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주소 복사
공지가 닫혀있습니다 l 열기
심작가 전체글ll조회 120l

 

 윤 이병은 머릿속으로 방금 전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박 병장이 훈계 비슷한 얘기를 마치고 들어가서 자라고 한 것까지는 여기 있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누가 들어갔냐고 묻는 대답에 당연하다는 듯이, 그래서 어이없다는 듯이 박 병장이라는 대답을 꺼내어 놓을 수는 없었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무엇인가에 굉장히 화나있어 보이는 강 일병이었기 때문이다. 아득한 기분 기저에 있던 맨 정신을 다시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강 일병이 다시 입을 뗐다.

 

윤정현

 

이병 윤정현.”

 

너 대기 어제까지 아니였냐?”

 

.. 맞습니다.”

 

근데 오늘 왜 인원파악 안 해?”

 

 강 일병의 입에서 나온 인원파악이라는 단어에 윤 이병의 기억회로는 아침 점호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오늘부터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애매했던 탓에 주저했고 그게 마음에 걸렸던 인원 파악의 문제가 화근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씨발 내가 일일이 너 뭐 해야 한다 안 해야 한다 아직도 얘기해 줘야 돼?”

 

죄송합니다.”

 

“2주씩이나 상전 노릇했으면 이제 알아서 좀 해. 짜증나니까.”

 

.”

 

 윤 이병의 당황은 자신이 처음으로 욕을 먹고 있다는 사실보다, 이제껏 본적이 없던 표정, 말투, 제스쳐로 자신을 대하는 강 일병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내심 늘 어떻게 변할까 했던 불안함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할 때에 느끼게 된 충격의 감정이 윤 이병을 감쌌다.

 

성재원. 문혁주? 니네도 눈치껏 알아서 행동해. 알았어? 같은 분대 아니라고 관리 안 하고 그런 거 없어 난. 어디서 어떤식으로든 소대 욕먹이는 고춧가루 들어오면 각오하는 게 좋을거야. 특히 문혁주 너. 나 행동 굼뜬거 존나 싫어하거든? 알아서 잘 해라.”

 

.”

 

 나지막한 목소리로 할 말을 조목조목 다 하는 강 일병의 모습에 윤 이병은 일종의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 그와 함께 해야 할 시간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하지만 분명한 예감이 들었다.

 

이등병이면... 이등병답게.. 알아서 기어. 내일부터 본다.”

 

 간단하지만 묵직한 한 마디를 남기고 막사로 들어가는 강 일병에게 불쾌하고 당황스러운 기분과는 상관없이 편안한 취침 되십시오.’라는 인사를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환멸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는 군대였고, 내일도 해는 뜰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여느 아침과 마찬가지로 부대는 점호를 하고 밥을 먹고 일과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윤 이병은 예정대로라면 오늘부터 근무에 투입된다. 인사계원의 실수로 근무 조정이 생겨 아직까지 경계 작전 명령서가 출력되어 있지 않았지만, 전입 대기가 끝난 만큼 자신의 이름이 기재될 것을 지레짐작으로 알고 있었다. 윤 이병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다른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제발 강 일병과만은 근무가 같이 짜여있지 않길 바랐다. 어제자로 명확해진 자신과 강 일병의 불편한 관계가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근무는 한 시간 반 정도로 초소에서 사수와 부사수가 각각 다른 방향을 경계하며 함께 있는 임무를 일컫는다. 근무를 서며 사이가 돈독해진 선, 후임관계가 있는 반면에 그 사이가 더욱 악화되어 제발 서로가 함께 근무에 들어가는 일이 없기만을 바라는 경우도 많다는 소리가 있었다. 윤 이병은 서로 좋은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같이 있는 순간이 괴롭지 않은 사람이길 바랐다. 이 때문인지 화장실을 가면서도, 집합을 하면서도, 일하면서도 경작서가 꽂히는 게시판을 이따금씩 확인하게 되었다.

 

