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홧하게 온 몸을 타고 올라오는 열기에 다니엘이 침을 꿀꺽, 삼킨다. 울렁이는 곧은 목울대를 바라보며 타쿠야가 배시시 웃었다. 가녀린 얼굴에 피어난 미소가 위험하다. 그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관심은 타쿠야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아니요, 요란한 행동거지를 하는 것도 아닌데. 과연, 열도를 흔들 법하구나. 다니엘이 조금씩 떨리는 손으로 타쿠야가 따른 술잔을 집었다. 식지 않은 술에서 하얀 김이 풍기었다.
「이름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나의?」
「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노골적으로 다니엘에게 관심을 보이는 타쿠야를 다니엘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애초, 귀빈이 아니면 모습을 비추지도 않는다는 이 사람이 단순히 손님들의 난동으로 인해 술자리에까지 참석을 할 이유도 없고. 뭣 때문에 굳이 제 옆을 선택하여 저를 이리도 혼란스러이 만드는지 다니엘은 그것이 문득 궁금해졌다. 하지만 제 동료들은 그런 것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저 타쿠야의 산뜻한 향내를 독차지하고 앉아 있는 다니엘을 완연한 질투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다니엘.」
「다니엘.」
잔잔한 목소리가 이름을 곱씹는다. 팔랑거리는 속눈썹을 내리깔고선 붉은 입술로 제 이름을 오물거린다. 미칠 것 같았다. 여우년도 보통 여우년이 아니다. 다니엘이 들고 있던 술잔을 입 속으로 털어넣었다. 알싸하게 맺히는 맛에 슬쩍, 미간이 찌푸려진다. 독한 술이다. 제 간을 빼 먹을 작정인지, 정신을 홀릴 작정인지. 다니엘이 주섬주섬 주머니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약혼녀의 것이다. 손수건 끝에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R.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미안해, 내가.
「누구의 것인가요.」
「…….」
「아마도 연인, 맞지요.」
다니엘이 타쿠야를 쳐다보았다. 깨끗하고 하이얀 얼굴에 언뜻, 아련함이 묻어나오더니 이내 사라진다. 왠지 모르게 한층 더 화려해진 듯한 미모에 다니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국에 연인을 두고 오신 모양이군요. 타쿠야가 샐풋 웃으며 빈 잔에 술을 다시 따른다. 다니엘이 고개를 힘겹게 끄덕였다. 사르륵, 녹아들듯 제 어깨에 타쿠야가 기대 온다. 진한 향기 탓에 코가 마비될 것만 같다. 목덜미에 닿는 타쿠야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비단결 같이 부드러웠다.
그래, 타쿠야! 그 자식은 말야, 죽고 못 사는 약혼녀가 있는 놈이라구. 난 어때?
동료들의 웃음기 섞인 아우성이 거나하게 울려퍼진다. 저마다 계집을 하나씩 끼고서는 살을 훤히 드러낸 채로 술에 취해 있는 모습이, 제 동료들이라지만 천박하기가 그지없어 다니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술과 여자에 미친 것들.
「저는… 상관없습니다.」
「…무슨 뜻이지.」
「이 바닥이 원래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어요.」
다니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타쿠야 역시 말이 없었다. 그 대신, 따뜻한 손이 제 손을 덮는다. 꽃 향기가 났다. 장미처럼 어지럽도록 독한 향이 아닌, 짙지만 은은한 벚꽃의 향이었다.
새벽이 다 갈 때 즈음이 되어서야 제 동료들은 자리를 떴다. 자랑할 거라고는 지폐 쪼가리밖에 없는 놈들마냥 돈다발을 뿌려대고서 가게 밖을 나서는 동료들의 뒤를 다니엘은 조용히 따랐다. 확실히 군인들이 돈벌이가 좋기는 한 모양인지 계집들이 저마다 내일 또 오라고 아양을 떨어댄다. 고고하신 여왕님인 모양인지 타쿠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막상 가게 문을 나서려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다니엘은 문간에 잠깐 몸을 멈추었다. 후우. 벚꽃 향기가 사방에 진동을 한다.
「다니엘.」
「……!」
제 동료들이 자리를 뜨기를 기다렸던 건지, 둘만 남기를 기다렸던 건지 모르겠으나 지금 제 눈 앞에 서 있는 건 틀림없는 타쿠야였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결 좋은 문에 한쪽 어깨를 슬쩍 기대고는 어느 한 곳 흐트러짐 없이 저를 바라보는 타쿠야를 보며 다니엘은 제 자신이 아담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눈 앞에 놓인 선악과를 알면서도 주워들어 욕망에 모든 것을 맡길.
「고국으로 언제쯤, 돌아가나요.」
「…….」
「그것마저 말씀해 주기 싫으신 겁니까.」
「……한 달 후에.」
으응. 작게 가르릉거리는 소리를 낸 타쿠야가 고개를 작게 까닥거린다. 그 움직임이 우아하다. 천천히 뒷걸음질을 하고서는 문을 닫는다. 저 문이 닫히면, 내 눈 앞에서 그가 사라지겠지. 느리게 문을 닫던 타쿠야가 반쯤 남기고서는 멈춘다. 한쪽 눈이 보이고, 통통하고 붉은 입술의 반이 보인다. 저 입술에 입을 맞추면, 단내가 날 것만 같았다. 새카만 눈동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넋을 놓고 있는 다니엘을 보며 타쿠야가 생긋, 웃었다. 하이얀 손이 흔들린다.
「바이 바이.」
탁. 문이 닫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