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스 컷(Plus cut) 01
1-1. 시작
아침햇살이 조그만 옥탑방 창문을 향해 들어왔다. 때에 맞춰 알람시계가 시끄럽게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성규가 이불 속에서 꼼지락꼼지락 손을 꺼내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저 멀리 던져버렸다. 쿵! 하고 벽에 부딪힌 알람시계는 이미 제 명을 다한 듯 잠잠해졌다. 큰 소리에 놀란 주인집 아주머니가 올라와 성규를
깨웠다. 청년ㅡ 성규야, 일어나야지~ 아주머니가 마치 군대 간 제 막내아들을 깨우듯 성규를 어르기 시작했다.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간신히 일어난 성규.
힘겹게 화장실로 기어 들어간 성규의 씰룩거리는 엉덩이를 본 주인집 아주머니가 성규의 엉덩이를 한대 쳤다. 젊은 놈이 다리가 성하면 걸어다녀야지!
성규는 문득 전주에 계시는 제 어머니를 주인집 아줌마에게서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법 용케 화장실까지 온 성규가 세면대에 손을 얹고 멍하게 거울을 보고 서 있었다.
"아..첫 출근이네.."
부스스 뜬 제 앞머리를 꾹 누른 성규가 밖에 계시는 아줌마를 향해 소리쳤다. 아줌마, 죄송하지만 지금 몇시에요? 성규의 물음에 아줌마가 실 없게 웃으셨지만 그래도 성규의
물음에 대답을 해주셨다. 7시 30분! 아줌마의 대답에 성규의 작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네? 몇시라구요? 성규가 놀라 다시한번 물었지만 아줌마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성규의 몸짓이 빨라졌다. 순식간에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은 성규가 양치를 하며 옷장을 뒤졌다. 하지만 어제 다려놓은 정장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나가도 방송국을 가는 버스는 놓치고 만다. 성규가 하는 수 없이 스키니진과 티를 꺼내들었다. 이거라도 입어야지 뭐..티와 함께 가디건을 던지다시피 꺼내놓은
성규가 다시 화장실로 가 입을 헹구고 뛰어나오다가 문턱에 걸려 발을 찧었지만 그 아픔은 속으로 삼키고 옷을 갈아입었다. 첫 출근을 지각으로 시작할 수는 없었기 때문.
"아저씨!!"
운 좋게도 집을 나오자마자 버스가 정류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니로 빙의한 성규가 백팩을 메고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버스기사가 기다려준 덕분에 지각은 면한 성규가
남은 좌석에 앉았다.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있었다. 아침에 아주머니가 정신 차리라고 주신 껌-정신과 껌이 무슨 상관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을 꺼내 포장을 벗기고
입 속에 넣었다. 오물오물 껌을 씹던 성규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딸기맛 껌이었다. 껌을 입 속에 그대로 담고있던 성규가 버스를 살폈다. 출근시간이라
사람이 많았지만 각자 제 할일만을 하고 있었다. 성규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조용히 옆 창문을 열었다. 하나, 둘, 셋! 퉤! 하고 성규의 입속에서 껌이 날라갔다.
그리고 곧 한 남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뭐지? 하고 창문을 내다 본 순간,
버스가 정차했다.
"누구야!"
성규가 가디건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창문 밖을 내다봤다. 껌을 맞은 상대를 자세히 살펴보니..맙소사, 요즘 가장 잘 나가는 남자아이돌 그룹의 리더였다. 아..망했다.
성규가 조용히 창문을 닫았다. 다행히 팬들은 보이지 않았다. 성규가 제 몸을 숙이고 주위를 살폈다. 몇 분만 더 가면 제가 내릴 정류장이었다.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은
성규가 몸을 숙인 상태에서 손만 꺼내 벨을 눌렀다.
"혹시..첫 스케줄이 이 곳은 아니겠지..?"
다시 한번 주위를 살핀 성규가 다다다다 방송국으로 달려갔다. 겨우 몇 분 뛰었다고 무릎에 손을 얹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제 자신도 이런 저질체력으로 뭘 할까싶어 걱정이
되어 헬스장을 끊었지만 며칠만에 그만 뒀다. 울그락불그락한 아저씨들이 몸자랑 하는게 싫었다는게 그 이유였다. 방송국으로 들어온 성규가 총총거리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곧이어 시끄러운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굴까싶어 옆을 바라본 성규가 흠칫 놀라 내려온 엘리베이터에 급하게 탔다. 그리고 닫힘버튼을 재빠르게 눌렀다.
잠깐만요!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안타깝게도 문을 닫히고 있었다. 대체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아침에 본 그남자가 속한 그룹을 몇십분만에 다시 만난단 말인가.
성규가 제 분노를 몸부림으로 표현하다 위에 CCTV가 있다는걸 자각하고 몸부림을 멈췄다.
아무래도 아줌마가 제안해주신건 제 체질이 아닌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성규가 예능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배PD의 재촉문자가 시도때도 없이 오기 시작했다. 시간을 넉넉하게 체크한 성규가 밖을 어슬렁거리다 회의실로
들어갔다. 눈 앞에 보이는건 유명한 피디 몇 사람과 작가들, 그리고 성규의 입사를 추천한 선배였다. 스멀스멀 발끝부터 긴장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수의 눈치로
자리에 앉은 성규가 제 가방을 옆에 놓고 다시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오늘 입사한 신입 김성규라고 합니다! 조용한 회의실에 성규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여자PD가 비웃음인지 뭔지 모를 웃음을 터트리자 분위기가 풀어져 모두 다 웃기 시작했다. 패기가 보기 좋네! 앞에 앉은 PD의 말이었다. 뻘쭘해진 성규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럼..이피디 오면 성규씨 방송국 구조부터 알려주고 바로 전주로 내려보내요."