 근무에 들어가기 전 해야 할 사항에 대해 알려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강 일병이었다. 맞선임이기에 당연한 일이었고, 그 때의 강 일병은 지금 윤 이병이 두려워하는 그 강 일병은 아닌 상태였다.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은 경작서에 하는 서명이었다. 이는 본래 본인이 직접 해야 하지만 통상적으로 부사수가 선임 것까지 하므로 자신의 것을 확인하며 선임의 이름도 같이 써야 했다. , 높은 선임일수록 총을 근무 총기함에 안 집어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를 확인해야 했다. 앞에 말한 일들을 제대로 안 했을 경우 당직 부사관의 업무가 늦어져 그 짜증을 부사수들이 고스란히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늘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실제 근무에 들어가야 할 때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주의점들이 있었다. 선임이 깨울 것이므로 일어날 때 시계를 확인하는 무례를 범하지 않을 것, 사수보다 먼저 나가 근무준비를 마쳐놓을 것, 근무 투입가는 길에는 LED를 준비하여 앞길을 비출 것, 암구호, 합구어를 절대 까먹지 않을 것, 수첩을 늘 준비할 것, 수통에 물을 채울 것 등 사소하면서도 지켜할 일들이 많은 근무 투입은 이미 이러한 사항들을 들을 때부터 윤 이병 정신 어딘가에서 큰 부담으로 자리 잡은 임무였다. 그런데 이 과정을 심지어 불편한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은 더한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경작서는 점심시간쯤 해서 게시판에 비치되어있었다. 윤 이병은 누구보다 빨리 자신의 이름을 찾았지만 이내 허탈해졌다.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는지 자신의 이름 위에 떡하니 쓰여 있는 강 일병의 이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큼은 차라리 말년 병장의 꼬장을 받아도 상관없으니 자신이 보고 있는 이 광경이 사실이 아니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그건 그저 머릿속 상상에서 벌어지는 일일 뿐 무엇 하나 실현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배운대로 덤덤히 자신의 이름과 강 일병의 이름을 서명란에 기입하는 모습에 윤 이병은 초라함을 느꼈다. 근무 시간은 새벽 한 시 반에서 세 시. 어설프게 자다 일어나서 근무에 투입되어야 하는 만큼 가장 짜증내기 좋은 시간대라는 점은 더욱 절망적이었다.

 

 이후 오후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몽롱했다. 윤 이병은 근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걱정만이 전부였다. 흡사 그 기분이 초등학교 시절 숙제를 안 해갔을 때 담임선생님께 맞을까봐 전전긍긍하던 그 때의 심정이라는 것에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동갑내기인 강 일병에게 그런 기분을 느낀다는 것 자체에 대한 수치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군대였다. 계급이 모든 것에 최우선되는 이 엄혹한 시스템 그 제일 아래에 윤 이병이 있었다.

 

야 일어나.”

 

 어설프게 든 잠을 깨우는 불침번의 목소리에 윤 이병은 정신이 들었다. 드디어,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근무준비는 조금 서투르긴 했지만 큰 실수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빠르게 근무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직 부사관의 순찰이 끝남과 동시에 근무에 투입되어야 했던지라 조금 시간이 오버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전 근무자는 1소대 김 병장과 그 밑의 병사였다.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늦는다면 전번초가 어떤 식의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당직 부사관이 도착하자마자 출발한 시각이 한 시 이십이 분. 대대본청에서 탄을 인계받고 정확히 교대시간에 맞춰 도착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정지정지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선풍기.”

 

“.....”

 

아 선풍기!”

 

시계.”

 

누구냐

 

“5중대 근무자

 

보초 앞으로. 이 씨발 늦은 주제에 대답 빨리빨리 안해? 늦기만 해봐.”

 

 날카로워져 있는 김 병장의 신경이 윤 이병을 향해 있었다. 워낙에 웅얼웅얼거리는 통에 들리지가 않아 답어를 해야 할 타이밍을 놓쳤던 윤 이병은 당황했다. 강 일병은 그런 윤 이병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대본청에서 탄 인계까지 받고 내려온 윤 이병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순간적으로 많은 고민에 사로잡혔다. 그 때 강 일병이 뛰기 시작했다.

 

 “빨리 안 뛰어? 늦게 오는 주제에 저것들이 설렁설렁

 

 그 때 시각이 한 시 삽십삼분. 흔히들 말하는 후교대였다. 부리나케 뛰어온 강 일병과 윤 이병이 암구호를 마친 뒤 근무지에 문을 열었다.

 

 “장난까 지금? 야 장난까냐고?”

 

 속사포를 쏟아내듯 김 병장은 강 일병을 다그쳤다.

 

 “죄송합니다.”

 

 강 일병의 표정이 이내 굳었다.

 

 “니네 3소대냐? 아 진짜 존나 맘에 안드네. 왜 쳐 늦고 지랄이야?”

 

 “야 순찰이었어. 빨리 나와.”

 

 밖에서 당직 부사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일병 새끼. 니 짬좀 찼나부다? 설렁 설렁. 그 짬에 사수됐으면 애 교육 똑바로 시켜.”


 “
.”

 

 “니도 얼까지마. 알았어?”

 

 “.”

 

 “아 간밤에 개짱나네 진짜. 가자.”

