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항상, 니가 있었다.
햇살이 따스하던 4월 중반, 곧 시험이라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스트레스 최고치를 달리던 내가 갔던 곳은 항상 스트레스를 푼다며 놀러가던 노래방도 아니었고 , 결국 항상 후회하지만 먹을 때 만큼은 행복했던 맛집도 아니었다. 사실 스트레스를 풀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너를 만났다.
스트레스로 왔던 위염에 계속 힘들어하던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담임 선생님이 먼저 조퇴를 하는 것이 어떻겠냐며 물어왔고 나는 당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험이고 뭐고 나는 휴식이 필요했다. 버스에서 이어폰을 끼고 깜박 잠이 들었는지 이미 내릴 정류장을 한참 지나있었다. 급하게 내렸던 그 곳은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넋을 잃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밑에 너가 있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꽃잎이 떨어지고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그 장면을 정신없이 눈에 담았다. 아마 그때서야 아, 아직은 봄인구나 하고 느꼈던 것 같다.
"안녕."
내 시선을 느꼈는지 뒤늦게 마주친 눈에 화사하게 웃으며 건내받은 그 인사가, 가슴에 박혔다.
아마 그 후였을까, 내가 매번 그 곳에 찾아갔던 것은.
"어, 왔네."
내가 찾아갈 때 마다 항상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있는 모습에 나는 무얼 바랬던 건지. 밝은 미소로 너는 나에게 왔냐며 인사를 건내왔다.
이름도 몰랐던 사이에서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인사를 나누는 사이에서 고민을 말하는 사이가 되었다. 가장 큰 고민은 너였음에도 항상 다른 문제를 만들어 너에게 고민 상담을 핑계로 하루종일 떠들다 가곤 하였다.
"시험 성적 나왔는데 완전 망했어."
"맨날 여기 오는데 잘볼리가 있나."
너는 장난스럽게 웃어보였고 나도 작게 웃었다. 그러게, 너 덕분에 제대로 망했다. 아마 집에 들어가서 이 성적표를 보여드린다면 한동안 용돈이 끊길지도 모르겠다.
"태형아."
"응."
"너는 항상 여기 있잖아."
"응. 항상 여기 있어."
그 한마디가 어찌나 힘이 되던지. 너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 너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언젠가 한번 너에대해 물었을 때 너는 그저 웃으며 입을 꾹 다물었고, 나는 굳이 너의 비밀을 캐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났다. 벚꽃이 지고 푸른 나무가 되었다가 색색이 물들 때 까지도 너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나뭇가지가 앙상해져가던 어느 날, 너는 처음으로 그 자리에 서있지 않았다.
그래, 하루쯤은 없을 수도 있지. 애써 합리화를 시켜봤지만 다음 날도 너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픈걸까 걱정이 되어도 너를 찾을 방법은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은 너의 이름과 얼굴 뿐이었다.
봄날의 꿈이었을까. 푸른 빛이 사라진 이 시린 날, 너는 어디에 있을까.
"보고싶어, 태형아."
시간이 흘러 나는 3학년이 되었다. 점점 지치고 힘이 들어도 이젠 털어놓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버티다가 코피를 흘리고 쓰러지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그 곳에 나가지 않은지도 몇개월이 흘렀다. 친구들은 걱정했지만 정대 말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그저 어깨를 두드려줄 뿐이었다.
"태형아."
작년 이 맘때 쯤 너를 만났다.너 몰래 찍어놓은 흔들린 사진 한장에 보고싶다는 말을 해도 내 말을 들어줄 너는 이제 없었다.
중간고사가 끝났다. 끝난 시험에 기뻐할 틈도 없이 도서관으로 향하는 친구들을 보다가 조용히 빠져나왔다.
오랜만에 찾아간 그 곳에는, 여전히 너는 없었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나는 너에 대해 아는게 하나도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끝까지 캐내더라도 번호쯤은 물어볼걸. 이미 지나간 일에 후회를 하다가 항상 너가 서 있던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달라진 것 하나 없는 풍경 때문인지 목까지 차오른 눈물을 참으려다가 결국 눈물을 쏟아낸다.
안녕,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에 만났던 내 첫사랑아. 많이 앓고 힘들었던 사랑아.
너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땐 왜 그랬을까. 아직도 떠나보내지 못하는 이 추억 속에서 너와 나는 너무 예뻐서, 한창 예쁘고 힘들었을 시절에 나를 가장 빛나게 만들어준 사람아.
보고싶다, 태형아 잘 지내?
+++
예전에 독방에 한번 올렸던 적이 있는 글이에요. 약간 다듬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