"대..대구요..?"
"대구에서 지금 뮤직뱅크 야외방송 하거든요, 거기 가서 일 도와주면 되요."
"그건 FD들이나 하는 일..."
"그럼 첫날 입사한 피디한테 프로그램을 맡깁니까?"
이곳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여자의 호통에 두준이 고개를 숙였다. 성규를 데리고 나간 두준이 진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다리는 동안 성규가 손가락을 꼼지락대자
두준이 말을 걸었다. 대구 가면 어리버리하게 행동하지말고 잘해, 한번 찍히면 저 마녀한테 끝장이야, 끝장. 두준의 충고에 성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 진기가 올라와
성규를 데리고 1층으로 내려갔다. 여기는 로비, 가끔 팬들이 사칭해서 들어올 때도 있는데 팬페이지 애들이 맞나, 아닌가 잘 알아봐야되. 그런 애들이 가수들 대기실 들어가서
사진 찍고 물건 훔치고 그러거든, 그럼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할수도 있으니까 꼭 조심하고.
"2층은.."
진기가 하도 뽈뽈대고 돌아다녀 금새 체력이 바닥 난 성규가 화장실 핑계를 대고 칸으로 들어갔다. 한숨 돌린 성규가 이왕 들어온 김에 볼일을 보고 나가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필시..
남우현이었다. 매니저랑 통화를 하는지, 엄마랑 통화를 하는지 목소리가 나긋나긋했다. 남우현이 들어와 통화를 하는 이 상황에서 나가기도 뻘쭘해 커버를 내리고 앉아
우현이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알았어요, 형. 애들 데리고 나갈게. 곧 우현이 통화를 마치고 손을 씻는 듯 물 트는 소리가 들렸다. 있는거 다 아니까 나오세요ㅡ
이건 날 부르는 목소리인가? 성규가 흠칫 놀라 제 핸드폰을 두손에 꼭 쥐었다. 똑똑똑, 우현이 문을 두드렸다. 나오세요. 하는 목소리에 더이상 버틸 수도 없어 문을
열었다. 제 키보다 살짝 큰 키의 우현이 성규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여기..피디세요..?"
"네.."
우현과 대치하고 있는 이 상황조차도 뻘쭘하고 낮 간지럽고 싫어서 세면대로 가 손을 씻었다. 곧 우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KBS 오는 동안 피디님처럼 생기신 분 못 봤는데..
우현이 제 자신을 의심하는 것 처럼 느껴져 성규가 뒤 돌아 사원증을 내밀었다. 여기 일하는 사람 맞아요, 그 쪽이 자주 못 본건 오늘 처음 입사해서 그렇구요. 성규의
제법 퉁명스런 대답에 우현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페이퍼 휴지로 물기를 닦아낸 성규가 제 앞에 서 있는 우현을 지나쳐 나갔다. 나갈 때 살짝 밀친 것 같지만 어차피
자주 마주칠 일도 없을거라고 제 자신에게 최면을 걸었다.
"성규야!"
"네?"
"차 타자, 뮤뱅 지금 내려간대."
진기의 부름에 급하게 방송국을 나와 중형차를 탄 성규가 옆에 앉은 진기를 툭툭 쳤다. 선배, 마스터피스 리더랑 친해요? 성규의 물음에 진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우현이? 알지~ 진기의 대답에 성규가 잠깐 주춤했다.
"친해요..?"
"응, 우현이 피디들이나 작가들한테 평판 엄청 좋아, 착하거든..일도 열심히 하고."
"그렇구나.."
싸가지 없고 건방져보였는데 아닌가보네..성규가 시트에 제 몸을 뉘였다. 그럼..아침에 그 일도 잊었겠지? 성규가 두 손을 모았다. 제발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잊어주길.
평소에 교회도 잘 안 나간 성규가 얄팍한 신앙심을 모아 기도를 했다. 하나님, 불쌍한 어린 양 하나 구해준다는 심정으로 도와주소서. 성규의 애타는 기도가 이루어질리가..
"성규야, 지금 리허설 시작했대!"
진기의 사뭇 다급한 목소리에 성규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차에서 내려 무대로 뛰어갔다. 허름한 의자에 앉아서 제 일을 기다리는 성규의 눈 앞에 우현이 보였다.
이게 꿈인가 싶어 제 눈을 비비니 진짜 우현이었다. 눈 앞에서 마스터피스가 여댓살의 아이들과 함께 리허설 중이었다. 그리고 뒤에선 피디가 AD를 혼내는 중이었다.
대화를 들어보니 무대가 허름하다는 말이었다. 성규가 볼때는 아무 문제가 없어보였지만..그리고,
그때였다. 어어ㅡ 하는 소리와 함께 마스터피스가 리허설 하던 곳이 시끄러워졌다. 무대 한쪽이 꺼져있었다. 그리고, 우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성규씨!"
저 위에 가서 가수들 상태 어떤가 보고 오고, 절대 밖으로 새나가지않게 막아요! 선배피디의 말에 성규가 부리나케 무대 위로 뛰어올라갔다. 랩퍼라고 했던 지코라는 친구가
멤버들을 달래고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성규가 몸을 숙여 아래를 향해 소리쳤다. 저기..괜찮아요?! 성규의 물음에도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쯤 되니 그룹의
다른 멤버들도, 성규도, 진기도..모두 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카페라 |
프롤로그이자 첫편이라 많이 짧은 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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