 

 부사수를 챙겨 내려간 김 병장이 대대본청에서 탄을 반납하고 막사로 내려가기까지 10분여간 강 일병은 윤 이병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정적이 윤 이병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첫 근무지?”

 

 정적을 깨고 강 일병이 입을 뗐다.

 

 “.”

 

 “아까 왜 암구호 바로 대답 안했어?”

 

 “...”

 

 “왜 안했냐고?”

 

 “.. 잘 안들렸습니다.”

 

 “죄송합니다가 바로 안 나오네.”

 

 “... 죄송합니다.”

 

 “누구 놀리냐 지금?”

 

 “...”

 

 “대답하라고.”

 

 “아닙니다.”

 

 “근데 왜 그래? 왜 얼타서 나까지 같이 욕 처먹게 해?”

 

 “죄송합니다.”

 

 “씨발 죄송하면 다야?”

 

 “...”

 

 “너까지 안 보태도 여기 있는 거 좇같으니까 덩달아 얹어서 빡치게 하지마. 알았어?”

 

 “.”

 

 “나는 니가 하는 만큼 대우해줄거야. 잘 하면 잘 해주고, 못 하면 못 해주고.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날 못살게 굴지 싶으면 그건 니가 나를 그렇게 못 살게 굴고 있는거야. 알았어? ”

 

 “.”

 

 “충고가 아니라, 경고야.”

 
 “...
.”

 

 무슨 말이 오가고 있는지가 어느 순간부터 몽롱해진 윤 이병은 강 일병의 물음에 감정을 건조시킨 채로 대답을 이어갔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 풍선을 부는 것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다가는 언제 어떻게 행동하게 될 지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멍하니 멀리 하늘에 떠있는 달, 그리고 그 옆을 수놓고 있는 수많은 별들을 바라보았다. 너무도 밝아 아름답지만 그 찬란함이 얄미운 별들을 보며 윤 이병은 다시 한 번 갑갑함을 느꼈다. 첫 근무의 밤은 그렇게 깊어져갔다.

 

 다음 날은 광복절이었다. 달력에 빨갛게 표시되어있는 주중 공휴일은 주말과 같은 일과가 진행된다. 그래서 근무에 투입되는 인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휴식을 취한다. 윤 이병에게는 그나마 이런 쉬는 날이 숨쉴 수 있는 틈과도 같았다. 어제 근무 때 겪었던 고초들 덕에 그렇게 편안한 시간일 수는 없었지만, 특별한 일을 시키지 않고 쉰다는 명목으로 지낼 수 있는 날이라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었다. 강 일병은 어제 근무 말미쯤 지난 주말에 하지 못한 베개피 빨래를 오늘내로 해야 함을 알려주었다. 베개피 빨래는 전통적으로 막내가 맡아온 일들로 선임들의 베개피를 모두 모아 빤 뒤 말리고, 이를 다시 각각의 베개에 맞게 끼워줘야 하는 임무였다. 중요한 포인트는 부조리로 보일 수 있는 탓에 간부들에게 들켜서는 안 되고, 베개피를 잃어버리거나 섞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강 일병은 베개피를 걷는 일까지 함께 했지만 이내 사라졌고, 윤 이병은 혼자 베개피를 모아 야외 세면장으로 갔다. 거기에는 소대 동기인 문 이병과 성 이병이 먼저 와서 베개피를 빨고 있었다.

 

너도네?”

 

.”

 

베개피 모으는데 안 쫄리디? 난 겁나 눈치보이던데.”

 

강병준 일병님이 베개피 모으는 것까지는 도와주셨어.”

 

좀 어때?”

 

뭐가?”

 

성 이병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가며 소곤거리듯이 말했다.

 

또라이던데 그 새끼.”

 

... 그냥...”

 

너 어제 근무도 같이 들어갔다매?”

 

.”

 

“1,2,3월 병장들 줄줄이 전역하면 지가 실세 될 거 알아서 벌써부터 그렇게 가오잡고 다니는거래. 윗선에서는 에이스긴 한데 좀 나대는 거 같이 보여서 밟아주고 싶다는 얘기 있는거 같더라고.”

 

넌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어?”

 

뭐 여기저기서. 암튼 고생이 많다. 힘내.”

 

 마찬가지로 베개피 빠는 신세에 힘내라는 말을 하는 성 이병이 우스웠지만, 그나마 이마저도 없으면 너무 팍팍한 생활이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윤 이병의 머리를 스쳤다.

 

. PX 가고 싶다. 왜 이등병끼리는 못 가게 해 놓은거야.”

 

 옆에 있던 문 이병이 성 이병과 윤 이병의 얘기에는 관심없다는 듯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만 좀 쳐먹어 그만좀. 내가 다 눈치가 보여. 그게 이등병배니?”

