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AU / 소꿉친구 인어 후타쿠치 / 왕자 스나
진짜 미친거야. 미친 게 분명해.
독감이라도 걸린 듯 얼굴 전체가 화끈거렸다. 거울에 미친 내 모습은 불가사리 처럼 붉었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침대에 누우니 왕자의 모습이 눈에 어렸다. 갈색머리와 여우같이 날카로운 눈매에 올리브색 눈동자가, 높은 콧대가, 큰 키에 잘 어올리는 제복을 입은 모습이 선명했다. 물에 젖어 축 쳐진 머리카락이 그의 섹시미를 더 돋보이게 했었다.
*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인간들은 뭘 먹고 지낼까? 책으로 봐왔지만, 지상 위 세계가 궁금했다. 그래서 자주 바다 위로 헤엄쳐 올라갔다. 아빠와 언니들은 올라가지 말라 충고했지만 사실상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들킬 위험이 높은 낮에는 되도록이면 올라가지 않고 늦은 밤에 올라가 구경했다. 밤하늘의 별이 반짝였고 저 멀리로 건물이 보였다. 저기는 어떤 곳일까? 정말 왕자가 사는 곳인가? 속에서 호기심이 넘쳐났다.
혼자 구경하는 것도 좋았지만 가끔은 소꿉친구인 후타쿠치를 불러 같이 올라갔다. 후타쿠치는 매번 구경따위가 뭐가 좋냐고 틱틱대며 위험하다고 나무랐지만 가자하면 따라는 와줬다.
후타쿠치를 빼놓고 혼자 올라온 날, 바다 위 어두운 물체가 보여 가까이 다가가니 배가 한척 떠있었다. 배 아래쪽 구멍으로 안을 몰래 훔쳐보았다. 고급지고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와인잔을 들고 있었다. 난 그 사람이 왕자일 거라고 추청했다.
갑작스레 꽃에 물을 주는 물뿌리개처럼 비가 쏟아졌다. 거칠고 굵은 빗줄기였다. 천둥번개도 큰 소리를 내며 간간히 나타났다. 휘몰아치는 바람과 파도 때문에 이내 배는 가라 앉기 시작했다. 아무리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어도 살아남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바다로 뛰어들은 왕자가 잠시 후 가라앉기 시작했다. 처음 본 왕자가 걱정되었다.
결국 난 의식을 잃은 왕자를 데리고 바다 밖 지상으로 나왔다. 모래 위에 질질 끌어다 놓고 구경했다. 확실히 잘생긴 얼굴이었다. 뭐에 홀린 듯 왕자의 볼따구를 깨물어봤다. 말랑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잘 알면서 왕자를 구해줬다.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왕자는 깨어나도 어차피 날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기억해서도 안 된다. 그래도 내심 구해준 게 나라는 걸 알았으면 했다.
저벅, 저벅, 저벅…….
모래 위를 누군가가 걷는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황급히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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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마녀라면 내 꼬리를 인간의 다리로 만들어줄 수 있을 지도 몰라. 마녀를 찾아가자.
왕자에게 반해버렸다는 걸 깨닫고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계획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마녀는 인간 다리를 가질 수 있는 물약을 주는 대신 아름다운 목소리를 대가로 가져간다했다. 물약을 먹고 3일 째 되는 날, 해가 지기 전까지 왕자의 진실한 사랑을 얻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어 죽을 거라 했다. 사랑은 겁을 없앤다. 죽음이 별로 무섭지 않았다. 목소리를 잃어도 행복할 것만 같았다.
아빠하고 언니들에게는 말하지 않을 거다. 말했다가는 가지 말라고 말릴 것이다. 말리고 말려서도 내가 가겠다고 우기면 아예 못 나가게 어디에 가둬버릴 확률도 있었다. 그래도 후타쿠치에게는 말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녀에게 이따가 다시 찾아온다 전했다. 마녀는 물약을 만들고 있겠다고 답했다.
*
"너 미쳤냐??"
내가 마녀에게 물약을 얻어 바다로 갈 거라고 말하자 후타쿠치가 한 말이다. 어제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깟 왕자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나가겠다고??"
"아니, 잘 생각해봐. 바다에 이렇게 잘생긴 내가 있는데?"
"성격도 좋아, 몸도 좋아, 헤엄도 잘 쳐. 내가 왕자보다 못난 건 없는데. 이정도면 괜찮지 않냐? 어?"
후타쿠치가 정신사납게 큰 목소리로 주저리주저리 말했다.
······잘 모르겠는데. 내 눈엔 왕자님이 더 잘생긴 것 같아. 내가 조용하게 말하자 후타쿠치는 충격먹은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리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이내 정신을 차린 후타쿠치가 되물었다.
"뭐?? 그 기생오라비 같은게 도대체 뭐가 좋은데."
"첫눈에 반했어."
"걔는 너 알지도 못하잖아. 이상한 놈이면 어쩌려고?"
"······."
대책없는 소리인 건 나도 알고 있다. 이유를 들은 후타쿠치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한참동안 말없이 입만 옴짝달싹하던 후타쿠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천천히.
"좋아해."
"······그러니까 가지 마. 만약 너 물거품 되면 난 어떡하라고."
"하······ 네가 왕자랑 붙어먹는 것도 싫어. 이기적이라 미안한데 네가 미치도록 좋은 걸 어떡하냐."
목소리가 갈 수록 작아졌다. 오히려 낯뜨거운 말을 해놓은 장본인이 귀를 붉히고 있었다. 후타쿠치를 좋아하지도 않는데 얼굴에 열이 왜 오를까. 난 왕자를 좋아한다. 얼굴이 뜨거워진 건 더워서 그렇다. 더워서 그래. 바닷속임에도 더웠다.
후타쿠치에게 말하지 않고 몰래 사라졌을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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