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 같은 년."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과 처음 대면한 나는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간신히 쥐어짜 저따위의 말을 뱉어내었다. 사진 속에서 헤실 대는 멍청한 낯이 익숙했다. 그 사진을 던져 산산조각 내는 상상을 했다. 사진 앞에 늘어진 국화를 짓밟는 생각을 했다. 이게 그 애의 장례식이란 것을 나는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뒤꿈치까지 내려오는 정장 바지 밑단과 품이 한참이나 남는 재킷이 얼긴이 같아 보였다. 아버지의 것이었다. 전화기 너머로부터 전해진 소식에 훔치 듯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발끝으로 아무렇게나 바지 밑단을 걷어내고 사진 앞에서 두 번 절했다. 향냄새가 후각을 마비시키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통곡하는 소리가 내 두 귀를 멀게 만들었다. 자살이라고 했다. 애를 밴 채로 자살했다고 했다. 누구도 귀띔해주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나는 어렴풋이 그게 나의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가 하교한 뒤 노을이 스미는 빈 교실에서 서로의 처음을 공유했다. 서툴렀던 손길과 그 애의 덜 여문 소음순, 한없이 부끄럽게만 느껴지던 간헐적인 소리들. 네가 나를 밀어내기 시작한 것도 아마 그 뒤로부터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을 것이다. 그냥 네가 싫어졌어. 그러니까 제발 꺼져. 꺼져버려!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 그 애는 매정하게 뒷모습을 내보였다. 나는 그냥 그런 줄로만 알았다. 정말 내가 싫어진 것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멍청한 나는 지금에서야 단언한다. 그때에 그녀를 붙잡아 세웠더라면 소리 없이 오열하는 그녀를 안아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녀를 떠나보내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나의 심연에 빠져 그녀의 슬픔을 살피지 못했고, 그저 무능하게 그녀의 죽음에 손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나에게 아이를 가진 사실을 밝히지 않은 그녀가 미웠고, 그다음은 그녀에게 그만큼의 믿음을 심어주지 못한 내가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배를 감싸 안고 아파트 옥상에서 추락하는 그 애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얼마나 고민했을까. 얼마나 불안했을까.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죽음의 그림자는 얼마나 어두웠을까. 콧속으로 꽃향기가 스미고, 나는 네 목소리가 나를 불러준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나는 그제서야 마지막 끈을 놓았다. 주저앉아 오열했다. 목놓아 그 애의 이름을 불렀다. 나의 무능력함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해 본다. 네가 나를 믿고 조금이라도 내게 기대었더라면, 그 사실을 내게 말해주었더라면…,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에 기뻐하며 여리고 여리기만 한 그 애를 안아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