 

내가 뭐얼?”

내가 뭐얼?”

 

아 따라하지마.”

아 따라하지마.”

 

 문 이병과 성 이병의 실랑이에 언제 그런 표정을 지어봤는지 모르겠는 옅은 미소가 윤 이병의 얼굴에 희미하게 번져나갔다. 베개피 빨래는 동기들 덕에 그나마 산뜻하게 끝났다.

 

 밖에는 휴일이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장맛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나마 할 게 TV보기 밖에 없는 병사들에게 감전의 위험이 있으니 전기 코드를 분리하라는 지침이 전달되었고, TV가 꺼진 생활관은 이내 대부분 잠에 든 병사들과 간간히 보이는 책 읽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였다. 소대별 생활관 체제에서 막내는 선임들이 없는 상황에서 전달사항을 들어야 할 임무를 띠고 있었기에 휴일이라 하더라도 마냥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베개피를 빨랫대에 모두 널어놓은 윤 이병은 책을 읽으며 이 시간을 때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비 때문인지 막사 내 복도에 물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지붕에 쳐 놓은 비닐의 위치가 제대로 위치해있지 않은 탓이었다. 영내에 대기하고 있던 박 하사는 생활관을 돌아다니며 병사들을 한 명씩 불러 모았다. 황금 같은 휴일에 고참들이 박 하사의 소집에 따를 리 만무했고, 윤 이병은 자신이 나가야 하는 상황임을 눈치껏 알아챘다. 박 하사는 지붕 위에 뭉개져있는 비닐을 제대로 펴서 위치를 잡고, 거기에 벽돌을 옮겨 고정시켜야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가려고 할 때에는 빗줄기가 잦아든 탓에 우의를 챙기는 것도 잊고 윤 이병은 박 하사를 따랐다.

 

 비닐은 생각보다 많이 어지럽혀져 있었고 돌들도 워낙에 난장판이 되어있던 터라 간단하긴 하지만 또 그리 쉬운 작업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2소대의 인상 좋아 보이는 선임인 최 이병과 한 조를 이루어 윤 이병은 묵묵히 일을 진행했다. 그런데 잦아들었던 빗줄기가 한 두 방울씩 두꺼운 모양새로 떨어지더니 이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금은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이미 올라온 탓에 시작한 일을 마치기로 마음 굳힌 박 하사를 따라 윤 이병을 비롯한 거의 막내로 구성되어있던 무리는 일을 마무리 짓기에 여념이 없었다.

 

 온 몸으로 비를 맞고 있던 윤 이병은 또 다시 회의감에 사로잡혔다.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자꾸 마음 어딘가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저 아무 생각 없는 게 답인 줄 알고 있었지만, 억누르며 참고 있는 자신의 본성이 던지는 질문이 계속해서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 때 윤 이병은 혼자만이 여기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고통은 외로움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걸. 비를 맞아서 젖어들고 있는 건 윤 이병의 머리카락이나 옷가지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어느 것도 해결될 건 없었다. 중요한 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이었다. 믿을 건 자기 자신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지금이라는 시간 위에 발을 디디고 서 있다는 것만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비에 맞은 생쥐 꼴이 되긴 했지만 작업은 무사히 끝났고 윤 이병은 어서 씻을 채비를 했다. 그런데 멀리서 자신을 찾는 강 일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 이병은 강 일병에게 뛰어갔다.

 

어딨었어?”

 

지붕에 비닐치는 작업이 있어서

 

됐고, 지금 가서 바로 낭 챙겨와.”

 

낭 말씀이십니까?”

 

내일 국지도발 출동이야. 그 때 낭 챙기는 법 알려줬지? 그거대로 해오면 돼. 나중에 창고가면 다른 소대에서 좋은 거 다 챙겨가고 없다. 지금 바로 가서 해 놔.”

 

. 지금 바로 챙겨놓겠습니다.”

 

다 하고 와서 보고해.”

 

.”

 

 씻고 하면 안 되냐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윤 이병은 바로 낭을 챙기기 위해 창고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예전에 강 일병이 알려준 목록을 수첩을 통해 확인하며 신호줄부터 하나하나 제일 괜찮은 것들로 챙기기 위해 살피고 있었다. 이 때 윤 이병과 마찬가지로 낭을 싸기 위해 1소대 이 일병과 하 일병이 들어왔다.

 

“3소대 신병이네.”

 

이병 윤정현.”

 

뭐해? 낭 챙기러 왔어?”

 

.”

 

. 에이슨데.”

 

감사합니다.”

 

근데 왜 이렇게 다 젖었어?”

