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훈은 날뛰는 백현을 뒤로한채, 얽혀있는 덩쿨사이로 들어갔다. 빨리 얼굴을 되돌려야 할텐데. 얼굴이 무지개색으로 변한 백현도 백현이지만, 그 모습을 봐야하는 자신의 불쌍한 눈을 위해 세훈은 손놀림을 빨리했다. 얽힌 덩쿨 가지들을 풀어내자, 앙증맞은 버섯들이 옹기종기 피어있었다.
“형! 이리와봐요. 이런거 먹으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요?” “버섯? 산에서 나는 버섯은 함부로 먹는거 아니랬는데.”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에요? 그리고 여긴 세계수의 숲이라고요. 이상한게 있을리 없잖아요.” 왠지 수긍가는 말에 알록달록한 여러색의 버섯중 흰색 버섯을 뜯어 입에 털어넣었다. “어? 점점 원래색으로 돌아와요.” “정말? 다행이다.” 뿌듯하게 웃던 세훈의 표정이 갑자기 다시 굳어졌다. 한참을 뜸들이던 세훈이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형...색은 원래대로 돌아왔는데요...얼굴에 물방울무늬가 생겼어요.” 오세훈 나쁜놈. 저걸 죽여 말아? 생각해보니 저 무지개떡같은 열매도 이 숲에서 난거잖아? 이를 부득부득 갈던 백현은 화낼 힘도 없다며 도로 주저앉았다. 바닥에 널브러져 고개를 돌리자 한 약초가 눈에 띄었다. 다른 풀들은 그대로인데, 유난히 그 약초만 하얗게 빛났다. 백현은 의아한 마음에 세훈을 툭툭 쳐 약초를 가리켰다. “세훈아, 저기 저 약초 보여? 혼자 빛나는거.” “빛나는 약초? 어디있는데요?” “저기 있잖아. 저쪽에!” “어디요? 안보이는데.” 자꾸 두리번거리며 못찾는 세훈이 답답해진 백현은 엉금엉금 기어가 약초를 잡아 뜯었다. 전혀 모르겠다는 세훈의 표정에 이상함을 느낀 백현은 다시 눈을 비비고 쳐다봤다. 여전히 반짝였다. 내 눈에만 반짝이는건가? 신기하네. 약초를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자 세훈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드디어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 세훈이 자리에 앉은 후, 다시 아까 하던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숲은 하늘에 떠있는 작은 섬에 있어요. 하지만, 구름에 둘러쌓여서 평소엔 보이지 않죠. 이 섬과 지상을 잇는 통로를 여는 법은 문지기에게 능력을 인정받는것 밖에 없어요. 즉, 초능력자만이 들어올 수 있다는거죠.” 그말은 지금 여기가 하늘 위라는거야? 온통 나무로 둘러쌓여 하늘인지 땅인지조차 분간이 안갔다. 백현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다시한번 확인을 했다. “그러니까 여기는 세계수의 숲이고, 하늘위에 떠있다는거지? 너는 바람의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고.” “맞아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형이 초능력자라는거. 12명이나 되는 초능력자들 다 언제찾나 했는데. 운좋게도 금방 찾았네요.” 활짝 웃으며 열매를 집어들던 세훈이 다시 열매를 내려놓고는 옷의 목 부근을 잡아늘였다. “아마 초능력자라면 몸 어디에 표식이 있을거에요. 저처럼.” 세훈이의 쇄골에는 검은색으로 바람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어디있지? 소매를 걷어보던 백현은 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왼쪽 손목 부근에 빛을 상징하는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빛이네요? 신기하다.” “응. 근데 문제가 있어.” “뭔데요?” “너는 니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알잖아. 근데, 난 몰라. 뭘 어떻게해야 빛이 나오는지, 어떤식으로 써야할지 하나도 모르겠어.” “괜찮아요. 그럴수도 있죠. 이제부터 차근차근 배우면 되잖아요.” 세훈이 씩 웃으며 어깨를 두어번 두드렸다. 왠지 같이 웃음이 나서 백현도 씩 웃어버렸다. “일단 늦었으니 먼저 자고, 내일 여길 나가든 말든 해요.” “그래, 그러자. 잘자 세훈아.” “네. 형도 안녕히 주무세요.” 침낭도 없이 얇은 나뭇잎 하나 달랑 덮은채 둘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누군가 같이 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늦은 밤 숲속도 춥지 않았다. *** 잠자리가 불편해서 그런지 오래 잠을 자지 못하고 금방 눈을 떴다. 이제 막 아침이 밝아오는 것 같았다. 몸을 일으킨 백현은 기지개를 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 아침식사로 먹을만한게 없나? 아직도 자고있는 세훈이의 얼굴을 한번 내려다보고 백현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두리번거리던 백현은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들고 흙바닥에 꾹꾹 눌러 글을 적었다. “세훈아, 형 먹을것 좀 구해올게. 여기서 기다려.” 다 쓰자 나뭇가지를 휙 던진 백현이 콧노래를 부르며 숲속으로 들어갔다. 좀 더 깊은 숲으로 들어오자, 커다란 호수가 나타났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울긋불긋한 잉어들이 헤엄치고있었다. “오늘 아침밥은 너 당첨!” 손가락으로 빵 하고 총쏘는 시늉을 한 백현이 바지를 걷고 호수에 들어갔다. “앗 차거! 우와, 고기 무지 많다.” 대충 손으로 물속을 휘저어도 잡히는 잉어들에 신난 백현이 닥치는대로 고기를 잡아댔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열댓마리의 잉어가 땅 위에서 펄떡이고 있었다.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는데. 두마리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풀어줘야겠다.” 남은 잉어들을 다시 물가에 풀어주고, 한손에 잉어 한마리씩을 든채 백현이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세훈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초조한 표정의 세훈이 백현을 보고 소리쳤다. “형! 함부로 돌아다니면 어떡해요! 또 괴물들 만나면 어쩌려고요?” “미안. 먹을거좀 찾아오느라.” 화가 난 듯한 세훈의 표정이 백현의 손에 들린 잉어를 보고 사르르 풀어졌다. “불은 제가 필게요. 형 사랑해요.” 잔가지들을 모으며 세훈이 하트를 날렸다. 세훈은 어제 저녁부터 굶었던터라, 고기가 구워지자마자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백현도 속도를 내어 고기를 먹어치웠다. *** “배불러. 살것같다. 밥도 먹었겠다, 이제 여기서 나가볼까요?” “그래. 근데 어떻게 나가?” 그 말에 세훈이 씨익 웃으며 손을 높이 들었다. 바람이 세훈과 백현의 주위를 감쌌다. “어떻게 나가긴요. 이렇게 나가죠.” 말이 끝나자마자 몸이 붕 떠올랐다. 바람이 그 둘을 싣고 섬의 끝자락으로 날아갔다. 한참을 날아갔을까, 섬에 끝자락에 다다르자 세훈이 백현에게 크게 소리쳤다. “형! 이제부터는 좀 무서울거에요!” 세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섬 밖으로 나온 몸이 바닥으로 쑥 꺼졌다. 섬을 벗어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바닥으로 하강하는 바람에 백현이 비명을 내질렀다. “살려줘!!!!!!” 바람을 타고 끝없이 밑으로 떨어지며 세훈은 미친듯이 웃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