고 막 그런 거 아니겠지? "꼴에 여자라고 존나 늦는 거 봐라." "야 나 같이 이렇게 여성스러운 애가 어디있냐. 네가 날 매일 봐서 그렇지, 어? 나도 밖에 나가면 한 인기 한다 이거야." "네, 네. 다음 개소리." 집에 나설 때부터 영화관에 도착할 때까지 말싸움만 하면서 왔다. 벌써부터 피곤해... 여자에 대한 배려는 (사실 나를 위한 배려는) 눈꼽 만큼도 없는 박찬열인지라 영화는 자기가 보고 싶은 거 본댄다. 영화 취향이 비슷해서 박찬열이 보고 싶었던 영화=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이라는 게 함정이지. "너 무서운 거 존나 못 보면서 보고 싶다고 난리야." "뭐야... 내가 전에 보고 싶다고 했던 거 기억..." "아니. 끊고 오는데 생각남. 팝콘이랑 콜라 사올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앉아있어." 처음 말에 감동...을 받을 뻔 했는데 저게 뭐야, 박찬열! 저렇게 말은 하면서 은근 챙겨주는 박찬열이니까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다구요. *** 아까 박찬열이 카톡하는 거 몰래 훔쳐보는데 저장명이 하트인 사람을 봤다. 그냥 하트도 아니고 까~만 하트. 여자 친구가 생겼나 싶은데 나한테 아무 말도 없고... 물어보고는 싶은데 용기가 없단 말야. 저 하트의 정체는 무엇인가. 분명 박찬열은 애인이 생기면 상메부터 시작해서 다 티내고 다니는데 그러지도 않고. 설마 내 거 인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그런 사이? 설마? "멍 때리면 얼굴 커진다." 내 이마를 때리며 말하는 박찬열에 정신을 확 차렸지만 우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구. 내 기분을 알았는지 '뭔 일 있냐?' 이리 물어오는 박찬열에 네 카톡 그 하트 누구야! 이렇게 묻고 싶었지만. 참을 인 하나, 둘, 셋....참고 또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물어보면 네가 알아서 뭐하게로 시작해서 설마 나 좋아하냐? 이걸로 끝날까 두렵기도 하고 진짜 여자 친구라고 대답을 할까 무섭기도 하다. 이래서 짝사랑이 제일 슬프다도 하는 건가 싶다. *** "아, 이제 원래 시간대로 가기로 했냐? 존나 덥네." "설마 나 기다린 거야?" "설마가 사람 잡지.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늦게 잘 걸 그랬네. 아오. 빨리 와라, 안 오면 버스에 사람 많아진다." 있잖아요. 제가 십 년이 넘은 남사친이 있거든요?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인데 제가 일 년 전인가 그 때부터 얘를 좋아하게 됐는데 지금 그게 절정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얘를 잘 못 보고 피해 다니고 그랬는데 얘가 막 왜 피해 다니냐면서 뭐라하고, 네? 그리고 영화 볼 때도 제가 보고 싶은 영화랑 제가 좋아하는 팝콘이랑... 사오고... 제일 중요한 건 제가 얘 피해 다니려고 학교도 일찍 가고 그랬는데 얘가 절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물론 제가 일찍 가려고 나선 시간에. 십 분 넘게 안 나오면 갈 법 한데 삼십 분 넘게 기다리고... 이거 그린 라이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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