 

위에 비닐 치는 작업이 있어서 그거 하다 내려왔습니다.”

 

그럼 씻고 하지. 뭐 그렇게 급한 거라고 이걸 하러 왔어.”

 

바로 챙겨놓아야 한다고 들어서 지금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

 

“3소대 빡세다더니 너무하네. 이등병 비에 쫄딱 맞았는데 일시키고.”

 

아 그런 게 아니라 제가 하겠다고 한 겁니다.”

 

그랬구나. 우리도 막내라 아직까지도 이런 거 하고 있다. 힘내.”

 

감사합니다.”

 

어디보자. 좋은게 남아있나?”

 

정현이가 다 챙겨갔나봐. 좋은게 얼마 없어.”

 

 드물게 화를 안 내고, 심지어 친근한 말투로 대화를 거는 1소대 선임들의 모습에 윤 이병은 약간의 오버를 보태 따스함까지 느꼈다. 그제부로 확인한 강 일병부터, 이등병 대기가 끝남과 동시에 느끼게 된 이곳의 각박함을 조금은 의심해볼 수 있게 하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얼른 가서 씻어라. 감기 걸리겠다.”

 

 낭 챙기기를 마친 윤 이병은 이를 보고하기 위해 막사를 돌아다니며 강 일병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제대로 보고를 안 했을 시 먹을 욕에 대한 걱정 때문에라도, 그리고 빨리 시킨 임무를 마쳤음을 증명해 자신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바꾸고 싶은 생각에 윤 이병은 어서 강 일병에게 보고를 해야 했다. 그러나 막사 내에는 강 일병이 없었고, 윤 이병은 중대 내 병사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자석판 앞으로 갔다. 강 일병의 얼굴을 붙여놓은 자석은 막사 건물에서 조금 떨어져 위치해 있는 게임방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당장 안해 놓으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비 맞은 건 아랑곳 안하고 일을 시켜 먹은 강 일병이 괘씸했지만, 감정은 감정이고 일단 보고가 급선무였다. 윤 이병은 게임방으로 뛰어갔다.

 

 게임방에는 동기들과 함께 게임하기에 여념이 없는 강 일병의 모습이 보였다. 윤 이병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 강 일병에게 다가갔다.

 

강병준 일병님.”

 

“...”

 

강병준 일병님.”

 

, 말하라고. 다 했어?”

 

.”

 

알았어. 가 봐.”

 

다 챙겨놓은 낭은 제 관물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

 

수고하십쇼.”

 

 허탈한 걸음으로 막사로 걸어오는 윤 이병은 으슬으슬 몸이 춥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어서 가서 씻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는 아직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다음 날은 예정대로 출동을 했다. 훈련이 명목이긴 했으나 저번과 마찬가지로 진지 보수가주요 임무였다. 윤 이병은 어제 맞은 비로 인해 몸살 기운을 느꼈지만 눈치가 보여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리고 강 일병과 함께 배당된 구역으로 가 땀이라도 내 체온을 내려 볼 요량으로 열심히 삽질을 했다. 병장들은 간부 눈치를 보면서 요리조리 피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때, 농담 따먹기에 재미를 잃은 박 병장이 어제 챙겼던 훈련낭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동기인 주 병장도 가세했다.

 

잘 챙겼나 봐볼까? 빠뜨린 거 없나?”

 

좀 꺼져. 가서 니 하던 거나 해.”

 

하 이 새끼는 지만 병장이야. 야 나도 병장이야. 알 거 다 알어.”

 

어쩌라고. 아 이건 뭐 하나도 안보여.”

 

그러더니 갑자기 박 병장은 가방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바닥으로 쏟아냈다.

 

. 보자... ...... 딸랑이가.... 없는거 같은데?”

 

그렇네. 딸랑이 소리가 안 들리네.”

 

. 이 새끼들.”

 

그러고는 박 병장이 큰 소리로 강 일병과 윤 이병을 불렀다.

 

, 여러분이 오늘 낭을 잘 챙겨왔는지 제가 한 번 확인을 해 봤어요. 근데 약간 문제가 있는 거 같네요. 그게 뭘까요?”

 

 낭 챙기기를 전담했던 윤 이병은 당황했다. 그런데 사실 더욱 후달린 건 강 일병이었다. 윤 이병에게 짬 때렸던 낭을 최종적으로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봐 보세요. 뭘까요? 뭐가 없을까요?”

 

“...”

 

병준아. 찾아보는 시늉이라도 해. 멍 쳐 때리지 말고.”

 

웃음을 싹 가시고 건네는 박 병장의 말에 강 일병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물자들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딸랑이... 딸랑이가 없습니다.”

 

?”

