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익ㅡ, 콰앙ㅡ. 줄리안은 믿기지가 않았다. 제가 차에 치이다니. 바보같게도 피하지 못했다니. 아마 로빈이 보았다면 바보 같이 못 피했냐고 핍박을 줄 것이 분명하였다. 그리 생각하자 웃음 밖에 안 나왔다. 이미 줄리안의 머리에선 뜨끈한 것이 흘러 나왔고 그렇게 줄리안은 죽어버렸다. 바보 같아. 로빈이 줄리안의 장례식장에서 멍하게 있기를 1시간 반만에 꺼낸 말이였다. 바보 같아, 정말. 로빈은 믿기지가 않았다. 줄리안이 죽어버렸다는 건 제 삶의 일부가 없어졌다는 얘기였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부정해도 사실은 사실이였다. 진짜 슬프면 눈물도 안 나온다더니. 로빈은 두 눈을 느리게 껌뻑였다. 그렇게 또 한참을 멍하게 있었을까,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그의 어머니, 그러니까 줄리안의 어머니가 미소를 머금고 로빈에게 일기장 비슷한 것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가 굉장히 빨개져 있었다. 마치 토끼 눈처럼. "학생 이름이 로빈 맞죠? 로빈 데이아나." "아, 예..."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그녀의 로빈은 정신이 말짱해졌다. 그녀가 건네주는 일기장을 로빈은 두 손으로 받았다. 그녀는 '이거 줄리안 일기장인데 학생 이름도 있고 해서...' 하며 로빈의 등을 토닥 거리고선 자신의 남편에게 돌아갔다. 로빈은 손에 쥔 일기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분명 로빈이 줄리안에게 일기나 쓰라며 장난식으로 준 선물이였다. 허ㅡ, 하고 헛웃음을 내 뱉었다. 쓰라고 해서 진짜 쓴 거야? 줄리안답다고 생각하던 찰나 이 일기장에 뭐가 쓰여져 있을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쉬이 펼치진 못했다. 뭐가 쓰여져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것이 로빈에 대한 욕을 수도 있고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일지도 몰랐다. 그리 생각하니 쉬이 펼치질 못했다. 줄리안의 뼈를 강에다 뿌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허무하기도 했고 허하기도 했다. 로빈은 가만히 침대에 앉아 놓여진 일기장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렇게 며칠을 그 일기장을 펼치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한 듯 로빈은 일기장을 폈다. 첫 장은 공고롭게도 내게 전하는 말이였다. '로빈에게 로빈, 네가 이 일기장을 봤을 땐 난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병으로 죽었다거나 늙어 죽었다거나 등등의 이유로. 넌 아마 이 글을 보면서 나를 욕하고 있겠지? 뭐 이런 애가 다 있어 하면서 말이야. 로빈! 이건 그냥 일기장이니까 제대로... 아니다. 아무것도 아냐. 그냥 너에게 고마워서 그래. 항상 날 믿고 그래줘서 너무 고마워! 나중에 벨기에에 다시 가게 된다면 너와 꼭 같이 가고 싶어. 우리 부모님 펜션도 구경 시켜 줄 겸! 히히, 고맙고 사랑해 내 친구!' 로빈은 결국 일기장을 도로 덮어 버렸다. 줄리안은 아무것도,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다. 그렇게 고마운 친구가 자신을 불순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분명 경악을 할게 분명했다. 로빈은 알 수 없는 죄책감에 고개를 수그렸다. 그리고 문득 떠오른 한 사람. 그 녀석에 대한 얘기도 썼을까? 하며 다시 일기장을 펴 보았다. 첫 장을 뒤로는 평범하기 그지 없었다. 친구 얘기, 가족 얘기, 학교 얘기 등등. 그러다 내 눈에 띈 건 '다니엘'이라는 이름이였다. 쭉 읽어보니 아주 가관이였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다니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선배, 줄리안 선배 일은 참 안 됐지만 너무 상심하진 마세요." '로빈, 넌 잘 모르겠지만 난 다니엘이 너무 좋아.' "저도 갔었어야 됐는데 일이 좀 있어서요." '그 때 일부러 다니엘 데리고 온 것도 나야. 모르는 척 하면서. 네가 다니엘을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어!' "아, 나중에 다시 통화해요 선배." 로빈은 다니엘이 먼저 전화를 끊지 않았다면 핸드폰을 바닥에다가 던졌을 것이 분명하였다. 로빈은 마른 얼굴을 쓸었다. 그가 보고 싶었다. 미치도록. 하지만 볼 수 없었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사람. 그렇지만 너무도 보고 싶은 사람. 로빈은 그제서야 울음을 터트렸다. 사탕을 뺏긴 아이마냥 서럽게 울어댔다. 같은 놈, 바보 같은 놈. 로빈은 온갖 욕을 하며 울어제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뭘 안다고. 로빈은 눈가를 벅벅, 비볐다. 너무 바보 같았다. 너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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