 

제가... 정현이도 이제 낭 챙기기를 혼자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맡겼는데 확인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

 

... 안 했습니다.”

 

너 어제 신병한테 이거 짬 때리고 뭐했어?”

 

“...”

 

너 내가 저번에도 말했지? 깝치지 말라고. 씨발 짬 얼마나 쳐 먹어서 벌써부터 그 지랄이야. ? 나 집 갔냐? 나 전역했어? 아 이 새끼 존나 맘에 안드네 진짜. 니가 뭔데 짬 쳐때리고 해야 할 일도 잘 안 해? 니가 뭔데?”

 

죄송합니다.”

 

입만 존나 살아가지고 거짓말만 술술. 우리 다 집에 가고 하시라구요. 우리 집에 가고. 니 아직 일병이야. 주제 파악 좀 하세요.”

 

.”

 

꺼져. 그리고 교육 똑바로 해라. 할려면 제대로 하던가. 왜 빼 먹고 지랄이야.”

 

 자신은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강 일병에게 쏟아 붓는 박 병장의 모습에 윤 이병은 더욱 불편함을 느꼈지만 이를 막을 방법이 달리 없었다. 몸살 때문에 어지러웠지만 방금 전에 벌어진 상황이 모두 자신 때문에 빚어졌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인지 정신이 더욱 또렷해졌다. 강 일병은 묵묵히 삽질만 했다. 후임들과 있을 때와 선임들과 있을 때 너무도 다른 그의 모습에 윤 이병은 더욱 섬뜩함을 느꼈지만 일단 해야 할 일을 했다. 나중에 터질 폭격은 나중에 생각하자고 생각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중대원이 막사로 복귀했다. 포차를 타고 온 3소대, 그 중에서도 윤 이병의 분대는 막사 앞에 하차하자마자 으레 그래왔듯 인원 장비 파악을 했다. 윤 이병은 자신이 가져 온 물자를 일일이 체크하며 대답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탄띠에 결합시켜 놓았던 야삽이 분실되었음을 알아챘다.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스럽고 찾아보면 분명 훈련낭이나 어딘가에 있을 듯한 느낌 때문에, 그리고 이를 말했을 때 자신이 겪게 될 포화가 두려워 일단 거짓말을 내뱉었다. 장비에 이상이 없냐는 분대장의 질문에 이상이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지금은 도무지 그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이미 딸랑이를 제대로 챙기지 않은 일로 강 일병을 욕먹인게 몇 시간 전인데 여기서 야삽까지 없다고 했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물자 정비까지 다 마친 뒤 막사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어디라도 굴러다닐지 모르는 야삽을 찾아 나서야겠다 마음먹었지만, 도무지 혼란스러워진 마음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군수품 분실이 영창에 갈 수도 있는 사안임을 강조했던 강 일병의 목소리가 계속 귀에서 맴도는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 윤 이병은 계속해서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경험했다. 어떻게 이렇게 한심할 수가 있는지, 이게 말이 되는 것인지 도무지 인정이 되지가 않았다. 진지에서 사용한 삽을 수입하고 어떻게 넘어갔는지도 모르겠는 저녁 식사까지 마친 윤 이병은 부리나케 야삽찾기에 나섰다. 이등병인 탓에 함부로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지만, 언젠가 야삽이 굴러다니는 것을 본 적 있는 것 같은 분리수거장이나 체력 단련실, 야외 건조장 등을 샅샅이 뒤졌다. 그 순간순간 자신이 한심스럽고 쓸모없이 느껴졌지만 그 무엇으로도 달랠 길이 없었다. 그렇게 야삽을 찾기 위해 막사를 뒤지고 돌아다니기 한 시간 정도 지났을 즈음 윤 이병은 이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허탈감에 온 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몸살 기운 때문인지 두통 비슷한 증상도 윤 이병을 괴롭히고 있었다. 축 늘어진 채로 막사 뒤를 배회하고 있던 그 때, 강 일병이 윤 이병 앞으로 다가왔다.

 

이거 찾고 있니?”

 

 야삽이었다. 강 일병 손에 쥐어져있는 건 다름 아닌 윤 이병의 야삽이었다.

 

포차에 떨구고 간 걸 내가 주웠어.”

 

 야삽을 찾았다는 사실은 지금 이 순간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 모든 걸 강 일병이 알고 있었다는 게 무엇보다 압도적이었다.

 

거짓말 잘하던데. 장비 이상이 없다고?”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 내가 생각하던 것 그 이상으로 최악이야.”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스러워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입닥쳐.”

 

 그 이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기분. 일기를 안 써왔다고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 앞에서 초라해지던 그 감정 따위의 종류가 아니었다. 윤 이병은 화를 내고 있는 강 일병을 이해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자신이 싫었다. 주변으로 지나다니는 병사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를 의식했는지 강 일병은 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나지막하게 말했다.

 

동갑한테 이런 소리 들으면 보통 자존심이 상하고 그러던데. 넌 아닌가봐?”

 

제 잘못이니까...”

 

좀 상하라고 하는 소리야. 이 병신새끼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넌 원 아웃이야. 삼진 아웃 알지? 두 번 남았다.”

 

 그 말을 마치고서는 야삽을 땅바닥에 그대로 내 팽개친 뒤 강 일병은 막사로 들어갔다. 원 아웃. 윤 이병은 앞으로 남은 두 번이 그다지 멀지 않은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었다. 머리가 계속 아파왔다. 어떻게 먹었는지 모르겠는 저녁도 속 안에서 부대꼈다. 야삽은 다행히 찾았다. 그러나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던 상황이 방금 전 눈앞에서 벌어졌다.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여기서 이러고 있는 자신의 존재가 우스울 따름이었다. 바닥에 내팽개쳐져 진흙이 잔뜩 묻은 야삽을 들고 윤 이병은 터벅터벅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때 마침 행정반에서는 윤 이병을 찾는 전파가 울렸다. 윤 이병은 축 늘어진 채로 행정반으로 걸어갔다. 편지가 왔다. 매일 전화로 안부를 나누는 엄마의 편지였다. 반가운 기분까지도 너무도 민망하여 덤덤하게 편지를 받아들었다. 어서 뜯어보고 싶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생활관에는 방금 전 자신을 힐난하던 강 일병이 있었고, 막사 주변 어디에도 이등병이 여유롭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 편지를 뜯어 볼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때, 화장실 대변기가 윤 이병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 커다란 막사에서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그 한 칸. 윤 이병은 편지를 읽을 공간으로 그곳을 택했다.

 

 화장실에서는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몸살 기운이 돌았던 윤 이병에게는 그 어떤 소리도 귓가에서 맴돌 뿐이었다. 너무도 힘겹게 지나간 하루, 아니 요즘이 아스라이 윤 이병의 눈앞을 스쳐갔다. 씻는 시간이라서 그런지 화장실은 여러 칸이 비어있었다. 윤 이병은 문에서 제일 먼 칸을 선택해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자리에 앉자 마자 윤 이병은 멍해졌다. 왜 자기가 여기에 왔는지 순간적으로 까먹은 듯한 느낌을 느끼며 쉴 새 없이 바쁘게 지나갔던 요즘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리고 이내 괴로워졌다. 이 괴로움을 다스려줄 수 있는 건 이 화장실에 들어오도록 한 엄마의 편지뿐이었다. 윤 이병은 편지봉투를 뜯었다.

 

사랑하는 아들 윤,,.’

 

열 글자. 윤 이병은 훈련소에서 힘들 때에도 엄마의 편지에 복받치는 기분을 느껴보지는 못했다. 바깥이 그립긴 했으나 간절한 정도는 아니었고, 이 정도의 모멸감과 자괴감에 빠져본 적도 없었다. 일생을 통틀어 느껴 본 적이 없는 그런 기분에 휩싸인 지금, 엄마가 편지 서두에 적어놓은 저 열 글자가 윤 이병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자주 전화를 나누며, 또 면회도 하며 너의 힘듦을 나누고 있지만 그 어떤 위로로도 너를 도울 수 없음에 엄마는 미안하고 안타까워. 그래서 훈련소에서 너를 돕던 이 편지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사랑하는 아들 정현아. 많이 힘이 들지? 늘 인정받고 사랑받던 정현이 너가 엄마, 아버지 품을 떠나 그 힘든 환경에 놓여있게 된 게 솔직한 말로 마음 아파. 아버지는 너 마음 약해진다고 이런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했지만 엄마 맘은 또 그게 아니라 이렇게 펜대를 잡는다. 참 극성인 줄 알면서도 이렇게 되네.‘

 

윤 이병은 덤덤히 편지를 계속해서 읽어 내려갔다.

 

인생에 값어치 있는 것들은 늘 그 가치만큼의 희생을 요구한단다. 너가 지금 치르고 있는 그 많은 것들이 훗날에 너를 도울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밑거름이 될거야. 엄마는 그렇게 믿어. 그러므로 이 시간을 잘 버티고 견뎌내보자. 아무것도 도울 수 없지만 널 이렇게 응원하는 것으로라도 엄마는 이 무거운 마음의 짐을 덜어보고자 한다.’

 

여기까지도 그런대로 참아 넘기던 윤 이병은 마지막 문구에 와르르 무너졌다.

 

모두 말하기 부끄러워하지만 널 사랑하고 있단다. 아버지도, 엄마도, 할머니도, 너의 친구들도. 늘 그걸 잊지마. 너가 너여서 우리는 모두 널 사랑하고 있어. 혹 힘든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걸 잊어선 안 돼. 알겠지?’

 

 하루 종일 자신에게 느꼈던 환멸감, 실망감을 꼭 엄마가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만 같은 기분에 윤 이병은 눈가를 채우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엄마가 청승이다. 그치? 다음에도 이런 기습 편지 보내도록 해볼게. 바쁜 시간이겠지만 힘 내렴. 파이팅.’

 

 눈가에서 쏟아지는 눈물이 편지에 적혀있던 글자를 번지게 했다. 그런 경험은 생애 처음이었다. 몸살 기운에 눈물까지 겹쳐 윤 이병의 두통은 더욱 심해져갔다. 그 때 귀에만 맴돌기 시작하던 라디오 DJ의 멘트가 갑자기 또렷해지며 윤 이병의 귀로 다가왔다.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다는 건 아름다운 만큼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고 헤르만 헤세는 말했죠. 오늘은 그 고통을 견뎌낸 분들에게 상수동의 심작가님이 신청한 노래 띄워드리며 이만 물러가려 합니다. 내일 봐요.”

 

 그리고 노래 하나가 흘러나왔다. 그 노래는 이후 오랫동안 오늘의 그 기분으로 윤 이병을 되돌리곤 했다.

 

 

세상 사람들 모두 정답은 알긴 할까

 

-든 일은 왜 한번에 일어날까

 

나에게 실망한 하루 눈물이 보이기 싫어

 

-미 없이 밤하늘만 바라봐

 

작게 열어둔 문틈 사이로 슬픔보다 더 큰

 

외로움이 다가와 더 날-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난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아무도 너의 슬픔에 관심 없대도, , 늘 응원해. 수고했어, 오늘도. 이상하게 이 가사만이 또렷이 윤 이병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가고 있었다.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습니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

 
로그인 후 댓글을 달아보세요
 
분류
  1 / 3   키보드
필명날짜조회
애니/2D[HQ/시뮬] REPLICA 7702 이런 거 쓰면 잡..06.04 22:311248 34
공지사항 [SYSTEM] 제 2차 LOVE GUN CONTEST🔫🌹341 총장미05.31 00:00946 17
애니/2D [HQ/시뮬] 시뮬 속 엑스트라에 빙의합니다!1052 후비적05.25 22:381053 9
애니/2D[HQ/시뮬] 그림자 남편1544 05.18 01:55827 18
애니/2D [HQ/시뮬] ハイキュー!! 일상생활25 06.09 00:34207 1
단편/수필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로 소설써보기9 카모밀레 09.07 02:15 411 1
단편/수필 나의 것, 소유 09.07 01:16 114 0
단편/수필 들리니 넌 소다 09.07 01:10 114 0
단편/수필 A4 소다 09.07 00:57 123 0
단편/수필 네 생각을 하고 있어 마주 보고 크는.. 09.06 22:47 130 0
단편/수필 비움 그라모니아 09.06 19:53 110 0
단편/수필 잊었다하며 숨겼다2 그라모니아 09.06 19:42 174 0
단편/수필 그립다 그라모니아 09.06 19:29 100 0
단편/수필 한마디 그라모니아 09.05 00:48 131 0
단편/수필 한 번만 나를 위해4 그라모니아 09.05 00:24 295 0
단편/수필 그렇게 되도록 해주세요 그라모니아 09.05 00:15 117 0
단편/수필 추모시 람니아 09.05 00:05 101 0
단편/수필 손톱 람니아 09.05 00:01 102 0
단편/수필 추모시 09.04 21:14 89 0
단편/수필 [연작소설] 2화 수고했어, 오늘도 심작가 09.04 14:20 120 0
단편/수필 [연작소설] 1화 윤 이병의 하루 심작가 09.04 14:18 116 0
단편/수필 존재 (추모시) 어항 09.04 02:07 135 0
단편/수필 청춘 (추모시) 어항 09.04 01:56 159 0
단편/수필 혜성 (추모시) 달아래양 09.04 00:44 119 0
단편/수필 일부러 선배미워 09.03 23:55 62 0
전체 인기글 l 안내
6/13 15:58 ~ 6/13 16:00 기준
1 ~ 10위
11 ~ 20위
1 ~ 10위
11 ~ 20위
단편/수필 인기글 l 안내
1/1 8:58 ~ 1/1 9:00 기준
1 ~ 10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